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일기] 큐슈의 원생림 - 5

강호철 교수의 ‘세계 도시의 녹색환경과 문화 & LANDSCAPE’ - 129
라펜트l강호철 교수l기사입력2017-06-14
강호철 교수의 경관일기 일본편,

지구촌 최고의 어른, ‘조몬스기’를 알현하다




글·사진_강호철 오피니언리더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오전 6시 아라카와 등산로(철길 시작점)를 출발하여 2시간 50분을 쉬지 않고 걸었습니다. 평지라 그런지 아직 땀도 나질 않습니다. 기온이 제법 낮은가 봅니다.

다시 준비운동으로 몸을 가볍게 풀고 본격적 등산에 들어갑니다. 지구촌 최고령 신령과의 만남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한 때 어떤 큰 스님을 직접 뵙기 위하여 우선 법당에서 3,000배를 올려야 했듯이, 신령 같은 존재의 ‘조몬스기’ 옹을 만나기 위해서는 왕복 10시간의 노력은 기본입니다.



산길 코스는 갑자기 급경사로 이어집니다.









계단도 설치되고 쓰러진 통나무도 등산로의 일부가 되어 활용됩니다. 가파른 산길을 걷다보면 거대한 몸집의 야쿠스기와 다른 수종들도 번갈아 나타납니다. 결국 이 산 전체가 생태박물관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동행한 에코비젼 21 대표 이정환 박사.



거목들이 만들어준 통로가 마치 다른 세계로 통하는 운치 있는 게이트 같습니다.





















거목들이 즐비한 등산로를 정신없이 오르다 보니 그 유명한 윌슨 그루터기가 나타났습니다. 모습이 바위동산처럼 느껴집니다.

윌슨 그루터기는 하버드대 수목분류학 전공인 월슨 교수가 발견한 것이라고 합니다. 동굴처럼 생긴 나무속에는 수십 명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트 모양의 하늘창이 인기고, 내부를  통과하는 맑은 시냇물의 맛이 일품입니다.







월슨 그루터기 주변은 제법 넓은 공간으로 쉼터 구실을 합니다. 이곳에서 대부분의 탐방객들이 기념촬영도 하고 간식도 즐기며 충전을 합니다.









외계인이나 공룡이 나타날 것 같은 경이로운 분위기에 동화되어 푹 빠져 봅니다.









경사지는 표토유실이 심각한 수준이라 뿌리의 노출이 많습니다.









연간 강수량이 3,000-8,000㎜ 수준이라고 합니다. 표토의 유실이 어렴풋이나마 짐작됩니다.





작은 공간 여건에 걸맞는 맞춤형 계단시설이 얄미울 정도로 정교하고 깜찍합니다. 미끄럼 방지용 홈파기 모습이 일품이지요. 역시 디자인은 기능이 우선이고 보기도 좋아야 합니다. 꼭 요리사가 좋은 식감을 위하여 새겨놓은 생선회의 칼질 같습니다.







주변은 온통 원시의 숨결 그대로입니다.





비탈길 좁은 산길을 막고 누워버린 노거수. 길은 우회가 곤란합니다. 결국 거목의 허리를 계단 처리하였습니다. 한편 노출된 뿌리도 계단의 일부로 활용됩니다.



조몬스기를 알현하기 위한 과정은 힘들고 험하지만 그래도 황홀합니다. 원초적 자연의 모습을 숨김없이 보여줍니다.









숲속의 쉼터.





지극히 좁은 통로만 벗어나면 모두가 태고의 자연입니다.









일본인들은 준칙을 철저하게 지킨다는 사실을 여러 장면에서 증명시켜 줍니다. 순로를 벗어난 모습은 어디에서도 목격되지 않습니다.













어제 답사한 야쿠스기랜드와는 달리, 단체 탐방객들로 인한 병목현상도 발생합니다.



우선 보기엔 모든 숲에 인간의 손길이나 간섭의 흔적을 전혀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숲 관리에 관한 주요 내용들이 소개되고 있지요. 실로 놀랍습니다. 아주 자연스런 숲의 모습입니다.







스케일감이 떨어져 크기 가늠이 다소 힘들지만, 매우 큰 삼나무입니다.






줄기의 독특한 색상으로 눈길을 끄는 수종이 우리나라 산야에서도 자생하는 노각나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안내판.



노각나무 뒤로 보이는 거목이 ‘부부 삼나무’인데, 연리지로 인하여 유명하게 된 경우입니다.



연리지(서로 다른 나무의 줄기나 가지가 맞붙어 연결된 상태)의 모습



부부의 연으로 맺어진 삼나무. 스토리텔링에 등장하는 삼나무는 최소 수령이 1,000년 이상된 야쿠스기들입니다.









거대 삼나무의 옹이





수목줄기 터널













거목들과 원시 자연성을 간직한 주변 경관에 현혹되다 보니, 조몬스기에 도착했습니다.







야쿠시마는 한때 누구도 찾지 않는 한적한 섬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구촌의 최고 어른에 대한 정보가 알려지면서 페리와 공항이 생겼다고 합니다. 갑자기 늘어난 관광객으로 등산로가 훼손되고, 조몬스기도 주변 표토의 답압 영향으로 몸살을 앓기도 했답니다. 이후 보호대책을 세웠습니다. 수목에서 30m 정도 이격시켜 조망 데크를 설치하여 접근을 못하게 한 것입니다.





신적 존재로 추앙받는 지구촌 최고령의 신령스런 존재, ‘조몬스기’

‘조몬시대’란 일본의 선사시대를 의미하는데, 구체적으로는 15,000년 전부터 2,300년 전까지를 지칭한단다. 어떻든 선사시대에 태어난 초고령을 뜻하는 것입니다.

야마오 산세이(1938-2002)는 시인이자 농부이며 철학자였는데, 일생 동안 야쿠시마의 자연과 조몬스기를 신앙처럼 지키며 숭배하고 널리 알린 사람입니다.

졸업장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비겁하다며 와세다대학을 중도 포기하고, 1977년 동경생활을 접고 세상을 바꾸기 위한 포부를 안고 오지 섬 야쿠시마의 폐촌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이 설정한 삶의 원칙을 지키며 야쿠시마의 자연을 지키고 대변하다 2002년 그토록 사랑하고 아끼던 야쿠시마 자연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가 남긴 책들은 한국어로도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사는 즐거움을 비롯하여 ‘나를 향한 여행, ‘더 바랄게 없는 삶 등입니다.



필자는 답사전 이 두권의 책을 구입하여 야마오 산세이의 야쿠시마에 대한 가식없이 순수한 참사랑과 생활철학, 그리고 그의 작품세계를 조금이라도 접하고 싶었습니다.



어렵고 힘들게 알현하게 된 신령스런 조몬스기. 점심도 굶은 채, 한동안 두 곳에 마련된 조망대를 오가며 보고 또 바라보며 뇌리에 각인을 시킵니다.

다음은 야마오 산세이의 ‘성스러운 노인’의 일부 구절이다.

야쿠시마 산속에 한 성스러운 노인이 서 있다.
그 나이 어림잡아 7천2백 년이라네.
딱딱한 껍질에서 신성한 기운이 스며든다.
성스러운 노인
당신은 이 지상에 삶을 부여받은 이래 단 한마디도 않고, 단 한 발짝도 내딛지 않고 그곳에 서 있다.
고행신 시바의 천년지복의 명상과 닮았다.
당신의 몸에는 몇 십 그루의 다른 나무들이 대지로 알고 자란다.
당신은 그것을 자연의 섭리로 바라볼 뿐이다.








조몬스기에서 능선따라 5분쯤 더 오르면 작은 집이 있습니다. 그곳까지가 오늘의 목표입니다. 해발고도 1,300m.









경사진 등산로의 표토가 유실되어 뿌리가 거미줄 처럼 드러나 있습니다.



이제 최종 목적지를 돌아 하산하는 중. 저도 모르게 다시 카메라에 손이 갑니다. 우리와의 작별을 아쉬워하는 조몬스기옹의 섭섭한 마음이라 여기며 발길을 재촉합니다.



건승을 빌며, 아쉬운 작별.



하산길에 다시 만난 부부 삼나무와도 작별인사.



월슨 그루터기 동공. 장소를 옮기며 정확한 하트모습을 찾습니다.



심재부분은 이미 부후하여 동공이 생긴 그루터기.



월슨 그루터기의 입구가 이제와서 보니 표주막 형태를 닮았습니다.







윌슨 그루터기 주변은 하산길에도 많은 사람들로 붐빕니다.

조몬스기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하여 많은 인기를 누리는 ‘윌슨그루터기와 ‘윌슨 인물에 관한 자료를 다시 정리해 보았습니다.

윌슨그루터기는 300년 전 벌목된 거목의 흔적인데, 수령이 약 3,000년으로 추정됩니다. 어네스트 윌슨(1876-1930)은 영국태생의 식물학자로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양의 자원적 가치가 높은 목본식물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현지탐사를 하였답니다. 그는 영국 왕립 Kew식물원 소속이었지만, 하버드대학의 예산 지원을 받아 동양의 식물수집 탐사에 열정을 쏟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야쿠시마 삼나무를 세계식물학계에 알리게 된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1914 일본의 벚나무와 침엽수를 조사하기 위해 야쿠시마에 왔답니다. 산속을 조사하던 중 비를 만나 대피한 곳이 지금의 윌슨그루터기입니다. 그래서 야쿠시마에는 그를 기리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답니다. 한편 윌슨은 제주도의 구상나무(Abies koreana)를 1917년 채집하여 한반도에서만 서식하는 특산수종임을 밝혔습니다(1920년).



험준하고 경사진 산길과 평탄한 기찻길을 연결하는 사다리형 목재계단.



조몬스기를 비롯하여 윌슨삼나무, 대왕삼나무, 부부삼나무를 차례로 작별하고 드디어 철도까지 내려왔습니다. 오전과는 달리 길이 무척 한산합니다.

1923년 목재반출을 위하여 개설된 철도는 1970년 목재사업소가 폐지될 때까지 47년동안 수송로 기능을 하였습니다.



삼나무가 쓰러진 원줄기를 자양분 삼아 갓 발아된 어린 후손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들이 성장하여 천 년이 지나면 신세대 ‘야쿠스기로 거듭날 것이다.



삼나무 판재로 된 40㎝ 보도. 1인용으로 적절합니다.





원시분위기의 숲속을 걷는 재미는 이루 표현할 수 없는 환상적 즐거움입니다.



삼나무의 줄기들이 곧아 대밭같이 느껴집니다.



벌목이 한창이던 시절, 학교와 마을이 자리했던 집락터. 번창했던 1960년대 이곳에 500여 명이 거주하였답니다.



하천변에서 자라는 삼나무 후손들의 자연수형.



공중습도가 높아 흙이 없는 수목의 줄기 표면에서 여러 가지 식물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본 열도의 평균 강우량이 2,000인데, 야쿠시마는 무려 8,300라고 합니다. 쉽게 믿기지 않는 양이지요.





새벽 6시 출발했던 그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현재 시각이 오후 4시, 염려했던 10시간의 대장정이 순조롭게 마무리되는 순간입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바람도 없는 날씨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비록 회갑을 지난 지 오래지만, 아직은 걸음이 꽤나 빠른 편이라 생각되는데, 사진을 찍고 주변 분위기에 매료되다 보니 보통 탐방객들 보다 오히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버스시간은 여유가 있습니다.
글·사진 _ 강호철 교수  ·  경남과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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