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정원에 걸린 우리 시대 조경인의 꿈

성종상 논설위원(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라펜트l기사입력2016-05-10

 

정원에 걸린 우리 시대 조경인의 꿈


_성종상 교수(서울대 환경대학원)


수 년 전 필자는 잠시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에서 산 적이 있었다. 딸이 입학한 학교를 따라 강북에 가서 살게 된 김에 큰 맘 먹고 정원이 딸린 주택을 찾아 전세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 동안 살던 강남의 아파트를 떠나 이삿짐을 옮기면서 우리 가족은 적잖이 흥분되고 들떴던 걸로 기억된다. 정원은커녕 마당조차 없는 집에서 내처 살아온 터라 널찍한 잔디밭이 있고 크고 작은 꽃과 나무로 둘러싸인 그 집은 모두에게 새로운 경험을 기대케 하는 신세계처럼 보이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 집에서 산 2년간은 지금도 우리 가족에게 가장 즐거운 추억이 많았던 시기로 통하고 있으니 그 기대가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었나 보다. 불과 십여 미터 정도 폭의 잔디밭과 수십 그루의 나무로 이루어진 정원이었지만 그곳은 우리 가족들의 놀이터이고 휴식처이었으며 만남의 장이었다. 작은 정원이지만 그곳은 우리에게 매일 자연의 소식과 변화를 알려주는 알림터였다. 날마다 해가 떴다가 지는 것, 밤이면 달이 뜨거나 별이 나타나는 것, 혹은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것, 그리고 계절이 바뀌고 사물이 달라져 가는 것들을 가감 없이 그대로 보여주었다. 아니 보여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몸을 쓰게 했다. 비가 오면 비설거지를 해야 하고, 가을엔 떨어진 낙엽도 치워야 하고, 겨울이면 쌓인 눈도 치워야했다. 때로는 땅을 비집고 올라오는 잡초를 뽑느라 구슬땀을 흘리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로 하여금 매일매일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게 했지만 그 정원은 우리 가족에게 귀찮거나 힘들다기 보다는 기쁘고 즐거운 일을 더 많이 선사한 것으로 기억한다. 

이른 봄 소쇄한 봄비 끝에 맡는 진한 흙 내음, 그 흙을 뚫고 올라오는 신비 가득 싱그러운 새싹, 몇 번의 화창한 봄날 끝 어느 아침에 만나는 꽃봉우리들과 그것들이 일순간 터트리는 꽃의 자태, 선선한 여름밤 잔디밭에서 즐기는 야식, 소슬한 밝은 달빛 아래 아내와 나누는 차 한 잔, 찬바람 불기 시작하는 늦가을 감나무 가지 끝에 남아있는 농익은 홍시와 그걸 쪼는 어치, 한 겨울 온통 흰 눈을 뒤집어 쓴 채 밝은 태양빛을 반사하는 나뭇가지 끝 눈꽃... 정원에서 만난 것이 어디 자연뿐이랴? 가족은 물론, 개와 닭, 그리고 옆집 아이들이나 이웃들을 수시로 정원에서 만나고 함께 나누었다. 공부는 아예 제쳐 뒀던 아들 녀석은 정원 잔디밭이나 동네 골목길에서 하루 종일 뛰어 노느라 오히려 바빴다. 키우고 있던 개를 쫓아다니면서 잔디밭을 뒹굴고 나무 덤불 밑에서 막 낳은 따뜻한 달걀을 찾아내기도 했다. 주말이면 동네 아이들을 불러다가 마당에서 삼겹살 파티도 하고 밤엔 텐트를 쳐 놓고 함께 재우기도 했다. 



그 후 연구년을 다녀와야 했던 필자는 귀국 이후 다시 정원 딸린 집에 살기로 마음을 먹고 짬짬이 학교 근처를 돌아다녔다. 수개월 동안 찾아 헤매었지만 결국에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예전엔 단독주택이었던 것들이 모두 다세대, 다가구 주택으로 바뀌어버려서 아예 구경하기조차도 어려운데다가 그나마 남아있던 단독주택이라고 해도 사방이 다가구주택 등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일조도 제대로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 거대도시 서울에서 정원 딸린 주택에서 살고 싶다고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래 그런가 보다. 우리 사회에서 정원은 어느 샌가 별로 필요하지 않은 것 혹은 ‘사치품’ 쯤으로 간주되어 버렸나 보다. 결국 정원 딸린 집 찾기를 포기한 채 여태껏 필자는 작은 베란다 정원으로 그 꿈을 대치하고 있다. 아마도 그 꿈은 은퇴 이후에, 그것도 서울을 벗어나야만 제대로 이룰 수 있게 되지나 않을까 싶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 정원이 붐이다. 이미 3년 전에 순천에서 한국 최초의 국제정원박람회가 성공리에 개최되었고, 매년 서울시를 비롯하여 전국의 지자체마다 크고 작은 정원관련 이벤트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정원교실이 성황리에 운영 중이다. 이런 현상이 반가운 것은 필자만의 소감은 아닐 것이다. 가뜩이나 회색이 지배하고 삭막해져가는 우리 도시에서 정원은 단순히 시각적으로 푸르름을 제공해주는 것 이상의 의미와 효용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정원이란 것이 결코 예쁜 꽃과 아름다운 나비를 즐기는 완상의 장만은 아닌 것이다. 그것은 개인적 영역만이 아니라 공동체 모두에게 걸친 공공영역에까지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 것도 단순히 물적 환경차원만이 아니라 육체와 심리, 그리고 정신과 사회적 차원에까지 광범위하고 다원적, 복합적으로 작동한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요즘 한참 번지기 시작한 정원 붐이 우리 도시를 더욱 살만한 풍경으로 변신시켜줄 뿐만 아니라, 각자의 내면을 채워주면서 공동체간의 관계를 건강하게 촉진시킴으로써 우리 사회의 진정한 건강 회복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 시대 조경인에게 주어진 책무만이 아닌, 유쾌하고 행복한 꿈꾸기가 아니겠는가?


환경대학원 옥상정원에서의 가든파티
글·사진_성종상 교수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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