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스마트도시 – Epilogue
진양교 논설위원(㈜CA조경기술사사무소 대표)라펜트l진양교 대표l기사입력2019-12-11
스마트도시 – Epilogue
글_진양교(㈜CA조경기술사사무소 대표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조경설계전공 교수)
우리 사회가 스마트 사회를 향해서, 그리고 우리 도시가 스마트도시를 향해서 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아무리 말려도 우리 사회의 스마트화는 이미 시작됐고 멈추지 않을 거라는 것도 확실하다. 누가 먼저 더 빨리 또 더 깊이 스마트화를 진행하는가를 두고 국내외 경쟁도 벌써 만만찮다. 우리 정부가 부산의 에코델타시티와 세종시의 일부 지역에서 스마트 시범도시의 조성을 서두르고 있는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정보통신 분야에서 5G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상용화한 우리가 스마트도시의 선진화에서 다른 나라에 밀리면 정보통신 최강국의 체면이 서지 않는다.
스마트도시에 대한 이런 저런 우려가 없지 않지만, 현대사회는 이미 결론을 내린 것 같다. 스마트도시에 대한 우려는 애매하고 추상적인데 반해, 도시공간의 스마트화를 통해 우리가 받을 편의는 분명하고 구체적이다. 자율주행의 교통체계는 단순한 자율주행의 편리함을 제공하는 것 외에도 출근시 사용된 차량을 주차장에 방치하지 않고 이중, 삼중으로 정해진 시간에 필요한 곳에 보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주행차량의 총량을 줄이게 되고, 교통량의 감소는 도로면적을 줄이게 된다. 줄여진 도로공간은 보다 더 필요한 공원이나 택지면적으로 전환된다. 스마트도시의 환경관리체계는 보다 효율적으로 미세먼지를 관리하고 부족한 물의 합리적 이용을 위해 빗물을 모은다. 가로등은 낮에는 태양광으로 전기를 모으고 모은 전기로 화석연료를 쓰지 않고 밤을 밝힌다. 이 모든 편리함은 다른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하고 우리 사회가 스마트화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오래 전부터, 어떤 사회의 지나친 스마트함이 우리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통제할지 모르겠다는 우려는 여러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지적돼 왔다. 오웰의 사회와 푸코의 사회가 그렇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멋진 신세계]에서 묘사되는 헉슬리의 사회도 그렇다. 완벽한 사회의 철저한 통제 속에서 몸이 느끼는 불편함은 전혀 없다. 일탈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지만 몸의 안전과 편리는 보장되어 있다. 대신에 잃은 개인적 자유와 프라이버시에 대한 무형의 허무감이 엄청나서 읽는 사람들을 미래사회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빠지게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시놉티콘’이라는 새롭게 대두된 사회현상을 통해, 스마트화를 지향하더라도 오웰과 푸코, 그리고 헉슬리의 사회에서 우려되는 것처럼 우리 사회가 파놉티콘의 일방적 관계로 진화할지 모른다는 걱정은 좀 누그러뜨릴 수 있게 되었다. 시놉티콘은 스마트사회와 도시에서 시민이 일방적으로 빅브라더에 감시당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동등하게 관찰하며 견제한다는 건강한 쌍방관계를 시사한다.
하지만 시놉티콘이 확인되는 것으로 이제 우리는 걱정을 완전히 덜어내도 되는 것일까. 스마트사회의 도시에서 시놉티콘이 우리의 개인적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방패가 된다 치고, 내가 정말 걱정하는 건 다른 데 있다. 그건 잊혀 가는 ‘불편함의 가치’에 대한 것이다. 타는 것보다 걷는 것, 전화하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것, 인터넷에서 물건을 주문하기보다 시장에서 발품을 팔며 물건을 사는 것에 대한 얘기다. 이건 우리 사회 전체에 대한 얘기이지만, 굳이 분야와 관련시켜보면, 건축과 도시가 스마트를 향해 정신없이 달려가더라도 우리만큼은 멈추고 뒤돌아보며, 사람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야 한다고 얘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디지털의 편리함보다 아날로그의 불편함이, 그리고 색칠되고 포장된 화려한 껍질보다 거칠고 아픈 날것의 속살이 우리가 실제로 추구해야 하는 것이라고 얘기해야 한다. 우리가 만들고 설계하는 공간은 다른 분야가 외면하는 불편함의 가치에 대해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어야 한다. 설사 혼자라도 말이다.
작년 초부터 2년동안 스마트도시를 얘기해왔다. 처음에 시작할 때 2년동안 스마트도시 주제 하나만을 다룰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연재를 시작할 때쯤 여기 저기서 스마트도시를 얘기하기 시작했고, 또 그때는 새로 출범한 우리 정부가 뭔가 보여줄 게 있어야한다고 판단했는지 스마트도시를 실제로 만들려는 무모한 작업도 서두르기 시작했을 때였다. 돌이켜보면 스마트도시에 대한 지난 2년의 글쓰기는 나에게 그리 나쁘지 않았다. ‘몸’에 대한 나의 변함없는 관심과 스마트도시에 대한 담론사이에는 묘한 그러면서도 결코 피할 수 없는 끈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한번 편해진 몸은 결코 다시 불편한 몸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휴대폰없이 1년을 버티면 10만불을 준다는 이벤트는 역설적으로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 되었는지를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자료를 구하기 위해 도서관을 찾거나 두꺼운 백과사전을 뒤지고, 책장에 꽂힌 문학전집에 마음 뿌듯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 책 한권을 구하려고 반년이 넘는 걸음으로 책이 소장된 수도원을 찾아가고, 찾은 책을 필사하느라 또 몇 달을 보내던 시대에 비해 우리는 얼마나 더 행복해진 걸까.
옛날 같으면 죽기가 쉽지 않았다. 몰라서 못 죽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죽으려면 고층에 마음먹고 올라가거나 절벽을 찾아가야 했고, 가는 걸음이 너무 길어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됐었다. 약은 뭘 먹어야 하는 지 그리고 그 약을 어떻게 구하는지 몰라서도 죽기 쉽지 않았다. 이렇게 발달한 첨단의 사회가, 그리고 이렇듯 절실하게 추구하는 편리함이란 것이 결국은 죽음조차 사람들을 손쉽게 안내하고 있다면 참 안타까운 일이다. 스마트한 사회보다는 불편하더라도 진정한 삶의 본질에 대해 진솔하게 얘기할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다. 구하라나 설리를 구할 수 있는 도시가 참한 도시이다. 정신과의사 스캇 펙이 강조했듯이 삶은 원래 힘들다. 그래서 살 가치가 있다. 그 말을 잊지 말자! 물론 나도! 그동안 참고 읽어 주신 여러분들께 크게 감사드린다. Merry Christmas & Happy New Year!
- 글 _ 진양교 대표 · CA조경기술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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