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한 레일이 없다면, 기차는 전진하지 않는다

[인터뷰] 수필가 조재은
라펜트l나창호l기사입력2010-06-09


 

“정원과 수필은 서로 닮았어요. 생활과 밀접하다는 것이 닮았고 디자인한다는 것이 공통점이지요.”

“압축된 시가 있는 가든이라면 너무 미니멀 할 것 같고, 소설이라면 나무가 우거진 숲에 미로가 보이고 그늘이 많지요. 수필이 있다면 누구나 휴식할 수 있고, 그 휴식은 새로운 창조로 이끌어 주면서 고단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겠죠. 그리고 맑은 샘이 하나 있다면 삶의 갈증도 풀면서….”

새로움과 접목을 향해가는 라펜트 가든 속 그녀의 수필은 언제라도 앉아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카페같은 쉼터다. 그녀의 수필은 그녀를 닮았다. 그녀가 수필을 닮았나?
진하고 따뜻한 커피 같은 수필과 풀빛 가든, 그리고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까지 제 삶은 평행선의 연장이었어요. 마음속에는 예술적인 감성이 있고 생활에는 가정이라는 이성이 나란히, 서로 양보 없이 팽팽하게 삶을 지배해 왔어요."

"기차가 달리려면 레일이 평행을 이루어야지요. 매일 해내야하는 일상생활의 가사일과 문학을 향한 갈증이 심화된 두 바퀴는 결핍을 채워나가는 원천이 되어 제 삶을 미래로 나아가게 하고 있어요.”

수필가 조재은, 그녀는 양면성을 강조한다. 마치 빛이 있는 곳에 어둠이 따라오는 것처럼. 그녀의 말처럼 평행선을 그리며 살아왔던 삶의 자세는 결핍을 극복하려는 저항의 모습으로 비추어진다. 이러한 상반된 두 가지 흐름은 지금까지 그녀의 생을 지배해온 주된 생각이라고 술회한다.

그녀의 수필집 『시선과 울림』이 200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도서로 선정되었고, 『삶, 지금은 상영중』이란 수필과 영화를 접목시킨 영화에세이를 발표하여 현 수필계를 선도하고 있다.
구름카페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여러 수필 단체의 문학회 회장을 역임하며, 수필강의를 하고, 현재 <현대수필>주간을 맡고 있는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인 그녀는, 여전히 결핍을 말하고 변화와 새로움을 탐구한다.


PEN, 은유로서 표현한 수필

조재은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는 것이 PEN이다. P(시인), E(수필가), N(소설가)들과의 만남을 통해 변화하는 화자의 생각을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이 작품에서는 은유로서 문학적 장르를 표현했어요. 즉 P의 압축성, N의 허무함에 지쳐갈 무렵 찾아간 E까지… 여기서 PEN은 시(P-Poem), 수필(E-Essay), 소설(N-Novel)을 상징하지요. "

조재은 그녀는 이 작품에서 수필이란 문학적 장르의 특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며, 수필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수필은 생활이 담겨있는 장르예요. 그러나 수필 속에 상상도 가미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곳에 갔다는 사실과 그 곳에서 어떤 상상을 했다면, 물론 그것이 허구일지도 모르지만 상상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사실이 될 수 있지요. 상상을 허용하지 않는 문학은 문학이 아니라고 봅니다." 라고 무형식의 형식을 갖추고 있는 수필의 장르적 관점을 강조하는 그녀이다.


머물고 싶은 집, 추억이 어려있는 장소
라페트 가든과 연결이 되는 그녀의 머물고 싶은 집이 궁금했다.

‘집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다. 한 사람의 역사가 살아 있고 추억이 쌓이는 곳이다. (중략) 어린 시절, 마당이 있는 집에서 봄에는 꽃씨를 뿌렸다. 씨를 뿌리면 자연스레 기도하는 마음이 된다. 뿌려진 씨가 싹을 틔워 꽃을 잘 피우게 해 달라고 기원을 했다. 집은 신과 사람과 자연이 합일되는 곳이었다.’ -머물고 싶은 집-

“고사리 손으로 작고 빨간 모종삽을 들고 씨를 심고, 싹을 틔우게 했던 경험은 밝음의 심상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저만의 Secret Garden이자 소중한 안식처였지요.”

그녀의 어린시절 집은 오래된 한옥이었다. 뒤뜰에는 오동나무와 자그마한 꽃밭이 있는, 그 꽃밭에서 그녀는 앞의 수필처럼 생명의 태동과 경외를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그곳이 밝음만 기억되는 집이 아니라고 한다. 이사를 한 후 그 집이 흉가였다는 것을 알았고, 집이라는 한 공간 속에서 밝음과 어두움을 보았다는 조재은 작가는 그녀의 유년시절 같은 집에서 느꼈던 모순됨이 현재 그녀의 문학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이 같은 양면성은 스토리가 되고 추억된다고 밝히는 그녀이다. 작가 조재은을 타고 흐르는 주된 흐름으로서 양면성은 획일화에 휩쓸리지 않는 그녀만의 문학세계에 기초가 되고 있다.


정원은 휴식과 비밀의 공간

“정원은 장소인 정원과 마음의 정원이 있지요. 누구나 사람은 마음속 Secret Garden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만의 장소인 Secret Garden - 마음의 고향, 삶이 힘들 때 떠올리면 위안을 받는 곳-. 어떤 장소가 아니어도 나만의 소중한 이루고 싶은 꿈이나 돌아가고 싶은데 갈 수 없는 곳이라고 해도 좋겠지요.”

“지금의 일터가 어릴 때부터 꿈꾸던 곳이라면 행복한 사람이겠죠.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가슴 한구석에서 항상 서늘한 바람이 일곤 해요. 그 서늘함을 잠시 따뜻하게 해줄 수 있는 곳이  Secret Garden입니다.”

그녀는 정원을 '쉬는 곳이자 숨는 곳'이라 말했다. 즐기면서 볼 수 있는 곳인데 왜 숨는 곳이라 했을까? 그녀는 자신만의 'Secret Garden'의 이미지를 떠올렸다고 말한다. 가슴속 나만의 안식처가 바로 정원의 기억이라는 것이다. 앞서 설명했던 꽃씨뿌리는 밝음의 기억이 행복을 선사하는 것처럼 말이다.

 "정원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 있다면, 정원을 볼 수 있을 거예요. 만원이란 돈으로 구입한 몇 단의 말채를 통해 자작나무숲의 수직적 이미지를 느끼곤 합니다. 정원의 형태도 중요하지만 내 마음의 눈에 따라 느끼는 만족감 역시 중요할 것입니다. 그래서 정원을 만드는 가드너는 자신이 그리는 마음의 정원이 있어야 해요.  그들 마음 속 정원이 풍요로워야 그 곳을 찾는 사람에게 휴식과 안식을 줄 수 있겠지요."

그녀는 가드너가 철학성과 예술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심성을 가지고 그것을 꾸미느냐에 따라 장소성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예쁜 것 일변도로 추구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아요. 획일적인 것은 고정관념을 불러오니까요. 그리고 각각 공간에 의미를 주는 창조적 일이 가드너의 몫이에요. 바람이 머물 수 있고 이야기가 있는 곳, 어느 구석에는 그루터기가 있어 혼자 조용히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곳을 만드는...... 그런 창조자인 가드너를 만나고 싶네요.”


<라펜트 가든>을 위한 제언

“조경에 예술분야를 끌어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무릎을 쳤습니다. '이런 것은 많이 생겨나야 해' 어디서건 이 같은 몸부림이 되어 태동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었거든요. <라펜트 가든>의 첫 느낌은  연둣빛 이미지로 참신하고 신선했지만 조금은 흙 묻은 신을 신고 걸어보고 싶은 가든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너무 말끔한 집에서는 행동거지도 조심해지기 마련이고 불편함도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원예술문화>대신 <라펜트 예술문화>라는 명칭은 어떨까요? 우리에게는 정원의 개념은 크지 않아요. ‘라펜트의 예술문화’ 개념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라펜트(Lafent)의 사이트명칭 속에 정원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면 라펜트를 각인화시키고, 고유명사화 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몸도 쉬지만 마음의 안식처가 되는 <라펜트 가든>이 돼서, 정원 한구석에서 펑펑 울기도 하고, 위로도 받고 세상의 옷을 벗고 맨발로 마음껏 달릴 수도 있는 곳이면 좋겠어요. 누군가의 'Secret Garden'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바람이 머물 수 있고 이야기가 있는 곳, 어느 구석에는 그루터기가 있어 혼자 조용히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곳. 여기가 모든 이의 안식처가 됐으면…."


마치며

수필가 조재은은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상처가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수필강의에서 사과의 뒤를 파고 그것이 보이지 않게 들고서 학생들에게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단편적인 면을 보는 것만으로는 상처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문학은 누구에게나 있는 상처, 웃음 뒤에 있는 눈물, 빛 뒤에 있는 그림자를 피땀 흘리며 파고들어가는 것이지요."

영원히 닿을 수 없는 평행선을 걸어가고, 안주가 아닌 변화를 선택하며, 그래서 언제나 결핍의 허기짐에 시달리는 조재은 작가이다. 그러나 그것이 곧 빛나는 수필의 이유가 되기도 하다.

라펜트 가든에서 그녀의 수필나무 그늘에 앉으면, 숨어있는 상처를 내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조재은 수필산책 - 바로가기>



Non piu Mesta, (var. on La Cenerentola) in E flat Major (1819)
Adagio cantabile, Tema (moderato), var. 1-4, Finale-allegro
Stefan Milenkovich, Violin / Massimo Paderni, Piano

나창호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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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20n@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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