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2001년 졸업설계

조용준 논설위원(㈜CA조경기술사사무소)
라펜트l조용준 소장l기사입력2023-02-01
2001년 졸업설계




_조용준 ㈜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



2001년에 3학년 재학 중이었던 나는 평소 친하던 95학번 선배들의 졸업 설계 도우미가 되었다. 건축도시조경학부로 입학해 2학년 때 조경학과를 선택하고, 학생회 일을 도우면서 선배들과 친분이 생겼다. 당시 조경학과 학생회장이었던 95학번 선배 주변에는 같은 학번의 복학생들이 많았다. 일주일이 멀게 배봉관 주변 잔디밭에 모여 술판을 펼쳤다. 날마다 이야기 주제는 달랐지만 그 끝에는 미래 걱정과 불안, 그리고 이 사회를 한탄했던 걸로 기억난다. 나는 이런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럼에도 유쾌하고 재미있는 선배들이었기에 함께 있는 시간들이 즐거웠다. 그렇게 친해졌고, 그 다음해 졸업설계를 준비하던 95학번 선배들의 졸작 도우미가 되었다. 

남자 선배 세 명이 한 팀이었는데, 모두 설계에 크게 관심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그랬는지 ‘밥은 걱정 말고, 너의 꿈을 여기에 펼쳐보라'며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선배들의 졸작 주제는 납골공원이었다. 당시 기존 장례방식의 산림훼손 문제와 수목장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있었기에 괜찮은 주제였다. 대상지는 어느 산자락이었다. 

도우미로 졸작실을 들렀던 4월의 어느 날이었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4월의 날씨와 어울리지 않게 털모자를 쓰고, 두툼한 옷을 입고 있었다. 얼굴색은 창백했지만 밝은 표정의 호감 가는 인상이었다. 옆에 있던 선배가 ‘95학번 전수배’라고 소개하며, 너처럼 설계를 정말 사랑하고 잘하는 친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너희 둘이 이 공간을 나눠서 설계를 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그 선배도 도우미가 되었고, 아이러니하게도 도우미 둘이 디자인을 도맡아 하게 되었다. 

난 납골함들이 자리 잡을 산중턱 부분을 맡았고, 전수배 선배는 납골당과 주차장이 들어서는 산자락 하부의 진입공간을 맡았다. 선배가 돌아간 후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전수배 선배는 대학에 와서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치료를 위해 학교를 오랫동안 쉬었고, 최근 많이 호전되어 학교에 놀러왔다고 했다. 예전부터 설계를 잘하고 좋아했기에 친한 선배들의 졸업설계를 도와주기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여전히 건강을 챙겨야 되는 상황이었고 함께 설계를 할 수 있는 상황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한두 번 더 봤었는데 다 합쳐도 한 시간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공간을 그려나갔다. 두 개의 공간은 누가 봐도 다른 사람이 설계한 것처럼 보였고, 교수님들도 두 개의 공간이 너무 다르게 보인다는 조언을 주셨다. 다행스럽게도? 큰 변경 없이 설계안을 마무리했다. 이렇게 정리된 선배들의 졸작은 그 해 3등을 했다.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팀이었기에 작은 성과에도 크게 기뻐했다. 후에 상금으로 쫑파티를 했지만, 전수배 선배는 그 자리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그 다음 해 선배는 건강이 악화되어 더 이상 학교에 오지 못했다. 2001년 동기들의 졸업 작품이 그의 마지막 설계였다. 그해 따뜻했던 어느 날, 죽기 며칠 전 선배들에게 연락이 왔다고 했다. 동기였던 95학번 선배들이 그의 주검을 운구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야 전해 들었다. 한 팀이었던 3명의 선배들은 졸업 이후 각자의 길을 갔다. 한명은 역사 문화재 관련 공무원이 되었고, 다른 한명은 환경 시민단체에서 공공활동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조경에 관심 없었던 선배는 프로그램과 관련한 회사에 취직해 일본에 있다. 

선배가 떠났던 그 해, 나는 평소 친했던 96학번 선배와 함께 졸업설계를 했다. 스스로에게 기대가 컸고 욕심도 과했다. 해체주의 이론에 심취해 설계는 끝없는 구렁텅이로 빠져들었다. 에밀리오 암바즈(Emilio Ambaz)의 설계를 모방한 것처럼 보인다는 평가와 조경을 했는지 건축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들이 나의 설계를 모른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아쉬움이 가득한 졸업설계를 마무리했다. 20년이 지난 현재, 함께 했던 선배는 공기업에 다니고, 나는 여전히 설계를 하고 있다.

계묘년 새해가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시립대 김영민 교수로부터 연락이 왔다. 졸업설계를 위한 강의를 요청받았다. 졸업설계도 여러 설계들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왔던 나는 특별히 무엇을 더 말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여러 날을 고민하다 정리한 강의를 며칠 전에 마쳤다. 강의 끝자락에 학생들 얼굴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열정에 찬 눈빛의 학생들, 알쏭달쏭한 표정의 학생들, 졸업설계보다는 앞날을 더 걱정하는 듯한 학생들, 이 시기가 지나면 그들 또한 각자의 삶을 살아 갈 것이다.

이 지면을 빌려 2001년 동기들의 졸업설계가 마지막 설계였던 95학번 ‘전수배’ 선배를 추모한다.
글·사진 _ 조용준 소장  ·  (주)CA조경기술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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