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빽한 콘크리트 정글에 ‘정원’으로 계절을 넣다

‘정원’을 통한 도시재생이 주는 변화
라펜트l기사입력2021-05-12

성남시 태평동 일원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일원은 별명이 있다. 영화 ‘인셉션’ 포스터에 나오는 길하고 비슷하다고 하여 ‘인셉션 길’이라 불리는 이곳은 사진작가들에게도 인기 명소 중 하나이다.

태평동 일원은 1960년대 후반 서울시의 빈민가 정비 및 철거민 이주사업의 일환으로 계획된 위성도시로, 보다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집과 집 사이가 매우 좁은 것이 특징이다. 건물과 건물 사이는 바람만이 겨우 통과 할 수 있다. 가파른 언덕으로 오래 된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찼으며 골목길은 거미줄처럼 이어져 통로로서의 역할만 할 뿐이다. 간혹 길가에 조그만 틈이라도 생기면 그 자리는 자동차가 차지한다. 고개를 들면 정신없이 엉긴 전깃줄이 하늘을 조각내고 있다. 

이러한 동네에서 계절을 느끼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옆 마을에서 찬란한 꽃의 향연을 즐길 때, 이곳은 자연 결핍증으로 계절을 잃었다. 봄소식을 가장 먼저 알리는 식물은 몇몇 가구에서 골목에 애지중지 내놓은 화분으로나마 겨우 알아챌 수 있다.

그렇게 몇 십 년을 숨 막힌 채 살았던 콘크리트 정글에 드디어 숨통이 트이고 계절이 들어왔다. 언덕을 가득 메운 집 중 8개소가 허물어지며 이곳에 ‘정원’이 들어선 것이다.


성남시 태평동 일원

태평2,4동은 2015년 12월 국토교통부 일반지역 재생사업으로 공모 선정된 ‘태평2,4동 도시재생 활성화계획’ 지역으로, 2019년 성남시로부터 입찰공고 됐다. 이번 사업은 빈집을 철거한 자리에 쌈지공원, 텃밭, 화단, 주차장 등을 조성하는 내용으로, 지속가능 주거환경 조성 및 노후주거지의 재생거점을 육성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번 사업으로 철거된 빈집은 총 28개소이며 이중 8곳에 ‘정원’이 조성됐다. 빽빽한 콘크리트 정글 속 갑자기 비어버린 정방형의 공간에 식물이 자라기 시작하자 생명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새와 나비가 날아들고, 고양이도 쉬었다 간다. 무엇보다도 마을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지나가다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김승민 디자인봄 대표가 조성한 정원에는 ▲태평정원 ▲햇살정원 ▲부엉이정원 ▲완두콩정원 ▲달빛정원 ▲무지개정원 ▲하모니정원 ▲금빛정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태평정원


달빛정원


하모니정원


햇살정원


완두콩정원. 2020년 12월 준공 당시

정원에는 야트막한 담장을 두르고, 그 위로 나무로 짠 울타리를 둘러 주변 건물을 부드럽게 차폐하는 동시에 주거의 프라이버시를 지킨다. 정원마다 주변 건물의 색과 맞는 블록을 활용해 담장과 나무울타리 어느 것 하나 튀지 않고 자연스럽게 맞물렸다.

건물을 허문 자리라 대상지 모두가 비슷한 면적, 비슷한 모양이지만 어느 정원은 블록평면에 계단을 두어 모던하게, 어느 정원은 색이 다른 멀칭재로 패턴을 만들기도 했으며, 어느 정원은 마운딩으로 지형에 변화를 줘 작은 공간에서도 역동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

정원 안에서 즐기는 사람도 물론이거니와 건물에서 내려다보는 이들을 위해 바닥 포장도 단조롭지 않다. 비정형적인 다각형의 블록이 맞물려있기도 하고 원형의 데크가 깔리기도 해 사방을 둘러싼 건물과 울타리의 직선 요소를 중화한다. 식재지와의 경계 또한 직선으로 잘려있지 않고 자연과 도시가 서로 스며드는 듯 하다.

정원 곳곳에는 귀여운 점경물들이 자리하고 있어 지루할 틈이 없고, 정원 현판이나 안내판은 지역 미술가와의 협업으로 만들어져 디자인 하나하나에도 세심한 손길이 닿았다.

무엇보다도 식재는 사계절을 고려해 교목, 관목, 초본을 조화롭게 설계했으며 겨울철에도 가지와 곳곳에 푸르게 피어있을 식물, 단조롭지 않은 포장, 색이 다른 멀칭재와 패턴으로 삭막하지 않다. 드디어 ‘계절’을 느낄 수 있게 된 것.

지난해 12월 말 완공된 이곳은 겨울이 가고 봄이 오자 주민들의 사랑방이 됐다. “너무 예쁘다. 꽃이 언제 피려나싶어 매일 찾게 된다”, “날이 좋을 때 밖에 나와서 앉아있을 수 있다는 게 좋다”, “허리가 아파 멀리 나가지 못하는데 집 앞에 멋진 정원이 생기니 행복하다”, “동네 분위기가 화사해졌다. 활기가 느껴진다”는 호평이 이어진다.

가지에 싹이 나거나 꽃이라도 피는 날이면 김승민 작가의 핸드폰으로 동네 어르신들이 찍은 사진과 투박한 메시지가 날아온다. 공사기간 내내, 완공 이후에도 정원을 찾아 주민들과 살 부비며 소통한 결과다.

김승민 작가는 “주민들로 하여금 정원을 아끼고 사랑하도록 고민하는 것이 조경가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김승민 작가는 같이 정원에 앉아 꽃과 나무에 대해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고 그들의 관심을 촉구한다. 그렇게 되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잡초를 뽑고, 쓰레기를 버리지 않게 되며 함께 정원을 가꾸게 된다.


< 정원 조성과정 >




눈 내린 날의 완두콩정원


지역 예술가와 협업한 안내판


정원 점경물


정원을 즐기는 마을주민들의 모습


마을주민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김승민 작가(왼쪽)
글·사진 _ 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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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8709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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