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막한 도시에 생명의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인터뷰] 더가든 김봉찬, 김미홍, 신준호자연주의 조경, 생태정원은 일반인들에게 아직 낯선 개념이지만, 조경분야에서는 대안적 조경 개념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더가든은 자연주의 조경의 대중화를 견인하고 있다.더가든의 김봉찬 대표와 신준호 부장, 김미홍 부장은 서울 피크닉에서 열린 ‘정원 만들기 Gardening’ 전시에 ‘Urban Forest Garden’을 조성했다. 이번 정원 역시 ‘아모레 성수’에 이은 도심 속 원시림 정원으로, 식물과 함께 벌과 나비 등 생물들의 서식처가 되는 생태적인 정원이다.이들은 “정원을 통해 대중과 다른 분야 예술가들에게 자연주의 조경과 그 철학을 알리고 싶다”고 전한다.
신준호 더가든 부장, 김봉찬 대표, 김미홍 부장
‘Urban Forest Garden’은 생물의 안정성과 함께 그들이 서로 간에 맺는 관계를 기반으로 디자인됐다. 더가든이 추구하는 자연주의 조경이다.
김봉찬 대표│정원은 역사가 깊고 표현 범위도 넓다. 전시의 초점은 근현대 정원에 맞춰져 있다. 한국에 근현대 정원이 생긴지 40~50년 정도 됐다. 전 세계적으로 정원의 트렌드는 유행이나 사회적 이슈에 따라 많이 변해왔다. 최근에는 코로나19를 비롯해 환경 오염과 야생생물의 멸종 등 다양한 환경적 위기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작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원하는 정원은 자연을 곁에 두는 자연주의 정원, 생태정원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의 생명을 어떻게 도시에 담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진정으로 숙고할 필요가 있으며 그 결과물은 외부로, 특히 ‘정원’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우리는 야생생물들의 서식처가 될 수 있는 정원을 가꿔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경우 생태조경은 아직 시작 단계이다. 우리는 다른 나라들이 왜 생태정원, 자연주의 정원을 작업하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하고, 또 시도해야한다.
인공지반에 만들어진 정원인 만큼 조성 과정에서 특별히 신경쓴 부분이 있다면?
김미홍 부장│인공지반이라는 특성에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것은 식물이 자라는데 지장이 없도록 충분한 토심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하중을 고려해야 했기에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집중했다.
신준호 부장│수목의 운반과정도 신경썼다. 별도의 팀을 꾸려 처음 나무를 캘 때부터 현장에 맞는 크기의 분을 뜨고, 운송 과정에서 잎이 마르지 않도록 조치하는 등 세심하게 작업했다. 토양도 배수가 잘 되면서 보습력도 좋은 배합을 찾았다.
또한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에 들어서는 정원이다보니 통행을 위한 동선이 필요했다. 그러나 동선마저도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닌 식물에게 햇빛이나 빗물을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이 되길 바랐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그레이팅 데크였다.
김봉찬 대표│이미 도시의 수많은 공간은 사람들이 점령하고 있다. 자연이 들어갈 자리가 적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레이팅 소재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했다. 땅에는 자연의 영역을 마련해 주고 사람은 그 위를 지난다면, 자연과 사람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이번 작업은 원시 자연을 어떻게 도시에 가져올 것인가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는 과정이었다. 숲 속의 식물을 도시에 가져다 놓는다고 해서 바로 살 수는 없다. 적절한 환경을 조성해 완전히 정착할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연상태에서는 100~200년이 걸리는 일이다. 따라서 도심 속에 야생생물 모두를 위한 서식처로서의 정원을 어떻게 조성할 것인가가 중요했다.
현장은 숲 정원을 만들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건물의 입지를 보면, 아래에는 오래된 건물들이 쌓인 절벽과 같은 형태이고, 좌우로는 거대한 빌딩이 둘러싸고 있어 바람을 막을 수 있고 그늘이 지는 곳이었다. 이러한 특성에 맞게 절벽 위 경사면 쪽은 초원처럼 풀을 심었고, 빌딩 쪽은 나무를 심어 숲처럼 조성했다.
사람들은 조경공간에 들어가 무엇인가를 하려고 한다. 사람이 이용할 자리가 없어야 비로소 보는 경관이라고 판단한다. 작은 정원도 마찬가지다. 충분히 보면서 즐길 수 있음에도 들어갈 자리를 찾는다. 자연을 이용하려는 차원으로만 바라보는 태도가 문제라 생각한다.
실내 전시장에서는 피트 아우돌프의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다. 아우돌프의 대표작인 하이라인(High Line) 또한 인공지반에 조성된 자연주의 정원이다.
김봉찬 대표│하이라인의 전체적인 주제는 촉촉함이다. 그 촉촉함을 메마른 뉴욕과 붙여 놓으니 대비감이 대단하다. 하이라인에 원시 숲이 조성된 구간은 빌딩이 밀집된 곳이었다. 뉴욕의 콘크리트 건축물은 마치 나무와 같은 역할을 해 바람과 햇빛을 막아 습도를 유지할 수 있다. 아우돌프는 빌딩을 일종의 숲으로 봤던 것이다. 이는 대상지의 환경을 굉장히 잘 분석한 결과이다. 하이라인 답사 후 스스로에게 어떻게 인공지반인 고가도로에 촉촉한 원시 숲을 만들 수 있었을까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다.
동아시아의 기후는 겨울철 차고 건조한 바람 때문에 인공지반녹화가 어려운 환경이다. 이번 정원에는 나름의 연구를 통해 정원을 조성했으나 수목이 내년까지 건강하게 생육할 것인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지난 30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심스럽게 성공을 예상하고 있다. 정원이 잘 정착된다면 서울에 얼마든지 촉촉한 정원을 디자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신준호 부장│몇 년 전 하이라인을 방문한 뒤, 얼마 후 한국의 최신 조경이라고 선보였던 서울로7017을 보았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그때부터 하이라인과 서울로7017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고민이 시작됐다. 정원으로 도시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 수 있도록 도심 안에서 숲의 식물들을 키우는 기술들을 연구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아모레 성수’에 조성한 정원은 두 번째 봄을 맞으면서 정원이 제대로 정착했다. 이곳에 조성된 정원도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지는 정원이 될 것이다.
정원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엿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10월까지 이어진다. 특히 외부공간에 조성된 정원은 생명이 살아있는 공간인 만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전시장을 찾는 이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린다.
김미홍 부장│도시에 우리의 공간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는 과정이었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공간이길 바란다.
신준호 부장│이 동네에는 고양이가 많다. 다른 것 없이 흙만 부어두었는데 다음날 고양이들의 흔적이 가득했다. ‘아모레 성수’ 작업 당시에도 그랬다. 흙만 있어도 고양이들이 먼저 와서 좋아하고, 나무를 심으면 바로 새가 날아온다. 이것만 봐도 도시 안에 생명의 공간이 얼마나 없는가를 깨닫게 된다. 정원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각각 바라보는 관점은 다를 것이다. 우리가 ‘정원에 생명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공간을 풀어냈듯 말이다.
김봉찬 대표│정원에서는 강요되지 않는 놀이처럼 자연스럽게 사물과 세계를 지각하고 바라보는 방법들을 훈련할 수 있다. 정원은 ‘소통’을 전제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예술, 문화, 정치, 경제 등 많은 분야의 사람들에게 정원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법을 전하고 싶다.
‘Urban Forest Garden’은 발아래 무성하게 자리 잡은 자연, 담장 너머 도심 빌딩 숲을 감상하면서 인간이 커다란 자연 공동체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는 장소가 되길 기대한다.
- 글·사진 _ 김수현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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