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마음으로 담은 조경학의 힘

이애란 논설위원(청주대 조경도시계획전공 교수)
라펜트l이애란 교수l기사입력2018-04-27
마음으로 담은 조경학의 힘




_이애란(청주대 조경도시계획전공 교수)



글을 쓰기 힘든 것은 쓴 길을 통해 읽는 이가 깨달음이나 호응 혹은 감동을 받길 원하는 기대치에 맞추려하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의 시론은 무게감과 책임감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 친구같은 시론이었으면 한다. 소위 말하는 친구 같은 연인, 친구 같은 부모.. 친구는 아니지만. 

일본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가 내한을 한다. 그의 피아노 연주와 함께 흐르는 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없이 투명한 순수의 시간 속으로 ‘곡들을 쓴 배경은 각기 다르지만, 모든 곡들에는 제 기억이 담겨있습니다.’라고. 누구나 조금은 공감하는 내용이 아닐까. 특히 우리들은 각자가 만든 공간들이 사연과 터는 각기 다르지만, 모든 결실에 각자의 기억이 담겨있다. 신입사원 때 조성한 공장 한 켠의 조경이나 중년이 되어 완성한 유명한 단지의 조경이나 각각의 추억이 있다. 같이 일했던 동료들 이야기가 있고, 심었던 수목들이 기억나지 않을까 싶다. 생일날에 답사지로 화장장 견학 간 내 옆의 신입사원 이야기, 딸의 입원실 침대에 같이 앉아 현상설계 도면 그리는 디자이너, 팀별 여행에 그래도 조경인이라고 멋진 해외문화여행을 같이 갔던 즐거움. 사람들은 그 공간의 값어치를 주로 돈으로 따지지만 우리는 한땀 한땀 그려나간 그 시간들이 값어치가 된다.

이젠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우리처럼 되어가고 있다. 작년 말 5년간의 주민참여사업인 ‘서울, 꽃으로 피다’ 현장심사를 하게 되었다. 이틀 동안 38개소를 다녔다. 5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주민주도형 마을녹화가 1700여일이 지나니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재능기부자로 몇몇의 전문가가 쉼을 포기하고 마을을 만들어 갔지만 이제는 시민들이 서서히 동참하기 시작했다. 우선 연관된 단체들이나 디자인관련 작가들과 학생들도 참여영역을 확대해 함께 하고 있었다. 또한, 식물의 종류도 달라졌다. 5년 전 알록달록한 일년초 위주의 단기간 전시용식재에서 이제는 씨앗을 통해 성장의 시간과 자연스런 변화의 소중함을 알기 시작했다. 서울뿐 아니라 각 지자체에도 시민정원사들이 늘어나 전문가가 실체적 학습과 보조적인 역할만 해도 되는 시대가 열렸다. 작은 시작이지만 주민들 스스로 경험하고 실험하면서 지속가능한 녹화를 위해선 사람의 협력과 씨앗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반대로 봉사자들의 인터뷰에서도 가슴 아픔과 벅참이 공존했다. 예쁜 가자니아를 심어놓으면 그 다음날 구덩이가 파여 있는 모습, 흙은 덮지도 않고 누가 볼 새라 급하게 가져가셨겠지 하면서도 속상하단다. 변심하거나 민원을 제기하는 주민들을 만날 때면 이 봉사를 계속해야하는 고민과 상처를 받았다. 그와 반대로 해가 갈수록 녹화마을의 요청과 주민들의 변화에 안 할 수도 없다고 털어놓는 단체대표님. 지역사회 봉사자 사이에서도 아름아름 정원교육을 받고 즐거움에 봉사를 기꺼이 하시는 분들은 단순이 녹화뿐 아니라 청소년이나 사회약자들을 위한 사회운동까지 확대하고 계셨다. 그 마음들의 중심에 생명을 다루는 녹지공간이 실내외를 막론하고 있었다.
 
이렇게 조경을 원하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 시대의 변화 속 한 가운데 조경 또한 놓여있다. 그리고 조경의 능력을 간과할 수 없음을 시대도 알고 있다. 조경은 결코 경관을 만드는 건설의 한계가 아니다. 학문적인 기초와 철학, 자연과 사회, 사람의 마음을 읽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다시금 마음을 추슬러야 하지 않을까. 이참에 몇 가지를 제안해본다.

첫째, 기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설렘이 없으면 간절함도 없다. 급하다보니 바로 이루어지는 실적들에 맘이나 몸이 피폐하긴 하지만 내 가진 것의 10% 정도 남겨두고 조금 멀리보고 준비하는 기대감의 대상 또한 필요하지 않을까. 

둘째, 다양한 예술 장르와 문화 역사를 통한 조경의 해석도 좋지만 조경을 통해 여러 장르들이 더불어 해석되는 움직임들이 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한다. 조경의 이름으로 조경의 마음으로 깊이를 더해가야 하지 않을까. ‘이런 영역을 조경으로 해석하고 담을 수 있구나’ 하는 말들을 많이 들었으면 좋겠다.

셋째, 핵심을 향해 그림과 배경이 조화롭게 구성될 줄 아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조각보의 아름다움도 간과하진 않으나 각 조경영역이나 세부 학문분야별로 칸막이식의 교육과 실무가 이루어지지 않아야 한다. 하나의 이슈와 주제를 던졌다면 세부 분야가 협업하여 새로움을 창출하도록 각자의 영역에 질문과 답을 공유하였으면 한다. 그림과 배경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그 시대와 장소에 따라 시스템을 조정하여 누군가는 그림이 되고 누군가는 배경으로 배역을 바꿔주고 해볼 수 있게 기회를 주는 넉넉함이 있으면 된다.

넷째, ‘나쁜 건축은 나쁜 삶을 담는다.’는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조경은 건강한 삶을 담는 곳이 되며, 조경학은 그 건강한 장소와 기억을 위한 학문으로서 준비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조경인의 육체와 정신이 더불어 건강해야 한다. 개인이 아니라 동료와 함께 건강해야 한다. 그리고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개화의 4월 그리고 꽃의 여왕 축제의 달 5월이다. 또한 ‘워라벨’의 시대이다. Work & Life Balance 일을 줄이자는 것이 아니라 일과 놀이의 총량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자는 의미이다.

To DO List 도 있어야 하지만 To be List 속도를 늦추고, 숨을 들이쉬면 그 순간에 균형을 더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조경인들이 여왕의 마당에서 같이 마음속에 비움의 채움을 만끽하는 이 봄이 되길 기원한다. 여기서 만난 조경인의 인연이 아름다운 필연이길 바란다.
_ 이애란 교수  ·  청주대학교 환경조경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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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lee@c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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