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가상공간이란 용어는 틀렸다

김익환 논설위원(이스탄불 공과대학 조경학과 조교수)
라펜트l김익환 교수l기사입력2022-06-27

가상공간이란 용어는 틀렸다




_김익환 이스탄불 공과대학 조경학과 조교수



얼마 전 한국 조경학계에서 ‘조경’이라는 용어의 대체어를 찾고 있음을 보았다. 확실히 애매한, 하지만 동시에 더없이 중한 문제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물론 나보다 훨씬 많은 고민을 하신 분들께서 예리하고 전문적인 해결책을 제안해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러한 용어의 범위와 정의에 대해 언급을 하자면, 솔직히 ‘가상공간’ 역시 옳은 표현이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지금 우리는 컴퓨터로 구현된 공간을 칭할 때 가상공간이라는 단어를 타성적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가상공간이라 함은 문자 그대로 존재하지 아니하는 가상의 공간을 의미하며, 컴퓨터로 구현된 공간은 존재를 한다.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을 뿐이지만, 실공간과 같이 사용자와 상호교환적 관계를 지니며, 존재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만약 우리가 단순히 비물리적인 것을 없음으로 치부한다면 우리 주변의 수많은 환율과 주식, 사랑과 우정, 이 모든 것들은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물리적인 조건이 존재를 구분하지 않는다. 

즉, 존재하지 아니하는 가상공간은 상호교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개념적인 공간을 의미하게 된다. 공상 속의 정원이나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는 이상 국가 정도가 가상공간이 될 것이다. 이러한 가상공간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표현되고 전달된다. 그렇게 존재하지 아니하는 국가에 대한 이야기로써 걸리버 여행기가 쓰였으며, 몽유도원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묘사한 그림이다. 그림과 소설, 연극이나 영화와 같은 매체들은 가상공간을 맛깔나게 전달하지만, 이들은 관객과 상호교환이 불가능하다.(매우 실험적인 몇몇 작품들은 예외가 될 수 있겠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예외로 두자) 소설이 아무리 정성스럽게 묘사한들, 독자는 해당 공간 속의 꽃을 꺾을 수는 없다. 

이와 반대로, 컴퓨터로 구현된 공간은 상호교환적 행위가 가능해진다. 물론 이 상호교환적 행위가 실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상호교환의 깊이와 다양성을 아직 따라가지는 못 한다. 아직까지는 얕으며, 조악하다. 하지만 이런 한계들은 기술의 한계일 따름이며, 그런 기술의 한계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극복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개인적으로 나는 가상공간과 컴퓨터로 구현된 공간을 구분해야 한다고 믿는다. 가상공간은 존재하지 아니하는 개념적 공간. 그리고 컴퓨터로 구현되어 전자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을 우선 사이버스페이스라고 편의상 쓰고 있다. 용어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당연한 말이지만, 철저한 연구와 사회적 동의가 함께 되어야 한다. 나는 다만 우선 개인적으로 사이버스페이스라고 일컫는다. 절대 이것이 아직 검증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조금 더 깊이 파고들어보면, 사이버스페이스 역시 그 범위가 애매하다. 컴퓨터로 구현되는 공간이라는 조건이 너무 광범위한 탓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매일 아침에 열어보는 메일함이나 구글 메인 페이지도 사이버스페이스이다. 실공간과 유사한 3차원적 묘사라던가 물리법칙은 적용되지 않지만 우리는 이런 인터넷 페이지를 칭할 때, "뒤로 가보세요", "메일이 왔나요?" 등, 위치를 칭할 때 쓰는 용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이 탓에 나는 사이버스페이스에서 한 단계 더 들어간, 실공간의 우리에게 익숙한 차원과 물리법칙이 메타포로 활용된 사이버스페이스를 버츄얼 리얼리티(Virtual Reality : VR) 라고 칭하며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서 사회적으로 살짝 껄끄러운 부분이 있는데, 대중적으로 VR을 이상하게도 머리에 뒤집어 쓰는 HMD(Head Mounted Display)를 칭하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건 마치 모니터를 컴퓨터라고 일컫는 행태라고 해야하나. HMD는 그저 VR을 재생하는 하나의 출력 장치일 뿐이다. VR은 모니터로도, 빔 프로젝터로도 재생될 수 있다. 

그리고 마치 공간과 장소의 차이처럼, VR은 단순히 조성된 공간만을 칭할 뿐이며 사용자의 존재 유무, 그리고 사용자 간의 상호교환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다. 공간이 장소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새겨져야 하는 만큼, 단순한 VR 공간에 사람들의 경험이 뒤섞이게 되면 VR은 버추얼 랜드스케이프(Virtual Landscape)가 된다. 사실 Virtual Landscape 라는 용어를 개인적으로 수년전부터 꾸준히 사용하고 있지만 아직 학술적으로 정의를 내리지는 못 하였다. 엄밀히 말하면 용어도 버츄얼 플레이스(Virtual Place)가 더 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간이 아닌 공간 안의 사람을 위함이 조경의 가장 큰 매력이자 정체성이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해석, 그리고 향후 해당 영역을 보다 많은 이들이 찾게 될 때 그 뿌리가 조경에 있음을 인지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랜드스케이프(Landscape)란 단어 사용을 고집하고 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가상공간과 사이버스페이스, Virtual Reality, 그리고 Virtual Landscape. 각각의 용어들의 관계를 도식화 하면 아래 [그림_1] 과 같다.  


[그림_1. 가상공간 및 기타 공간의 위계도]

즉, 가상공간은 존재하지 않은 개념적 공간이다. 가상공간은 소설, 영화, 회화 등 다양한 매체로 표현될 수 있지만 이러한 매체들은 사용자와 상호교환적인 공간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그에 반하여 사이버스페이스는 상호작용이 가능하기에 존재하는, 컴퓨터로 구현된 전자적 공간이다. 모든 전자적 공간들은 사이버스페이스의 범주에 들어가나, 그 중에서도 Virtual Reality는 사이버스페이스 중 3차원 실공간을 메타포로 구현된 공간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Virtual Landsacpe은 장소로서의 의의를 지닌 Virtual Reality이다.

이러한 정의는 단순한 단어놀음으로 끝날 수 있지만, 나아가 디자이너들에게 본인이 작업하는 매체의 특성을 보다 명확하게 인지하고 이를 살릴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조경계에서는 엔진 혹은 다양한 프로그램, 혹은 하드웨어들을 활용하여 본인이 제안하고자 하는 가상공간을 표현, 전달하고자 한다. 랜더를 돌려서 나온 이미지를 일반적인 도판에 싣는다면, 당연한 말이지만, 상호작용이라든가 사이버스페이스의 특성 등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설득력 있는 그림을 그리는 도구로 프로그램이 쓰일 뿐이다.

하지만 Virtual Reality로 자기 디자인을 표현하려면 무엇보다 평면적인 매체에서 공간감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부단한 노력이 요구된다. 특히 Virtual Reality의 설계, 제작자들에게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 중에 하나가, 도면을 공간화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이런 작업 과정을 살펴보면, 캐드(CAD) 등으로 도면을 정성껏 만든 다음 이를 엔진 등으로 불러내서 도면 위에 각종 오브제를 올리고 이팩트를 주면서 Virtual Reality를 조립해나간다. 그리고 도면 위에 언급되던 모든 요소들이 자리를 찾으면 그걸로 매체가 완성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지는 공간은 매우 매우 매우 어색하다. 왜? 캐드 도면은 이데아적인 공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시공의 신적 존재가 오더라도 도면상의 설계를 100% 구현하는 실공간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설령 어찌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오래가지 못 한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잡초가 자라나고,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타일이 내려앉고 깨진다. 이렇듯 완벽한 공간은 도면상에 가상공간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그런 완벽한 가상공간을 Virtual Reality로 만들면, 사용자들은 깊은 어색함을 느끼게 된다. 마치 불쾌함의 골짜기 마냥, 매체 안의 공간이 절대적으로 완벽하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더없는 어색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용자들에게 몰입감을 주고 현실감을 제공하는 Virtual Reality를 구현할 때에는 해당 공간에 의도적인 부족함과 불분명함이 필수적으로 부여되어야 한다. 거울처럼 매끈하게 평평한 바닥이 아닌, 사람들이 다니는 동선에 따라 닳은 부분과 내려앉은 부분을 표현해주어야 하며, 사람들의 손때가 탄 부분들을 필히 배치해주어야 한다. 흐드러지게 핀 환상적인 꽃들뿐만이 아닌, 여기저기 꽃잎이 떨어져나간 좀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꽃들도 한두 송이씩 심어두어야 한다. 사람들은 Virtual Reality를 통해 완벽한 가상공간을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실감 나는, 현실적인 공간을 느끼고자 한다. 설령 완벽한 가상공간을 보고자 Virtual Reality를 접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현실감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의도적인 부족함과 불분명함이 공간에 필히 내제되어야 한다. 

그래서 Virtual Reality 설계가 쉽지 않다. 흔히 주변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공간을 설계하니 어려울 것도 없고 재미있지 않나요?’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실공간 설계도 여러 번 해보았고 이런 매체 상의 공간도 설계 해보았지만, 솔직히 Virtual Reality상의 설계가 조금 더 까다롭다고 느껴진다. 이유는 단순하다. 모—오오든 것을 고려해야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된 저런 현실적인 부족함과 불분명함은, 실공간이라면 그저 당연하게 존재하는 것들이지만 Virtual Reality를 설계하는 과정에서는 일일이 수작업으로 설계를 해주어야 한다. 심지어 Virtual Reality에서는 그냥 굴러다니는 조약돌 하나까지 그냥 존재하지 않는다. 해당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요소들은 의도되고 설계되어야 한다. 햇볕의 세기와 밤하늘의 색깔까지도 말이다. 


[그림_2. Virtual Reality 사례. by UNREAL ENGINE 5]

그런 와중에 Virtual Landscape이라면? 그런 의도적인 불완전함을 부여해야하는 공간 내에 실공간과는 사뭇 다른 행태를 보이는 사람, 즉 사용자에 대한 고려까지 들어가야 한다. Virtual Reality 내의 사용자들 행동은 실공간과 상이하다. 훨씬 과격하고 무책임하게 움직인다. 제공되는 정보의 양은 제한된다. 상호교환의 폭도 좁고 날카롭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uman Computer Interaction: HCI)'이라는 학문 영역이 생길 정도지만, 해당 영역마저 공간적인 해법을 충분히 제공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나는 대학원생들에게 Virtual Landscape를 연구 주제로 강하게 권한다. 시장은 크고 기술은 발전하고 있으나, 이론적인 배경과 체계적인 연구는 턱없이 빈약하다. 진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빈약하다. 그만큼 연구를 할 수 있는 주제가 산처럼 쌓여있다. 그리고 그런 연구들은 대부분 조경에서 우리가 익혔던 이론과 기술들을 응용함으로써 해결이 가능하다. 매력적이지 않은가?
글·사진 _ 김익환 교수  ·  이스탄불 공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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