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3년 그리고 세 명의 시장

조용준 논설위원(㈜CA조경기술사사무소)
라펜트l조용준 소장l기사입력2021-11-30
3년 그리고 세 명의 시장




_조용준 ㈜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



잘 지내시죠? 요즘은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계세요? 라고 사람들이 물으면, ‘광화문광장 설계를 하고 있습니다. ‘라고 3년째 같은 대답을 하고 있다. 다들 놀라며, 아직도 설계가 끝나지 않았냐고 되묻는 경우가 많다. 사실 한두 해전만 해도 많은 분들이 광화문광장 사업이 멈춰진 거 아니냐고 묻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과거의 여러 사건들을 돌이켜 보면, 설계가 마무리 되고 있는 지금의 이 상황이 신기할 따름이다. 

세 번의 큰 위기들이 있었다. 2019년 당선발표 직후 새로운 광화문 광장 당선작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기사화 되었다. 이순신장군상과 세종대왕상이 사라진 광장, 촛불문양을 새기는 광장, U자형 도로로 인한 행안부와의 마찰 등 계획안에 대한 내용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슈는 2009년 만들어진 광화문 광장을 10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다시 조성한다는 사실이었다. 정치적으로 많은 부담을 가졌던  故(고) 박원순 전 서울시 시장은 설계진행기간이였던 2019년 9월에 12월까지 광화문 대토론을 통해,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청취했다. 그로 인해 당선안의 변화들이 생겨났다. 거대한 지하광장과 주변건축물과 지하공간을 매개하던 선큰공간들이 사라지고, 공원과 같이 좀 더 많은 녹지들이 도시에 면한 서측 광장 위에 생겨났다. 다행이도 이는 당선안에서 제시했던 한국적 경관의 광장숲과 일맥상통한 내용들이여서 설계팀도 충분히 수용할 수 있었다. 3개월에 걸친 토론회 이후, 몇 번의 변화를 거쳐 광장계획안 보완되었고, 故(고) 박원순 전 서울시 시장은 좌고우면(左顧右眄) 하지 않고 광장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결단을 내리고 몇 개월이 지난 2020년 7월 9일 박원순 시장이 사망했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과연 이 사업이 다시 진행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행정상으로는 문제가 없었지만, 서울시 주요 사업으로 故(고) 박원순 전 서울시 시장의 강한 의지로 진행되었기에 시장 유고상황에서 추진력을 잃고 멈출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보는 이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정협 시장권한대행과 광화문 추진단은 몇 년을 걸쳐 진행되어 왔던 행정절차들과 시민들의 토론과 의견으로 만들어진 계획안을 믿고 광장 재구조화 사업의 시작인 동측 도로공사를 강행하였다. 보궐선거를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에서 시민단체들과 서울 시장후보들의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도시연대 등 9개 시민단체로 이루어진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졸속추진 중단을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는 사업무효소송을 제기하였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사업이 법률상 규정된 각종 절차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아 위법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행정절차상의 문제는 없었고, 무효확인소송은 각하되었다. 

오세훈 시장이 당선된 이후 광화문광장 재구조 사업 공사는 다시 한 번 정치적 이슈가 되었다. 시장후보당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발언했기에 많은 언론들이 당선이후 이 사업에 대한 오세훈 서울시장의 행보를 궁금해 했다. 2020년 4월 7일 오세훈 시장이 당선되었을 때, 동측도로 공사는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따라서 이미 30% 이상의 공사가 진행되었기에, 광화문 광장을 원상복구 할 경우 막대한 공사비용과 기존에 진행되어왔던 행정상의 많은 매몰비용이 발생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들과 행정의 연속성을 고려해볼 때, 광화문광장 사업을 현안대로 유지하기로 한 오세훈 시장의 결정은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이 후 공사 중에 발굴된 육조거리의 흔적들과 시민들에게 사랑받던 2009년 광장의 주요공간들을 고려하여 광화문광장 계획안을 보완하고 발전시켰다. 지난 3년 세 번의 큰 전환점 외에도 수많은 이슈들 속에서 광화문광장 재구조 사업은 진행되고 있다. 


2019년 9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옥상에서 / 사진:조용준


2020년 3월 광화문 광장 현장에서 / 사진:김소연

이 과정 속에서, 설계가로서 할 수 있는 것들과 할 수 없는 것들을 뼈저리게 느꼈다. 최전선에서 뛰었던 나와 팀원들(강인화, 김수린, 엄성현, 이지현, 이상민, 신원재, 전 CA 멤버 이재현, 김소연)은 수없는 좌절과 실망을 겪어야 했다. 공모전 당선작이라도 설계한 대로 될 수 없다는 것, 반복된 보고와 자문, 여러 절차 속에서 증명해야 하는 수많은 이슈들,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외부환경들, 이런 어려움들이 이 프로젝트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광화문 광장이라는 특별한 장소의 무게감이 더해져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 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머리는 휴식을 위한 잠깐의 소등은 있었지만, 정신적, 육체적 회복을 위한 충분한 휴식기는 없었다.  

결국 나는 왜 설계를 하는가? 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상황에 다다랐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공공을 위한 장소를 만들기 위해 조경설계를 나의 업으로 선택했다. 여러 차례 힘든 나날들도 있었지만, 설계는 항상 즐거웠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마주할 때면 또다시 에너지가 솟구쳤다. 이런 과정들 속에서 생겨난 내 몸의 설계유전자들은 수많은 반설계적 바이러스들을 이겨내 왔다. 그런데 지금 나는 가장 강력한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다. 나의 설계유전자들이 힘을 다해 싸우겠지만, 어쩌면 백신이 필요할지 모른다. 진실한 위로와 격려 그리고 좀 더 나은 설계환경을 위한 진정성 있는 노력 말이다. 이 백신이 있다면 내가 선택한 이 길이 훨씬 더 건강하게 지속될 것이다.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면, 이 백신이 필요한 설계가들이 너무나도 많다. 설계유전자를 타고난 사람일지라도 수많은 어려움 속에 설계의 길을 포기하는 경우를 수없이 보아왔다. 이제 우리가 필요한건 개인의 설계유전자를 보강하는 것이 아니라, 이 업계의 필요한 백신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당신과 내가 해야 할 일이다.  
_ 조용준 소장  ·  (주)CA조경기술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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