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일기 300회] “경관일기는 이제 본업이자 새로운 놀이터”

[인터뷰] 강호철 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수, <강호철 교수의 경관일기> 저자
라펜트l전지은 기자l기사입력2022-09-30
둔필승총(鈍筆勝聰)이라는 말이 있다. ‘둔한 붓이 총명함을 이긴다’는 뜻으로, 아무리 총명한 사람이어도 ‘기록’해두지 않으면 기억이 흐려지기 마련이라는 의미이다. 기록은 역사이기도 하고, 과거를 돌아보며, 미래를 바꿀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

2014년 3월 26일 일본 속의 네덜란드, 하우스텐보스라는 제목으로 시작한 <강호철 교수의 경관일기>가 어느덧 300회를 맞이했다. 한 회마다 100장이 넘는 경관의 사진을 꾹꾹 눌러 담아 정성스럽게 세계 곳곳의 경관을 소개해온 것이 어느덧 300회 분량의 기록으로 남았다. 이 소중한 기록 덕에 우리는 발이 묶여있던 팬데믹 시기에도 손쉽게 세계 곳곳을 답사할 수 있었고, 자유로워지고 있는 지금은 직접 가보고자 하는 열망을 키운다.

300회 연재를 기념해 강호철 교수에게 답사의 시작과 경관을 보는 시각, 답사에 필요한 준비물, 그리고 기록에 대한 이야기까지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 들어보았다.





<강호철 교수의 경관일기>가 어느덧 300회를 맞이했습니다. 문득 교수님께서는 언제부터 답사를 다니셨는지가 궁금해집니다. 아마도 첫 답사가 교수님 이후의 삶을 답사로 이끄는 매력이 있었을 것 같아서요.

저는 시골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자연을 가까이할 수 있었지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무와 산(등산)을 유달리 좋아하며 지냈습니다. 이후 임학과 조경학을 전공하며 야외실습과 현장 답사가 빈번하였는데, 야외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임할 수 있었으니 내 취향에 꼭 맞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의 첫 해외 나들이 역시 답사였네요.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 COEX에 근무하던 시절입니다. 1990년 ’오사카 국제 꽃과 녹음 박람회‘ 참관을 위해 오휘영 교수님 연구실 소속의 대학원 선후배들로 구성된 일행은 당시 현대건설 이종필 고문님을 따라 5박 6일(8. 6- 11일)간 일본의 오사카, 교토, 나고야를 오가며 많은 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일본 답사는 평생 잊지 못할 꿈같은 시간이었고, 나를 평생 답사의 길로 접어들게 한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오사카 근교에 위치한 ’꽃과 녹음 박람회장‘ 참관은 입장한 후 종일 자유시간이 주어졌습니다. 히타치 등 일본 대기업의 홍보관으로 운영된 이색적인 모습의 파빌리온과 중앙호수와 꽃탑, 실개천, 급조된 울창한 대나무숲, 방부목재로 된 옥외 계단이며 데크가 모두 생소하였고 처음 보는 것이었지요. 그 많은 지주목의 원구(元口)와 말구(末口)가 같은 직경으로 가공된 목재라 신기하기만 했답니다. 실로 모든 것이 새롭고 예사롭지 않은 충격이었고 정신을 홀렸지요.
 
미친 듯이 이곳저곳을 살피며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박람회장에서만 슬라이드 36매 필름 7롤(통)을 정신없이 소모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필름이 비싸 보통 하루에 3통 미만이 적정량이었는데 말입니다.

8월 초순이라 해가 길었는데도 어찌나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지. 그때 촬영한 슬라이드는 학습 교재는 물론, 외부 특강이나 보고서 등 두고 두고 활용을 했답니다. 세월이 흘러 디지털 카메라가 널리 보급되면서 슬라이드 필름은 현역에서 퇴출되어, 지금껏 서재에서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이후 1992년 IFLA 한국총회 홍보차 중국과 대만, 홍콩을 다녀왔고, 1993년 모교인 진주산업대로 자리를 옮긴 이후 본격적인 해외 답사가 시작되었지요.

2021년 정년을 앞두고 그동안의 자료를 정리해 보았더니, 무려 130여 차례에 이르는 답사를 위한 나들이가 확인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해외 답사는 30년이 지나며 35만 컷에 달하는 사진을 남기게 되었답니다.


답사시 교수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주제나 공간은 어떻게 되나요?

저는 임학과 조경학을 전공하였고 조경학과에서 정년 퇴임을 하였습니다. 평생을 나무와 숲 자연과 친구하며 지낸 셈이지요. 1993년 모교인 진주산업대학교에 부임한 이래, 저의 평생 목표이자 과제를 ‘세계도시의 녹색환경과 문화 & LANDSCAPE’로 설정했습니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지방자치제가 도입되면서 대부분의 도시들은 물리적으로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과 투자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조경가로서 이러한 사회적 수요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도시의 녹색환경과 문화’를 테마의 중심에 두었지요. 각박한 모습의 회색 도시를 여유로운 녹색의 문화도시로 가꾸는데 보탬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요소들을 닥치는 대로 수집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우선 도시가 주는 첫인상 즉, 이미지(전경, 색상, 상징물, 스카이라인 등)를 비롯하여 보행환경과 녹색 교통(보행자 거리, 가로수, 자전거 도로, 보행교, 가로장치물), 오픈스페이스(각종 공원과 녹지, 정원과 식물원, 도시 숲, 도시광장, 벽면 및 옥상녹화, 지피식생, 생태주차장 등), 수경시설(각종 분수, 폭포, 연못, 실개천), 환경조각과 조형물(옥외 사인, 간판, 환경조형물, 야간 경관), 강과 문화, 생태환경, 도시재생 사례, 박물관과 미술관 등 문화공간, 특이한 디자인이나 유명 작가의 건축물, 올림픽이나 월드컵, 엑스포가 개최되었던 공간 등 아주 다양한 공간들과 시설물이 모두 포함되지요.

최근에는 ‘도시의 보행환경과 녹색 교통’에 관한 선진도시들의 사례를 유심히 챙겨보고 있습니다. 도시 전체가 주차공간으로 변해버린 우리의 현실이 너무 안타깝지요. 이면 도로까지 자동차에 점령당한 지 이미 오래입니다. 도시의 경관을 저해하는 요소는 전봇대와 각종 가공선, 그리고 불법 주차가 주범이라고 생각됩니다.


경관일기를 읽다 보면 강한 햇빛을 가리는 모자, 목에는 디지털 카메라, 손에는 스마트폰을 드시고서 배낭을 메고 운동화를 신으신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것 외에도 궁금한 게 많습니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감상을 스마트폰에 적어두실까, 녹음을 하실까? 땀을 닦기 위한 손수건은 지니고 다니실까? 교수님의 배낭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이러한 것들이 궁금합니다. 답사에 필요한 아이템들일 테니까요.

저는 답사에 임하는 동안 해외도시에서 하루 10시간, 3만 보 이상을 걷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실로 중노동 수준입니다. 그래서 답사에 필요한 필수품 외에는 최대한 짐을 줄이지요. 카메라와 휴대폰을 비롯하여 보조 배터리와 충전장치, 모자는 필수이지만 선글라스는 지금껏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답사 시기는 주로 낮이 긴 여름 시즌을 택하기 때문에 항상 땀에 젖어있지요. 그래서 정제된 양질의 죽염과 오랜 기간 제대로 숙성된 국내산 황차 또는 중국산 보이차 2리터 정도와 함께 토종 된장을 항상 휴대합니다. 한편 많은 보행과 땀으로 인한 사타구니 치료용 베이비 파우더가 나만의 필수품이랍니다.

동남아를 제외한 미주나 유럽 등 대부분의 답사지에서의 점심은 숙소에서 아내가 정성으로 만들어주는 간편식 주먹밥과 삶은 계란 2개랍니다. 이는 많은 시간이 절약되고, 가격도 저렴하며 식사만족도에서 현지식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특히 북유럽에서는 예약이 번거롭고 식사에 장시간이 소요되며 가격도 상식 밖이랍니다.

메모는 저의 오래된 일상습관입니다. 답사할 도시와 장소에 대한 정보를 사전(답사 3~6개월 전부터 착수)에 조사하여 노트에 미리 정리한 후, 현지에서의 느낌이나 분위기, 추가정보는 다시 노트의 여백에 꼼꼼하게 기록합니다. 예전 슬라이드 필름을 사용하던 시절에는 필름 통에 장소와 날짜를 기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였지요. 휴대폰과 디지털카메라는 날짜와 주소까지 정확하게 알려주니 너무 편리합니다.


경관일기의 작성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선하고 양질의 재료를 확보함이 우선이겠지요. 경관일기도 마찬가지랍니다. 알차고 효율적인 답사를 위해서는 답사 장소를 잘 선택함이 중요하지요.

장소가 정해지면 그곳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고, 기록으로 남길 것인가에 대한 치밀한 사전준비와 계획이 필수이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답사에서 수집한 자료는 귀국 즉시 선별하고 분류(연도, 장소, 주제별)하여 저장하게 되지요. 책을 만들거나 강의를 할 경우는 이들 자료를 발췌하여 활용하게 됩니다.

하지만 경관일기의 경우는 좀 다르지요. 답사 동선에 따라 이동하며 기록한 내용을 순서대로 소개함을 원칙으로 합니다. 초기에는 당일 기록한 내용을 답사 현지에서 곧바로 작성해 봤지만,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르고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후 최근에는 매주 금요일에 소개되고 있지요. 한 회에 소개하는 사진이 대략 80매 내외가 됩니다. 예전에는 휴대폰으로 기록한 것으로 한정하였으나, 지금은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을 함께 활용하고 있지요. 사진의 원본은 꽤 감도(quality)가 높지만, 이를 휴대폰에 옮겨 전송하는 과정에 영상의 질이 떨어져 아쉽게 생각합니다.

기사가 완성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개략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우선 답사에 소요되는 시간은 연재 1회분에 3~5시간, 자료를 모으고 선별하여 간단한 설명을 붙이는 편집에 3~4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래서 연재 1회분을 만드는데 답사와 편집에 소요되는 총 시간은 대략 6~9시간 정도로 추산해봅니다. 항공과 도시에서 도시로의 이동 등 간접적인 부분을 감안하면 더 많은 시간이 투자된 셈이죠.

이렇게 답사 자료를 발췌하여 작성된 미성숙 원고는 라펜트로 전송됩니다. 이는 다시 라펜트의 자존심 전지은 기자의 최종 손길을 거쳐 <경관일기>라는 제목으로 노출된답니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가장 보람되셨던 일이 있으신가요?

글쎄요! <경관일기>가 연재된 지 300회라지만 저가 지금까지 답사한 기간과 축적된 자료에 비하면 지극히 일부분에 해당됩니다. 짧지 않은 연재 기간이었으나 도시의 환경과 조경영역에서 사회적 이슈가 되었거나 관심을 끄는 부문에 좀 더 많은 신경을 쓰며 소개하였답니다.

예를 들어 수년 전부터 도시재생이나 정원에 관한 관심이 매우 높았지요. 이들 문제를 의식하며 <경관일기>에서 비중을 두고 다루었습니다. 반응은 쉽게 느낄 수 있었지요. 그래서 이와 관련된 자료나 특강 요청이 날이 갈수록 많아졌던 경험도 생생합니다. 

연재 초기에는 이런 내용을 누가 관심 있게 챙겨볼지 다소 회의적인 생각도 들었지요. 하지만 날이 갈수록 독자층이 늘어남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최근에는 금요일에 기사가 다소 늦어지거나 소개되지 않으면 저에게 전화나 문자, 이메일을 보내는 독자들도 심심치 않게 경험합니다. 지극히 감사하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론 부담스럽고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이 사실이랍니다.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어 시작한 일이라 편하게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한주 정도 건너뛰고 싶을 때가 있어도 책임과 부담을 느끼게 됩니다.

이제 퇴직하여 시간이 여유롭습니다. 예전에는 <경관일기>가 제 생활의 일부였으나, 지금은 제 생활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무척 감사한 일이지요. 일선에서 물러난 조경가로서 최소한의 의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해외답사 계획과 연재 계획이 궁금합니다.

저는 30년 가까운 교직 생활을 고향의 모교에서 마무리하고 2021년 2월 정년 퇴임을 하였습니다. 일생을 조경 분야의 양지에서 혜택을 누리며 지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대학에서 많은 기간을 보냈지만, 교수로서의 주요 역할인 연구부문과 사회봉사 영역에 미흡함이 많아 빚을 졌다고 여깁니다. 제가 사회로부터 보호받고 수혜를 입은 만큼 앞으로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뭔가를 남겨야겠다고 다짐을 해 봅니다. <경관일기>를 통한 자료의 공유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외 전공과 관련된 정원을 비롯한 도시의 녹색환경과 문화의 중요성을 일반 시민들에게 홍보하거나 계몽하는 일과, 희귀하고 의미 있는 수목들을 나의 쉼터인 용치산방 뜰에서 길러 필요로 하는 곳에 분양해 주는 등 지금처럼 조금씩 꾸준하게 이어가고 싶습니다.

물론 해외 답사도 정년과 상관없이 계획되어 있었지만, 아쉽게도 코로나로 인한 차질이 생겼으나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이어갈 작정입니다.

최근 소개되는 경관일기는 예전에 다녀온 자료를 활용하고 있지요. 소장하고 있는 자료는 아직도 무척 많습니다. 앞으로 디지털로 기록한 자료가 소진되면 3만 컷에 달하는 슬라이드 필름들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상당한 예산이 수반되는 관계로 유보 상태입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이 생각납니다.

본의 아니게 카메라가 장착된 스마트폰을 갖게 되었고, 재미 삼아 답사현장에서 보낸 사진 몇 장이 계기가 되어 경관일기가 탄생하였습니다.

세상의 인연은 참 묘하지요. 깊은 고민이나 생각 없이 시작한 하찮은 일이, 연속성을 갖고 부피가 커지고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기도 한답니다. 그렇게 시작한 경관일기가 연재 300회라니 저 자신도 믿기지 않네요.

이제 <경관일기>는 저 생활의 일부나 변방이 아니라, 시간이 여유로운 은퇴자의 본업으로 자리매김하였고, 새로운 놀이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라펜트가 맺어준 각별한 인연이요 선물이라 생각하지요. 여건이 허락한다면, 앞으로 꾸준하게 경관일기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주변으로부터 출판 독려도 많지만, 서두르지 않고 긍정적으로 고민하겠습니다. 모든 일은 시와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관심과 사랑, 편달과 성원을 당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와룡산 자락, 용치산방龍齒山房에서 강호철 드림.









긴 세월동안 가장 먼저 <경관일기>를 받아보고, 편집해온 사람으로서도 300회의 감회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여담이지만 <경관일기> 1회와 같은 해 같은 달에 라펜트에 입사한 기자로서는 <경관일기>와 함께 시작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늘 동행한 셈입니다. 저는 독자 중 그 누구보다도 강호철 교수님의 노고와 성실하심을 잘 알 수 있다고 감히 자부합니다. 매주 100개씩 쌓이는 SNS의 빨간버튼을 보고 있는 사람은 사진 한 컷, 글 한 문장이 얼마간의 시간 텀을 두고 쌓이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쁘게 살다가도 가끔은 천천히, 그러나 성실하게 하나씩 더해가는 숫자들을 가만히 보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에서 젊은 기자는 수많은 것들을 배웁니다. 어긋나던 마음을 되잡기도 했고, 이기심을 누르기도 했으며,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고치기도 했습니다.

교수님. 그간 정신없고 실수도 많은 저와 함께 동행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_ 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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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8709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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