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난 곡성 장미축제의 ‘숨은 주역’

[인터뷰]심우경 고려대 명예교수
라펜트l나창호 기자l기사입력2015-06-08

전라남도 곡성의 키워드는 ‘섬진강 기차마을’이다. 그러다 불과 몇 해 전부터 ‘장미’가 지역의 명물로 떠올랐다. 급기야 5월 22일부터 열흘간 열린 장미 축제에서 유료입장객 21만명을 끌어모으며, ‘대박’을 터트렸다. 연휴 첫날인 24일에만 곡성주민(3만)의 2배가 넘는 6만명이 이 곳을 찾았다. 입장 수익으로만 6억원을 거두어 ‘흑자’를 기록하였지만, 관광객이 체류하며 지출한 금액까지 생각하면, 곡성군의 지역 경제를 들썩이게 할 파급효과를 발생시킨 셈이다.


동양 최대의 장미원을 목표로 첫 삽을 뜬지 6년만에 일궈낸 결실이다.


그러나 인구 3만의 작은도시 곡성에서 성공적인 장미축제를 치루기까지, ‘조경가’의 총괄설계와 자문, 그리고 보이지 않는 노력이 배경이 되었다는 점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들은 그를 ‘전통조경의 대가’ 혹은 ‘한국조경의 세계화에 앞장서는 대학교수’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가 식물을 연구하는 ‘원예학’을 전공했고, 근대조경 도입초기 한국종합조경공사에서 제주도 중문관광단지 등을 설계하며 실무에서 활약을 펼친 조경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않다. 바로 심우경 고려대 명예교수이다.

심우경 고려대 명예교수


1004 장미원 설계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처음 이 곳은 장미원이 아닌 ‘농촌생태체험장’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유명한 엔지니어링 회사의 설계를 마치고, 실내생태관, 주차장 공사가 진행된 상태였다.


2008년 4월 본인의 고향인 이곳에 시제를 모시러 갔다가 군수의 전화를 받고 조성 현장에 가보았다. 먼저 생태원 옥상으로 가 그곳에 식재된 장미를 보았다. 한숨이 나오더라. 장미란 평평하고 비옥한 토양에 심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였고 장소적 특질을 살리기에는 수종 선택에도 부족한 점이 많았다.


이름있는 엔지니어링 회사가 설계했다는 이 곳의 도면을 보았지만, 잔디광장과 실개천, 화장실 2동만을 그려놓은 것에 불과했다. 설계비 2억만큼의 가치가 있어보이질 않았다. 


무엇보다 ‘농촌생태체험장’이라는 처음 방향부터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당시 군수(조형래)와의 생각과도 일치했다. 관광객을 모을 콘텐츠가 빈약해 예산낭비 지적도 면하기 힘들었을 상황이었다.


현장을 살피고 다음날 군수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공사를 중단시킬테니, 예산 구애말고 심 교수가 고향을 위해 소신껏 설계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고심끝에 알았다고 했다. 나를 키워준 고향을 위해 힘을 쏟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실제 설계에 소요되는 비용보다 적은 5천만원에 계약했다. 본인은 설계총괄과 식재설계를 직접 진행했다. 시설물은 애림조경기술사사무소(소장 강대균)가 맡았다.





조성 과정은?

우리는 동양 최대의 장미원 조성을 목표로 설계에 착수했다. 에버랜드, 울산대공원, 조선대 등 비교적 이름있는 장미원을 조사하며, 설계, 관리에 적지않은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아름다운 장미를 찾는 것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절화용 품종으로 소량 생산되고 있다. 오랜 역사를 갖고, 지속적인 품종개량을 해온 유럽 장미의 다양성과 품질에서 차이가 많다.


장미의 본고장 영국에서 수입하기 위해 왕립장미협회(Royal Rose Society)에 회원가입을 하고 협회에 메일을 보내 안내를 부탁했다.


이후 2008년 8월 곡성군 담당직원 두 명과 여름장미축제가 열리는 현장을 찾아가 아름다운 출품 장미를 실물로 보았다. 왕립장미협회 임원의 소개로 영국에서 가장 큰 장미생산 회사인 Davis Austin 장미농장에 방문해 수입을 상담했지만 한국에는 검역이 까다로워 수출하지 않겠다는 대답을 듣고 무척 실망했다.


다행히 장미 수입은 학교 제자의 소개로 알게된 독일의 무역상을 통해 현지의 장미재배 전문가의 기술지도를 받는 것을 전제로 1004종 전부를 50주씩 수입하기로 했다. 장미재배는 전문적인 기술을 필요로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인은 1004 장미원 축제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5급 상당의 장미전문가와 조경기사 1명을 각각 채용할 것을 건의하였고, 곡성군수에게 확약까지 받았다.



영국 여름장미축제에서

장미원에 식재될 장미가 해결되자 설계도 본격화되었다. 본인은 화려한 장미를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역의 이야기를 입히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오래전부터 곡성에서 개최되어온 심청축제에서 모티브를 얻어, 심청의 일대기를 장미원에 도입하기로 했다. 심청을 이야기함에 있어 빠져선 안되는 것이 바로 ‘효(孝) 사상’이다.


먼저 연못을 파서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지는 장면을 연출했으며, 중앙 분수대 위에 심황후가 아버지 눈을 뜨게 해드리기 위하여 모국의 장님들을 모두 초청하여 잔치를 벌이는 장면을 연상하시키기 위해 심황후 상을 배치하였다.




다음으로 장미원과 5분거리에 있는 곡성역 입구에 홍살문을 설치하고 그 위에 ‘효도(孝道)’ 간판을 걸었다. 장미원 진입보도 양편에는 상수리나무로 가로수를 설계했으며, 가로수 밑에 심청의 일대기를 부조로 만들어 배치해, 지나가는 방문객들이 효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하였다.


입구에서 부모님을 업고 정문까지 들어오는 사람에게는 무료입장시키는 효도 프로그램도 실행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많은 사람이 왜 이곳이 ‘1004장미원(Angel Rose Garden)'으로 명명되고 있는지 궁금해 한다. 앞선 언급했듯, 총 1004종의 장미가 이 곳에 식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청이 용궁에서 황후가 되어 시녀(Angel)들의 시중을 받는 장면에서 착안해 붙이게 된 이름이다. 



당초 장미원 부지가 논 위에 조성된 관계로 시공시 배수에 크게 신경 써 암거배수를 철저히 했다. 비옥한 밭 흙으로 성토를 했으며, 평지의 단조로움을 없애기 위해 남쪽 끝에 2층 콘크리크 건물을 짓고 주변을 자연석으로 쌓아 인공산을 만들고 그 정상에서 폭포가 장미원쪽으로 쏟아져 무더위 속에 장미 구경하는 방문객들에게 청량감을 선사했다.


식재는 2009년 봄부터 이루어졌다. 밭흙으로 성토를 한 후 장미원 부지에 지중 급수시설을 배치하였다. 장미 한 가지에서 큰 꽃이 한 송이 피는 하이브리드 티(Hybrid Tea_ HT), 한 가지에 여러 송이가 피는 플로리반다(Floribunda_ FL), 넝쿨장미(Climber_ CL), 우산형으로 자라는 스탠다드(Standard), 미니(Miniature)로 구분하여 심고 외곽에는 회양목으로 갓 돌림을 해 겨울의 삭막함을 보완하도록 했다.


남쪽 끝 2층 건물에서 1층은 장미홍보관, 2층은 음료수 판매장소로 설계했으며, 폭포 앞에는 잔디밭을 조성해 야외결혼식장, 가든파티 용도로 사용하도록 구상했다. 폭포에서 쏟아지는 물이 실개천을 따라 인당수 연못으로 입수되는데 실개천에는 수생식물을 심어 물을 정화하도록 했고 연못에는 연꽃 200종을 전시하도록 설계했다. 또한 겨울 방문객을 위해 폭포 우측에 대형온실을 지어 겨울동안 절화장미 재배 모습을 견학하도록 배려했다.


야간개장과 조명에 소요되는 전력은 주차장 지붕에 집열판을 씌워 자가전력으로 충당되도록 제안했고,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막을 수 있도록 입구 주차장에 몇 겹의 방풍림을 조성했다. 아울러 장미원 주변에 돌담을 둘러 도난방지와 방풍역할을 할 수 있도록, 외곽은 모노레일로 노약자들도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완충녹지로 난대수종을 다층으로 조성하기도 하였다. 장미를 뜨거운 여름에 하게 되는 관계로 그늘을 제공하기 위해 장미터널을 가능한 길게 조성하고 터널 안에 벤치를 많이 배치해 꽃의 정취를 느끼도록 했다. 노약자를 배려해 퍼골라와 벤치 설치도 가급적 많이 하도록 했다.



공사 중간마다 감리를 위해 현장을 찾았다. 하버드대 니얼 커크우드 교수도 방문해 극찬을 해 주었다.
 

조성 후 아쉬움이 있다면?
2009년 여름 개장까지 공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틈틈이 내려와 감리도 봤다. 비록 개장 첫 해에는 장미가 활착이 안돼 빈약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이 몰려왔다.


그러다 2010년 곡성군수(허남석)가 바뀌면서 장미축제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현상공모를 통해 설치된 심청 동상 등을 철거하고, 이를 축소하려 했던 것이다. 군수는 군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없애지 못하고, 명맥만 유지시켰다. 이후 2014년 새로운 군수(유근기)가 취임해, 다시 꽃축제 부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마침내 올해 대박을 터트렸다. 지역 경제를 살리고, 브랜드를 높이기 위해서는 정책적 일관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예이다.


곡성 1004장미원은 당초 설계내용을 충실히 반영시키기 위해 모두가 많은 노력을 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산과 폭포조성, 2층건물 활용, 온실의 용도 및 위치변경, 심청 상 철거  등 아쉬운 점도 많다.


곡성군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고향발전에 대한 공로로 뜻깊은 화답을 받아 감개무량하다. 하지만 아직 1004장미원 축제가 풀어가야 할 숙제 역시 많다고 생각한다. 지난달 31일 감사패를 받는 자리에서 곡성군수를 비롯해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몇가지 제안을 하였다.


먼저 축제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 장미는 최상의 꽃을 보기 위해서는 5년마다 교체작업을 해 줘야 하지만 현재는 그러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한번 찾은 사람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외국 장미품평회에서 수상한 100여종의 장미를 매년 수입해 교체해 주어야 한다. 동양최대의 장미원이란 명성에 걸맞게 ‘전국장미 품평회, 학술대회, 미스장미 선발대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구성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 폭포 앞 잔디광장에는 결혼식장 등 이벤트 행사장으로 활용해 수익을 창출을 고려해야 한다.


나아가 곡성 1004장미원이 국제적 장미원의 명성을 얻기 위해서는 신품종개발에도 힘써야 할 것이며, 대학교 연구소와 연계하여 곡성장미품종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경주되어야 할 것이다.



5월 31일 곡성군(군수 유근기)로부터 1004장미원에 대한 공로패를 전달받았다


조경인들에게

곡성 장미원은 자치단체장의 확고한 애향적 결단력과 전문가의 아이디어의 합작으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지금 조경계가 불황이라고 무척 힘들어 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대학 교수들도 상아탑에서 벗어나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발주부서 조경직도 같은 조경인을 배려하여 적어도 조경계 내에선 갑질문화를 파생시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조경계를 구성하고 있는 교육, 설계, 시공, 관리, 소재생산분야가 한마음으로 단결하여 지금의 난국을 헤쳐나가는 지혜를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글·사진 _ 나창호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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