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누가 조경가인가?

김영민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라펜트l기사입력2022-04-14

 

누가 조경가인가?


_김영민(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



“I have been selling being for doing.
(나는 내가 하는 일을 팔아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1890년 옴스테드가 오랜 친구인 위트니 여사에게 보낸 편지의 고백이다. 68세의 옴스테드는 센트럴파크를 비롯해 수많은 미국의 공원들은 설계했고 역사상 그 어떠한 조경가보다 많은 사회적 영향력을 미쳤다. 조경의 아버지라는 빛나는 왕관을 썼던 옴스테드가 지친듯한 고백을 남긴 지 1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는 조경가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누가 조경가인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조경가 유병림 / 조경가 오휘영 / 조경가 정영선 /조경가 안계동 / 조경가 최신현 / 조경가 진양교


“조경가는 조경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이 문장은 당위(當爲)를 말한다. 이 당위의 언명은 옴스테드가 평생을 설득하고자 했던 조경가의 정의이고, 여전히 부정당하는 조경가의 정의이다. 부정하는 주체는 건축이나 토목, 도시, 예술의 분야에 있지 않다. 언제나 조경 내부에서 부정 당한다. 엄밀히 말하면 조경가의 역할을 설계로 한정하기를 부정한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래서 늘 조경가의 정의는 장황해진다. 조경가는 조경을 계획하고 설계할 뿐만 아니라 시공도 해야 하고, 관리도 해야 한다. 더 나아가 국토도 계획해야 하고, 도시도 설계해야 하고, 환경복원, 문화재 보존까지 다루어야 한다. 그래서 조경가는 예술가이면서 기술자이어야 하며 과학자이어야 한다. 


“건축가는 건물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건축가의 정의는 이러하다. 국어사전이나 다른 언어의 여러 사전을 뒤져보아도 건축가의 정의는 별다른 수식어 없이 이렇게 규정된다. 건축가가 건물을 설계하는 사람이라는 정의는 건축계 내부에서도, 외부에서도, 그리고 상식으로도 당위로 받아들여진다. 건설사 임원에게 건축가냐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대답한다. 건축구조를 가르치는 교수에게 건축가냐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대답한다. 건축 관련 행정을 담당하는 사무관에게 건축가냐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대답한다. 모두 건축과 관련된 일을 하지만 건물을 설계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은 건축구조기술자였다. 드라마를 보는 그 누구도 주인공을 건축가로 착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명하게 건축가는 건물을 설계하는 사람인데 건축구조기술자는 건물을 설계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설계라는 행위이다. 설계는 문화적이며 예술적인 창작 행위이다. 물론 사전적인 설계의 의미는 더 넓지만, 최소한 조경가나 건축가가 설계를 한다고 할 때 그 의미는 문화적이며 예술적인 창작 행위로 한정이 된다. 이때 설계는 정책, 기술, 학문의 행위와는 다르다.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는 생산과 창작의 행위를 구분하는데, 생산은 반복적으로 동일한 결과물을 생성하는 행위이고, 창작은 반복해서 만들 수 없는 유일무이한 결과물을 만드는 행위이다. 그래서 창작은 자연을 만든 조물주나 예술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만일 행정가나 기술자가, 그리고 연구자가 노력한 결과는 한 번만 유용해서는 안 되며 반복하여 적용되어야 한다. 반대로 예술가의 작품이 반복해서 복제되어 양산된다면 작품으로서 가치를 상실한다. 설계는 순수 예술의 창작 행위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분명 모방과 표절이 허용되지 않는 창작의 행위이다.

조경가를 설계하는 사람으로 규정한 이는 조경가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옴스테드였다. 옴스테드는 원래 설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센트럴파크 공모전을 했을 당시 옴스테드는 설계와는 무관한 농업인이자 언론인이었고, 실제 센트럴파크의 설계 작업은 파트너였던 건축가 보(Calvert Vaux)가 도맡았다. 사실 옴스테드는 평생 조경가로 살아가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센트럴파크의 설계와 감리를 책임지고 있으면서도 언론인으로서 남북전쟁 현장에 장기간 머물기도 하였고, 서부로 금광사업을 하러 가기도 했었다. 옴스테드가 본격적으로 조경을 정의하고 독립된 전문 분야로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던 시점은 조경가라는 타이틀을 쓰고 나서부터이다. 최초의 조경가가 된 이후 옴스테드의 방향은 명확했다. 조경의 정체성은 정책, 공학, 기술보다는 새로운 시대의 예술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옴스테드는 조경은 공공성에 기반을 둔 사회적 예술이기 때문에 당시 공공성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던 건축이나 순수 조형 예술과는 차별화된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은 옴스테드의 조경을 사회 개혁 운동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옴스테드의 수많은 강연과 원고, 서신들을 보면 조경은 명확히 문화의 영역을 주도할 예술이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으며, 조경가는 기술자나 사회개혁가가 아닌 기술을 통해 사회를 바꾸는 예술가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모두가 옴스테드의 이러한 생각에 찬성했던 것은 아니다. 옴스테드는 평생 반대자들을 설득해야 했고, 마침내 옴스테드와 뜻을 같이하던 이들은 1899년 미국조경가협회(ASLA)를 창립하여 조경을 전문 분야로 제도화한다. 미국의 조경가들은 1900년에 하버드 대학교에 첫 조경학과를 만들었고, 이후 1917년 미국도시계획협회(ACPI)를 새롭게 만들어 옴스테드 주니어가 초대 회장을 역임한다.


“조경가는 조경을 설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문장은 효용(效用)을 말한다. 조경가를 조경을 설계하는 사람으로 국한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이들은 당위성보다는 효용의 측면을 주로 이야기한다. 즉, 조경가를 이렇게 규정하면 여러모로 불리한 점이 많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은 크게 진취적인 입장과 방어적인 입장으로 나뉜다. 진취적인 이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가뜩이나 사람도 많지도 않고 세도 약한 조경의 판인데 굳이 설계, 시공, 생태, 연구로 나누기보다 모두 다 조경가라고 하면 오히려 조경을 확장하기도 유리하고 사회적 요구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에서 크게 간과한 점이 있다. 특정한 개념의 외연(外延)을 넓힌다는 것은 반대로 개념의 내포(內包)를 줄이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자면, 어떤 개념의 뜻을 폭넓게 사용할수록 그 개념의 규정 가능한 범위는 오히려 줄어든다. 모든 것을 의미하는 개념은 사실 아무것도 의미하지 못하는 개념이 된다. 조경가가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있다는 말은 결국 조경가는 아무것도 잘할 수 없다는 말과 같아진다. 그래서 조경가의 역할과 범위를 무작정 확대하면 그나마 조경가의 문화적이며 예술적인 전문성을 잃어버리는 게 된다. 그렇다면, 조경을 설계하는 사람에 조경가를 한정하지 않고 모두가 조경가가 되면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따지고 보면 “당신도 조경가요? 나도 조경가요! 에헴.” 이런 정도의 자기만족 말고는 별로 얻을 것은 없다. 훌륭한 조경연구자, 조경행정가, 조경사업가, 조경기술자의 호칭에 더해 조경가라는 호칭이 더해졌을 때 조경계 전체가 얻는 효과란 크지 않다. 오히려 그동안 그나마 조경가라는 이름으로 쌓은 문화적, 예술적 역량을 애써 지우거나 흐릿하게 만들 뿐이다.
  
한편, 신중하고 방어적인 이들도 있다. 한국 조경이 출발할 때 조경을 설계 중심으로 구상한 건축 출신의 선배들과 생태를 중심으로 보려 했던 임학과 원예 출신의 선배들 사이의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설계 중심의 방향이 학계와 업계의 주도권을 쥐게 되자 설계 외의 조경은 모두 부차적인 것을 취급하고 심지어는 무시하기까지 하는 풍조가 생겼고, 이는 지금까지 조경 내부의 고질적인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경 설계에 직접 종사하지 않은 이들은 대기업과 공사에 취업을 하거나 공무원이 되어, 소위 말하는 갑이 되었고, 조경 설계를 하는 이들은 용역업체로, 이른바 을이 되면서 오히려 설계가 하대받는 역전된 갈등을 낳게 된다. 이러한 고질적 갈등의 악순환을 끊어버리려면, 조경가를 선택된 전문가로 떠받들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설계의 엘리트주의를 없애는 것이 조경계를 위해서 바람직하다는 것이 또 다른 입장이다. 

일단,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고 해보자. 그림 좀 잘 그린다고 조경가랍시고 으스대던 이들이 재수 없었다고 하자. 그래서 을이 된 주제에 계속 조경가라고 여전히 잘난척 하는 꼴이 보기 싫어 계속 설계에 시비를 걸고, 후배들에게 설계하면 인생 비참해진다고 떠드는 꼬인 인간들이 있다고 치자. 그래서 그 대안이 너도, 나도 조경가가 되어 조경가에게 설계의 색채를 지워버리는 것인가? 
 
나는 오히려 조경을 건강하고 바람직하게 만드는 길은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조경계가 발전하려면 설계하는 이들이 겸손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잘나져야 한다. 이 문제의 핵심은 조경가가 충분히 잘나지 않았는데, 잘난 척을 했던 데에 있다. 그렇다면 조경가가 정말 모두가 인정할 정도로 잘나면 되는 것이지, 못난 만큼 겸손해지는 것이 해결책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설계 현장에서 내가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사사건건 시비를 걸던 꼬인 발주처의 갑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겸손해진다고 나를 무시하던 이들이 나를 존중할 리가 만무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조경가의 설계가 파탄 난 갑의 인성을 압도할 만큼 뛰어나면 된다. 조경가의 훌륭한 설계 때문에 시민들의 정책 만족도가 눈에 띄게 높아지고, 담당 부서원이 모두 승진할 만큼 좋은 평가를 받고, 프로젝트가 SNS와 언론에 도배되어 매출이 두세 배가 되게 만들면 된다. 그러면 담당자의 파탄 난 인성은 저절로 고쳐진다. 조경가가 나타나면 회장님이 버선발로 뛰어나오고, 시장님이 제발 시간 좀 내달라고 요청할 정도의 설계를 조경가가 하여야 조경분야 전체가 발전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최소한 조경가는 조경을 설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조경가는 조경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조경가가 조경을 설계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조경이 설계에 국한 되거나 설계가 조경의 중심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조경에는 훌륭한 조경연구자, 조경기술자, 조경행정가, 조경사업가가 모두 필요하다. 그리고 조경가도 필요하다. 연구자이면서 조경가가 될 수도 있고, 조경가이면서 사업가가 될 수도 있다. 기술자이면서 행정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다 잘 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를 잘 활용해야 조경의 역할과 가치가 커질 수 있다. 옴스테드는 평생 자신이 하는 일을 팔아야 했다. 이제 130년이 지난 우리는 최소한 우리 후배들이 자신이 하는 일을 팔지 않아도, 설득하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그 일을 할 수 있을 여건을 만들어 줄 의무가 있다.
글_김영민 교수 ·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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