첼시의 여왕, 황지해의 ‘리얼스토리’ (2)

[특별인터뷰] 황지해 작가
라펜트l이주경 녹색기자, 김봉진 녹색기자, 박상아 녹색기자l기사입력2014-09-16

황지해 작가의 성공(혹은 성장) 스토리를 접하는 사람들은 '정규 조경학과 과정을 밟지 않았음에도'로 시작하는 일련의 호기심을 갖는다. 이것은 결국 전문성에 대한 그녀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첼시 수상 이전 황작가가 환경예술을 통해 다양한 조경현장을 경험해 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한 숙련된 현장경험은 <에코스케이프> (당시 월간 조경생태시공) 2008년 2월호에 기고한 황지해 작가의 글에서도 단편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다(창원반송 주공 ‘노블파크’ 조경특화사업). 작품에 '혼'을 싣는 작가적 자세 역시 오늘의 그녀를 일으킨 중요 키워드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김봉진 녹색기자(아리울씨앤디 대표이사)

이주경 녹색기자(한국토지주택공사 건설사업부 인턴)

박상아 녹색기자(서울시 서울혁신기획과 마을공동체담당관 청년활동가)





이주경(이하 이): 작품에 투영되는 '나'는? 작품 철학이 궁금합니다.


황지해(이하 황): 사람은 끊임없이 가치에 대한 생각을 고민한다. 나는 그것을 자기애로부터 발견한다. 일하는 모든 시간은 ‘나’와 마주하는 경이로운 시간과 순간의 연속이다. 보이지 않는 궤도 속에서 내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찾곤한다. 일을 통해 ‘나’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벅차게 끓어오르는 감정을 느낀다.  ‘한국적’인 것을 발견할 때도 애국심으로 뜨거워진다. 내가 하는 일은 '나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게끔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자신이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결국 본질적인 '무엇'으로 향하는 여정이다. 나는 자연물을 통해 신의 존재를 느끼곤 한다. 자연이 디자이너이고 황지해는 그 전달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인간보다 자연을 우연한 터치로 요소를 이끌어내는 것이 나만의 노하우이다. 

자연에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요소들이 있다. 그것들을 정원 속에 활용하면 매력적인 공간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연을 관찰한다. 그래서 지금은 내 주변 가득있는 한국적인 것, 자연에서 드러나는 한국의 표정을 공부하며 관찰하고 있다.


이렇게 가장 본질적인 것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그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을 재발견하고 벅찬 감동을 느낀다. 개인적으로 앞으로 내가 할 일은 지구의 상처받고 결핍된 장소를 치유하는 것이다. 결핍된 곳을 자연물로 회복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잘 조성되어 있고, 좋은 조건들을 가지고 있는 곳은 이미 내가 아니어도 충분히 이용될 수 있다. 외면 받고 결핍된 장소야 말로 내가 서있어야 할 곳이다.



이: 실질적인 작업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나요?


황: 파격적인 것을 시도하는 걸 좋아한다. 감성과 느낌을 표현 작업방식을 한계 짓고 싶지 않다. 일례로  네덜란드 플로리아드(2012)에 조성한 한국정원에서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감성에는 ‘동력(動力)’이 필요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태계를 보여주려면 기계적인 요소를 매개체로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기술적인 부분이 그 속에 들어있고, 우리나라 정서도 깊숙이 깔려있다.



네덜란드 플로리아드 정원박람회(2012) - -순천만, 어머니의 손바느질’(황지해 作)


나는 선시공, 후설계를 선호하는 사람이다. 현장에서 쌓아온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겪어왔기 때문이다. 50%를 설계하고 뼈대를 세운 후, 나머지 세부디자인은 디테일과 변수로 채운다. 실제 작업할 때 나는(조건만 된다면) 자유롭게 A, B, C라는 대안들을 놓고 모두 시도해보는 사람이다. 어떻게 작품이 한 번에 좋은 작품이 나오겠는가. 마스터피스가 나오려면 수많은 실패와 만들고 깨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현장을 중시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만든 작업을 누군가에게 던져주고 맡기는 것은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경험들은 지금의 내게 있어 값진 경험들이었지만(웃음). 그때로 돌아간다면, '좀 더 융통성 있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해보지만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그럴 것 같다.



이: '한계'라고 생각한 때가 있었나요?


황: 첼시플라워쇼는 연속적으로 나가지 않으면 도태된다. 흐름이 있기 때문에 디자이너는 흐름 속에 계속 상주하지 않으면,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디자이너들에게 도태되기 십상이다.


2012년 첼시플라워쇼 이후, 그 곳에 나가지 않은건, 솔직히 말하면 스폰서가 없었기 때문이다(않았다기 보다 못한 것이 맞다). 

경험을 통해 나는 우리나라의 존재감을 어떻게 키울 수 있는지 알게 됐다. 그래서 지금의 한계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마치 생살이 찢기는 기분이었다.

 
전시를 통해 소통하고, 호흡하면서 우리나라의 존재감을 알릴 자신이 있다. 밀어주면 잘 할 자신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지엽적인 부분을 가지고 왜 고민해야 하는지 고통스러웠다. 이제는 마음을 조금 내려놓았다. 지금은 예전엔 보지 못했던, 한국에 있는 풍부한 좋은 자원들을 공부하고 관찰하는 중이다.



3D미니어처 '독도가든(사진_DJ Hong_www.okplaynow.com)'



이: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한국성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황: 해외에서 린다 말콤이라는 부부를 만났는데, 그들은 “서울이 한국이냐”고 나에게 물었다. 충격이었다. 과연 지금 서울이 한국이라고 불릴 수 있는가.


농산어촌인 시골을 주목해야 한다. 한국성이 가장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장소적인 것도 물론이거니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정형화 되어있지 않다. 특히 나는 할아버지들을 좋아한다. 어르신들은 자신 스스로 주인공이 되려하지 않고 순수하게 받아들이신다. 또한 공법도 숙련되어 있는 분도 많다. 
바로 이 시골에서 나는 진정성, 한국의 정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할아버지들과 함께 작업을 했던 적이 있다. 계절로는 겨울이었는데, 나는 난로를 가져와 그 속에 고구마, 감자 등 간식거리들을 넣어놓곤 했다. 그 날 고구마를 먹고 고구마껍질을 바닥에 버리고 왔는데, 다음날 오니 까마귀떼가 고구마껍질을 갉아먹었더라. 근데 그 까마귀들이 대나무줄기에 부리로 결대로 껍질을 벗기듯이 문대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한 말이 내 가슴을 울렸다.

“칫솔질 하고 있는 거야”

보통이면 알 수 없을 정보들을 이 곳에서, 이분들이 아니면 어디서 들을 수 있단 말인가?



이: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후배에게 조언을 해주자면?


황: 철저하게 준비하라고 말하고 싶다. 1년 전에 식재를 비롯한 모든 준비를 끝마쳐야 한다. 감각도 중요하지만 철저한 준비와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는 무조건 현장의 감각을 경험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그래왔기 때문에,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 정말 바보같이 일했다. 내 젊음을 송두리째 ‘일’에 바쳤다. 지금 생각해보면 '보다 융통성 있게 일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 때로 다시 돌아가도 똑같을 것 같다. 일을 해야 일머리, 즉 상황능력, 통찰력, 시야가 생긴다. 진정성도 그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쉽지만은 않다. 고통스럽고 지루한 싸움이다. 하지만  그것은 노하우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마치며



박상아 녹색기자


“더 철저하게 가난해져야 절실함이 나오지 않겠어요?”


황 작가는 절실함에 부딪혀야 ‘창의성’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소재만 하더라도, 자유롭게 재료를 선택하고, 다루는 경우는 많지 않다.

현실의 벽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오롯이 지키려 싸웠던 황 작가처럼 조경계에도 절실함으로 어려움을 이기는 소위 '헝그리 정신'을 회복시켜야 할 때라는 생각을 해 본다.   

건축, 토목, 산림 등과 달리 확고한 정부지원 없이 경계 위에 서 있는 분야가 바로 조경이기 때문이다. 조경이 견고한 뿌리를 내리려면, 현실적 문제와 끊임없이 부딪혀 싸우려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황 작가가 끊임없이 깨뜨린 후에 완성했던 마스터피스처럼, 변화를 수용하고, 때론 과감히 부수는 담대함도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본다.

 

 ‘KOREA WIN!’을 듣고 느꼈을 황 작가의 벅찬 감동과 나라 향한 마음이 그녀 목소리로  생생하게 전달됐다. 우리시대 우리문화를 전파하는 것은 충분히 의미있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연속성을 가져야 한다. 

그녀의 자유를 존중해줄 수 있는 사람을, 자유롭게 날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 줄, 그녀의 가치를 알아봐 줄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이주경 녹색기자


황지해 작가의 인터뷰를 앞두고 처음 떠오른 질문은 '예술가로서 조경에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었고, 조경 전반에 대한 공부를 어떻게 했는가?'였다.  
이 질문에 대한 그녀의 답변은 간단명료했다.  “공부를 한 적이 없다” 였다. 틀에 맞춰진 고정관념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만의 독창적인 작품이 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조경학과 학생들은, 설계를 배우는 과정에 있어 정해진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 대상지의 현황을 분석하고, 문제점을 파악한 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을 설정하고, 컨셉을 잡고 설계를 해나가는 것이 우리가 아는 공식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러한 틀에서 벗어나 '선시공, 후설계'를 선호했다. 미리 그려진 도면에 맞게 식재하는 것 대신, 직접 그녀의 손으로 여러 대안을 놓고 시도해보며 세부 디자인을 만들었다.


그런 그녀가 세계 최고의 가든쇼에서 1등을 거머쥐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조경을 전공하지 않은 그녀이지만, 그만큼 많은 현장을 직접 경험하였다. 이론을 줄줄 외우기 보다, '땅'과 '자연'을 먼저 이해하려 했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열정이 지금의 황지해를 만든 것. 


우리 조경교육도 단순히 과거의 커리큘럼을 덧씌우며 업데이트 하는 형식이 아니라, 능동적인 조경인 양성을 위해 유연하고,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는 현실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도 인터뷰 중 생각할 수 있었다.   


편집: 나창호

글·사진 _ 김봉진 녹색기자, 박상아 녹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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