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식물도 생각한다

백운해 논설위원(LH공사 동탄사업본부 전문위원)
라펜트l백운해 전문위원l기사입력2016-09-30
식물도 생각한다



글_백운해 전문위원(LH공사 동탄사업본부)


식물도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기뻐하고, 슬퍼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농작물에 클래식음악을 들려주면 작황이 좋아진다는 말에 동의할 수 있는가?
장바구니의 야채들은 얼마 후 뜨거운 물에 익혀지거나 불에 구워질 자신의 운명을 생각하며 비명을 지른다고 하면 그것을 믿을 수 있을까?

벌써 30년 전의 이야기이다. 회사에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대형 국책사업 공사현장에 감독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조경공사는 진행 초기였고 우선 주변의 수목들을 활용하는 이식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식공사 작업을 수행하던 인부가 헐레벌떡 오더니 나무를 캐서 옮기려 하니 나무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청명한 아침에 무려 양동이로 한 통 가량의 물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소나무였는데 아주 큰 대형목은 아니고 근원직경 30~40㎝가량 되는 나무였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 나무는 옮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 존치하는 조치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식물도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전개하려면 우선 생태철학에 대한 내용부터 시작해야 될 것 같다. 조경을 하면서 생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지내면서도 생태철학이란 용어를 접한 것은 최근이었으나 하나둘씩 내용을 알아가면서 그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생태철학(生態哲學, Ecosophy)은 프랑스의 철학자 펠릭스 가타리(Felix Gattari)에 의해 창안된 용어로 환경파괴에 따른 생태위기가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현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으로 인간중심에서 생태중심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즉 자연(환경)이 대상에서 인식주체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인간의 이익을 전제로 한 환경윤리학과는 달리 생태철학은 인간과 자연을 동등한 선상에서 보거나 하나로 보고 있다. 그의 생태철학 핵심 테제(These)중 하나인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뭇 생명의 입장에 서자!’는 내용이 이를 잘 표현하고 있다.

생태철학은 나에게 그동안 내가 수행해왔던 택지 및 신도시의 조성 등의 개발에 따른 환경파괴에 대응하여 생태적인 계획 및 설계에 기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인간의 정신 속에 생태적인 의식 및 사상을 주입하는 것이 훨씬 더 근원적이고 효과적일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한편 가타리에 대하여 연구한 신승철 박사가 쓴 ‘갈라파고스로 간 철학자’라는 책을 보면 동물실험이나 공장식 축산업 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동물해방을 주장하고 야생동물을 보호하자는 등 동물권(動物權)에 대한 내용을 많이 다루고 있다. 이때 생각난 것이 살아있는 생명체에 대한 권리를 생명권(生命權)이라고 본다면 동물 뿐 아니라 식물도 동등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와 연계하여 예전에─아마도 20년도 더 전인 것 같다조경 분야에서 일하는데 읽어두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여 ‘식물의 정신세계(The Secret Life of Plants)’라는 책을 구입한 적이 있었다. 앞부분을 읽어 나가다가 흥미를 느끼지 못하여 덮어놓았었는데 이제와 다시 펼쳐 읽어보니 그때와는 다른 아주 신선한 느낌을 받았으며, 그 주된 내용이 바로 이 글의 핵심인 ‘식물도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인물들이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식물도 생각하며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생물학자인 라울 프랑세(Raoul France)는 ‘식물도 동물이나 인간처럼 자유롭고 쉽게 우아하게 움직이는데 우리가 인식을 못하는 것은 그 움직임이 느리기 때문이다’라고 언급하며 움직임이 없는 식물은 없으며 식물에게도 어떤 의지나 의사 같은 것이 있다고 주장했다. 생각해 보자, 만약 1초가 하루 아니 1년이라고 생각한다면 식물의 움직임은 동물과 유사하게 그들의 의지대로 움직일 것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미 연방수사관학교 교수인 클리브 백스터(Cleve Backster)는 식물에게도 지각능력이 있다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해보였는데 –이를 ‘백스터효과’라 한다- 검류계(galvanometer)를 이용하여 줄무늬 드라세나라는 식물에게 불에 태우겠다는 등의 위협을 가했을 때 식물이 반응한다는 것을 측정해낸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필로덴드론이라는 식물을 이용, 몇 명의 실험자들 중 한명에게 거짓을 말하게 하여 그를 찾아내도록 했으며 한 실험자에게는 두 개체 중 한 개체를 심하게 훼손하도록 한 다음 그를 찾아내도록 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한편, 정신물리학(psychophysics)이라는 새로운 학문분야를 창시한 페히너(Gustav Theodor Fechner)는 ‘식물에게 혼이 있다고 믿는가, 없다고 믿는가의 태도 여하에 따라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인식이 바뀔 것이다’라고 언급하며 식물에게도 영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식물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또한, 캐나다의 농부인 유진 캔비(Eugene Canby)는 ‘밀밭에 바흐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들려주었더니 생산량이 66%나 증가하고, 낱알들도 훨씬 크고 무거웠다’고 하는 흥미로운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잘 조화된 음파는 식물의 생장이나 개화 및 열매와 씨앗을 맺는데 영향을 미친다’는 인도의 싱(T.C.Singh) 박사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식물도 생각하고 감정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조경을 하는 우리는 어떻게 인식을 하고 식물을 다루어야 할까? 정말 그렇다면 식물도 인간이나 동물과 같은 고등 생명체 다루듯이 해야 할 것이 분명하다. 그동안 수행해왔던 조경공사 현장에서 보면 식물을 마치 무생물 다루듯이 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또한 한번 식재된 수목을 설계변경이나 감독관의 지시로 너무 쉽게 다시 굴취하여 옮기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이는 수목에게 고통을 주는 일일 뿐 아니라 수목에 스트레스를 주어 사망할 확률을 높이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특히 대형목이나 노거수는 이식에 더욱 신중해야만 한다. 아니 가능하다면 옮겨심지 말아야 한다.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앞서 언급한 현장에 있을 때 근경이 1.3m의 느티나무 노거수를 옮기는 작업을 감독한 적이 있다. 현장 상황으로 보아 옮길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이식공사 책임을 맡은 분은 수년 동안의 뿌리돌림 및 수목보호와 극진한 예우로 수형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고 이식공사를 무난히 해내는 것을 보았다. 이렇듯 살리고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나무에 대한 감정적 교감과 예우가 중요하다고 확신한다. 대형목이나 노거수를 금전적인 대상이나 마치 생명 없는 물건을 다루듯이 쉽게 생각하는 요즘의 상황을 보면 너무 안타까울 따름이다. 다시한번 언급하지만 대형목, 노거수는 가급적 원래 위치에 존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옮길 수밖에 없다면 수목과의 교감을 갖고 모든 살릴 수 있는 방법과 최고의 예우를 다해야 할 것이다. 다행이도 요즘은 도시 및 택지계획을 수립할 때 대형목이나 노거수를 조사하여 토지이용계획에 이를 반영하여 보존하려 애쓰는 것을 보면 많이 개선되었음을 느낀다.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면 거실 베란다에 있는 식물들과 한번은 마주치며 인사를 건넨다. 또한 밖에서는 잡초들과는 친하게 지내면서 이름을 불러주려 애쓰고 있다, 식물도 생각한다고 느낀다면 그들이 반응하는 것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식물과 대화를 시도해보라.

끝으로 앞서 언급한 페히너의 말을 인용하며 마치고자 한다.

뛰고, 소리치고, 게걸스레 먹어대는 영혼이 있다면, 침묵 속에서 꽃을 피우고, 향기를 뿜으며, 이슬로 갈증을 풀고, 새싹으로 충동을 분출시키는 영혼도 있을 법하지 않은가? 꽃들은 서로의 향기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닐까? 인간들이 말이나 숨결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보다 훨씬 우아한 방법으로 서로를 확인하는 게 아닐까?

_ 백운해 전문위원  ·  한국토지주택공사 동탄사업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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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baek@gug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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