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을 통해 기성 조경인프라를 어떻게 바꾸어야하는가를 고민해야”

[최자호가 만난 조경인] 신진욱 플래닝고 대표
라펜트l전지은 기자l기사입력2022-11-04
‘AI기반 공동주택 조경설계 자동화기술’은 아파트 단지 공간의 설계 범위 등 기본적인 설계 조건을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단지내 옥외공간의 설계 초안을 제안하는 기술이다. 이로써 효율적인 설계 검토 및 정확한 시공을 위한 기반을 다질 수 있으며, 설계, 시공 등 조경산업 분야 협력사와의 신속하고 정확한 의사소통을 통한 업무 효율 증진도 꾀할 수 있다.

이 서비스를 개발한 플래닝고는 최근 자동화 설계 기술과 3D 인터페이스 구현 기술을 응용한 3D 웹페이지를 제작 서비스로 사업을 다각화해 스타트업으로서 한 단계 더 도약하고 있다.

신진욱 플래닝고 대표


조경과 디지털 기술의 융복합

신진욱 대표의 디지털 기술에 대한 관심은 중학교 때부터였다. 생각보다 낮은 하나의 문턱을 넘어서면 프로그램과 웹페이지, 서비스까지 개발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나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에는 앞선 개발자들의 오픈소스를 통해 생각했던 것보다 쉽게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주변에서 결과물에 놀라워하는 것들에서 보람을 느끼며 개발을 더 깊이 공부하려 했다.

동시에 고등학생 시절부터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을 최적의 공간으로 설계하겠다는 모호한 꿈을 가지고 있었고, 인터넷 서칭을 통해 서울대학교 조경/지역 시스템 공학부가 최적이라 생각해 조경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그렇게 조경을 공부하며, 틈틈이 디지털 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컴퓨터공학 전공수업을 수강했다.

“전공수업을 통해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을 만들어내고 만족감을 주는 것은 계획과 설계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컴퓨터공학 수업을 통해 공간에 대한 답을 인공지능 설계로 도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 대표는 당시 이동, 산책, 휴식 등 사람이 살아가며 최대로 만족감을 느끼는 공간의 설계가 이론적으로 계산이 가능하다고 믿었다고 한다. 최적의 환경과 조경이 존재하는가에 대해 고민했고, ‘수학적 계산이 가능하지 않을까’에 대한 의문을 품고 여러 교수에게 여쭙고 다녔다.

군 전역 이후 이 고민들은 더욱 깊어졌고, 논문과 해외 사례를 찾아가며 실질적으로 실험하기 시작했다. 길의 폭이나, 녹지 분포 비율, 주거 형태와 주변 상권 등을 변수로 두고 인공지능으로 기존의 완공된 대상지의 데이터를 학습했을 때, 인공지능이 새로운 공간에 대해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지가 궁금했고, 그 결과를 여러 교수와 설계자들에게 피드백을 받고 싶어 했다.

이후 인공지능이 가장 학습하기 쉬운 대상지를 공동주택, 아파트 단지로 선정하고, 발품을 팔며 데이터를 수집해 인공지능을 학습시켰다. 부족한 데이터에도 인공지능이 내놓은 결과물은 녹지, 인도, 시설물 등의 식별이 가능했었다고. 그러나 그 결과물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너무나도 평범한 아파트 단지였다.

전문가가 아니며, 짧은 식견을 가진 당시의 그가 내린 결론은, 대학에서 배웠던 이론대로 인공지능은 학습한 데이터의 ‘참’값 정의의 성능을 넘어설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비록 인공지능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는 없었지만, 인공지능이 산출한 아파트 조경 도면 제작 시간이 5초 남짓이었다는 사실에 신 대표는 주목했다. 그렇게 해당 인공지능을 새로운 아파트 단지에 적용해 빠르게 초안을 도출하고 비용 계산을 해낼 수 있는 서비스로, 혹은 한국의 아파트를 설계하고자 하는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저렴한 공동주택 설계 인공지능으로 발전시켜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신 대표는 이 계획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사업화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창업을 목표로 서울대학교 벤처경영학과에 융합 전공해 조경의 자동화 설계를 연구하는 기업체 설립을 계획했다. 같은 과 동기인 김영범 씨과 함께 학교 주변의 카페에 앉아 기술을 연구하던 중 류영렬 교수의 지원으로 기업체를 설립해 창업휴학 후 심도 있는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조경설계 자동화 서비스를 위해서는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필요하다. 그러나 자료들은 모두 설계사무소들의 자산이기 때문에 모으기가 쉽지 않았다. 데이터를 대량으로 확보할 방법을 고민하다 누구나 공간의 위치 기록과 이미지를 올릴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다. 마침 환경부나 서울대학교 연구팀 등에게 어플로 수집된 데이터를 활용하려는 수요처들이 있었다. 그렇게 고군분투하던 중 현대엔지니어링으로부터 대량의 데이터를 제공할 테니 연구를 진행해보자는 요청이 들어왔고, 이후 현대엔지니어링과의 업무협약을 통해 AI기반 조경설계 자동화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관련기사)


플래닝고의 주력사업

플래닝고의 현재 주력사업은 3D 웹페이지 제작 서비스이다. 조경과 전혀 관련 없어 보이지만 사실 조경 자동화에서 출발했으며, 이번이 두 번째 창업이라고 할 수 있다.

“팀이 성장하는 기업의 우선 목표는 자본 가치를 생산하는 것”라는 신 대표에게 조경설계 자동화 서비스는 시장 규모와 고객군이 방식을 전환하려는 속도에서 더 이상의 개발 및 확장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하게 했다. 많은 비용이 소진되는 인공지능 산업에서 1조원이 넘는 기업 가치에 도달하려는 플래닝고의 목표에는 부합하기에는 시장이 작고, 실제 현업에 쓰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이유였다. 대상지 조사 후 유사 사례를 찾은 후 설계도 초안을 그려내는 작업은 설계 프로세스를 굉장히 단축시킬 수 있지만 투자사들을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모은 위치 기록 및 이미지 데이터 제공 서비스가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던 첫 번째 창업지에서 퇴사를 하고, 새롭게 투자를 받아 두 번째 창업을 시작한 것이 지금의 플래닝고이다. 조경설계 자동화 기술 연구를 지속하면서, 기업의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새로운 아이템으로 서비스를 전환했다.

주력 사업인 3D 웹페이지를 제작 서비스는 자동화 설계 기술과 3D 인터페이스 구현 기술을 응용해 디지털 트윈, 메타버스 기술과 제품을 더욱 잘 소개할 수 있는 서비스이다. 기존에 종이로, 혹은 이미지로 표현되던 정보들을 3D 오브젝트로 전환하고, 공간 내에 배치해 웹 페이지 내에 표현된다. 3D 요소를 인공지능을 통해 초안을 생성하고 제품과 서비스를 소개하려는 공간을 자동적으로 구성하는 서비스로, 제품이 동작하거나 조립되는 과정을 3D로 표현하는 웹페이지를 제작하는 것이다. 가장 많이 활용되는 방식은 제품의 조립 설명서들을 3D로 표현하는 것이며, 용량이 큰 3D 모델을 애니메이션을 적용하며 최적화해 스마트폰, 웹 페이지 내에 렌더링 하는 기술이다. 3D 웹페이지의 초기 3개월간 매출은 1년간 조경 분야의 자동화 설계로 투자를 유치하려던 금액보다 더욱 많았다고.

“플래닝고의 목표는 너무 의외일 수 있겠지만, 3년 내로 이 세상에서 종이 설명서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해당 목표를 달성하고 난 뒤 누구나 3D 웹페이지 제작이 가능한 서비스를 구축하고 메타버스에서 서칭 할 수 있는 서비스를 기획하고 있다. 해당 메타버스는 3D로 표현되며 이곳에 표현될 가상의 공간과 도시에 보일 조경이 인공지능으로 제작된다”


아이디어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자본가치 생산이 기반돼야

“스타트업 창업을 시작한지 3년도 채 되지 않다. 제가 겪은 바는 저보다 앞서 계신 여러 스타트업, 벤처 기업 대표님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조경 학도이자, 창업자로서 확실하게 깨달은 바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아이디어가 지속가능하기 위해 사회적 기여가 있으려면, 자본의 생산이 기반이 되어야한다는 점이다”

신 대표는 “지속적 유지와 영향력 확보를 위한 자본가치 생산이 기반이 된 기업이 더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이때 기업은 자본 가치의 원천인 사회에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 다수가 경험하고 있는 뚜렷한 문제를 정의하고 이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경제적 가치를 생산할 때만이 지속가능한 해결책이 될 수 있으며, 이를 찾아내고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기업의 역할이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시장을 읽고 수요를 찾아내 사업 아이템을 전환하고 시기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타트업에게는 투자금 유치도 매우 중요하다. 사업체 설립을 하기 위해서는 사무실과 팀원이 필요하며,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자본이기 때문이다.

플래닝고의 경우, 첫 번째 창업은 대학의 창업프로그램을 통해 창업사무실을 대여하고, 친구들이 모여 서로 월급을 받지 않고 일을 하는 구조를 만들어 놓고, 투자를 받으러 다녔다. 2019년, 2020년 당시는 정부의 창업지원 프로그램이 많았기에 이를 통해 자금을 유치했다. 두 번째 창업에서는 투자사로부터 자금을 받고 시작했으며, 이를 통해 새로운 사무실과 직원을 채용할 수 있었다.

신 대표에 따르면 민간과 정부의 사업체 투자 조건은, 근거에 따른 경제적 생산 계획이 합리적인지와 해당 자본 유치가 생산 계획에 적당한 소요인지에 대한 투자사의 판단에 있다. 투자사를 이 과정에서 기업을 검증하기 위한 서류와 PT 과정을 진행하는데, 전략적 측면에서 기존에 계획돼있던 생산과 소요 계획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도움이 됐다고 한다. 이전부터 사업기획을 위해 준비한 여러 자료들을 첨부 및 설득 자료로 활용한 것이다.

“민간과 정부 투자금 유치가 더욱 어려운 요즘, 사업 계획과 그에 따른 생산 계획의 설득력과 완성도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설득력은 가장 먼저 의미 있는 시장인가, 그리고 아이디어 자체가 이해하기 쉽고, 명시적인가에서 나온다. 결국 성장하고 있는 시장, 혹은 이미 거대한 시장과, 아이템이 어떠한 문제를 해결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인지가 일반인이 듣기에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해야 투자금 유치가 유리하다”

또한 본질적으로 이미 기획돼있고, 진행할 계획이 준비된 사업 기획에서 투자금을 유치하는 것이 더욱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투자금이 목적이 되는 경우와, 이미 계획 실현이 목적인 상태에서 더 큰 목표를 위해 도움이 되는 투자금을 추가적으로 확보하려는 경우 모두 경험해 보았으나, 후자가 더욱 유리하다는 것을 다방면에서 경험했다고.


디지털시대의 조경전공자에게 조언한다면

“우선 저는 아직 졸업을 하지 않은, 학부생 신분으로 조경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다. 여전히 경험을 해가며 알아가고 있는 조경 학도로서 느낀 바를 말씀드리고 싶다.

저는 조경의 자동화 설계 기술을 연구 및 사업화하며, 조경 분야의 현업에 계신 관계자 분들을 만나 뵀다. 직원 30명이 넘는 큰 설계 사무실부터 두 분의 조경가께서 운영하시는 설계사무소, 전/현직 교수님까지 만나 뵙고 제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여기서 제가 느낀 것은 미래를 상상하시는 분과 현재의 상황에서 생각하시는 분들로 확연히 구분된다는 점이다.

저는 공대와 경영대 수업을 듣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공대와 경영대는 미래에 대한 기술과 정보들을 예측하며 토론한다. 창업 이후 많은 대표님들을 만나 뵙고 느낀 것은, 해당 학부를 졸업하고 산업으로 가도 미래를 상상하는 습관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경영학과에서는 인공지능의 미래 가치를 산정하는 수업들이 있고, 공대에서는 인공지능이 어떻게 최적화되어 개선될 수 있는지를 공부한다.

그러나 조경학과에서는 비교적 현황과 과거를 공부한다. 우리는 조금 더 기술 앞단에서 조경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조경 전공자라면 인공지능으로 TV 채널을 목소리로 바꾸는 5년 전 기술에 신기해하지 말고, 조경의 기성 인프라를 인공지능과 기술을 통해 어떻게 바꾸어야하는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경만큼 자연과 사람들의 삶에 과학적으로 닿아있는 학문이 없다. 늘어가고 있는 조경에 대한 대중의 관심에 조경 전공자분들의 새로운 생각과 아이디어가 더해진다면 조경 분야의 기회와 영향력을 늘려갈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 _ 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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