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가의 ‘대형공원’에 대한 담론들

조경학회 춘계학술대회 설계포럼 개최
라펜트l전지은 기자l기사입력2021-04-02

정욱주 서울대학교 교수, 김영민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안계동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 김아연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이호영 HLD 소장

팬데믹, 기후위기, 그린뉴딜 등 전세계적 이슈로 녹지공간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특히 ‘대형공원에 대한 담론을 형성하기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사)한국조경학회 춘계학술대회 설계포럼이 ‘춘천 캠프페이지 국제설계공모와 대형공원 담론’을 주제로 26일(금) 온라인으로 개최됐다. 포럼에서는 춘천 국제설계공모 파이널리스트와 함께 공모전을 소재로 대형공원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을 다루었다.

발제로는 ▲인트로: 발굴과 기획 대상으로서의 공원(정욱주 서울대학교 교수) ▲대형공원 설계 담론의 변화(김영민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대형공원 기획과 프로그래밍(안계동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 ▲대형공원의 기억과 기록, 파괴와 창조(김아연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대형공원과 숲(이호영 HLD 소장)이 마련됐다.


“공원기획단계에 조경참여 필요해”

정욱주 서울대학교 교수는 “좋은 공원은 좋은 설계만으로는 태어날 수 없다. 조경가가 공원에 대한 내부적 전문성을 갖추고, 공원을 둘러싼 외부적 요인들에 대한 이해가 출중해야 좋은 공원이 만들어진다”며 공원은 조경의 영역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내외부적으로 역량을 갖출 것을 강조했다.

공원계획, 설계, 시공단계 전 발굴, 기획단계에서는 설계자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장이 마련돼야 하는데, 정치적 이유나 상위계획인 도시계획단계에서 많은 것들이 결정돼 하달되는 등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조경분야가 무엇을 준비할 수 있을까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효창공원, 어린이대공원, 여의도공원, 월드컵공원, 서대문 내 공원들, 1기 신도시들의 중앙공원들 등 많은 공원들이 정치적, 외부적 요인들로서 다시 재정비해야한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조경분야는 후발주자로서 정해진 것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준비해두었다가 때가 왔을 때 많은 의견을 내고 주도권을 쥐어야 할 것”이라며 발굴, 기획단계에도 조경분야가 영향이 미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역설했다. 그것이 “좋은 공원을 만들어 시민에게 가장 잘 돌려줄 수 있는 조경가의 의무이자 권리”라는 것이다.

안계동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은 “공원기획은 공원을 잉태시키는 과정으로, 계획가는 기획단계에서 주어지는 조건들을 신뢰하고 따라야 하지만 실상은 허점이나 문제가 많다”며 “공원기획은 도시계획적 균형과 경제적 타당성보다 정책적 비전과 업적에 큰 비중을 두고 있어 합리적이고 안정적이기보다는 정치적이며 변경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안 소장은 공원기획단계에 몇 차례 참여한 경험이 있다.

예를 들어 서울식물원은 워터프론트파크로 출발해 계획이 완성됐음에도 시장의 바뀜에 따라 보타닉파크로 변했고, 서울숲은 뚝섬 관광문화타운으로 계획됐다가 시장이 바뀌면서 숲이 됐다. 안 소장은 “춘천 캠프페이지의 경우, 미세먼지 차단숲이 공원면적의 반 이상을 차지하도록 기획된 것을 비롯해 기타 정해진 시설들에 대해서 아직도 동의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기획단계의 지침을 계획가가 어느 정도로 받아들일 것이냐의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이호영 HLD 소장은 “미세먼지 저감숲은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밀도나 수종이 제안되고 있고, 곳곳에서 많이 적용하고 있다. 만약 기획단계에서 숲의 규모가 결정돼야 한다면 조경가나 생태학자, 환경학자들이 해당 도시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환경생태적 측면에서의 숲의 규모를 결정하는 것이 적정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토론에서 오순환 조경지원센터 본부장은 “작은 규모의 공원에서도 발굴, 기획단계에 조경가가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발굴, 기획단계에 조경가가 참여해 변화를 이끌었던 지자체의 사례를 들었다.

양천근린공원 리모델링의 경우, 실적위주의 제안공모였으나 정성적 평가의 비중을 크게 제안서 지침을 바꾸었고, 용역비를 올려 보다 많은 설계사무소가 참여할 수 있었다. 파리근린공원리모델링 용역시에는 원 설계자에게 기본구상에 맞춰 어떤 부분을 개선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견을 묻고 제안서공모를 실시했다. 용역비도 증액하고, 건축물이 들어갈 경우는 별도로 예산을 투입할 수 있도록 변경하기도 했다.


대형공원의 새로운 패러다임

100년이 넘은 센트럴파크는 대형도시공원의 전형으로 남아있으며 그간 여러 변화의 시도가 있었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김 교수는 “기존의 공원설계 패러다임은 ‘조닝’과 ‘프로세스(시간성)’이라고 본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이 두 가지를 건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우선 공원설계를 지배하는 방법인 ‘조닝’은 더 좋은 공원을 만들기 위한 것을 방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닝은 도시계획에서 용도를 결정하기위해 제시된 개념이지만 점차 공간을 다루는 중요한 담론이 되며 여러 분야에 적용됐다. 조경 역시 식재, 프로그램 등 다양한 기준에 따라 공원의 구역을 나누고 있다는 것이다.

70년대 건축분야에서 이야기하던 ‘프로세스(시간성)’ 개념은 제임스 코너가 다운스뷰 파크 공모전에서 생태적 변화에 대한 다이어그램을 제시하기 시작하며 충격을 주었고, 프레쉬 킬스 파크설계안을 시작으로 대세가 됐다. 그러나 결국은 하나의 안을 시간적으로 쪼갠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조닝이 강조된 너무 고정적인 공원계획, 프로세스 중심의 너무 유연한 공원계획은 문제가 된다”며 오렌지 카운티 그레이트파크와 다운스뷰 파크를 각각 공원계획의 실패사례로 꼽았다.

김 교수팀의 춘천 캠프페이지 설계안은 ‘새로운 대형공원의 패러다임은 무엇인가?’라는 대한 물음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다. 제시된 것은 유연한 경계, 다양한 성격의 작은 공원들이 중첩되고 나뉘기도 하는 ‘100개의 공원으로 변주되는 하나의 공원‘이라는 개념이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그리고 춘천에 적합한 공원은 도시와 공원의 경계가 없는 ‘도시같은 공원’이 아닐까 생각했다. 따라서 일부러 설계안에 대형공간들을 넣지 않았고, 생활에 밀착적인 도시에 가까운 구조와 프로그램을 담는 공원으로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공원은 서양으로부터 근대 도시화의 산물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도시의 콘크리트와 반대되는 개념이지만, 우리나라는 근처에 산과 자연이 많기 때문에 다른 개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이호영 HLD 소장은 “대형공원이 도시에 존재하지만 국가나 문화, 수도와 중소도시, 위치 등에 따라 성격이 달라질 것이다. 작금의 시대에는 시민의 참여에 의해 프로세스가 변화할 수 있도록 하는 민주적 공원조성방식을 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간을 정하되 유연하게 정하고, 큰 틀을 유지하되 디테일하게 변화하는 방식”이라고 의견을 냈다.

정욱주 교수는 “새로운 패러다임 설정과정에 있어 조경뿐만 아니라 외부의 의견을 감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대형공원의 기억과 기록, 파괴와 창조

김아연 서울시립대학교 교수는 ‘대형공원이 가진 기억과 기록을 파괴하고 창조하는 주체는 누구이고, 그 준거는 무엇이며, 이것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김 교수는 “대형공원의 설계에 있어서 시간성을 다룬다는 것은 어떠한 가치와 기준으로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의 이슈를 다루는 것일 수 있다. 대형공원은 백지상태에서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설계안은 땅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설계자의 해석에 따른 선택의 결과이며, 설계자들은 디자인 개념에 의해 원래 있었던 것들을 그대로 살릴 수도, 완전히 없앨 수도 있다”며 “설계자들은 설계 외적인 부분도 설계과정이라고 보고, 어떤 기준을 가지고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춘천 캠프페이지 설계에서는 과거를 선택하고, 전유하고, 변형하는 주체가 ‘설계자’에서 ‘시민’으로 이행하는 것이 주된 이슈였음을 소회하며 “설계안에 따라 시민들은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경험할 수도, 새롭게 제안된 질서를 경험할 수도 있다. 시민들이 설계안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기억과 기록은 해체되기도 하고, 보존되거나 변형되기도 하면서 공원은 성장한다”고 설명했다.

춘천 캠프페이지의 대상지 현황은 기존의 시설이 대부분 훼손되거나 사라진 상태였으나 김 교수팀의 설계안은 캠프페이지로 이용됐던 때의 모습이 기호로 되살아났다. 군 기지로 쓰였을 때 가졌던 기호적 의미들이 다른 용도로 쓰이는 과정은 미군기지 레이아웃을 해체하는 주체이자 새로운 용법과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로서 시민이 등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형공원 내 ‘숲’과 조경가의 역할

이호영 HLD 소장은 “대형공원은 중소공원과 달리 규모가 크기에 나무가 우거진 숲을 설계할 수 있다. 그러나 현상설계나 개념설계 단계에서는 ‘문화예술의 숲’, ‘치유의 숲’과 같이 추상적 개념에만 머물러 있을 뿐 기술적인 설계방법론을 제시하지 않으며, 숲의 중요성에 대해 러필할 수 있는 소통기술 또한 부족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숲은 대형공원을 만들 때 지형과 함께 물리적 공간을 규정하는 강력한 수단이기 조경가가 스페셜리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숲에 있어서 조경가만의 스페셜리티는 “나무 하나하나를 경관적으로 보는 것은 기본이고, 공간을 규정짓는 물리적 요소로도 디테일하게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캐노피가 열려있는 숲, 위요돼있으나 눈높이는 뻥 뚫린 숲 등 조경가는 공간감을 형성하기 때문에 조경가는 숲의 생태적 기능에 더해 공간을 만드는 체계적 요소로서의 숲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소장은 “공원설계시 PM의 역할이 중요하듯 공원내 숲에서도 마찬가지다. 숲은 환경, 생태, 경제, 문화, 경관 모든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환경학자, 생태학자, 문화역사학자 등과의 토론이 필요하며, 이에 대한 기본지식과 필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이 기반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원내 숲에 대해서 안계동 소장은 “서울숲과 같이 공원의 주제를 숲으로 정하고 공원의 많은 부분을 숲이 차지하는 것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도시마다 근교숲이 있기 때문에 공원에는 활동이 가능한 캐노피로서 기능하는 숲이 필요할 뿐 많은 면적을 숲이 차지할 필요는 없다”고 의견을 더했다.


“공원프로그래밍 과정에 설계자 참여할 수 있어야”

프로그래밍은 공원기획에서 부여된 목적에 맞게 무엇을 담을 것인지 찾아가는 과정이다. 

안 소장은 “과거에는 시설 위주로 조닝을 하는 형태였으나 시민의식이 점점 높아지면서 이에 따른 의견도 많아져 점차 프로그래밍에 대한 예측이 어려워지고 있다. 설계자로서는 급격히 변화하는 공원을 어떻게 구현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으며, 공원의 정의 자체를 다시 내려 봐야 한다는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에서 설계한 서울숲의 경우는 시민단체인 서울그린트러스트가 공원을 운영관리하고 있는 사례로, 설계자가 공원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시민과 함께 공원을 진화시키고 있다.

안 소장은 “행정기관에서 직접 관리하는 공원들은 설계가가 프로그래밍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다. 서울숲처럼 다른 공원에도 공원위원회와 같은 조직이 구성돼 설계자와 시민이 긴밀히 연결하며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으면 한다. 적어도 공원이 변화를 겪을 때 설계자가 직접 재설계하거나 자문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설계자가 공원의 프로그래밍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글·사진 _ 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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