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 머무르고 싶다

[조경명사특강]임승빈 교수의 도시사용설명서_7회
라펜트l임승빈 명예교수l기사입력2013-07-02

광장 그늘에 편히 앉아서 조망을 즐기고 싶다

 

광장은 복잡한 도시에서 시민들이 여유롭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개방된 장소이다. 그런데 광장에서 개방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광장 이용자의 편의를 도외시하는 경우가 많아 누구를 위한 광장인지 본말이 전도된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시민의 이용편의성보다 통치자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한 대규모 광장으로 만들 경우, 인간적 척도를 넘는 규모로 조성된다. 기념탑, 기념조각이외에는 다른 시설물 설치가 제한되어 시야가 개방되고 보는 사람들을 압도하는 경관이 만들어진다.

 

도시에서의 광장은 주로 간선 도로의 교차점에 공공건물과 인접하여 위치하는 대규모 오픈스페이스로서 공공건물의 상징성을 높이고 도시 전체의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광장은 접근성이 높고 대형 건물들이 주변에 위치하므로 많은 사람이 이용하게 되는데, 이용자인 시민이 광장의 주인이 되어야함에도 불구하고 시민보다는 통치자 혹은 설계전문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상징성, 기념성, 역사성 등의 가치가 지나치게 강조되어 시민은 방관자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광장의 상징성과 기념성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시민을 주인으로 대접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겠다. 시민의 편의성보다는 왕권 혹은 통치자의 권위를 앞세우는 광장은 시민이 주도하는 21세기 미래 사회에서는 역사적 유물로서만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같은 사진이라도 사진틀에 넣어 보거나, 혹은 같은 풍경이라도 창문을 통해서 바라볼 때 훨씬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경험을 기억하고 있다.

이러한 프레임 효과를 미국의 경관학자인 애플턴(Appleton)조망-은신이론(prospect-refuge theory)’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인류가 원시수렵시대에 나무그늘아래 안전하게 몸을 숨기고 들판의 사냥감을 찾던 습관에서 유래되어 프레임효과가 생겨났으며, 나무그늘에서 경관을 바라볼 때 더욱 편안하고 아름답게 보인다는  이론이다.

이와 같이 자신이 노출되지 않는 가운데 조망할 수 있는(to see without being seen) 환경을 만드는 것은 경관심리학적 측면에서 이용자의 쾌적성을 높이는 길이 된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 '갯지렁이 다니는 길(황지해)'_ 나뭇가지 프레임을 통해 경관을 조망할 경우 더욱 매력적으로 보인다(). 나무 그늘 아래 안전하게 몸을 숨기고 나뭇가지 사이로 들판의 사냥감을 찾던 원시수렵시대 습관에서 프레임효과가 생겨났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꿈의다리(강익중)’_ 설치미술작품 내부에서 창틀을 통해 바라보는 순천만은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애플턴 이론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광장은 크기만 컸지 몸을 숨기고 편안하게 광장과 주변을 바라볼 수 있는 배려가 전무한 상태이다. 그래서 시민에게 안정감과 포근함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몸을 숨길 수 있는 그늘과 프레임을 제공해줄 나무가 전무하며 편하게 앉을 수 있는 벤치나 앉음벽 시설 또한 거의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광화문 광장이 대표적인 예이다. 2009년 은행나무가 열식된 중앙분리 녹지를 없애고 차선을 줄여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보행광장을 세종로 중앙에 만든 것은 세종로를 시민에게 돌려준다는 의미를 갖는 바람직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미 존재하지 않는 조선시대 왕권의 상징성, 그리고 북악산과 광화문으로의 조망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비워놓는 데에만 신경을 써서 정작 시민의 이용측면은 도외시하여 나무가 없고 앉을 곳이 없는 삭막한 공간이 되고 말았다. 무더운 여름날 광화문 광장을 거니는 것은 사막을 걷는 느낌이다.

광장 남북축 방향으로의 조망을 살리기위해 축방향으로는 비워놓으면서도 축의 좌우에 나무를 심고 벤치를 놓을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이렇게 되면 나무그늘에 앉아 나뭇가지 사이로 다양한 프레임을 통한 광화문과 북악산을 바라보며 대한민국의 역사와 한반도의 백두대간을 그려보기도 하고, 잠시 쉬었다가 광화문 광장 곳곳을 음미하며 산책을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늘과 벤치가 만들어지면지나가는 삭막한 광화문광장머무는 포근한 광화문광장으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광화문광장_ 시원하게 열린 북악산으로의 조망을 경험할 수 있는 장소이지만 잠시라도 앉아서 조망을 음미할 수 있는 나무그늘이나 벤치가 없어 그냥 건너가야 하는 광장에 그치고 있다. 남북 조망축을 살리면서 나무그늘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서울광장은 원래 차들이 교차하는 교통광장이었는데 2004년 차도를 줄이고 보행광장을 만들어 보행중심 도시를 지향하는 서울시의 대표적 사례가 되고 있다.

중앙에 넓은 잔디밭을 만들고 비워놓아 월드컵 축구응원, 싸이 음악공연 등 대규모 행사를 할 수 있도록 하였으나, 대규모 행사는 일 년에 몇 번 안되고 많은 경우 그저 비어있게 마련이다.

시민들은 광화문 광장에서와 마찬가지로 편하게 그늘에 앉아 신축된 서울시청사 건물이나 잔디광장을 지나는 사람들을 여유롭게 조망하지 못하고 그냥 잠시 서성거리다 떠나가야만 한다. 보행중심 도시라고해서 보행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걷다가 잠시 쉴 곳도 만들어야 진정한 보행중심 도시가 만들어진다.

 

최근 서울시 신청사 입구부분에 느티나무를 식재하여 그늘을 조성하였으나 광장규모에 비하여 아직 부족함이 많고, 벤치가 없어 앉을 수도 없다. 나뭇가지 사이로 다양한 프레임을 통하여 더욱 매력적인 잔디광장과 서울의 모습을 편안하게 조망할 수 있도록 더 많은 나무와 앉음시설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청앞 서울광장_ 시원하게 열린 광장인데 앉아서 쉴 수 있는 그늘이나 벤치가 없다. 최근 시청사 입구 부근에 나무를 심어 그늘이 얼마간 조성되었으나, 광장규모에 비해 아직 그늘이 부족하고 벤치도 없어 통과하는 광장에 머물고 있다. 넓은 녹색 잔디밭이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도시 광장은 그리스의 아고라(agora), 로마의 포럼(forum), 그리고 중국의 주작대로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르네상스 이후 유럽의 도시에서 특히 많은 사례를 볼 수 있다. 유럽에서는 주로 건물로 둘러싸인 폐쇄적 공간구성을 지니고 있으며 시장, 집회 등의 기능을 겸하였다. 따라서 광장이라기 보다는 중정 혹은 마당의 성격을 많이 지녔다고 할 수 있으며 식재는 배제되고 바닥은 돌로 포장되어 완전히 인공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일조량이 부족한 유럽에서는 광장에 그늘을 만드는 것이 필요치 않았으며 나무 그늘 대신에 옥외 카페가 일반화 되었다.

 


몬테네그로 코토르의 고대성곽도시_ 유럽의 광장은 수목에 의한 그늘이 없는 대신 카페가 발달하였다.

 


크로아티아 스플리트의 디오클레티안궁전 광장(). 마케도니아 스코프예의 이슬람사원 앞 광장(). 광장이라기보다는 중정 혹은 마당의 성격을 지녔다.

 


몬테네그로 레닌광장_ 벤치와 가로수를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유럽의 광장에서도 보행자 편의시설이 등장하고 있다.

 

유럽의 광장은 유럽인의 개방적 생활문화와 기후에 적합하도록 시각적으로 완전하게 개방되어있으며, 사방이 위요되어 지붕만 없지 실내에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광장은 비워야 된다라는 인식은 폐쇄성이 높고 반내부화된 유럽의 도시광장에서 기인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인식이 우리나라의 도시광장에는 적합하지 않다. 유럽의 광장은 우리나라 전통주택의 마당과 유사한 성격을 지닌다고 볼 수 있으며, 나무를 심지 않고 비워놓은 점이 우리나라 전통주택의 마당과 유사하다.

 


낙안읍성_ 한옥의 마당은 나무를 심지않고 비워놓은 유럽의 광장과 공통점이 있는데 높은 폐쇄성과 지붕없는 내부공간(반내부)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현대도시의 광장들은 규모도 비교적 크고 개방성이 높아서 비워놓을 경우 보행자들이 겨울 바람이나 강우, 뙤약볕 등 견디기 어려운 기상조건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우리나라 실정에 적합한 광장의 공간구성에 대한 해법을 찾아야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광장은 어떠한 구성을 지녀야할까?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겠으나 적어도 어느 정도의 자연요소가 도입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우리는 우리에게 적합한 광장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찾아가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진정으로 보행자를 배려하는 광장을 보고 싶다!

나무그늘과 벤치가 있는 광장을 보고 싶다.

광장그늘에 앉아 친근한 벗과 여유롭게 도시모습을 감상하고 싶다.

광장에 나무를 심자!

 

연재필자 _ 임승빈 명예교수  ·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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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ungbi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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