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조경의 크리티컬 매스

글_이유미 논설위원(서울대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교수)
라펜트l이유미 교수l기사입력2018-07-12
조경의 크리티컬 매스




_이유미(서울대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교수)




녹색시론의 첫 글을 준비하면서 45년의 결코 짧지 않은 역사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 조경계가 산·학·연·관(産·學·硏·官) 전반에 걸쳐 크리티컬 매스를 확보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태생이 물리학 용어인 크리티컬 매스(critical mass)는 물질이 내부적인 화학반응을 일으키기 위한 최소한의 임계질량을 뜻하는데 사회에서는 긍정적인 발전을 위한 특정 집단 또는 현상의 수량적 규모를 의미한다. 집단의 규모가 너무 큰 경우에는 과잉경쟁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규모가 너무 작은 경우에는 자체경쟁력이 약화되어 인접분야의 압력에 밀리거나 흡수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어느 분야의 지속적 발전 가능성을 예견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분야에 종사하는 집단의 규모가 일정 기간 내에 크리티컬 매스에 도달했는지를 점검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학계를 살펴보자. 최근 한국조경학회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전국에 59개에 달하는 대학에서 조경학 전공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현재 재학 중인 학생들만도 5천6백명을 넘어선다고 한다. 2015년 기준 전국의 대학생(대학원생 포함)이 약 360만명을 넘는다고 하니 대략 전체의 0.2% 정도에 해당하는 조경학 전공학생수가 과연 많은 건지 적은건지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최근의 인구감소현상을 고려하면 조경학을 전공하는 학생 수도 급격히 감소할 것이고, 많은 대학의 조경관련학과들이 고전하게 될 것임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학계와 밀접한 연구 분야의 경우는 어떨까? 시작이 막막한 가운데 호기심에 ‘조경’과 ‘연구소’라는 두 개의 단어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몇 개 되지 않는 검색결과는 교수연구실이나 산학연구소 등 대학교에 소속된 연구기관 또는 시공회사나 설계회사가 연구소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 다른 자료로 2017년 공공기관 지정현황을 보니 전체 332개의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공공기관 중에서 ‘조경’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기관은 단 1개도 없었다. 그럼 학생들은 졸업 후 어디에서 무슨 연구를 하고 있는지? 대부분의 조경학 전공 석·박사들은 건축, 도시, 농촌, 산림 등 관련 분야 연구기관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물론 관련 분야에서 조경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정작 조경에 대한 연구를 전문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공공·민간연구기관이 이렇게 없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관(官)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조경을 담당하는 공공기관은 70년대에 최초로 만들어졌으나 현재 중앙정부의 조경업무 전담부서는 일단 찾기부터가 쉽지 않다. 국토교통부-국토도시실-도시정책관 산하 ‘녹색도시과’ 소속의 일부 직원들이 조경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참고로 건축의 경우, 국토교통부-국토도시실 산하 ‘건축정책관’이라는 명확한 담당부서를 포함하여 도시정책관, 주택정책관 등 관련부서가 협력하고 있다. 최근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조경진흥법이 제정되었지만 ‘조경진흥법’이 ‘조경법’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보다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조경인들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법에 의한 정부의 전담부서 설립이 우선인지 아니면 대외적으로 조경에 대한 위상이 먼저 확립되어야 하는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듯 공론을 계속해왔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현재의 법적 제도 하에서는 우리나라 조경인들이 희망하는 조경의 비약적 발전을 이루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조경의 산업계는? 산업은 1차, 2차, 3차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와인 산업에서는 원재료인 포도를 재배하는 1차 산업의 농가, 포도를 발효․숙성시키고 병에 담아 생산하는 2차 산업의 와이너리, 와인 테이스팅과 함께 환상적인 만찬을 제공하는 3차 산업의 식당이 서로 유기적으로 맞물려져서 발전한다. 결국 피라미드의 기저를 담당하는 1차 산업이 일단 잘 되어야 2차와 3차 산업도 결실을 맺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조경업계는 1차와 2차 산업이 비정상적으로 위축되어 있는 듯하다. 가장 중요한 조경재료인 식물소재만 봐도 조경적 활용가치가 높은 우리나라 수종에 대한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주로 수입종에 의존하고 있다. 교목의 경우, 수형을 관리하는 매뉴얼이 부재하고 유통과정도 투명하지 않아 수급이 불안정하다. 

설계업에 대한 부분은 필자의 전공분야인 만큼 할 얘기가 많지만 이번에는 양적인 부분만 짚어보려고 한다. 요즘 학생들이 설계를 안하려고 한다고 걱정들이 많다. 물론 워라벨을 추구하는 젊은 층을 겨냥한 근무환경 개선이나 연봉인상도 단기적으로는 중요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젊은 조경인이 조경관련 학문을 전공하고 회사에서 일정기간동안 열심히 실전 경험을 쌓은 후 검증된 자격을 부여받으면 본인의 설계사무소를 설립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현재 조경사(licensed landscape architect) 제도가 없는 우리나라에서 합법적인 조경설계사무소를 설립하려면 법에서 명시하는 규모를 갖춘 엔지니어링 업체로 등록하거나, 조경기술사(professional engineer landscape architecture)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문제는 조경기술사 자격증을 따는 것이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여러 위원의 논설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자격시험은 공공의 안전과 복지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지 않도록 기본적으로 반드시 숙지해야하는 내용을 점검하기 위한 과정이지 합격자 수를 제한하기 위해 일부러 어렵게 만들거나 책을 찾아보면 나오는 단편적 지식의 암기력을 평가하는 시험이 아니다. 그러나 통계자료를 보니 최근 5년간 1200여명이 조경기술사 시험에 응시했고, 단 58명만이 최종 합격했다고 한다. 응시자 수도 급감했는데 2014년까지 연간 300명을 넘던 응시자가 현재는 150명 전후로 반 토막이 난 상황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건축에서는 2017년 한해에만 600명이 넘는 건축사를 배출하였고, 젊은 건축사들이 운영하는 소규모 설계사무소들이 다양하고 창의적인 시도의 중심에 있다. 

우리도 일정 자격을 갖춘 20-30대 젊은 조경인들이 새로운 시각과 목표로 자유롭게 업계에 뛰어들어 선의의 경쟁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그들을 중심으로 크리티컬 매스를 형성하여 자연스럽게 조경의 영역을 확장하는 방안을 고민해봐야 한다. 이 글도 마찬가지이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조경의 현실에 대해 무수한 불평만을 토로해왔다. 이제는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고 학회, 협회, 재단이 협력하여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가야 한다. 
_ 이유미 교수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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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mil@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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