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산이 보이는 가로를 걷고 싶다

[조경명사특강]임승빈 교수의 도시사용설명서_5회
라펜트l임승빈 교수l기사입력2013-05-03

도시 가로에는 밀집된 고층건물로 인해 조망이 차단되어 답답하고 위압적 경관이 조성되기 쉽다. 주변 산으로 시야가 열리고 푸른 하늘을 느낄 수 있는 도시가로를 만들 수는 없을까?

 

우리는 길을 걷다보면 건물사이로 시원하게 시야가 열리고 원경으로 산을 조망하게 되는 경우를 간혹 경험할 수 있는데, 평소에 기대하지 못했던 새로운 도시의 모습에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이러한 경험을 가능한 많이 제공하기 위해서는 도시경관계획 차원에서 체계적, 전략적으로 접근하여야 한다. 도심지에는 고층건물이 필수적이므로 모든 가로에서 열린 조망을 제공할 수는 없다. 따라서 사람 통행이 많은 간선도로 혹은 광장과 같은 주요 조망점에서 산봉우리, 문화재 건물 등 주요 조망대상으로의 시야를 열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사동_ 빌딩사이로 멀리 북한산이 보인다. 도시가로에서 이러한 조망 경험을 풍부하게 제공할 수는 없을까?

 

그동안 도시개발 과정에서 늘어난 건물로 인해 가로에서 보이는 하늘의 면적은 점점 줄어들었고 도시 주변의 산들은 시야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 기존에 가려버린 조망은 어쩔 수 없더라도 앞으로 신축되는 건물은 더 이상 주요 산으로의 조망을 가리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구릉지에 세워진 재개발아파트로 인해 하늘이 거의 안보인다(). 한강변 아파트로 인해 남산으로의 조망이 차폐되고 콘크리트 장벽이 생겼다().

 


서촌에서 바라본 북악산_ 서울의 내사산중 하나로 서울의 주요조망점이 된다.

 


서촌 필운대로에서 바라본 북악산_ 전면의 4층건물로 인해 북악산으로의 조망이 차폐되었다. 서촌의 장소성을 만드는 중요한 요인중의 하나는 낮은 건물들로 인해 북악산, 인왕산 스카이라인이 보이는 것이다. 무분별한 난개발로 서촌의 장소성이 침해받고 있다.

 

산으로의 조망을 보호하는 것은 자연경관으로의 조망을 열어 도시의 답답함을 완화한다는 것과 더불어 우리나라 고유의 경관을 보행자가 감상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우리나라 경관의 특성은 무엇일까? 우리나라 국토경관의 특성은 한반도의 지형적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한반도는 약 70퍼센트가 산지이며, 이들 산지는 백두산과 지리산을 잇는 백두대간을 주축으로 한반도 전체의 뼈대를 형성하고 있다. 산지 중에서도 완만한 구릉지가 대부분을 차지하여 우리나라 어디서나 구릉지를 볼 수 있으며, 구릉지와 구릉지 사이의 계곡과 하천으로 구성된 경관이 우리나라 경관의 보편적 특성이다. 따라서 구릉지를 본다는 것은 단순한 자연감상을 넘어 우리나라 국토경관의 특성을 감상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우리나라의 오래된 도시들은 대부분 풍수지리설의 영향을 받아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평지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도시의 어느 곳에서나 산을 조망할 수 있다.

 

서울의 경우는 서울을 둘러싸는 내사산(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과 외사산(북한산, 아차산, 관악산, 덕양산)이 주요 조망 대상이 된다. 특히 남산은 애국가 가사에 포함될 만큼 상징성이 높은 큰 산인데 도심지에 위치하다보니 고층건물로 인해 남산으로의 조망보호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1994년 남산으로의 조망을 가리고 있던 남산외인아파트 2개동의 폭파철거 TV생중계는 조망경관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식을 새롭게한 역사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단지 남산으로의 조망을 열어주기 위해 천억 여원의 세금을 단 몇 초 만에 날려버린다는 것은 이전까지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남산이, 그리고 조망경관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극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남산외인아파트 철거 TV생중계(1994)_ 우리 국민의 조망경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한 사건이다.(2010신경관주의 국제심포지엄 발표자료)

 

또한 남산 중턱의 소월길에서 한강으로의 조망을 가리지 않도록 소월길 남쪽 사면에는 고도제한을 설정하여 건물 옥상이 도로면보다 낮도록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소월길에서 한강과 관악산 쪽으로 시원한 파노라마 조망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음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남산 소월길_ 길 아래로 멀리 관악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길 아래쪽으로는 건물 옥상이 도로보다 1.5미터 낮도록 제한하여 한강과 관악산으로의 조망을 살렸다.

 


남산 인접지역에서의 건물높이 제한으로 이태원에서 볼 때 남산으로의 조망과 스카이라인을 보호하고 있다.

 

이러한 몇 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산으로의 조망이 남산 주변의 각종 개발로 인해 보행자의 시야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한강변을 따라 세워지고 있는 아파트 건물에 의한 조망차폐는 심각한 수준에 있다.

 



이촌동_ 아파트 건물에 의해 남산 조망이 침해받고 있으나 아직 능선 부분은 조망 가능하다() 앞으로 재개발 혹은 재건축된다면 아래 사진과 같이 남산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 것이다(). 가운데에 남산. 왼쪽에 북한산, 오른쪽에 응봉산이 스모그로 희미하게 보인다. 스모그는 산으로의 조망을 방해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다.

 


효사정(흑석동)에서의 남산조망_ 조선시대 한강과 북한산, 남산, 응봉산 조망을 위해 만들어진 정자인데 중요한 조망대상인 남산은 건물에 완전히 묻혀버렸다.

 


반포대교 북단에서 남산을 병풍처럼 둘러싼 아파트()와 우뚝 솟아 남산조망을 가리는 용산구청사. 청사 건물 형태와 규모, 유리벽면은 주변 경관과 이질적이어서 남산조망경관을 저해하는 대표적 난개발이다()

 

조망보호를 위하여는 건물의 높이가 중요한 변수인데 모든 도로에서 주변 산이 보이도록 하고자 한다면 건물을 거의 못 짓게 되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주요 조망대상을 먼저 설정하고 사람의 왕래가 많은 곳을 주요 조망점으로 선정하여 이곳에서 조망대상으로의 조망을 보호하기 위한 조망선 아래로 건물 높이를 허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구미에서는 조망보호를 위한 노력을 오래 전부터 해오고 있는데, 특히 영국에서 적극적인 조망보호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런던에서는 주요 조망 대상을 성당, 국회의사당 건물 등 역사적 공공건물로 정하고 이들 건물을 시민들이 많이 모이는 강변, 다리, 교차로, 공원 등 공공장소에서 볼 수 있도록 표준전망(standard view)으로 지정한 바 있다. 조망통로가 되는 시각회랑(visual corridor) 구역은 고층건물 제한구역으로 지정하고 이들과 무관한 구역에 고층건물을 허가하고 있다. 런던에서는 1968년에 이미 28개의 표준전망을 선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고층건물의 허가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런던시 템즈강변에 세워진 전망 설명판(Catchpole, 1987)_ 가운데 타워브리지 우측 성바오로 성당(St. Paul Cathedral / 왕의 즉위식, 대처수상의 영결식 등의 국가 주요행사가 열리는 상징적 건물)의 돔을 주요 조망대상으로 설정하고 이 성당으로의 조망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건축허가를 내주고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도시들은 역사적 건축물과 풍수설화가 깃든 산으로 도시경관이 구성되어있다. 이들은 도시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말해주는 의미 있는 경관요소들이다. 이들을 주요 가로나 오픈스페이스에서 볼 수 있도록 표준전망을 미리 설정하고 건축물을 관리한다면 시민들이 하늘과 산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극대화 시키고, 도시 이미지를 한층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전통적으로 곳곳에 8경 혹은 10경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이들도 표준전망 선정시에 고려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건축물과 더불어 도시경관의 중요한 요소는 대기의 질이다. 공기가 깨끗해야 먼 곳에 있는 산을 볼 수 있으며 경쾌한 분위기의 경관이 만들어 진다.

 

서울의 경우 평균 가시거리가 10 킬로미터 정도인데 최근의 황사현상으로 이는 더욱 줄어들고 있다. 비온 후 맑은 날에는 20 내지 30 킬로미터에 이르러 그야말로 청명하고 상쾌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따라서 도시경관관리 차원에서도 대기의 질을 개선하는 노력을 계속하여야 한다.

 

맑은 하늘과 산을 감상하면서 길을 걷고 싶다!

산으로 활짝 열린 조망경관을 보고 싶다!

연재필자 _ 임승빈 교수  ·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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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ungbi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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