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코로나19와 자본주의의 몰락

김진수 논설위원((사)인공지반녹화협회 부회장, ㈜랜드아키생태조경 대표이사)
라펜트l기사입력2020-12-13

 

코로나19와 자본주의의 몰락




_김진수((사)인공지반녹화협회 부회장,
㈜랜드아키생태조경 대표이사))



나는 오래 전부터 환경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인간에 대해 절망했다. 박완서는 6.25전쟁 당시 이데올로기에 의해 무너진 인간성을 보고 ‘세상의 똥구멍을 보았다’라고 했다. 나는 환경에 대한 인간의 무심함에 ‘세상의 끝을 보고 있다.’

내가 일년내내 아끼고 절약하고 구분했던 재활용만큼의 양이 어떤 공사현장에 가면 단 하루만에 구분 없이 쓰레기봉투에 담겨진다. 그 외에도 엄청난 양의 재활용 가능한 물건들이 혼합폐기물로 버려지고 있었다. 환경문제는 그렇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킨 것을 한 사람이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도 있을 정도로 민감하다. 한 사람의 실수로 바다가 오염된 2007년 태안기름유출 사고가 그렇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 말은 게오르크 루카치가 ‘소설의 이론’에서 했던 말이다. 그의 말처럼 과거의 우리는 자연에 의존하고 그 자연과 하나인 존재였다. 하지만 오늘의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자연과의 조화와 균형을 잃고 자멸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강원도의 산골출신인 나의 어린시절도 자연속에서 행복했다. 더운 여름에는 하루 종일 개천에서 헤엄치고 물고기를 잡으며 시간을 보냈고, 추운 겨울에는 꽁꽁 얼어붙은 개천에서 어설프게 만든 썰매를 타고 하루 종일 행복했다. 들판으로 산으로 친구들과 쏘다니며 해넘어가는 것을 몰랐고, 하늘에 쏟아질 듯 별이 가득 찬 밤이면 친구들과 참새를 잡으러 다니느라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몰랐으며, 그렇게 자연과 하나였다. 자연을 착취할 일도, 훼손할 일도 없었고 그렇게 평화로웠다. 박완서의 말대로 ‘우리는 그냥 자연의 일부였다(‘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지난해 어느 날 문득 저 먼 나라의 이름도 낯선 ‘크레타 툰베리’라는 소녀가 우리에게 빚 독촉장을 보내왔다. 이제 환경운동의 대명사와 같은 존재가 된 그녀가 우리에게 지금 환경위기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우리에게 이미 다음세대에게서 ‘훔쳐간 미래’를 돌려 달라 하고 있다. 나는 아직 마땅한 답을 찾지 못했고 마땅하게 빚을 갚을 계획이 서지 않았다. 당신들은 어떠한가? 그녀가 말했다 “당신들에겐 미래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들에겐 미래가 없다!” 이래도 뜨끔하지 않다면 당신은 이미 구제불능이다.

우리는 이미 파산했다. 사실은 길거리에 나앉은 노숙자신세가 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외면하고 자식들의 미래자금을 끌어 쓴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손자들의 미래자금까지 손을 댄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알아버려 분노한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그것을 아직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다. 자식을 낳으면 모두가 축복한다. 하지만 자식을 낳으면 눈물을 뚝뚝 흘리는 시기가 곧 올지도 모른다. 그 불확실한 미래에 툭 내던져진 아이들에게 눈물을 보이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시기가 곧 올지도 모른다.

이렇듯 우리 자식들의 미래가 없어져 버렸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그토록 끔찍하게 아끼는 자식들을 위해 우리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순도 이런 모순은 없을 것이다. 한 마디로 인간들은 웃기는 짜장들이다.

지난 12월 10일 문재인대통령은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무착륙해외관광비행’을 곧 시행한다는 뉴스도 함께 화제가 되었다. 무엇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이왕 크레타 툰베리에 대해 말한 김에 이 문제와 관련해 더 언급해보자. ‘Flygskam!’라는 새로운 스웨덴어가 그녀로 인해 생겨났다. 이 단어는 영어로 FlyingShame 란 의미라 한다. 똑똑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당신들이 이 뜻을 모를 리는 없겠다. 전 세계 이산화탄소발생량의 2~3%(약 8억 톤 이상)를 배출하는 항공기 대신 기차나 버스를 타자는 운동이다. 이 운동과 기후변화의 우려로 스웨덴인의 23%가 항공여행을 줄였다고 한다. 이것을 ‘툰베리효과(Thunberg Effect)’라고 한다. 또한 프랑스는 올해부터 비행기운행에 환경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대통령은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한쪽에서는 ‘무착륙해외관광’을 하는 아주 멋진 모순이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환경위기로 인해 지구가 절단날 것이라는 사달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다만 우리들이 그 상황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뿐, 그리고 코로나19로 우리들의 민낯이 드러난 것뿐이다. 그토록 자만하던 선진국들의 과학적자본주의가, 거대한 두려움 앞에서 우리들의 거친 인성이 그 본 모습을 나타냈다. 2020년, 이렇게 코로나19는 우리들에게 지구적, 인간적, 생태적 화두를 던졌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자본주의와 함께 시작되었고 이제 자본주의의 종말이 왔다고 볼 수 있다.


도표출처 : 블로그 ‘초록터’

얼마전 출처가 조금은 불분명한 하나의 도표가 나를 사로잡았다. 초록터라는 블로그에서 가져온 이것은 우리가 그동안 보던 도표와 비슷하지만 다르다. 온도변화의 결과로 발생될 일에 대해 명확하게 표현하였다. ‘사람들이 이것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라는 궁금증이 밀려왔다. ‘나는 그 전에 죽을 테니 상관없다’라고 할까? ‘우리 자식들의 문제이니 큰일 났다, 당장 우리가 이것을 해결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할까?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이 도표가 과장되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오히려 과소평가된 예측이라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의 발표에 의하면 이산화탄소온실효과로 2100년이 아닌 50년 이내에 지구온도가 5℃ 상승할 수 있다고 한다(최신기후모델 CMIP6 : Coupled Model Intercomparison Project). 우리의 자식들은 영화에서 보던 지구의 멸망시대에 살 수도 있다는 말이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첫째, 우리가 근검, 절약, 인내, 공생의 정신을 잃은 것이다. 예전엔 귀에 따갑게 들어왔던 절약운동이 사라져버렸다. 전기, 물, 음식 등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것을 절약해야 한다. 정책이 일관성이 없으니 그런 면도 있다. 한쪽에서는 탄소중립, 한쪽에서는 소득주도성장과 같이 소비를 통해 경제를 지켜가려 한다. 아시겠지만 이 두 가지는 양립할 수가 없다.

둘째, 무한소비, 중독소비, 비논리적소비, 파괴적 소비에 물들어 자연을 광범위하고 지나치게 착취한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낭비되는 음식, 무분별하게 구입하고 무심히 버려지는 옷들, 아무런 생각 없이 쉽게 버려지는 수많은 소비재들이 문제다. 

셋째, 의학의 발달과 영양상태의 개선으로 인해 지구의 인구가 너무 많아진 것이다. 78억은 많아도 너무 많다. 인위적으로 줄이기는 어렵지만 인구의 1/5정도로 줄여야 지구의 포화상태와 환경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1900년도 즈음 세계인구는 약 15억 명이었다. 그러나 지금 1인당 소비량은 당시의 3배 이상일 것이다. 지금 15억 명이라도 소비량은 이미 3배 이상이다).

넷째, 우리의 지나친 욕심과 이기심이다.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생각, 타인과 자연에 대한 배려가 없는 생각, 도를 넘는 욕심, 이런 것들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 이 모든 것들이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고 이것이 기후위기를 초래하고 결국에는 우리로 인해 우리와 지구의 모든 생물종들이 멸종할 지경에 온 것이다. 이산화탄소는 우리 욕심의 산물이며, 한번 발생되면 최소 100년 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되돌릴 수 없는 치명적 독성이 있는 것이다. 지금 각성해도 충분히 늦었다.

생태계는 그 자체로 커다란 시스템이다. 그 순환고리의 하나가 무너지면 도미노처럼 곧 다른 것이 따라 무너지게 된다. 옐로스톤의 회색늑대 이야기가 바로 그렇다. 가축에게 피해를 주어 멸종시켰던 회색늑대를 복원시켰더니 황폐해진 숲이 살아나고 전체생태계가 회복되었다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이렇듯 자연은 복잡한 순환시스템으로 완벽해야 하는데 우리로 인해 그렇지 못하다. 


출처 : 생활성서사

앞서 자식을 아낀다면서 행동은 모순된 부모의 이야기를 했지만 위의 그림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크다. 차마 실제 사진을 볼 수 없어서 대체했다. 시리아난민의 아이의 이름은 ‘에이란 쿠르디’이고 당시 세 살이었다. 배가 침몰되어 터키의 바닷가에서 아이의 주검이 발견되었고 세계적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 아이의 죽음이 먼 나라의 낯선 한 아이의 무심한 죽음으로 보이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이 아이의 죽음에 공동의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시리아난민 문제는 근본적으로 기후위기로 인한 식량난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불균형적인 삶이 시리아의 기후위기를 불어왔고, 기후난민이 발생했으며, ‘에이란 쿠르디’는 그래서 죽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프리카의 굶주리는 아이들에게도 우리는 분명 책임이 있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나, 파산했으면 파산자답게 살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개개인 모두가 환경운동가가 되어야 한다. 절제된 생활, 절약, 인내, 재활용의 생활화 등 최소한의 소비를 실천하는 범지구적 운동이 필요하다.

하나, 개인, 국가, 언론, 교육이 하나가 되어 지금의 심각한 상황에 대해 각성하고, 규제하고, 홍보하고,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위기를 헤쳐 나가야 한다.

하나, 국가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기후위기부총리를 만들고 지속적으로 관련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하나, 기업이 각성해야 한다. 그동안 자연을 파괴하고, 착취하여 이익을 얻은 것은 대부분 기업들이다. 기업들이 앞장서서 환경경영, 윤리경영을 해야 한다. 개개인의 노력보다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다.

하나, 구체적으로 육식을 줄이고, 커피를 줄이고, 적절한 섭생을 해야 한다. 과다한 의류소비도 줄이고 가능한 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야 한다. 내가 아는 경희대 ‘공우석교수’님은 환경을 위해 채식을 하고, 커피를 끊고 승용차가 없다.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환경을 위해서…. 똑같이는 못한다 해도 우리도 최소한 줄이고 아껴보자.

하나, 국제공조가 필요하다. 이제 한 개인, 한 단체, 한 국가의 노력으로만 해결하기에는 늦었다. 모든 국가가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만간 환경위기로 인한 전쟁이 생길 것이다.

이렇듯 자본주의는 현재 몰락해가고 있다. 그렇다면 다음은 생태주의시대가 와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는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왔지만 생태주의시대는 인류가 멸망하지 않기 위해 절체절명의 심정으로 우리가 만드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현재 우리에게 닥친 환경위기와 그 해결책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제 조경은 지금까지와 다른 책무를 부여 받게 되었다. 과거의 조경의 의미와는 다른 더 크고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하나, 조경을 기후위기를 극복하는데 필요한 필수적인 분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하나, 조경에 대한 연구지원이 필요하다. 기후위기에 따른 적합한 수종의 연구, 이산화탄소를 저감시키는 수종, 종 다양성을 높이는 수종 및 식재기법의 연구, 인공지반녹화기법의 연구 등은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지만 그 효과는 크기 때문에 필수적이다.

하나, 도시숲을 활성화하여 도시미기후를 완화시켜야 한다. 물론 인공지반녹화를 적극 활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고 대안이다. 이미 독일의 많은 도시들은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도시숲과 옥상녹화를 적극적으로 조성하고 있다. 즉, 공원의 역할보다는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도시미기후를 완화시키기 위한 역할에 방점을 두고 있다.

하나, 인공지반녹화는 단순한 공간 활용차원이 아니고, 건물주의 이익만을 위한 것도 아닌 미세먼지의 저감, 이산화탄소저감, 생물다양성회복, 빗물의 재사용 등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공익적 이익을 위해 확산시켜야 한다.

하나, 조성된 조경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 유지관리를 잘 해야 한다. 조경은 설계-시공-유지관리가 한 시스템으로 생각되어져야 한다. 우리는 유지관리에 소홀한 경향이 있다. 기후위기의 시대에는 유지관리에 더 큰 비중을 두어 기왕 조성된 공간들이 제 기능을 잘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지옥의 문턱에 한쪽 발을 들여 놓았다. 죽음이 저 멀리 있는 듯해도 항상 내 주변에 있는 것이다. 지금은 인류의 죽음이 가까운 곳에 이미 와 있다. “늘 깨어있음”으로 지금의 기후위기를 넘겨야 하는 것이 우리의 절체절명의 의무이다. 그렇지 않으면 곧 우리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아무 생각 없이 살아왔던 과거의 삶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럼 언제부터 시작할 것인가? 지금 당장!

글_김진수 대표 · 랜드아키생태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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