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주민참여 vs. 주민주도

변재상 논설위원(신구대 환경조경과 교수)
라펜트l변재상 교수l기사입력2018-11-04
주민참여 vs. 주민주도




_변재상(신구대 환경조경과 교수)



얼마 전 필자가 참여한 저서의 북콘서트가 열렸다. “예술이 농촌을 디자인하다.”라는 제목의 이 책은 일본의 한 농촌마을 재생을 위한 목적으로 에치고츠마리라는 지역에서 대지예술제를 개최한 사례와 이를 보고 겪은 9명의 공간디자이너의 관점을 답사보고서 형식으로 정리한 책이다. 북콘서트 도중 청중에게서 이런 질문이 나왔다. “진정한 의미의 주민 참여형 지역재생은 정말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어떠한 부분까지 전문가들이 역할을 해야 하는지도 규명하기 힘들고, 주민들 참여 폭은 어느 정도까지이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핵심적인 질문이었다. 낙후된 도시와 지역재생을 위한 여러 가지 사업들이 국내에서도 많이 진행 중이다. 이러한 관 주도의 지역재생 프로젝트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두고 한 질문이었을 것이다. 

필자가 답사를 다녀오고 책을 정리하면서 느낀 결과, 에치고츠마리에서의 지역재생은 관에서의 지원도 있었지만,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나아가 그들의 주도적인 역할을 통해 현재까지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에치고츠마리는 니가타현에서도 가장 생산성이 떨어지는 지역이었다. 초기 사업은 노령화로 인해 공동화되고 쇠락해가는 농촌 마을을 재생하기 위한 취지에서 출발하였다. 일본뿐만 아니라, 당시 다른 나라 대부분의 농촌마을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이곳에서는 아주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지방정부에서 지역재생을 위한 많은 노력들은 흔히 일회성으로 끝나버리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마을 만들기라는 거창한 구호 아래 꽃길가꾸기, 담장고치기, 지붕 고치기, 도로 포장하기, 하천 정비 등의 사업은 당장 시급한 문제를 해결해 줄 듯 급속하게 진행되지만, 그 속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에 대한 단서는 제공하지 못한다. 충분히 학습된 주민들의 자발적인 동의라는 것은 이러한 하드웨어적인 인프라 구축 사업으로는 한계가 있다. 여기서 에치고츠마리의 지역재생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에치고츠마리는 도로포장이나 담장개선 등 단순히 기반시설 등의 하드웨어를 고치는 작업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대지예술제 운영을 위한 기획, 운영, 디자인 비용과 작품설치를 위한 경비를 비롯하여 지역 토산품 개발비 등이 지원금과 예술제를 통한 수익의 주사용처다. 주민들의 요구 역시 시설 개선보다는 지역의 잠재력을 찾고 개발하고 작품화하고 다시 재투자되길 원했다. 농촌 마을이기 때문에 주민들이 가장 바쁜 시기라고 할 수 있는 한여름 대지예술제는 시작되었고, 설치 작품들의 대부분도 시야를 많이 끄는 관공서나 광장 등이 아닌, 틈바구니 속 사유지에 설치되었다. 마을 어귀나 복판, 농경지 귀퉁이, 주인이 찾지 않는 빈집이나 마을의 버려진 사이사이에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다. 작가들이 예술작품을 설치하기 위해서 토지 소유자에게 사용승인을 받아야 했다. 처음에는 어려웠던 주민들의 동의가 대지예술제를 통한 마을 활성화 효과가 자연스럽게 입증되면서,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주도적인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다. 작가를 섭외하는 것은 사무국에서 담당하였지만, 이들 작가들이 외부공간에 거대한 작품을 적은 지원금으로 직접 설치하기는 많은 무리가 따랐다. 에치고츠마리 주민들도 작품이 작가의 개인 작품으로만 남기를 원하지 않았다. 작가들은 현장에서 얻은 영감을 풀어내고, 주민들과의 간담회와 면담을 통해 발전시켰으며, 가장 효율적인 재료 선정에 도움을 받았고, 재료 가공에서도 가장 능숙한 지역 기술자들이 참여하여 구성하였다. 필요한 부지 역시 주민 서로가 자신의 토지를 대여하여 조화로운 작품이 될 수 있도록 조력하였고, 결국에는 이것이 자신의 작품이라는 주인의식을 가지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지역의 토속 음식도 작품이 되었고, 지역의 흙을 쌓아놓은 토담도 훌륭한 배경이 되었고, 버려진 학교와 창고건물도 공방이 되었으며, 심지어 자연이 휩쓸고 간 재해의 흔적도 캔버스가 되었다. 지역의 모든 소재와 경관이 지역재생을 위한 소재로 사용되었고, 이것을 가공하여 설치한 작품들도 작가만의 것이 아닌 주민 손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재탄생하였다. 그 때문에 별도의 해설을 위한 간판이나 안내판도 필요 없다. 외지에서 찾아온 관람객의 궁금증을 풀어줄 해설가들이 바로 지역 주민이 될 수 있었다. 널리 퍼져있는 지역재생을 위한 예술작품들의 관리도 별도의 관리자가 필요 없다. 주민들이 주인이기 때문에 내 집 앞 청소하듯 치우고, 가꾸고, 다듬게 되었다. 지속가능한 지역재생의 자연스러운 선순환이 고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지역재생을 위해 주민들 스스로 땅을 제공하고, 작품 제작에 참여하고, 해설자 역할을 자처하며, 관리에도 참여한다는 것은 지역재생이 관주도로 진행될 때 봉착하는 한계를 극복하는 열쇠가 되어 주었다.



포템킨(by Architectural Office Casagrande & Rintala)의 느티나무 
부서진 차량 부속, 빈병, 포장지, 음식물 등 쓰레기로 더러워진 어둡고 악취 나는 이곳은 도로 한 귀퉁이의 버려진 쓰레기장이었다. 주민들과 대지예술제 주최 측에서는 이 장소를 그대로 간과하고 넘어갈 수 없었다. 쓰레기에 불과하던 철, 나무, 자동차 타이어 등 20세기 물질문명을 상징하는 소재를 사용하여 공간을 조심스럽게 가다듬었다. 거대한 코르텐강 화분 속에는 20세기 물질문명의 상징들로 구성된 아늑한 휴게장소가 만들어졌다. 밟혀서 더러워질 것 같던, 바닥의 하얀 해미석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반짝이고, 하얗게 되어갔다. 주민들이 매일 하나하나의 돌을 닦고, 관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허수아비 프로젝트’(by Oscar Oiwa) 그리고, 모자(母子) 
평범한 이름표가 달린 다랭이논 귀퉁이에 위치한 붉은색 조각은 자연과 주민들이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에 등장하는 조각 중 어머니가 안고 있는 조그마한 아이는 10년이 지난 지금 고등학생이 되었다. 단순한 경작지에 설치한 의미 없는 하나의 조각이지만, 이곳에 주민들 자신의 스토리를 담으면 소중한 지역 유산이 되고 작품이 된다. 


지역재생이라는 거창한 이름 속에서 벌어지는 많은 사업들이 실패로 끝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초기에 집중 투자되는 비용의 불균형은 결국 사업의 지속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꾸준한 투자와 관리가 핵심인 지역재생에서 결과물에 급급한 행정조직의 조급함은 지역의 특성을 이해하고 부각시킬만한 여유를 찾기 어렵게 만든다. 지역재생을 위한 성공의 열쇠는 관주도 혹은 단순한 주민참여가 아니라, 주민들의 절실함과 지방정부의 적극적인 의지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 에치고츠마리에서 얻은 결론이다. 좋은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부적으로 문제점을 찾고, 주민들의 동의를 이끌어 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주민주도가 있을 때 비로소 지역재생은 성공할 수 있다.
_ 변재상 교수  ·  신구대학교 환경조경과
다른기사 보기
drbyeon@shingu.ac.kr

네티즌 공감 (0)

의견쓰기

가장많이본뉴스최근주요뉴스

  • 전체
  • 종합일반
  • 동정일정
  • 교육문화예술

인기통합정보

  • 기획연재
  • 설계공모프로젝트
  • 인터뷰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