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게임을 넘어선 가상공간의 활용
김익환 논설위원(이스탄불 공과대학 조경학과 조교수)라펜트l김익환 교수l기사입력2022-04-29
게임을 넘어선 가상공간의 활용
새로운 기술이 구현될 때마다, 해당 기술은 우선 우주과학이나 군사기술 등 특정한 영역에서 그 유효성을 실험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검증이 되면 보다 대중적인 사회에 보급을 꾀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수용하는 시장이나 수요가 채 형성되지 않은 탓에, 이들은 매우 자극적인 형태로 대중들에게 소개되기 마련이다.
가장 좋은 예는 인터넷이다. 인터넷은 본디 군사정보를 효율적으로 주고받고 탄도 미사일을 통제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그리고 해당 기술을 보다 범용적으로 사회에 보급해야 했지만, 당시 딱히 그 쓸모를 찾기는 힘들었다. 사람들은 텔레비전과 우편, 휴대전화만으로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인터넷은 괴짜 공학도들의 치기 어린 장난감 정도로 여겨졌다. 그런 인터넷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은, 사람들이 인터넷 전용회선을 설치함으로써 집에서 실시간으로 게임을 하고 음란물을 볼 수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부터이다. 많은 가정들이 광케이블과 모뎀을 설치하게 되었고 신기술이 제공하는 자극적인 오락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인터넷은 더이상 음란물과 게임의 용도로만 쓰이지는 않는다. 보다 많은 서비스들이 다양하게 제공되고 있다. 인터넷으로 주식을 거래하고, 논문을 검색한다. 실시간으로 전세계 소식을 듣고, 그런 소식에 자기 의견을 쉽게 밝힐 수 있게 되었다. 이 탓에 정치는 보다 다차원적인 형태를 띠게 되었으며, 우리는 보다 뜨거운 민주주의를 매일 겪고 있다. 심지어 코로나와 같은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는 인터넷으로 출근 없이 업무를 보고 등교 없이 교육을 하는 방법을 알아내었다.
요지는, 광케이블을 처음 설치하던 20년 전의 우리는 지금의 인터넷 서비스들을 미쳐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물론 당시에도 인터넷의 편리성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줌(Zoom)과 같은 화상회의를 쉽게 구현하지는 못하였다. 댓글이라는 것의 사회적 가치를 깨닫지도 못하였다. 게임이라는 것이 있었지만, 그게 아시안 게임 정식종목으로 채택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다.
가상공간 역시 다르지 않다. 가상공간, 메타버스, 사이버스페이스.. 아직 그 정의조차 확실히 내려지지 않은 이 영역은 우선 군사 시뮬레이션이나 문화재 보존과 같이 매우 첨예하게 전문적인 영역에서 그 유효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 뒤로 우리는 아직까지 이 기술을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마땅한 시장과 대중적인 수요를 찾지 못하였다. 무언가 이런저런 시도들은 많았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반짝 유행을 하거나 기술을 위한 기술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그렇게 기술이 사회에 자리를 잡지 못하는 사이에, 해당 기술은 결국 말초적인 흥미를 제공하는, 게임이라는 미디어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하지만 인터넷이 그러하였듯, 나는 가상공간이 조만간 여태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서비스의 모습을 취할 것이라고 믿는다…만, 솔직히 그게 무엇이 될지는 전혀 모르겠다. 가상공간을 연구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솔직히 가상공간이 어떤 형태로 우리 사회에 보급되고 대중화 될지는 상상이 가질 않는다. 트위터가 세상에 발표되기 일주일 전까지도 우리는 트위터라는 플랫폼을 상상하지 못하였고, 미니홈피나 페이스북 역시 접하기 전까지는 생각지 못하였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게 무엇이 되었든 결국 우리 사회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밀접한 일련의 서비스들로 등장하리라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 방향과 그 정도는 상대적으로 쉽게 예상이 가능하다. 심지어 기술의 발전 정도를 예측하는 공식마저 있을 만큼, 현재의 기술 발전 추이를 바탕으로 향후 어느 정도 기술로 발전할지를 짐작하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떤 기술의 대중성 예상은 지극히 까다롭다. 이는 기술뿐만이 아닌 사회적인 현상, 문화적 배경, 기후와 같은 자연적 환경, 그리고 정치적 상황 등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을 입체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선각자적인 시각으로 그게 무엇인지를 감히 예측한다든가, 혹은 정말 천운으로 그게 무엇일지 엿볼 수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미래를 주도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정말 애석하게도, 나는 그게 무엇이 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막 활성화 되고 있는 서비스와 그 시장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막연하게나마 그 방향을 짐작할 수는 있다.
버츄얼 유튜버, 혹은 버튜버라고 일컫는 영역이 그러한 서비스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근래 들어 폭발적으로 성장 중인 이 매체는, 방송인의 움직임, 눈동자 방향, 손가락 위치 등을 캡처하여 해당 정보 위에 2D 혹은 3D 모델을 얹어 실시간으로 송출하는 매체이다. 즉, 방송진행자는 본인의 외형, 성별과 무관하게 캐릭터의 ‘껍질’을 뒤집어쓰고 다양한 연출을 선보일 수 있다. 해당 매체는 지금 만화나 캐릭터 시장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본인이 선호하는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는 방송을 시청자에게 보여준다는 큰 매력을 제공하고 있으며, 그 시장 역시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심지어 버튜버들로만 구성된 기획사가 나타났으며, 이들이 생성하는 수익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유튜브 생방송 후원금 상위 10개 채널 중 다섯 개를 버튜버들이 차지하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 전문기관 리서치앤마켓에 따르면 버튜버, 혹은 버츄얼 휴먼을 활용하는 전 세계 시장의 규모는 2028년 약 102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버츄얼 유튜버 사례. Ouro Kronii / 출처: https://www.youtube.com/c/OuroKroniiCh
물론 해당 시장이 향후 지속적인 성장만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매체의 잠재력만큼이나 그 한계 역시 뚜렷하며, 소비자층에도 제약이 많다. 하지만 현재 꿈틀대는 해당 매체를 기준으로 향후 어떤 시장이 가상공간을 활용할지 우리는 조심스럽게 유추할 수 있다.
우선 방송, 연예인과 같은 요소들이 가상공간에서 제작될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인간’이라는 한계 탓에 다양한 리스크를 지닌다. 열애설이 날수도 있고, 실언으로 실망을 줄 수도 있다. 스크린 상의 화려한 모습이 아닌, 그 뒤의 한 명의 인간으로서 갖는 다양한 위험이 잠재되어 있다. 하지만 가상공간에서 연출되고 방영되는 가상의 인간이라면 그러한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며, 대중이 원하는 모습만을 선별적으로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해당 캐릭터의 ‘탈’ 안에 복수의 연기자들을 투입함으로써 매우 효율적인 매체 제작도 가능할 것이다. 한 명의 유재석이 아닌, 유재석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수 명의 배우를 지닌 기획사를 생각해보자. 그 캐릭터는 가장 대중적으로 호감을 받는 외형으로 설계되고, 그 언행 하나하나가 모두 철저하게 기획되어 제공될 것이다. 더군다나 기술 발전에 힘입어 그런 가상의 캐릭터와 실제 인물 사이의 외형적 괴리감은 없다시피 할 것이다. 어차피 대중은 연예인의 인간적 면모를 모두 알지 못한다. 알더라도 그건 실망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있다. 하지만 가상으로 기획되어 만들어진, 실제 사람과 구분되지 않는 가상의 인물이라면 그런 인간적인 면모까지 철저하게 연출하여 제공될 것이다.
이런 미래의 모습이 개인적으로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나나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런 미래는 조만간 나타날 것이며, 솔직히 벌써 시작되고 있다. 버츄얼 인플루언서라는 직함과 함께 나타난 ‘오로지’라는 국산 캐릭터는 각종 매체에서 선전되고 있으며, 얼마 전 광고와 드라마에도 출연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약 20년 전 아담이라는 사이버 가수로 이미 선보여진 적이 있으나, 그때와 비교하면 모델의 리얼리티는 괄목할 만큼 성장하였다.
가상모델 사례. 로지 / 출처: 신한 라이프
2022년 현재 우리는 로지와 같은 퀄리티의 가상 인간을 매체상에 만들어낼 수 있다. 향후 5년, 10년 뒤에 우리 앞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과연 어느 정도의 수준을 지닐 것인가? 그리고 그런 사회에서 가상공간을 설계할 미래의 조경가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선 당장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런 매체의 배경이 되는 공간을 설계하고 제작하는 작업일 것이다.
얼마 전에 문의가 들어와서 작업 중인 프로젝트가 그런 성격이다. 어느 버츄얼 유튜버가 대형 온라인 콘서트를 열고 싶은데, 해당 콘서트홀을 설계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런 콘서트장을 실재의 공간에 있는 기존의 공연장을 그대로 베껴서 만들면 매력이 반감될 것이다. 가상공간의 특수성을 활용하여 해당 공연과 캐릭터에 맞추어 다양하고도 특색있는 공연장을 설계해야 했다. 그리고 관객들의 감정과 시선을 일정하게 유도하고, 적절한 공간감을 제공하는 데에는 기존의 조경설계기법들이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었다. 교관목 대신 에셋들이 사용되고 공간 프로그램 대신 블루 프린트가 사용될 뿐, 결국 공간을 설계하는 절차와 세세한 방법들은 기존 조경설계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런 프로젝트들은 향후 더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많아질 것이며, 덩달아 가상공간설계자 수요가 늘어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그 시기를 충분히 준비하고 있는가? 살아 움직이는 꽃과 나무가 없다는 이유로, 가상공간을 그저 차가운 자동상자 안에 있는 죽어있는 공간으로 취급하며 등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국 조경이라는 영역은 사람을 위해 태어나고 발전을 했건만, 그 도구에 대한 집착으로 정작 사람을 위한 공간을 설계한다는 영역의 매력이 흐려지는 것이 아닌지 안타깝다.
(지금은 상대적으로 그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은 분들이 가상공간을 설계하는 조경가를 마뜩잖은 시선으로 본다. 대중화 되기 이전에 인터넷을 쓰는 괴짜 공학도를 바라보던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기차는 달린다.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리고 늘 그래왔듯이 계속 달릴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기술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면서 차가운 자동상자에 불과했던 가상공간은 더더욱 정교해질 것이며, 어쩌면 실공간만큼이나 복잡한 상호교환성과 상징성, 그리고 시장성을 지니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이 글의 제목으로 돌아가게 된다. 게임은 가상공간의 아주 미약한 시발점이자 작은 징검다리에 불과하다. 향후 우리들이 본격적으로 다루게 되는 가상공간은 게임이나 버튜버 수준에서 아득히 벗어나는 무언가가 될 것이다. 그런 만큼, 디지털 게임과 그 게임 속 공간에 대한 연구는 어디까지나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의 테스트 베드에 가깝다. 언제까지나 기차의 뒤를 쫓아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차를 면밀히 살펴보고 과감하게 그 앞으로 나아가 미리 역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 기차 노선이 참으로 예상하기 힘들어 기껏 만들어둔 역이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런 가능성이 실책이 아닌 투자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와 학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 글 _ 김익환 교수 · 이스탄불 공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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