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도시의 랜드마크를 생각하다

진승범 논설위원(이우환경디자인(주) 대표)
라펜트l진승범 논설위원l기사입력2015-03-09
도시의 랜드마크를 생각하다


_진승범 논설위원(이우환경디자인(주) 대표)


도시의 랜드마크(landmark,地標)는 그 도시의 경쟁력을 말해주는 중요한 지표(指標)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이름 난 도시는 대부분 그 명성에 걸맞은 매력적인 랜드마크를 품고 있다. 뉴욕(New York)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Empire State Building) 이후 소위 마천루(摩天樓, skyscraper)라 불리는 초고층 건물이 오랫동안 도시의 랜드마크로써의 임무를 수행하였으나, 20세기 말 대두된 가설 즉, ‘한 국가에 랜드마크와 같은 초고층 건물을 지으면 경제위기가 찾아온다’는 ‘마천루의 저주(skyscraper curse)’설이 회자되기 시작한 이후 선진국에서의 높이 경쟁은 시들해졌다. 그리고 그들 도시에서 약효를 다한 높이 경쟁은 중동과 아시아의 개발도상국으로 넘어와 빛바랜 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잠실의 제2롯데월드가 도화선이 되어 높이 경쟁의 레이스가 시작된듯하다. 이를 보는 마음 한 구석에 뿌듯함보다는 왠지 모를 아쉬움과 씁쓸함이 자리하는 것은 필자만의 속 좁은 생각일까?

국내에서는 요원한 사업이라 여겨졌던 100층 이상의 초고층 빌딩 건축이 정치적 목적이 내재되었든 경제논리에 의한 것이든 수많은 논란과 곡절 끝에 시작하여, 이제 123층, 높이 555m의 구조물이 잠실벌의 하늘을 닦겠다며 그 위용을 뽐낼(?) 날이 눈앞에 온 시점에서, 이를 능가하는 야심찬 계획이 얼마 전 발표되었다.

삼성동 한전부지를 사상초유의 고가(10조 5000억 원 추정)로 매입한 현대자동차그룹이 이곳에 115층, 높이 571m의 글로벌비즈니스센터(Global Business Center)라 부르는 신사옥을 짓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내놓아 또 한 번 세간을 놀라게 한 것이다. 물론 서울시와의 사전협상, 지구단위계획 등 풀어야할 문제가 적지 않으며 서울시 또한 제2롯데월드와 관련해 크고 작은 문제들이 끊이지 않고 있어 현대차그룹의 계획안을 그대로 수용할지는 두고 봐야겠으나, 최소 1조원에서 2조원 대에 이르는 기부채납의 규모와 이미 선례가 있는 사업이므로 어떠한 형태로든 사업이 추진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여기서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하나는 ‘도시의 랜드마크는 꼭 높이의 우위에 있어야만 그 역할을 할 수 있는가?’이며, 또 다른 하나는 ‘불가피한 고층 건축이라면 주변의 건물군과 조화를 이루어 시너지효과를 내게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지 않겠는가?’라는 것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초고층으로 대지(land, 地)에 특징적인 표시(mark, 標)를 남기는 행위는 구시대의 산물이다. 최근 경쟁력 있는 도시의 랜드마크는 규모가 아니라 문화적, 예술적, 사회적 가치를 구현한 장소성이 담긴 장소(건물, 거리, 공원 등)가 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우리는 많은 사례에서 보고 있다.
 
그 대표적인 곳이 뉴욕의 하이라인파크(Highline Park)이며 빌바오(Bilbao)의 구겐하임미술관(Guggenheim Museum)이다. 두 곳 모두 일개 랜드마크의 차원을 넘어 도시재생의 모범 사례로 인정받고 있으며, 특히 빌바오의 구겐하임은 ‘한 도시의 랜드마크 건축물이 도시에 미치는 영향이나 현상’을 가리키는 ‘빌바오 효과(Bilbao effect)’라는 새로운 개념까지 탄생시킬 만큼 도시재생을 통한 경쟁력 제고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또 하나의 문제 이왕 들어설 초고층 건축물이라면 도시의 스카이라인(skyline)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런던(London)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노만 포스터(Norman Foster)가 설계한 스위스 RE 보험회사의 본사건물인 거킨(Gherkin)빌딩은 계획안 발표당시(2001년)에는 수많은 논란과 비아냥(?)에 둘러싸여 있었으나, 지금은 런던시민의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건축물이 되었다.(불행히도 2014년 건축주가 도산하여 매물로 나와 ‘마천루의 저주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이의 배경에는 건축을 문화로 바라보는 인식이 일찍부터 자리 잡은 런던시 정부와 학계, 시민의 노력이 있었다. 런던은 경관원칙에서 시선축에 관한 기준으로 스카이라인을 관리하는 파노라마(panoramas), 한 곳에서의 조망을 관리하는 쐐기형 조망영역(visual cones), 랜드마크 사이를 잇는 조망회랑(visual corridors) 등의 구체적인 개념을 설정하였다.
 
또한 2001년 ‘런던의 고층건물, 주요경관, 스카이라인에 관한 임시 계획 가이던스(International Strategic Planning Guidance on Tall Buildings, Strategic Views and the Skyline in London)’를 수립하고, 고층건물이 도시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도록 하는 세 가지 기준 즉, 런던의 건축명성에 버금가는 고층건물 디자인, 지상 층에 제공되는 훌륭한 공공공간, 최상의 환경보호를 제시하였다. 이런 모든 규정을 만족시킨 거킨빌딩이 런던 시민의 사랑을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라 할 것이다.
 
우리의 수도 서울에도 경쟁력 있는 랜드마크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그 랜드마크는 무조건 표 나는 건물이 아니라 진정으로 서울의 도시문화를 담아내고 서울시민의 사랑을 받는, 그래서 세계인들에게 자랑할 만한 그런 공간을 갖고 싶다.
_ 진승범 논설위원  ·  이우환경디자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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