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 동대문운동장. 안녕, DDP

동대문운동장의 역사, 남기고 기억해야 할 때
라펜트l이주경 녹색기자l기사입력2014-06-10

지난 3월 21일, 5년의 공사 끝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공개됐다. 서울시 중구 을지로7가에 위치한 DDP에 대해서는 설계안 당선부터 개관까지 다양한 담론이 오고갔다. 잡음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한 논란과는 상관없이 지금은 많은 사람이 DDP로 걸음을 향한다. 연간 550만 명의 방문자수를 목표로 삼았던 DDP가 개관 한달도 안된 4월 15일, 방문자수 100만 명을 넘겼다. 화려한 건축물에 가려져 예전 이곳이 동대문운동장이었다는 사실은 점점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고 있다.




그러한 동대문운동장의 역사를 다시 한 번 곱씹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서울 역사 박물관에서는 동대문운동장 80년의 역사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잘 가, 동대문운동장> 전시가 지난 5월 30일부터 개최되고 있는 것.


한 때 서울의 익숙한 도시풍경이었으나 지금은 사라져버린 동대문운동장. 이 곳은 오랫동안 한국 유일의 종합경기장으로 한국 스포츠의 성지와도 같았다. 그 뿐만 아니라 때로는 정치 집회의 장소, 혹은 민족 지도자의 영결식장으로 쓰이며 한국 근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해왔던 그 장소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2007년 겨울, 수많은 논란 끝에 동대문운동장은 철거되었다. 그 과정은 몹시 가벼운듯 조용히 지나갔다.


주최측은 동대문운동장의 역사를 기리는 시간을 갖고자 이 전시를 마련하게 되었다고 한다.



동대문운동장 실제간판


동대문운동장의 역사를 시대 순으로 되짚어 볼 수 있도록 6개의 구성으로 짜여져 있었다. 전시장 입구에서는 실제 동대문 운동장에 설치됐던 간판을 전시해 놓았다.


동대문운동장은 1925년 10월 15일 일본의 동궁 히로히토의 결혼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경성운동장’ 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경성운동장이 설립되기 이전에도 이 일대는 조선시대 군사시설인 ‘하도감’과 ‘훈련원’이 있던 자리로 역사성을 지닌 장소이다. 경성 운동장에서는 일본인들이 조직한 경기를 시작으로, 후에는 조선인 스스로 조직한 전조선 경기대회도 선보였다.

 
해방 이후 경성운동장은 서울 운동장이 되었고, 점차 규모를 갖춰가며 1970년대에는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고교야구, 박대통령컵 쟁탈 축구대회의 신화가 이곳 서울 운동장에서 펼쳐지며 전성기를 맞이했다.



관람석 의자(좌), 청룡기 고교야구대회 우승기(우)


그러나 88아시안 게임 및 서울올림픽을 위해 잠실 주경기장이 개장하면서 동대문운동장에서는 운동경기 대신 시민행사, 집회가 열렸다. 2003년 축구장이 폐쇄됨으로써 그 자리에 풍물시장이 대신 들어섰다. 그렇게 동대문운동장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 후 동대문운동장의 활용 방안에 대해 많은 의견이 있었고, 2007년 자하 하디드의 설계안 당선까지 빠른 변화가 진행됐다. 그러한 과정에서 노점상인, 스포츠 상점 상인, 프로야구선수협회 등은 역사, 문화적 가치가 높은 동대문운동장의 철거 철회를 요구했다. 하지만 결국 2008년 5월 동대문운동장은 82년의 역사를 뒤로한 채 철거되었다.


이제 현재의 DDP의 모습을 살펴보자. 분명히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지만, DDP의 디자인에서부터 막대한 예산, 활용방안 등에 대한 논란들이 있었다. 그 중 제일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역사성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동대문운동장 발굴 공사 중이던 2008년 9월, 이간 수문 홍예 부분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공사는 중단되었다. 123미터에 이르는 서울 성곽과 이간 수문, 치성을 비롯하여 하도감 터와 유물 2500여점도 함께 발굴됐다. 이간수문은 남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을 성 밖으로 보내기 위한 수문이고 치성은 성벽 일부를 바깥으로 돌출시킨 방어, 공격시설이다. 이러한 유물들은 현재 일부 복원되어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라는 이름으로 DDP의 5개 공간 중 하나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동대문운동장에 관한 역사와 유물은 동대문운동장 기념관에서 만날 수 있다.


아쉬운 부분도 많다. 자하 하디드의 설계안 ‘환유의 풍경’은 동대문의 주변 맥락과 장소성, 역사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발굴된 문화재들에 대한 조치가 적절 했는지 또한 의문이다. 현재 성곽과 유물들이 DDP내에 일부 남아있긴 하지만, 과거 서울 성곽 안쪽에 있던 하도감을 성곽 밖으로 이전하고 그 터에 있던 유적들도 여기저기로 옮긴 뒤 터를 덮어버렸다. 마치 도시를 거꾸로 만들어버린 꼴이다. 김경민 서울대 교수도 "서울을 방위하고 치안을 담당하며 왕위를 호위하는 역할을 했던 하도감은 성곽 내부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의 위치 또한 거대한 DDP건물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현재 DDP에서는 다양한 전시와 행사가 열리고 있고, 활발한 홍보가 이루어지고 있다. 패션과 디자인에 관한 전시도 좋지만, 사람들이 동대문운동장을 비롯한 DDP 이전의 역사를 알고 즐길 수 있도록 노력과 홍보도 함께 경주해야 한다.  


글·사진 _ 이주경 녹색기자  ·  한국토지주택공사 건설사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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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jk90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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