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조경디자인캠프

김영민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라펜트l김영민 교수l기사입력2021-02-03
조경디자인캠프


_김영민(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





도성의 기억

그는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항상 그는 나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그는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핑계로 많은 것을 요구했다. 나는 금전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버거웠던 그의 요구를 망설임 없이 들어주었다. 아니, 사실 그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 외에 나에게 다른 선택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진정 필요로 할 때 그는 나를 단 한 번도 지켜주지 못했다. 어느 날 끔찍한 도적떼가 남에서 찾아왔을 때 그는 너무도 쉽게 나를 내주었다. 그렇게 7년 동안 나는 유린당했다. 그리고 또다시 북에서 내려온 낯선 이들이 나를 범하였을 때도 그는 나를 지켜주지 못했다. 그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려 45년 동안을 내 이름도 망각한 채 비루하게 생을 연명해야만 했다. 

그동안 그는 죽어버렸다. 하찮은 내 삶의 무게를 지탱하기도 벅찼던 나는 그가 죽어가는 지도 몰랐다. 그러다가 우연히 그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차피 나의 많은 것을 가져갔을 뿐 한 번도 나를 지켜준 적이 없던 사람이었다. 역겨울 정도로 남루한 삶을 살아야 했던 나는 내 힘으로 일어섰다. 나는 다시 아름다워졌다. 아니, 단순히 아름다워졌다고 말한다면 억울하다. 나를 동정했던 이들이 이제는 나를 부러워하며 칭송할 정도로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화려해지고 우아해졌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흔적들이 아직도 내 주변에 남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옷가지들, 그가 읽던 책들, 메모 조각들. 문득 그가 보고 싶었다. 다시 찾아온 격정은 결코 아니었다. 다만 바쁜 일상 속에서 스치고 지나간 연녹색 봄날의 기억과도 같이 아련한 것이었다. 나를 항상 지켜준다고 한 약속은 결국은 거짓이 되어버렸지만, 아마도 그 본심은 거짓은 아니었으리라. 다만 지킬 능력이 없었을 뿐. 생각해보면 그는 한 번도 도망간 적은 없다. 그에게 미처 물어보지 못한 말이 많았다. 그리고 그에게 아직 듣지 못한 대답들은 더욱 많았다.


강령술사

한 강령술사가 나에게 그를 되살려내는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다만 그를 살려내더라도 과거와 같은 사람일 수는 없다고 했다. 아마도 되살아난 내가 기억하는 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라고. 나는 상관없다고 했다. 과거에 그는 당당했고 나는 한없이 연약했다. 그와 함께했던 비루한 과거로 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다. 나는 강령술사에게 말했다. 내가 그를 다시 살리려는 이유는 순전히 지금의 나를 위해서라고. 나에게 중요한 것은 온전한 과거의 그가 아니라, 그와 함께했던 기억의 잔재들이 지금의 나에게 주는 의미들이다. 그가 영혼이 없는 허깨비로 되살아난다 하더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강령술사는 한동안 말없이 나를 쳐다보더니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강령술을 하기 위해서는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도움을 줄 주술사, 마법사, 무당들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이들이 만든 영매가 최소한 두 개가 있어야 한다. 영매의 형식은 상관이 없다. 부적일 수도 있고, 토템일 수도 있다. 주문일 수도, 춤사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되살아난 그의 령은 영매와 닮을 수밖에 없기에 영매의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왜냐하면 현재의 내가 영매를 통해 살려낸 그는 나의 현재를 위해 봉사하기 위한 존재이며, 그의 모습 역시 나의 의지에 따라 형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움

강령술사가 떠난 뒤 어쩌면 난 그를 한 번도 제대로 이해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600년 동안 그를 알았지만 한 번도 그가 나에게 어떠한 존재였는지를, 존재여야 하는지를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어느 시인이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하고자 할 때, 내가 인정을 하든, 안 하든, 그것이 사랑이라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를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었다. 그가 죽어버린 뒤 100년이나 지나서야 비로소 나는 그를 사랑하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되살려낼 그는 어떠한 모습일까? 아름다운 청년일까? 아니면 고풍스러운 중년 신사일까? 어쩌면 결코 불러내지 말았어야 할 추한 악령의 형상일 수도 있다. 나는 조심스럽게 자문해보았다. 굳이 도성을 불러내지 않더라도 정동길은 사랑스러우며 소공동은 활기차다. 그러한 나는 왜 다시 도성을 살려내고자 하는 것일까? 무수히 많은 단어들이 떠올랐다. 사랑, 추억, 원망, 후회, 안타까움, 아픔, 아름다움, 역사, 의미. 그 상념들이 하나로 향하는 곳은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움. 한없이 무능했던 그를 그리워함은 그와 함께했던 과거의 기억이 아닌 지금 내 곁에 남아있는 파편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어쩌면 나를 너무도 닮았던, 하지만 이제는 죽어버린 그의 생에 대한 동정일지도 모른다. 비눗방울처럼 한없이 가볍고도 부질없는 감정의 잔향들.

*

이 글은 2014년도 21회 조경디자인캠프에서 튜터를 했을 때 작성한 스튜디오 소개 글이다. 서울성곽, 즉 옛 한양도성(漢陽都城)이 그해 캠프의 주제였다. 나는 “스튜디오 C”라고 학회에서 임의로 명명한 세 번째 반을 맡았는데, 그 이름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스튜디오의 제목을 “0(靈)”이라고 지었다. 나는 만으로 35살이었고, 아직 학생들은 25살이 안 된 친구들이었다. 그때의 나는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쳐야 하는 수업이 조금은 갑갑했고, 학생들은 배워야 할 것을 배워야 하는 수업에 조금은 싫증이 났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조금은 더 자유로웠던 것 같고, 학생들은 늘 그렇듯 불안해하면서 희망이 넘치는 어떤 뜨거운 덩어리 같았다. 들은 무엇이든 빚어낼 수 있는 그런 정체불명의 덩어리였다. 

저 소개 글을 보고 지원했던 어떤 참가자들은 설계를 하고 있고, 어떤 참가자들은 조경을 그만두었다. 나는 22살일 때 6회 조경디자인캠프에 참여를 했었고, 나중에 네 번의 튜터를 했었다. 매년 조경디자인캠프는 녹아내릴 듯한 여름에 열렸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열리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조경학회에서는 디자인 워크숍은 빼버리고 이름을 바꾸어 해외 답사를 가는 프로그램으로 바꾸었다고 들었다. 이유는 잘 알지는 못한다. 폐지의 합당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긋지긋한 코로나의 시기가 지나면 다시 조경디자인캠프가 열리기를 바란다. 조경디자인캠프의 경험이 조경을 하는데 있어 좋은 영향을 주는지, 나쁜 영향을 주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선생이건, 학생이건, 참여를 했던 모든 이들에게 강렬한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그게 저주의 상흔일지, 축복의 성흔일지는 모르겠지만, 조경을 꿈꾸는 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뜨거운 흔적을 어딘가에 남긴다는 것이다.



_ 김영민 교수  ·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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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kim@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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