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 한뼘 녹지가 만드는 미래의 큰 가치

김경인 브이아이랜드 대표,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운영위원
라펜트l김경인 대표l기사입력2016-02-24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 Series No.9


한뼘 녹지가 만드는 미래의 큰 가치

: 멀리 있는 친척보다 이웃사촌이 낫다



김경인 브이아이랜드 대표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운영위원

 


우리는 매일 많은 공간들을 지나친다. 우리가 기억하든 기억하지 못하든. 좁은 골목길을 지나기도 하고, 높은 빌딩을 지나기도 하고, 정비된 공원을 지나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일상생활 속에서 공원을 접하는 기회보다는 오히려 건물주변의 작은 녹지나 가로변의 녹지를 더 많이 만나게 된다. 그런데 조경계에서는 정원이나 가로와 같은 소규모 공간보다는 도시공원이나 근린공원과 같은 대규모 공간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대규모 공원보다는 소규모 녹지가 일상생활과 밀접한 조경인데도 말이다. 이것은 소규모 녹지의 설계 수준과도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건축물은 아무리 작아도 건축가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지어질 수 없지만 소규모 건축물의 녹지공간은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단독주택의 녹지는 소유주의 취향에 의해 만들어지고, 소규모 상업 또는 업무건축물의 녹지는 건축가가 설계하는 경우가 많다. 강남에 있는 건물조차도 5층 내외의 건물을 설계하면서 조경가의 손길을 거쳤을 법한 녹지공간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가끔 넓은 옥상조경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조경가에게 의뢰하곤 한다. 그러다보니 건축물을 배치하고 남는 북측공간이나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공간에 침엽수 몇 그루, 또는 여러 종류의 관목을 식재하는 것으로 끝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녹지공간은 관리가 잘 안되기도 하고 생육환경에 맞지 않기도 해서 식물이 고사하기 일쑤다.
 
‘멀리 있는 친척보다 이웃사촌이 낫다.’, ‘아무리 친한 사이도 안보면 멀어진다.’ 이런 말들은 가까이 있는 것의 소중함을 말해준다. 조경에서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매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조경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가까이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어야 관심을 갖게 되고 관심이 있어야 가치도 알게 된다. 가끔씩 갈 수 있는 공원이나 광장보다 매일 보는 집 앞의 작은 조경, 보도변의 가로조경이 일반 사람들에게 더 가깝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을 보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녹지가 적다. 그러니 조경의 중요성을 모를 수밖에...


풀 한 포기 없는 골목길과 싸리나무가 있는 골목길

서울 북촌의 한옥마을에서 풀 한포기도 없는 골목길과 어느 집 담벼락에 심겨진 싸리나무가 있는 골목길을 본 적이 있다. 싸리나무가 심겨진 공간은 한뼘 정도의 폭과 3m 정도의 길이에 불과한 공간이었지만 주인의 배려를 느낄 수 있었고 이 작은 녹지는 골목길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요소가 되었다. 단독주택의 정원을 꾸밀 때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부에서는 집안이 보이지 않도록 꽤 높은 담장을 치고 주인이 거실에 앉아서 바라보는 풍경에 주안점을 둔다. 그 집 앞을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게 할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정원을 꾸미는 사례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것은 아파트 조경에서도 마찬가지다. 아파트단지의 주출입구에서 아파트 주동을 연결하는 동선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에 설계요소가 집중되어 있다. 단지 내 주민들을 위한 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 단지를 어떻게 보이게 할 것인지를 고려한 경계부 조경에 대한 관심은 적다. 도로나 보도에서 바라본 조경에는 인색하다고 할 정도이다. 심지어 도로나 보도의 레벨과 단지의 레벨이 단차가 생기는 경우에는 보강토 옹벽이나 콘크리트 옹벽으로 처리해서 보행자에게 삭막한 가로경관을 만들기도 한다. 주변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단절되지 않도록 하고, 더불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의자 하나 내어주는 그늘을 제공해 주는 인심정도는 베풀어주어도 되지 않을까?

한편 일본의 단독주택은 담장을 낮게 해서 정원이 들여다보이게 하거나 담장을 높게 치는 경우에는 담장을 대지경계선에서 50cm내지 1m정도를 후퇴한 후 대지경계선에서 담장 사이의 공간을 꽃, 나무, 석물 등으로 조성한 사례를 자주 본다. 가로에 면한 집들의 경계부가 녹지로 잘 조성된 모습에서 주인의 배려가 느껴진다. 물론 이 길을 가장 많이 왕래하는 사람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겠지만.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면서 그 혜택이 자신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런 작은 녹지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를 증명하는 몇 가지 예가 있다. 에스더 M.스텐버그의 저서 “공간이 마음을 살린다.”에서는 공간이 치유의 효과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는“공간과 건축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건축을 탐색하는 학문을 신경건축학”이라 정의하고, 그들의 연구결과 중 하나로서 “작은 숲이 내다보이는 침대에 입원해 있던 환자들이 벽돌담이 내다보이는 자리에 입원해 있던 환자들보다 24시간가량 먼저 퇴원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발표했다. 자연, 정원, 녹지가 우리 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실증사례가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2008년부터 학교를 문화예술공간으로 바꾸는 ‘문화로 행복한 학교 만들기 사업’(2015년 종료된 사업)을 시행해왔는데 학교의 요청에 따라 이천시에 위치한 한국도예고등학교의 옥상을 학생들의 참여에 의해 꽃과 나무가 있는 조경공간으로 조성한 일이 있다. 버려진 옥상이 녹지공간으로 바뀐 후 학교에서는 큰 변화가 생겼다. 바로 학교폭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꽃을 보고 욕을 하거나 화를 내는 사람은 없지 않나요?”라고 말하는 학생부 교사에 따르면 옥상에 있는 식물을 보면서 언어가 순화되고 화가 누그러지게 된다는 것이다. 화가 나면 자연스레 옥상에 가게 되고 그러는 사이 문제는 어느덧 해결된다고 한다.


한국도예고등학교의 옥상조경 조성 전, 후

일본 국토교통성은 경관형성의 경제적 가치분석에 관한 연구에서 녹지가 있는 골목과 녹지가 없는 골목의 집값에 대한 지불의사를 연구한 바 있다. 조사결과, 녹지가 없는 가로에 면한 집보다 녹지가 있는 가로에 면한 집에 대해 집값의 10% 이상 지불의사가 있다고 답하였다(녹지가 없는 가로의 집값은 3,000만엔이었고, 녹지가 있는 가로의 집값은 3,350만엔이었다). 인접한 녹지가 경제적으로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해석된다.

이러한 작은 녹지가 경관적, 사회적, 경제적 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경에서의 녹지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건물 경계부의 한뼘 녹지가 미래조경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작은 것, 버려진 것에서 잊혀진 것부터 다시 돌아보아야할 것이다. 미래조경을 거창한 것에서 찾으려 하지 말고, 작지만 가까이 있는 것의 참다운 가치를 구현시킬 방안부터 우선 추진하여야겠다.


라펜트는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 미래포럼과 함께 조경의 미래방향을 모색하는 '조경인이 그리는 미래'를 매달 1회씩 게재하고 있습니다.  

 

미래는 현재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향방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조경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논의의 장으로서 조경인 모두의 관심과 함께 연재가 이어가기를 기대해봅니다.

 

*3월 필자는 김한배 교수(서울시립대)입니다.


 

_ 김경인 대표  ·  브이아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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