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河回의 구상나무와 陶山의 금송 기념식재를 생각하며

노재현 논설위원(우석대 조경학과 교수)
라펜트l노재현 교수l기사입력2018-04-24
河回의 구상나무와 陶山의 금송 기념식재를 생각하며



_노재현(우석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사)한국전통조경학회 회장)



지난주 식목일은 전국적으로 흐리고 비가 내렸다. 나무를 심은 뒤 비가 오는 것은 나무의 활착을 위해 매우 좋은 조건이다. 그러나 식목행사를 진행하는 데는 그리 좋은 조건이 아니다. 왜냐하면 식목행사를 주관하는 입장에서는 많은 이의 주목과 스포트라이트를 받기에는 비와 바람은 부정적 요건인 것이다. 특히 그것이 특정한 목적으로 하는 행사성 기념식수(記念植樹, commemoration planting)라면 더욱 그렇다. 

기념식수가 한 때는 국민에게 애림사상(愛林思想)을 불어 넣기 위해 실시하는 전시조림 또는 조림정책의 한 수단으로도 활용되기도 하였으나 일반적인 개념으로는 기념비적 사건이나 특정한 무엇을 기념하기 위해 주로 장래에 랜드마크로 클 수 있는 교목성 수종을 심는 일을 말한다.

2015년 모 신문에서는 “안동 하회마을 영국여왕 기념식수는 가짜”라는 헤드라인으로 1999년 4월 안동 하회마을을 찾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의 방문을 기념해 심은 충효당 앞뜰에 구상나무(Abies koreana)가 실제로는 이듬해 9월 고사하였고, 현재의 그것으로 바꿔치기 됐다는 내용이었다. 또 덧붙여 문제가 되는 것은 이 같은 사실을 일반 관람객들이 알기 어려운 상황으로 현재도 표지석에는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이 심은 나무’라는 내용만 표기되어 있어 영국여왕에 대한 외교적 결례는 물론이고 명백한 미필적 고의(未必的 故意)에 의해 탐방객들도 속이는 상황이란 지적이었다. 선비문화의 요람이라는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 중심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최근 또 다른 2건이 기념식수가 논란과 화제의 중심이 된 바 있다. 현장 중 하나는 현충사이고 또 하나는 안동 도산서원으로 이 두 곳의 식재수종은 금송(Sciadopitys verticillata)이다. 금송은 낙우송과의 상록침엽교목으로 일본 원산의 수목이다. 일본에서는 고우야마끼(こうやまき)라 부르며 크게는 직경 1m, 수고 20m 까지 이르는 일본을 대표하는 나무로 혹자는 ‘일본 사무라이의 충정’을 상징하는 나무로 간주하기도 한다. 

금송이 식수된 두 공간은 우리에겐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장소이다. 현충사는 임진왜란의 영웅인 충무공 이순신장군을 헌양하는 사당이고, 또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선생이 도산서당을 짖고 강학을 하던 곳을 퇴계 사후 서원으로 확장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학의 산실이다.

두 나무 모두 왜색(倭色)이 짙다는 이유로 2018년 올해, 현충사의 금송은 사당 바깥으로, 도산서원의 금송은 주차장 인근으로 옮겨심기로 했다고 한다. 이 두 나무는 모두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기념식수된 것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안동 도산서원의 금송은 식재 후 하회마을의 구상나무와 같이 고사(枯死)하고 재차 심은 것이라고 한다. 보도에 의하면 문화재청은 작년 11월 문화재위원회 회의를 통해 현충사 경내의 금송을 이식하는 조경정비계획을 가결하였다. 한편 도산서원의 금송 또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안동시는 2003년, 금송이 지나치게 성장해 도산서원의 경관을 차폐시키는 등의 문제가 드러나자 경내 밖으로 이전하겠다며 문화재청에 현상변경허가를 신청했다. 그러나 당시 문화재위원회와 이후 도산서원 측에서는 ‘대통령 기념식수’ 또한 길게 보면 역사적 중대사라는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고 한다. 그런데 도산서원에 심긴 금송의 더 큰 문제는 하회마을 구상나무와 같은 ‘거짓말’에 있다. 그동안 도산서원 금송은 1970년 12월 기념식수한 것으로 전해진 바와 달리 조사결과, 재식한 금송은 고사(枯死)하고 이에 처벌을 우려한 안동시가 1973년 4월 새로운 금송을 재식(再植)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하였다. 도산서원에 심긴 나무가 일본을 상징하는 나무일지라도 대통령이 주체가 되어 식재한 나무이기 때문에 이전할 수 없다는 변명은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옹색한 것이었다. 유교경전 중 하나인 ‘대학(大學)’에서 ‘무자기(毋自欺)’라 하여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다행히 2011년 이후 초석에는 이 사실을 밝히고 있음은 그나마 위안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기념식재 논란과 관련하여 현상과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념식수라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전문적 판단이나 고려 없이 식재수종을 결정한 것은 1970년 당시 대통령은 물론이고 청와대를 비롯하여 안동시 등 관계자들의 무지에서 비롯된 일로서, 조경가의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잘못된 과오인 것이다. 또한 식재설계가로서 보면 하회의 구상나무도 도산의 금송 모두 적지(適地)나 이식력 등 생태적 측면을 간과한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념식수는 기념과 추념을 위한 하나의 의식이기 때문에 이 또한 특정 공간에 더 해진 역사의 한 층이기 때문에 특정시기 특정인의 식수 의지와 사상 그 자체가 실체 못지않게 중요할 수 있다. 그런데 하회마을과 도산서원에서와 같이 실체는 없이 그 형식성만 남아있고 이 또한 위선이 개재되어 있다면 이는 또 다른 차원으로 바로잡아야 할 청산의 대상인 것이다. 뜻이 옳다곤 하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면 마땅히 풀고 다시 단추를 끼워야 할 것이다. 

비단 박정희 시대의 문제가 아니라 이후 물 건너온 대통령이나 전임 대통령 등 고관대작들이 기념으로 심은 나무 중에도 많은 하자(瑕疵)가 알려져 있다. 앞으로도 기념식수는 계속될 것이다. 나무를 심는 일이 단지 하나의 물리적 기념물을 세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위정자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기념식수는 단순히 자신의 행적을 오래 남기기 위한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념식수는 역사를 심는 것이며 해당 공간에 장소성을 더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수목 성장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수목의 형태적·생태적 문제에 정통한 전문가와의 협의나 조언을 통해 기념식재를 기획하고 실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올해는 식목일 이후 비가 제법 와서 심은 나무들이 잘 자랄 것이라는 기대가 자못 크다.
_ 노재현 교수  ·  우석대학교 조경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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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chid@woosuk. 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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