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과 소통하는 골목길을 보고 싶다

[조경명사특강]임승빈 교수의 도시사용설명서_3회
라펜트l임승빈 교수l기사입력2013-03-06

골목길은 도시의 실핏줄이다. 실핏줄에 혈액이 잘 순환되어야 건강한 신체를 유지할 수 있듯, 골목길이 건강해야 살기 좋은 도시가 된다. 건강한 골목길이 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청결, 위생 등 물리적 환경의 질이 높아야 됨은 물론이지만 최근에는 주민간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사회적 환경의 중요성이 점차 강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70년대 주거지 골목길_ 요즘처럼 정비되지는 않았으나 골목길은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놀이하는 살아있는 활기찬 장소였다. 이와같은 활기를 다시 회복하는 방법은 없을까?

  

1990년대 이르러 마이카(my car)시대가 현실화되고 골목길을 자동차가 차지하면서, 과거 주거단지 골목길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던 주민간의 소통이 단절되었고, 마을 커뮤니티가 거의 실종되고 말았다.

 

이는 옆집에서 독거노인이 사망해도 몇 달 동안 모르고 지내는 등 심각한 사회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과거에는 길에서 이웃끼리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는 대화가 일상적이었고, 골목길이 소통의 장소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 도입된 근대적 의미의 도시계획에서는 길을 목적지로 이동하는 단순한 통로로만 보고, 가능한 빨리 그 공간을 통과하도록 계획했다. ‘머무는 장소로서 길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던 것이다.

 

이같은 인식부족과 자동차 보급이 맞물리게 되자, 많은 골목길이 주차장이 되고 말았다. 간선도로에서 골목길은 기능적 이동이 주된 고려사항이 되어야 하지만, 일반적인 골목길에서는 주민간의 만남과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배려가 필수적이다.

 

더 나아가 단순한 통로가 아닌 주거의 연장으로서 골목길을 보아야 하며, 이를 위해 골목길과 인접한 주택정원이 긴밀하게 연결된 공간으로 계획되어야 한다. 골목길이 정원의 일부가 될 수 있다면 더욱 바람직하겠다.

 


2000년대 주거지 골목길_ 주차장이 되어버린 골목길. 어린이는 놀이 공간을, 어른은 소통의 장소를 빼앗겼다(). 낮은 담장, 투시형 담장은 시각적으로 개방하고 있으나, 더욱 적극적인 담장허물기에 이르지 못해, 골목길은 여전히 주차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골목과 주택정원이 긴밀히 연결되려면, 주택 담장을 낮추고 투시형으로 설치하거나, 더욱 적극적으로는 담장을 제거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담장문화에 젖어있기 때문에 이를 일시에 없애고 개방하는 것이 사실상 쉽지않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생활규범이 바뀌었고,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고밀도 주거환경임을 감안한다면, 효율적인 토지 활용 측면에서 담장을 개방해 공공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학교, 청사 등 공공건물 대부분이 담장을 개방하였다. 앞으로는 개인주택 등 사적영역으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근 신도시 주택단지가 담장 개방을 시도하고 있지만, 낮은 담장, 투시형 담장 등 시각적 개방에 그치고 있어, 골목길이 아직 주차장화 되어있는 실정이다.

 

주민간 소통장소로서의 골목길 조성과는 거리가 먼 실정이다. 앞으로는 골목길의 혁신적 개조를 통해 도시마을의 커뮤니티 활성화를 도모해야 한다.

 

골목길의 주차문제를 해결하고 주민들이 소통할 수 있는 골목길로의 개조방향을 암시하는녹색주차마을사업이 대구, 서울 등 대도시에서 시도되고 있음은 다행이라 할 수 있다.

 

골목길 활성화를 위해 가장 어려운 과제는 주차문제이다. 주거지 주차문제는 오래된 단독주택지에서 특히 심각하다. 골목에 주차된 차량은 보행자에게 불편을 줄뿐 아니라 화재 발생시 소방차의 진입을 어렵게 하여 주민의 생명과 재산에 커다란 피해를 주고 있음을 자주 접하고 있다.

 

오래된 주거지에서 재개발 혹은 뉴타운개발을 선호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주차의 어려움이다.

 


녹색주차마을(관악구 신사동)_ 좁은 골목에서 담장을 허물어 대지 내에 주차공간을 만들었다. 도로에는 주차된 차량을 볼 수 없으며, 응급차량의 진입도 가능해졌다(). 담장은 허물었으나 대문을 살려 주택의 영역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영역성유지 행태는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모습이다().

 


녹색주차마을(성동구 성수동)_ 담장을 허물고 정원의 수목을 노출시켜 가로경관이 향상되었으며(), 일방통행 차도와 보도를 구획하고 보차경계부에 가로수를 포함한 녹지를 도입하여 쾌적한 골목길을 만들었다(). 골목길을 차도가 아닌 주거공간의 연장으로 보는 보차공존의 가능성이 엿보인다.

 

최근에는 재개발 후 원주민의 재입주율이 20% 미만이 되는 등 문제점이 부각되면서 현지개량 혹은 정비방식으로 정책이 선회하고 있음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와 더불어 주차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담장허물기이다. 좁은 골목길에 면한 담장을 허물어 마당에 주차공간을 확보하는 이른바녹색주차마을또는그린파킹사업은 주차와 골목경관을 동시에 개선하는 효율적인 방법이다.

 

이는 좁은 골목길이 많은 우리나라 저층 주거단지 실정에 부합되는 독특한 창의적 해결방안이라 할 수 있다. 프라이버시와 일부에서 제기되는 방범문제, 그리고 주민협정 등을 보완한다면 주차문제, 비상차량 진입로 확보문제 그리고 골목길 경관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바람직한 방안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창의력을 발휘한다면 골목길은 주민간 소통의 장소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본다. 예를 들면 성수동 녹색주차마을 골목길(위 사진)에 조성된 녹지에 벤치하나를 추가로 놓음으로써, 어린이나 노인들이 머무를 수 있다면 골목경관이 훨씬 활기를 띄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좁은 골목길에서 자동차와 사람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도로를 보차공존 도로라고 부른다. 주거지역에서 자동차가 불가피한 존재라면 보차공존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 즉 자동차를 받아들이되 보행과의 충돌을 최소화하는 수준에서 극히 제한적으로 이동과 주차를 허용하는 방법이다.

 

보차공존 도로에서는 차량 감속을 위한 도로선형조정, 좁은 도로 폭과 과속방지턱, 그리고 보행자 보호를 위한 바닥포장 패턴과 볼라드, 휴식을 위한 소규모 완충녹지와 벤치 등의 설치가 필수다.

 

보차공존 도로에서는 자동차속도가 보행속도보다 빠르지 않도록 설계하여 보행자를 보호하며 통과교통이 발생되지 않도록 한다. 또한 보행자는 도로 전체를 이용할 수 있으며 어린이도 자유롭게 놀 수 있도록 한다. 따라서 보차공존 도로를 보행전용 도로에서 자동차의 통행을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녹색주차마을은 보차공존으로 가는 과정이라 볼 수 있으며 이를 더욱 창의적으로 발전시킨다면 진정한 의미의 보차공존 도로가 될 수 있다.

 

새로이 건설되는 주거지에서도 이를 적극 도입한다면 골목길이 커뮤니티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며 더 나아가 행복한 도시건설에 기초가 될 것이다.

 



덴마크의 가로_ 자동차 주차를 제한하고 보행자와 자전거 중심의 가로를 만들어 자전거이용을 활성화했다

 

또한 소득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자동차보급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면 자전거이용이 활성화되는 것이 대부분 선진국에서의 경향이다. 우리나라도 자동차보급이 거의 정점에 도달함에 따라 최근 자전거이용이 활성화 되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골목길에서도 자전거가 자동차 위협을 받지 않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골목길에 보행자, 자전거, 차량이 공존할 수 있어서 어린이들이 즐겁게 놀고 어른들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소통과 생활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놀고 있는 골목길을 보고 싶다.

이웃과의 만남이 있어 포근한 골목길을 걷고 싶다.

연재필자 _ 임승빈 교수  ·  서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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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ungbi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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