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앞을 보기 위해 뒤돌아봐야 한다” 1992년 세계조경가대회 이야기

30년 전 세계조경인들의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라펜트l전지은 기자l기사입력2022-08-30
전세계 조경인들의 축제 ‘제58차 IFLA 세계조경가대회’가 하루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이번 ‘제58차 IFLA 세계조경가대회’는 1992년 이후 30년만에 한국에서 열리며, 한국조경 50주년을 맞은 우리에게 더욱 의미가 있다.

이번 대회 주제는 ‘RE:PUBLIC LANDSCAPE’이다. 팬데믹 확산, 기술 혁명 및 정치적 갈등과 같은 급격한 변화를 목도한 우리가 ‘다시, 조경의 공공성’을 토론하기 위해 마련됐다. ▲RE:VISIT(조경 유산에 대한 재평가) ▲RE:SHPAE(기후변화 시대 대응 조경계획 설계) ▲RE:VIVE(새로운 라이프스타일과 일상 속 미학 발굴) ▲RE:CONNECT(도시와 자연의 재연결)의 4가지 소주제를 다룬다.

세계조경가대회의 주제는 각 시기마다 조경계의 당면 현안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30년 전인 1992년 서울과 경주에서 열린 ‘제29회 IFLA 세계조경가대회’의 주제는 무엇이었을까? 30년 전, 우리는 무엇을 고민하고 있었을까?

당시 존 옴스비 사이몬스 전 미국조경가협회장은 이탈리아의 작가 람페두사의 소설 <표범>의 ‘모든 것이 그대로 머물기를 원한다면, 모든 것은 변해야 한다’는 말을 인용하며 “우리는 앞을 보기 위해 뒤돌아봐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제58차 IFLA 세계조경가대회’를 하루 앞 둔 지금,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보자.


1992년 ‘제29회 IFLA 세계조경가대회’ 기념기


세계조경가협회 가입과 참가의 시작 : 한국조경의 위상정립 및 세계조경인과 교류
세계조경가협회(IFLA: International Federation of Landscape Architects)는 전 세계 77개국 조경가 2만 5천 여명이 참여하는 글로벌 조직이다. 1948년 영국에서 설립되어 현재 유럽, 아시아태평양, 아메리카, 아프리카, 중동 5개 지역의 지회가 활동 중이다. 한국은 아시아태평양(APR)에 속해 있다.

‘세계조경가대회’는 지역별로 돌면서 열리는 가장 상징적이고 대표적인 회의이다. 2,000~3,000명 정도의 회원이 참가하고, 각국 총리나 장관, 세계적인 저명인사들이 참여하는 지구촌 축제이다. 세계대회는 개최 도시와 긴밀히 협력해 도시를 알리는 플랫폼으로 활용되어, 도시환경 및 조경 분야의 ‘국가 및 도시 브랜드’ 상승 효과와 경제적 파급력이 크다.

한국은 1980년 마닐라 IFLA 2차 동부지역협의회(ER)에서 가입을 신청했고, 1981년 캐나다 밴쿠버 IFLA 세계조경가대회에서 한국조경연합회(KOFLA)의 가입이 승인됐다. 이듬해인 1982년 호주 캔버라 IFLA 총회 때 한국대표단이 처음으로 세계조경가대회에 참석했다. 이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매년 IFLA 총회와 지역대회 등에 참가하며 많은 논문 발표와 조경작품을 출품해 한국 조경을 알리고, 세계 조경의 추세를 파악하며 세계조경인들과 교류하고 있다.

특히 1992년 ‘제29차 IFLA 세계조경가대회’가 서울과 경주에서 열렸으며, 이밖에도 1999년 ‘IFLA-APR 양양대회’, 2009년 ‘IFLA-APR 인천대회’ 등을 한국에서 개최하며 성공적 국제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대회 유치와 조직위 운영 : 조경단체 모두가 결속된 한국조경연합회
한국에서 처음 열린 세계조경가대회는 ‘제29차 IFLA 세계조경가대회’로, 1992년 8월 31일부터 9월 4일까지 5일간 서울, 경주, 무주에서 열렸다.

당시 한국조경연합회(한국조경학회, 한국조경사회, 한국조경수협회, 한국조경가협회, 단종협의회 등의 총연합체) 회장이었던 오휘영 교수는 1990년부터 92년까지 IFLA 부회장과 동부지역(ER) 회장을 역임하며 동아시아지역의 기술교류와 협력관계 구축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특히 한국대표단은 1984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IFLA 세계조경가대회에 참가해 서울·경주대회를 유치, 이후 대회 조직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대회개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당시 냉전체제에서 헝가리는 공산국가였으므로 교류가 금지되던 시기였다. 그런 국내 여건 속에서도 대회 유치라는 쾌거를 이루며 한국조경의 본격적인 국제 활동 신호탄을 쏘았다. 

한국 개최유치 결정 뒤, 1990년 12월 한국조경연합회를 중심으로 한국총회 준비위가 꾸려졌다. 산림청의 협조로 임업연구원 내 사무국을 설치하고, 16개월에 걸쳐 총 40여 회의 임원회의를 실시하며 대회준비를 추진했다.

조직위원회는 대회가 열리는 서울, 경주에 따라 서울조직위(위원장 오휘영), 영남조직위(위원장 김기원), 호남조직위로 구성됐으며, 조직위원장 산하에는 총괄위원회, 사무위원회, 학술위원회를 꾸리고, 서울과 경주지역 위원장을 각각 두었다. 각 위원회는 산하에 기획관리분과, 북방외교분과, 대외업무분과, 환경디자인분과, 등록분과, 제정분과, 홍보분과, 숙박분과, 수송분과, 관광분과, 학술분과, 전시분과, 행사분과, 외국어분과, 가족분과 총 15개 분과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로써 임원 53명, 사무국 요원 22명, 자원봉사자 103명 등 총 178명이 활동했다.


1992년 IFLA 세계조경가대회 한국총회 조직표 / 출처: 환경과조경 제52호(1992년 8월)


‘전통과 창조’ : 과거가 미래를 성찰하고, 전통과 창조를 접목해...
당시 대회 주제는 ‘전통과 창조’였다. 오휘영 조직위원장의 개회사는 ‘미래창조의 에너지는 축적되어온 나라마다의 다양한 전통적 토양 속에서 생성되어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체적 기획과 디자인 활동으로 사회적 문화적 가치를 창출하고, 이를 인류 문화유산의 발전적 보호와 미래 창조의 발판으로 연계시켜나가는 사명의식을 가진 조경인들에게 ‘전통과 창조’라는 주제는, “역사와 언어와 가치관이 각기 상이한 세계 모든 문화권의 조경인들에게 과거과 미래를 성찰하고, 전통과 창조를 접목해 보다 큰 전진을 이룰 수 있는 하나의 뚜렷한 지침”이라고 설명했다.

존 옴스비 사이몬드 전 미국조경가협회장은 “앞을 보기 위해 뒤돌아봐야 한다”며 인간의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해 자연을 훼손한 결과인 공해, 인구 과잉지역, 산성비, 삼림의 고갈, 지구온난화 등 지구의 재난 앞에 조경가로서의 역할을 강조하고, 지구를 위해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거대한 주제 아래 세부 학술주제로는 ▲전통문화와 조경 ▲농경문화와 조경 ▲도시와 조경 ▲21세기 조경의 방향이 선정됐다. 무주학술대회에서는 ‘독립공원과 레크리에이션’을 주제로 논문이 발표됐다.


제29차 세계조경가대회 / 출처: 환경과조경 제54호(1992년 10월)


학술답사 / 출처: 환경과조경 제54호(1992년 10월)


‘IFLA 한국총회 진행’ : 전세계 34개국 1,300여명이 참여, 당시 대통령 축하도...
개회식은 서울에서, 학술행사 등은 경주와 무주, 폐회식은 경주에서 치렀다. 대회 전에는 IFLA 회장단회의, 이사회의, 국제 및 지역분과회의가 진행됐고, 프로그램으로는 개회식, 환영연(서울시장 주최, 1,000여명 참석), 학술답사, 민속예술제 및 만찬(경주시장 주최), 학술회의(980여명 참석), 국제학생 잼보리(900여명 참석), 폐회식, 환송연(경주관광개발공사장 주최), 대회 후 관광 등이 마련됐다. 행사에는 총 34개국 1,300여 명(외국인 정회원 305명, 내국인 정회원 402명, 한국조경학회 초청 613명 등)이 참여해 성황을 이루었다.

조경디자인 워크숍(380여명 참석)에서는 4개의 한국조경설계작품이 발표됐고, 조경소재 및 시공기술 워크숍에서는 일본조경사례 3개와 한국조경사례 1개를 공유했다. 국제학생조경작품 공모전에는 설계작품 133개, 연구 7개 작품이 출품됐고 심의를 거쳐 24개 작품에 시상했다.

6개 코스별 학술답사도 진행됐다. 답사코스는 비원(950명), 경주 안압지(동궁과 월지) 등 한국 전통정원(1,280명)과 전통사찰(160명), 전통마을(380명), 민가정원(120명), 무주리조트(290명)였다.

동시에 서울의 조경역사와 한국의 전통 및 현대조경을 파악할 수 있는 『서울의 조경』, 『한국현대조경작품집』, 『한국전통조경』 3권의 도서가 출간됐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 축하메시지


1992 IFLA 경주선언 : 세계조경계가 한국에 주목하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
‘제29차 세계조경가대회’의 큰 성과 중 하나가 세계조경가협회 회원이름으로 만든 ‘1992 IFLA 경주선언’이다. 이 헌장은 지구환경문제와 인류 미래를 위해 전 세계 조경인들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담았다. 리우 세계환경대회를 계기로 범지구적 환경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과 동시에 이념 대립이 무너지며 새로운 미래를 설계해야하는 세계적 시류 속에서 조경 역시 현재를 재정립하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해야할 시점이었다.
‘경주선언’을 계기로 세계 조경계는 함께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고 그 문제들을 풀어나갈 것을 결의했다. 좁게는 조경인들의 단합과 교류를 꾀하고, 넓게는 보다 나은 지구 환경을 이룩하는 데 이바지하기 위한 약속이다. 이 선언은 작금의 조경인들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1992 IFLA 경주선언
 / 출처: 환경과조경 제54호(1992년 10월)


1992년 IFLA 세계조경가대회가 남긴 것
범세계적 환경보호와 조경문화 발전을 위한 조경인들의 책임과 의무를 재확인 할 수 있었고, 한국 조경인들의 위상이 국내외적으로 크게 향상됐다. 양분될 조짐이 보였던 IFLA 세계기구를 새롭게 결속하는 개혁위원회가 꾸려져 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고, 국교 단절로 민간정보 교류가 어렵던 대만과의 관계도 대회기간 중 따로 모임을 가짐으로써 동양조경학술연구에 공동참여하는 것으로 개선됐다. 독립국연합과의 역사상 최초의 학술문화교류 협정을 체결하기도 했다.

또한 한국조경이 역사상 처음으로 해외 조경가들에게 소개됐고, 한국의 조경인들은 세계 조경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한국의 조경 수준이 예상 외로 높다는 것도 알려졌다. 학술적으로는 학술발표 및 회의 참석자 수가 다른 어떤 총회보다 높기도 했다.

국내적으로는 각 단체 및 업체간 공동노력을 통해 협력의 기틀을 다지는 계기가 됐으며, 조경계 종사자와 조경학도들에게도 장래 비전과 자신감, 목표와 과제를 제시하는 기회가 됐다.

특히, IFLA 한국총회를 성황리에 마친 후, 남은 비품과 기금을 한국조경학회에서 인수하였으며, 이때 전달된 기금은 현재 조경분야 최고의사결정기구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환경조경발전재단 설립의 근간이 됐다.

이후 1999년 ‘IFLA-APR 양양대회’, 2009년 ‘IFLA-APR 인천대회’ 등이 한국에서 열렸고, 1991년 한일 국제심포지엄, 1998년 한중일 국제심포지엄이 시작됐다. 2002년 10월 유럽 리트비아 IFLA 세계조경가대회에서 열린 동부지역회의에서 한국대표의 제안으로 ‘IFLA 아시아태평양지역 조경작품상’이 신설돼 2003년부터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2004년 선유도공원을 시작으로 청계천, 서서울호수공원 등 한국의 조경작품이 ‘미국조경가협회상(ASLA Professional Awards Competition)’을 수상하고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조경시설물들이 국외로 수출되어 한국 조경제품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으며, 세계 곳곳에 한국정원이 조성되는 등 한국조경계의 국제교류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올해 개최되는 IFLA 세계조경가대회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게 될까?
_ 전지은 기자  ·  라펜트
다른기사 보기
jj870904@nate.com

네티즌 공감 (0)

의견쓰기

가장많이본뉴스최근주요뉴스

  • 전체
  • 종합일반
  • 동정일정
  • 교육문화예술

인기통합정보

  • 기획연재
  • 설계공모프로젝트
  • 인터뷰취재

커뮤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