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한국인의 마음풍경

성종상 논설위원(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라펜트l기사입력2016-12-08

 

한국인의 마음풍경


_성종상 교수(서울대 환경대학원)



경관이라는 단어는 조경이나 건축 등 전문분야들만의 용어가 아니다. 도시경관, 야간경관, 경관 연출 등 어느 사이엔가 널리 쓰이게 되면서 일반인에게도 친숙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2007년에 경관법이 제정되어 전국 각 지자체마다 경관계획이 법정계획으로서 수립되고 있다. 경관이라는 말이 일상화된 만큼 우리 사회가 삶의 환경 주위의 심미적 차원에 관심을 가지게 된 듯하여 반갑기만 하다. 하지만 근래 통용되는 경관이라는 용어는 다분히 시각 중심의 보이는 경관, 곧 시각적 경관을 주로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위에 말한 각 지자체의 경관계획에서 다루는 내용 범주를 봐도 그런 지적이 가능한 것이다. 사실 경관이라는 한자어에도 시각적 의미가 중시되어 있긴 하다. 경(景)은 ‘서울(京) 하늘위에 해(日)가 높이 떠있는’ 형상을 한 글자(황기원 2011)이니 해가 비치는 상황 곧 빛이 있어 시각적 지각이 가능한 상태에서 나온 말인 것이다. 그러므로 경관이란 우리 눈에 보이는 인공의 경관을 의미하는 말인 셈이다.

경관과 유사한 의미로 우리가 자주 쓰는 말로 풍경(風景)이 있다. 원래 바람을 뜻하는 ‘풍(風)’이라는 글자에는 지역마다 달리 지니고 있는 고유한 특징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역마다 바람이 다른 것처럼 각자 다른 특색을 지닌 것을 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다름은 지역마다 각기 자연과 사람이 다르고, 또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다르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말하자면 풍경이라는 말에는 자연과 사람이 빚어 낸 특색, 곧 문화적 의미가 중요하게 깔려 있는 것이다. 풍토(風土), 풍속(風俗), 풍습(風習), 풍미(風味)와 같은 말들도 이와 유사한 용례에 속한다. 풍경을 ‘시지각을 매개로 성립하는 정신현상’(Yoshio Nakamura, 2007)이라고 한 것이나, ‘자연은 사람의 눈을 만나 비로소 풍경이 된다’고 황지우 시인이 정의해 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풍경이라는 말에는 사람이 자연과 만나면서 길러 온 마음이 담겨 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선, 오랜 시간 동안에 사람의 마음과 교감해 온 것이라는 함의가 담겨 있는 것이다. ‘경관 십년, 풍경 백년, 풍토 천년’이란 말에도 풍경이 지닌 의미가 잘 드러나 있다.  뭐든 사람이 만든 것을 가꾸어 십년이 지나면 경관이 되고, 그 경관을 백 년 동안 가꾸어 다듬으면 풍경이 되며, 다시 풍경이 천 년간 숙성되어 풍토가 된다는 것이다.

필자가 경관보다는 풍경이라는 말을 더 선호하는 것도 순전히 이 까닭이다. 풍경은 필자만이 아니라 자연에의 유별난 교감을 중시하면서 독특한 서정을 길러 온 한국인 모두에게 공유된 경관 미학 용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한국의 미에도 이 같은 자연과 오랫동안 교감하면서 길러 온 마음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으로 가꾸고 즐기는 한국인의 미는 일상생활에서부터 풍경, 그리고 문화예술 전반에서도 어렵지 않게 목격된다. 우리가 자주 봐 온 한국의 정원은 그 대표적인 현장이다. 한국의 정원 중에서 특별히 산수간에 조성된 정원은 대체로 인공 구조물을 치소로 한 채 간단한 정자 정도에 의존하는 것이 특징이다. 빼어난 경치 속에서 정자 한두 채만으로 이뤄진 정원은 지금도 전국 각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을 정도이다. 건축물의 정의를 지붕과 벽, 그리고 바닥을 갖춘 건조물로 규정한다면 대체로 벽이 없이 기둥으로만 서 있는 한국의 정자는 건축물로서 요건에 미달된다. 건축 행위를 하면서도 굳이 벽이 없는 구조를 취한 것은 순전히 주변 자연과의 막힘없는 만남을 취한 탓일 것이다. 일체의 장애물 없이 주위 자연과 온 몸으로 만나기를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 정자의 역할이다. 결국 한국의 정원에는 정교하거나 화려한 건축물 보다는 최소한의 건물, 정자만으로 주위에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한껏 즐기려는 한국인의 미의식이 강하게 담겨 있는 것이다. 기술이나 기예를 과시하거나 기대하기 보다는 있는 자연을 마음으로 즐기려고 한 것이다.


영덕 옥계 침수정. 빼어난 주위 경치 속에다 간단한 정자를 추가함으로써 한껏 고양된 풍경을 즐길 수가 있게 된다. Ⓒ성종상. 2008. 4월

조선 선비들의 정원 중에서 ‘의원(意園)’은 마음으로 짓고 즐긴 대표적인 정원이라 할 수가 있다. 의원이란 상상 속에서 짓고 즐긴 정원을 말한다. 조선 전기나 중기에도 더러 사례를 찾을 수 있기는 하지만 주로 18세기 이후에 많이 유행한 의원은 땅이나 비용 등의 현실적 제약을 뛰어 넘는다는 점에서 매우 효율적이면서도 독특한 사고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실체를 넘어선 마음의 미학은 한국정원 요소 중 석가산에도 그대로 담겨 있다. 논산에 있는 명재 윤증의 고택 사랑채에 있는 석가산은 그 대표적 현장이다. 사랑채 마루 아래 단에 조성된 석가산은 예리하고 뾰족한 돌이 사용된 점에서 다른 석가산들과 다소 다르다. 규모로 보자면 결코 크지 않지만 뾰족한 돌들을 세워놓은 모습이 매우 독특한 형상을 이루고 있는 데 그것은 명재가 마음속에 담고 있던 금강산을 표상하고자 한 의도의 산물이다. 젊을 때 다녀온 금강산을 못내 그리워하였지만 끝내 다시 가지 못한 금강산을 자신의 사랑채 바로 아래 단에다 작은 석가산으로 재현해 두고서 마음을 달래고자 한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금강산을 그리워한 명재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석가산은 와유(臥遊)와 상상을 통해 선계(仙界) 금강산을 이르게 해주는 심미적 완상의 매개물인 셈이다.


명재 고택의 석가산과 감상 구도. Ⓒ성종상 2006. 8월. 작도 유가현.

일본 오사카 한복판 숲으로 덮인 나카노지마(中之島) 공원에는 도자기로 유명한 동양도자미술관이 있다. 1982년 오픈한 그곳이 우리에게 각별한 것은 한국 도자기에 관한한 세계최고의 수장처이기 때문이다. 재일교포 사업가이자 외교관이었던 이병창씨의 기증품 301점을 포함하여 고려청자, 조선백자 등 한국의 도자기만 해도 1200여 점이고, 중국 800여 점과 일본 도자기까지 함께 갖추고 있어서 한중일 세 나라의 도자기를 한 곳에서 비교, 감상하기에 제격인 곳이다. 필자는 십 여 년 전에 그 곳에 들러 잠시 세 나라의 도자기를 감상한 적이 있다. 비록 전문가가 아니지만 필자의 눈에도 세 나라 도자기는 사뭇 달랐다. 특별히 달항아리로 대표되는 조선백자에서 필자는 중국이나 일본의 그것과는 다른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중국과 일본 도자기가 대체로 크고 화려하거나 정교함을 자랑하는 데에 반해 조선의 달항아리는 그런 것에는 무관심한 양 자신만의 미를 맑고 투명하게 드러내 주고 있는 듯 했다. 달항아리를 본 영국 작가 알랭 드 보통이 “겸허에 대한 최상의 오마주”라고 극찬했을 만큼 달항아리에는 잔재주나 정교한 기예를 넘어선 소박함과 무심함의 극치가 잘 담겨 있다고 평가된다. 그는 달항아리가 “지혜롭기에 자신을 특별히 생각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고 자신을 낮추지도 않”으면서 세속적 가치나 지위에는 무관심한 채 “그저 자신이 누구인가에 만족”하고 있다고 간파해 내기도 했다.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이론보다는 마음으로의 교감이 중요하게 요구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달항아리 Ⓒ위키백과

경주 남산은 수많은 석물들의 보고이다. 땅 위에 새겨진 부처의 세계라고 칭할 정도로 석탑이나 부처, 여래 등이 새겨진 석물이 산 곳곳에 위치하고 있다. 만든 석물을 가져다 놓은 것도 일부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원래 그 자리에 있던 바위에 부처나 여래의 상을 새긴 것이 대부분이다. 산 곳곳에 있는 바위 중에 적절한 것을 찾아내어 어떤 형상을 새김에 있어 석공들은 특정의 모델을 따르려고 하기 보다는 그 바위에 맞는 상을 찾아내려고 했다. 그러기에 그들은 바위를 억지로 쪼아내어 부처를 새기기 보다는, 바위 속에 이미 담겨있는 부처를 드러내려 한 것이다. 


남산의 석불  Ⓒ위키백과

문예가 꽃 피던 18세기에 조선 산수화의 진경을 연 것으로 평가되는 겸재 정선(1676-1759)은 우리 땅을 직접 발로 답사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그가 그린 진경은 단순히 있는 그대로의 경치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성리학적 이상, 곧 선경(仙境)을 재구성해 낸 ‘마음 속 참된 풍경’이 담겨 있는 것이다. 겸재의 대표작 <인왕제색도>는 그의 그림 중에서 그나마 실제 경치와 가장 흡사한 그림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 그림에 담긴 겸재의 마음이라 할 수가 있다. 평생 시와 그림을 주고받으며 교류했던 절친 사천 이병연(1671-1751)이 겸재 나이 76세 때에 별세하게 되자 그 슬픔을 안개와 물기 그윽한 인왕산 풍경으로 대신한 것이니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그 속에 짙게 담겨 있는 겸재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하는 셈이다. <인왕제색도>와 함께 또 다른 국보인 <세한도> 역시 이와 꼭 같은 맥락으로 이해 가능하다. 동국진체를 연 것으로 평가되는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제주도에 귀양 가 있었던 말년에 그린 <세한도>에는 세상과 단절된 속에서도 끝까지 잃지 않았던 스승과 제자와의 절개와 의리가 잘 표현되어 있다. 이름 그대로 혹한 속에서도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는 소나무와 잣나무에 의탁한 추사의 마음을 알지 않고서는 그림의 참 맛을 맛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인왕제색도  Ⓒ위키백과


세한도  Ⓒ나무위키

마음과의 교감을 중시한 한국인의 풍경은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지점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마음에 없는 소리를 가장 싫어하고 마음에 맞지 않는 말,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멀리하려 해 온 것에도 마음을 중시한 한국인의 성정이 잘 드러나 있다. 풍경만이 아니라 사람들간의 관계에서도 유독 마음을 중시해 온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근래 들어 우리의 풍경이 삭막해지기만 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보다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음을 담은 풍경이 사라지면서 사람간에도 마음이 소홀히 되거나 혹은 그 역이 가속화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주위의 풍경을 되살림으로써 우리들의 마음까지도 윤택하게 할 수가 있을 것이라는 것이 조경가로서 필자의 기대이기도 하다.
글·사진_성종상 교수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다른기사 보기
jssung@snu.ac.kr

기획특집·연재기사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