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고대에서 들려온 이야기

김원현 논설위원(노아솔루션연구소 팀장)
라펜트l기사입력2015-12-17

 

새로운 도시건설 패러다임 - 생태 최적화(3)

도시를 최적화하기 위한 요소, 생태


글_김원현 팀장(노아솔루션연구소)


“따르르르르릉”

어김없이 월요일 아침은 밝았다. 도대체 이놈의 알람은 틀린 적이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알람시계가 핸드폰이라는 것이다. (도저히 던져버릴 수가 없다!) 비몽사몽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화장실로 가서 우선 칫솔에 치약을 묻혀 입에 넣는다. 이리저리 쓱싹 거리고 나니 정신이 조금 드는 듯하다. 그리고 가글을 하려고 수도꼭지를 틀었다. 콸콸 쏟아져 나오는 물줄기가 시원하다. ‘흠...이제 좀 깨볼까?’하는 생각을 할 무렵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떻게 이렇게 신기하게 수도꼭지만 움직이면 물이 나올까? 이 세상에 수도꼭지가 얼마나 많은데...이 물은 다 어디서 오는 걸까? 잠이 안 깨니 별 생각을 다한다 싶다가 후다닥 컴퓨터를 켜고 모니터 앞에 앉아 이 글을 적고 있다. 

그렇다! 흔히 알고 있듯 물은 우리네 삶을 지탱하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자연자원가운데 하나다. 오죽하면 문명의 발상지가 모두 강 주변에 몰려있었을까. 근데 사람이란 신기하게도 이 물을 수동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참으로 어렵게 얻어낼 수 있는 이 물이란 자연요소를 우리는 어느 샌가 실컷 쓰다 못해 남아돌도록 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일까? 사실 이런 수동적 형태의 물 사용에서 벗어나 도시라는 개념 하에서의 물 운영을 살펴보면 또 다른 내용이 숨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도시 내 물 관리에 있어 가장 극적인 사례로 들 수 있는 곳은 대략 기원전 4세기경에 건설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요르단의 고대도시 페트라이다. 이곳은 유목민으로 추정되는 나바테아인에 의해 건설된 곳으로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선정되었을 만큼 그 고고학적 가치와 신비스러움을 지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페트라의 수로 ⓒ독일 위키페디아

페트라는 그리스어로 ‘바위’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곳의 특징은 암반, 즉 자연 상태의 돌로 된 협곡을 파서 도시를 건설했다는 것에 있다. 별도의 채석도구가 없던 나바테아인들은 바위틈새에 나무를 심고 물을 주어 자라게 한 후에 나무가 자라게 되면 압력증가로 인해 채석을 하는 방식을 택했다. 단시일 내에 완성할 수 없는 공법임에도 불구하고 도시내부에는 600개 이상을 차지하는 묘비를 비롯해 예배당, 제단, 원형극장, 상수도 시설에 목욕탕까지 갖춰져 있다. 이 사막한 가운데에 암석덩어리를 파서 만든 페트라라는 도시는 과연 물과 관련해서 어떤 전략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

우선 그들은 최대한 갖춰진 자연환경을 이용했다. 사실 도시라고 칭하기는 하지만 완전한 형태의 도시가 아닌 부락형태의 마을이 집단을 이루는 형태를 띠고 있는데, 각 부락마다 빗물을 모아서 활용할 수 있도록 저수조를 건설하였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저수조까지 흘러가게끔 하나의 네트워크, 즉 수로를 건설했다는 점이다. 진흙으로 만들어서 단단히 굳어진 이 수로는 물을 운반하는데 최적의 기술이었다. 건조하기 짝이 없는 요르단의 기후에서 최소한의 물을 얻기 위한 수로의 건설은 어찌 보면 당연하면서도 놀라운 것이었다. 저수조와 수로의 건설은 나무를 이용한 바위깨기 공법과 더불어 페트라 도시를 지탱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었던 주요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얼마 전 고고학에 관심이 많으시던 한 친척 분에게서 흥미로운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바로 '수메르, 혹은 신들의 고향' 이란 책에 대한 이야기인데 우리 문명발생 이전에 이미 꽤나 발전적인 형태의 도시가 형성되었었다는 것이다. 제카리아 시친이라는 고고학자가 쓴 이 책은 수메르 유적에서 발견된 점토판을 근거로 수메르인의 고도화된 문명을 밝히고 있다. 특히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신의 정체는 물론, 그 계보와 각국 신화들로의 번안 과정, 그리고 신과 인간의 관계를 둘러싼 모든 의문에 대한 구체적이면서도 사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오랫동안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책이라고 한다. 다소 황당무계하기까지 한 이 책의 진위 여부는 최적화도시를 설명하는데 있어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다만 눈여겨 볼 부분은, 점토판에서 제시하고 있는 도시건설과 그에 따른 도시민의 삶이다. 책에서는 학교에서 촌지를 주고받았다는 내용까지 발견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도시를 구성하기 위해 가장 필수적으로 요구되었던 자연요소는 무엇이었을까?

수메르인들에 의해 신들의 도시이자 인류 최초의 도시라고 여겨지고 있는 곳은 기원전 5400년경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는 ‘에리두(Eridu)’라는 곳이다. 엔릴의 니푸르와 더불어 종교상의 성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 곳으로 소개되고 있는 이곳은 수메르 왕명표(王名表)에 의하면 왕권은 맨 처음에 하늘에서 에리두에 내려왔다고 되어 있다. 발굴 조사 결과 남부 메소포타미아에서 수메르 최고의 도시임이 확인되었으며, 최초 정주자의 에리두기에서 다음의 우바이드기를 거쳐 신전을 중심으로 촌락공동체에서 도시로 발전한 흔적이 밝혀졌다고 한다. 도시의 신은 물의 신 엔키(Enki 또는 Ea)이었다 (네이버 백과사전).

특히 기록에 의하면 에리두는 습지의 물 위에 토대를 만들고 그 위에 도시를 지었다고 기술되어 있는데, 도시건설을 위해 습지의 물을 빼고 관개시설을 구축하였다고 한다. 이 관개시설은 사실 내리는 빗물을 저수조로 옮기기 위한 단순한 형태의 페트라에 보여지던 것이 아닌, 현대 하수체계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로마시대의 수로형태와 상당부분 닮아있었다는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물을 우리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이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고, 또 고대 이전의 내용적으로도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나저나 덕분에 오늘 출근은 늦다 못해 반차를 내야할 것 같다. 매번 이런 식이니 혼이 나도 싸다.
글_김원현 팀장 · 노아솔루션(주)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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