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론] 젠더 갈등의 중심에서 돌아보는 조경과 여성

이진욱 논설위원(한경대학교)
라펜트l기사입력2021-05-26
젠더 갈등의 중심에서 돌아보는 조경과 여성




_이진욱 한경대학교 식물자원조경학부 조경학전공 교수



조경학과에 입학하는 여학생의 수가 꾸준히 늘었고, 이제는 여자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시대가 되었다. 주지하다시피 2010년대 중반 이후 한국사회의 젠더 논의는 급격하게 진전되었다. 2015년 메갈리아의 미러링,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2018 ‘미투 운동’ 등을 거치면서 여성들이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으며, 페미니즘과 젠더 이슈가 더는 일부 단체에서 논의하는 주제가 아니게 됐다. ‘여성’과 ‘젠더’와 같은 용어들은 이제 대중의 일상어로 자리 잡았으며, ‘벌새’,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등 여성의 시점에서 세상과 일터를 바라보는 영화가 대중에게 사랑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한국 조경 담론에서의 페미니즘

페미니즘과 젠더 이슈들이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왔지만 조경계에서는 그에 대한 담론의 형성과 실천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기억나는 가장 최근의 이벤트는 2019년 11월에 있었던 강연이었다. ‘랜드걸스’라는 세 명의 여성 조경가로 결성된 이 모임은 여성 조경학도 및 사회 초년 여성 조경인들을 위해 선배 여성 조경가를 초청하여 여성 조경가로서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행사는 사전신청 인원 100명이 5분 만에 마감될 정도로 조경인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조경 언론을 통해 그동안 다뤘던 내용을 보면, 1989년 환경과조경에서 “여성 조경가, 그 현황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7, 80년대 대학의 조경학과 여학생의 현황에 대해 조사하고 실무에 활동하고 있는 안영애, 안정애, 박재숙, 오순환, 유선희를 인터뷰했다. 그 이듬해인 1990년에는 ‘여성 조경가 문현주’를 조명하는 기사를 다뤘다. 이후 10년 뒤, 2000년에는 ‘조경비평 LOCUS’에서 김아연은 “여성, 페미니즘, 그리고 조경”이란 글을 통해 조경사에 드러나지 않은 여성의 역할을 지적하고 조경사 기술 방법에 대한 대안이 필요함을 주장하였으며 공간과 여성의 관계에 있어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이후 특별한 논의가 발견되지 않다가 사회에 젠더 이슈가 고개를 들기 시작한 2010년경부터 조경계에서도 논의가 다시 시작되었다. 2010년에는 한국조경사회 여성조경기술자 모임에서 서영애, 박유정, 최현실이 여성 조경가로서의 애로사항을 토로하고 제도의 개선과 대책을 논의했다. 2013년에는 환경과조경에서 “위미노믹스 시대, 조경계 여성 리더들”이란 제목으로 김선미, 박기숙, 박승자, 박유정, 오순환이 남성 중심의 조직문화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자기관리의 노하우 등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2017년 열린 서울정원박람회 ‘나는 조경가다’ 행사에서는 여성 조경가 5인을 초대해 ‘여성 조경가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라는 주제로 정원 디자인 행사를 진행했다. 2018년에는 환경과조경 김정은이 “그녀들”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기자가 한 달 동안 만난 여자들 이야기를 썼다. 같은 해, 백주영은 한국조경신문의 칼럼에서 “여자 조경가”라는 글을 통해 여성을 동료로 바라보는 사회를 희망하는 글을 썼다. 2019년에는 랜드걸스의 강연 후 박명권이 환경과조경 칼럼에서 “82년생 조경가 김지영”이란 제목으로 경력단절 여성들의 업무 복귀를 기원하였다.

논의된 이상의 움직임은 조경계에서도 젠더 이슈에 대해 오래전부터 관심을 두고 있었다는 것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한국에 조경이 도입된 지 50여 년이 되는 시점에서 보면, 여성과 페미니즘을 내세운 이상의 담론들이 과연 충분했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왜 1989년과 2019년의 여성 조경가들이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조경계의 여성 비율이 높아졌지만, 왜 2018년의 백주영은 여성의 인권 향상을 바라며, 2019년의 박명권은 경단녀의 복귀를 기원하는가?


조경과 여성, 그리고

젠더 이슈에 대한 조경계의 오랜 관심에도 불구하고 여성 조경가로서의 생존전략이 그동안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은 여전히 조경계, 그리고 사회 전반에 걸쳐 고착화된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이고 실천의 단계로 건너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조경의 다양한 영역에서의 성비를 통계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앞선 담론의 목록을 보면 조경의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 조경가 개인의 서사를 모으고 조경계에서 여성의 비율을 수집하였던 의미 있는 작업이 존재한다. 하지만 개인의 서사 조각과 성비에 관한 통계 자료가 너무나 부족하다. 글을 위해 자료를 수집하면서 찾을 수 있었던 여성과 관련한 통계 자료는 1989년 환경과조경 기사의 7, 80년대 여성 조경가 현황과 2010년 서영애가 제시한 일부 조경설계사무소의 여성 조경가 현황, 대학알리미와 교육통계서비스에서 찾은 최근의 대학 입학자 수와 졸업자 수뿐이었다. 여성 조경가의 분야별 현황은 물론이며 여성 조경인 현황에 대한 변화 정도를 알기엔 시간의 틈새가 너무 컸다. 분야별 여성 조경가 현황과 여성의 조경기술사 비율, 여성이 대표로 있는 기업의 수, 조경인상 여성 수상자 현황, 대학의 여성 전임 교원의 수, 기업의 여성 간부 숫자 등 조경의 다양한 영역에서의 성비 현황에 대한 자료의 수집이 필요하다. 이러한 자료는 여성의 존재를 더욱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을 것이며 조경계 각 분야의 특성을 고려한 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시각에서 논의가 더 이뤄져야 한다. ‘여성과 조경사’, ‘여성과 공간’의 관계에 대한 논의처럼 ‘조경’과 ‘여성’을 병치하고, 그 사이를 다각도로 접합하면서 넓은 지평으로 이슈를 펼쳐야 한다. 여성 조경가로서의 삶을 토로하는 것을 넘어, 조경의 다양한 영역에서 여성의 시각을 다각도로 논의하고 첨예한 담론을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여성’의 이슈를 남녀 전체로 확대해야 한다. 조경계에 여전히 존재하는 접대문화, 서열주의, 집단주의, 잘못된 수주 방식 등 만연했던 관습과 공정과 관련한 문제는 ‘여성’이 주제어로 작동하여 논의할 수 있는 가지들이다. 또한, 경력이 단절되었지만, 조경 현장으로 돌아오고 싶은 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빠르게 변하는 기술(Technique, Tool)과 업무 환경 등을 단절된 시간에 어떻게 이어나가게 할 수 있을지? 와 같은 질문들은 앞선 문제와 함께 남녀를 초월한다. 그동안 나누었던 논의를 보편적으로 확대해 대안적인 문화와 시스템을 남녀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마치며

얼마 전 지인과 차를 타고 한 도시를 지나다 ‘여성친화도시’라고 쓰여있는 문구를 보게 되었다. 남성인 지인은 화를 내며 남자는 저 도시에 살지 말라는 거냐며 나에게 따져 물었고, 여성이 왜 사회적 약자인지 모르겠다며 ‘여성’이 붙은 수식어를 불편해했다. 우리는 ‘여성친화도시’가 여성만을 위한 도시가 아니며, 도시 생활의 어려움과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하는 상징적인 의미임을 알고 있다. 어찌 보면 ‘여성’이라는 단어는 잘못된 문화와 시스템을 탈피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투박한 언어일 것이다. 그 투박함이 때론 반목을 불러일으키지만 투박함이 주는 거침과 직설은 이야기들을 끄집어내는 힘이 된다. 그 힘을 통해 우리도 그동안 떠오르지 않던 조경계의 해묵은 이야기들을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
_ 이진욱 교수  ·  한경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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