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앎과 실천, 지식과 교만

성종상 논설위원(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라펜트l기사입력2018-04-10

 

앎과 실천, 지식과 교만



_성종상 교수(서울대 환경대학원)



어떤 시대, 어느 지역이든 지식인은 남다른 식견과 생각을 지닌 존재로 간주된다. 우리 사회에서도 무슨 문제가 터질 때마다 TV나 언론에는 이른바 ‘전문가’라는 지식인들의 한 말씀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런 현상 이면에는 배움이 많으니 생각도 남다른 깊이를 지녔으리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지식인이라고 해서 그가 남보다 옳고 바른 삶을 살 거라고 생각할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하다. 더 많이 아는 이가 더 전문적인 생각이나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는 이견이 없겠으되,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남보다 더 모범적인 생활을 할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근래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으로 보자면 더 배워서 많이 아는 이들이 되러 더 크고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곤 하는 걸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원래 배움이란 것이 인격도야를 중요한 목적으로 한다는 사실을 되새겨보자면 작금의 우리 상황은 뭔가 잘못된 것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좀 딱딱하겠지만 잠시 동양 고전을 인용해 보자. 배움, 곧 학(學)의 참뜻에 대해 공자는 위기지학(爲己之學)과 위인지학(爲人之學)으로 구분하여 설파했다. 전자를 자기를 위한 학문으로서 인격도야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고, 후자는 남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학문이라고 정의하면서 전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오늘날의 공부가 사물을 분석하고 지식을 축적하는 것에 맞추어져 있다면, 공자가 주장한 공부는 자신의 내면에 그 중심을 두고 있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공부가 지식축적을 바탕으로 한 외적성취를 추구한다면, 공자의 공부는 자아 성찰을 통한 내적성취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공부를 많이 한 이들이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들을 끊임없이 노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 시점에서 우리는 지식이나 공부의 참된 의미를 새삼 되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대목에서 필자가 겪은 경험을 함께 나누어 보면 좋겠다.

1. 수년전 인도 학술행사에 초청을 받아 간 자리에서 인도의 한 건축가를 만난 적이 있다. 행사를 주관한 인도 첸나이시의 문화예술재단측이 필자와 함께 초청한 이였다. 알고 보니 그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발크리시나 도쉬(Balkrishna Vithaldas Doshi, 1926- 현재)라고 하는 건축가이자 도시설계가였다. 행사가 진행된 며칠 동안 그와 함께 강연을 하거나 식사를 하면서 가까이에서 지켜볼 기회가 많았다. 그 과정에 필자는 굉장히 강한 인상을 받게 되었다. 그것은 당시 80대 후반이었던 그가 3천여 명이 넘는 청중 앞에서 2시간 가까이 열정적으로 강연을 했다거나, 그런 강행군 후에도 필자를 위시한 각국 인사들과 술을 곁들인 만찬을 함께 하면서 밤늦게까지 대화를 나누곤 했다는 사실만은 아니었다. 필자가 그에게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것은 오히려 그의 언행과 태도였다. 당시 행사에는 그를 보려고 수많은 젊은 학생들이 와 있었는데 그들은 행사 전후나 중간에 틈이 될 때마다 길게 줄을 서서 그에게 다가가 손을 잡거나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어떤 이들은 아예 그 앞에 엎드려 그의 발에 입을 맞추려 하기도 했다. 몸이 부딪치거나 밀쳐지기도 하는 상황도 발생하였지만 꽤 긴 시간 동안 귀찮아하거나 싫은 기색 하나 없이 그는 젊은이들과 깔깔대며 인사를 나누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 후에 다른 모임에서도 그는 누구에게나 다정하게 웃으면서 스스럼없이 어깨를 껴안거나 손을 맞잡으면서 사진을 찍고 사인을 해주곤 했다. 그러고 보니 식사를 하거나 차량으로 이동을 하면서도 그는 누구에게나 격의 없는 얼굴로 대했다는 사실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좀 과장하자면 깃털처럼 가볍고 평화로운 그의 언행을 보면서 필자 머릿속에는 저절로 자신과 주변 지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른바 먹물과 지식이 어깨 위에 올라 앉아 자신을 짓누르며 잔뜩 무겁고 거만하기까지 한 모습을 떠올리게 되면서 혼자 속으로 부끄러움에 젖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함께 하는 내내 필자의 눈과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던 그의 면모는 수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잊혀지지 않고 남아 있다. ‘건축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주관하는 하얏트 재단이 그를 올해 수상자로 선정했다는 사실도 언론 보도를 통해 지난 달 뒤늦게 알게 됐다. 그리고 “도쉬의 건축은 화려하거나 유행에 좌우되지 않고 진지하다”며 “그는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열망과 깊은 책임감으로 공공 기관과 교육·문화 시설, 주택 등 다양한 건축물을 설계하며 높은 퀄리티와 진정성이 담긴 건축을 추구해왔다”는 심사위원의 평가를 접하면서 필자가 지켜본 그의 태도와 결코 무관하지 않은 귀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인도를 비롯한 동양 고유문화에 대한 존중심을 바탕으로 인도인의 삶의 질을 높이면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려고 애써왔다. 그가 노동자나 가난한 이들을 위한 주택을 많이 설계하였고, 그들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마당이나 정원을 애써 만들었다는 사실도 그런 그의 철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그는 인도 건축가로서는 처음으로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Balkrishna Doshi / ⓒdezeen

아란야 저비용 주택단지 Aranya Community Housing.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적 주거단지로서 혁신적 모범 사례로 간주되는 작품으로서 이번 프리츠커상 수상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건축의 사회적 책무를 실현하려는 그는 혁신적인 사고와 접근방식을 통해 가난한 이들의 삶을 지지해 줄 수 있는 저비용 주택을 설계함으로써 전문가로서 올바른 실천을 주도해왔다고 평가된다. Ⓒ https://en.wikipedia.org/wiki/B._V._Doshi


그림  강연 중간에 학생들과 청중에 둘러싸인 도쉬(소파에 앉은 이들 중 맨 뒤쪽). 그는 누구에게나 반갑고 기쁜 얼굴로 사진을 찍거나 사인을 해주며 응대했다. 때로는 진지하게 또 때로는 깔깔대며 대화하던 그의 태도에서 배운 자의 교만은 티끌만큼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 성종상. 2015년 7월

2. 얼마 전에 퇴계 이황선생에 대한 글을 쓰면서 관련 자료를 찾아 공부한 적이 있다. 그다지 깊은 공부는 아니었지만 필자로 하여금 퇴계 선생의 삶에 대해 새삼 되짚어 볼 수 있게 해 준 소중한 기회였다. 퇴계의 족적을 들여다보면서 필자는 애당초 의도였던 정원가로서 면모가 아니라 생애 전과정에 걸쳐 그가 일관되게 견지했던 일상 삶의 태도와 자세에 깊이 매료되었다. 퇴계에게 있어서 삶은 그 자체가 공부였다. 평생을 치열하게 공부에 매진했고, 삶의 매 순간을 그렇게 배운 바대로 살려고 애썼다. 당시 그가 힘써 배운 것이 유학이었으니 그는 유학의 주요 덕목인 충효니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니 하는 유교적 인륜을 힘껏 지키며 살았던 셈이다. 정신이상 병이 있었던 두 번째 부인에게 지극 정성으로 배려하며 살았고 부인이 일찍 죽자 전 부인소생 아들에게 삼년상을 지키게 하면서 자신도 함께 근신하며 살았던 것이나, 왕의 간절한 부름에도 거듭 사양하여 결과적으로 몇 번에 걸친 벼슬 외에는 평생을 향리에 머물며 은거하며 살았던 것도 배운 바를 실천하려한 그의 진면목 중 하나로 봐야할 것이다. 나이 50세부터 70세까지는 아예 고향 안동으로 낙향한 채 제자를 기르면서 공부에 매진했다. 끊임없는 성찰을 통해 자신을 드려다 보면서 자기 연마와 인격 완성을 위해 애썼다. 옳고 그른 것을 엄정히 분별하면서 처신을 바르게 했고, 매 일상 속 사소한 언행 하나에도 결코 흐트러짐이 없었다. 배운 바를 그대로 실천한 참된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를 철저히 견지한 것이다. 그가 조선 역사상 탁월한 학문적 업적과 최고의 제자양성을 남긴 대표적인 인물로 평가 받는 것도 달리 까닭이 있지 않다. 그가 공자나 맹자에 비견되어 ‘이자 李子’라고까지 불리면서 조선 최고의 스승으로 추앙받았고, 이웃 중국과 일본 성리학계에까지 큰 인물로 명성을 얻게 된 것도 그의 학문적 성취 때문만은 아니지 않았을까 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퇴계 이황이 걷던 ‘녀던 길’ 풍경. 청량산이 낙동강과 만나 이룬 절경을 걸으면서 퇴계는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고 토로했다. 

퇴계가 공부하며 제자를 길렀던 계상서당. 후에 제자가 늘면서 규모가 더 큰 도산서당으로 옮기고 나서도 퇴계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좁은 계곡에 방과 마루만 갖춘 작고 초라한 이곳에서 머물며 지내다가 삶을 마쳤다. 온돌조차 여의치 않았고 부들자리에다 돌 평상만 갖출 정도로 초라한 곳에서 홀로 지내며 공부와 교육에 매진했던 그는 “호랑이 꼬리 혹은 봄날의 살얼음 위에 놓인 삶”처럼 흐트러짐 없이 자신에게 엄격하고 절제하면서 배움과 실천이 일치된 삶을 살았다. 

지금 한참 일본 사상계를 주도하는 젊은 철학자 지바 마사야는 “공부란 지식 쌓기가 아니라 기존의 환경에 동조하며 살아온 자신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으로 이동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공부란 “기존의 자신을 파괴”하는 것, 어제와는 다른 나를 발견하고 변신시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자신을 변신시켜 발전시키고자 하는 것이 진정한 공부의 목적이란 것이다. 지식을 습득한다는 것은 ‘무지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것이다. 일찍이 <논어>에도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고 하여 배우고 익힘으로써 얻게 되는 즐거움을 강조한 바 있다. 공부라는 것이 매우 어렵고 힘들기만 하다는 통념을 갖고 있는 터에 배움을 통해 그런 기쁨과 자유를 얻을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은 적잖이 놀랍기만 하다. 힘들고 어려운 공부를 어떻게 하면 즐겁고 기쁜 걸로 만들 수가 있을까? 

더불어 사는 삶을 사랑했던 신영복 선생은 ‘아름답다’를 ‘알만하다’라고 풀이했다. 어떤 사물을 알게 되면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앎’이 아름다움과도 닿아 있는 셈인데 그것은 바로 그 대상에 대한 이해, 곧 지식이 깊어지는 까닭이란 것이다. 그러니 공부를 할수록, 곧 앎이 깊어질수록 대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게 되고 그럼으로써 관계가 확장되어 기쁨을 맛볼 수가 있다는 그 분의 풀이는 적지 않은 울림이 있다. 결국 공부를 한다는 것은 세상을 아름답게 보고 나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가 있다는 것이 아닌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잘 알게 되면 아름답게 보고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거다. 이렇게 보면 공부를 통해 기쁨과 즐거움을 얻고자 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경지이겠지만 한번쯤 도전해 볼만한 영역이지 않을까?

지금 한참 우리 주변에는 그 동안 감춰져 있던 온갖 비리로 시끄럽다. 전직 대통령을 포함한 교수, 검사, 문화예술인 등등 저명인사들의 추한 이면들이 가감 없이 까발려지고 있다. 오늘 아침 창밖에 내리는 봄비에 하나둘 떨어지는 꽃잎을 바라보면서 문득 과연 공부라는 것, 지식이란 것이 뭔가라는 상념에 빠져 해본 생각이다.
글_성종상 교수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다른기사 보기
jssung@snu.ac.kr

기획특집·연재기사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