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주민과 함께 숨쉬는 조경

안상욱 논설위원(천안시 도시재생지원센터장)
라펜트l안상욱 센터장l기사입력2016-03-09
주민과 함께 숨쉬는 조경



글_안상욱 천안시 도시재생지원센터장


지난 5일 강의하러 토지주택대학교를 찾았다. 화단의 산수유가 노오란 꽃망울을 살포시 터트리며 말을 걸어 온다. 봄이 이미 와 있다고. 오늘이 경칩이라고. 이제 봄비 그치면 온 누리가 푸르게 될 거라고.

필자는 올해 초에 천안시 도시재생지원센터장으로 자리를 옮겨서 국토교통부가 지정한 선도지역을 중심으로 한 천안 원도심의 재생사업을 맡고 있다. 천안 원도심지역은 고려 태조 이후 1,200여 년 동안 행정과 문화와 상업의 중심지였지만 도시화과정 속에서 극심하게 쇠퇴된 상황에 이르렀고, 쇠퇴된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는 주민과 상인과 행정 등을 지원하는 게 지원센터가 맡은 일이다.

20여 년 동안 줄곧 손님이 줄고 상권이 쇠퇴하는 것만 보아오며 이 땅을 지켜온 주민들에게 실현될 꿈을 갖게 도와주는 게 쉽지는 않다. 이른바 장밋빛 청사진 같은 허상 말고 이 곳의 주민(거의 임차상인)도 살고 원도심 상권도 살아날 방안을 찾는 게 정말 어렵다.

정부가 재래시장의 활성화를 목표로 재정을 지원하는 시장정비사업이라는 게 있다. 서울시에서 진행된 시장정비사업 현황을 서울시의회가 조사해보니 재래시장에서 장사하던 상인의 5.6%만이 번듯하게 개발한 시장에 재입점했다고 한다. 나머지 94.4%의 토박이 상인은 어디로 떠났을까?

90년대 말 서울 인사동 골목에서 벌어진 ‘12 가게 살리기 운동’을 기억한다. 서울 도심의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경쟁력을 잃은 인사동 골목을 살리기 위해 펼쳐진 차 없는 거리 시행이 오히려 자본을 불러들였고 결국 전통공예 등 역사문화 관련 상인들이 스러져 갔다. 전국의 마을만들기에서도 마을의 경쟁력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이익의 분배과정에서 이견이 생기면서 그나마 움직이던 마을공동체마저 깨지는 아픔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누구의 잘못일까?

도시재생사업이후 현재도 무한 반복되고 있은 원주민 축출(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행정과 시민사회의 힘만으로는 고삐 풀린 자본을 이길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마을만들기나 도시재생과정에서 이 땅을 지켜온 주민과 상인 특히, 임차인들이 살아남아 좋아진 주거환경과 활성화된 상권의 주인으로 함께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조경가는 공원이나 하천 등 도시의 주요 공간 등을 다룸에 있어 고객을 주인으로 생각하면서 계획하고 설계한다. 누가 진짜 고객일까? 오래도록 이 공간을 함께 노닐고 즐길 사람이 누구일까?

마을만들기나 도시재생과정에서 조경가는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라는 점을 그리고 사회적 경제, 착한 소비, 공정 경제가 이제 제도화 단계에 있음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마을만들기나 도시재생과정에서 조경가의 손길을 떠나 실현되는 물리적 환경이 해당 지역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이 변화 속에서 그 땅의 주민이 계속 함께 어울리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조경가는 모든 주민들이 함께 숨 쉬고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우리 도시를 가꾸는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른 바 농촌이나 단독주택단지나 연립주택단지, 임대주택단지 등 어렵고 불편한 곳에도 사랑의 눈길을 주어야 한다. 삶에 지쳐 여유가 없고 힘이 없는 이들이 사는 지역의 쓰레기로 뒤덮인 한 뼘의 빈터, 우중충한 담벼락을 찾아 조경가의 따스한 손길로 새 삶을 불어넣어야 한다.

조경가들이 주민들에게서 멀리 있는 것은 아닌지? 마을단위에서 주민에게 가장 필요한 게 바로 조경가의 손길이다. 주민에게 다가가 그들이 바라는 한 평 텃밭, 주민공원, 주민한마당을 그들과 함께 만들어보자. 전국의 조경가들이 서로의 삶터나 일터 주변에서 힘을 모아 조직화하고 마을만들기와 도시재생 등 지역발전 과정에서 우리 도시와 우리의 주민들과 서로 호흡을 맞춰가자.
_ 안상욱 센터장  ·  천안시 도시재생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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