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공간소비 시대

조용준 논설위원(㈜CA조경기술사사무소)
라펜트l조용준 소장l기사입력2022-03-22
공간소비 시대




_조용준 ㈜CA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



일상과 비일상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공간을 소비하고 있다. 점심식사 후 동료들과 새로운 카페를 찾아 나선다. 단골집의 익숙함도 좋지만, 어제와 오늘이 다른 공간에서 새로운 자극으로 채워진 짧은 휴식을 즐기길 원한다. 친구, 연인, 가족과의 약속을 위해, 앱(app)과 블로그에서 유명 맛집을 찾는 건 일상이 되었다. 추천 장소들의 후기를 보며 음식의 맛뿐만 아니라 장소들의 분위기를 체크한다. 그리고 주말에 다녀온 이색적인 공간에서 찍은 수십 장의 사진들 중에 맘에 드는 사진을 골라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다른 사람들의 피드(feed)를 보며, 나의 취향에 맞는 공간들을 담아두기도 한다. 떠올려보면, 천편일률적으로 불국사를 배경으로 찍었던 경주 수학여행의 사진처럼 공간은 우리 삶의 배경이었다. 선택지가 별로 없던 시기의 장소들은 보편적인 기준들로 비슷한 풍경의 배경으로 삶의 일상과 비일상을 채워나갔다. 하지만 현대도시의 공간은 다양한 욕망을 충족시키며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매개체다. 그래서 우리는 색다른 공간들을 찾아 나서며, 새로운 장소의 경험을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휴대폰의 발명과 SNS의 출현이 이러한 현상에 도화선이 되었다. 과거 보물지도와 같았던 숨겨진 맛집과 소수인원들만이 알고 지내던 아지트 같은 공간들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유되며, 끊임없이 홍보되며 소비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인구 20만의 작은 도시, 강릉의 퍼베이드(pervade)는 빵과 커피를 판매하는 조그마한 정원을 가진 평범한 카페이다. 그런데 다녀간 사람들의 인스타그램의 피드들로 이 카페는 최소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공유되었다. 실제 다녀간 사람은 몇 만 명에 불과하지만, 기술의 발달이 수십 배의 공유가치를 이끌었다. 



이는 마치 서양역사의 엄청난 변화를 이끌었던 구텐베르크의 활자 인쇄술 발명사건과 유사하다. 인쇄술의 발명이후 약 반세기동안의 기간을 인쇄술의 요람기 ‘인큐나블라(Incunabula)’ 시대로 명명하는데, 이 기간 동안 약 1200만권의 서적이 출판되었다. 이전까지 유럽전역에 보관된 서적은 약 5만권에 불과했다. 새로운 기술인 활자 인쇄술의 발명은 유럽사회의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팸플릿에 간략하게 기록된 종교개혁 선언문으로 루터의 종교개혁 운동에 기름을 부었고, 그리스 고전과 인문학적 서적의 출판으로 르네상스 운동에 이바지 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최근 생겨난 디지털 기술들은 부동산의 개념을 변화시키고 있다. 자산으로서 소유의 가치를 넘어, 공간의 경험을 공유하는 소비재로 개념을 확장시켰다. 나아가 디지털 플랫폼은 자기만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아지트 같은 가상공간을 생성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하여, 우리의 삶속의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지금의 이런 변화가 과거 모더니즘, 또는 포스트 모더니즘보다 더 파격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다. 이는 몇 명의 엘리트 그룹 또는 몇 개의 분야가 새로운 변화를 이끌던 방식과 달리, 디지털 기술이 전분야를 걸쳐 모든 세대의 사회구성원들이 참여할 수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간을 다루는 학문들은 이런 변화에 맞춰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전통적 개념의 장소만들기(placemaking)가 현대 도시의 공공장소에서 다수의 욕망을 어떻게 충족시킬 수 있을까? 마케팅과 브랜딩 기획이 공간설계의 새로운 접근이 되지 않을까? 공공공간이 어떤 방식으로 소비될 수 있으며, 공공성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 유행에 민감한 공간 소비문화에 공간이 얼마나 빠르게 대응하며 생존할 수 있을까? 미디어 속 공간과 현실 속 공간 사이에서 설계가의 역할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메타버스 속 공간은  어떤 기준들로 만들어져야 할까? 공유경제에서 공간의 이용방식은 어디까지 진화될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공간들이 특정 개인의 자산이 아닌 모두의 공유재산으로 변환될 수 있을까? 예측하기 어려운 다양한 가능 속에서 명확한 방향은 없다. 명확한 것은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갈 공간들이 과거의 가치와 기준안에만 머물러 있다면, 우리의 학문이 도태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글·사진 _ 조용준 소장  ·  (주)CA조경기술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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