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와 소통하는 건물을 보고 싶다

[조경명사특강]임승빈 교수의 도시사용설명서_6회
라펜트l임승빈 교수l기사입력2013-06-04

우리는 가로를 걸으면서 가로의 분위기에 따라 상념에 잠기기도 하고, 발걸음이 가볍고 상쾌한 기분을 느끼기도 하며, 흥겹고 즐거운 느낌도 받는다. 이같이 다양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도로의 공간구성 그리고 도로에서 이루어지는 사람들의 행태이다.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마음이 가라앉고 여러 가지 상념에 젖기도 한다. 인사동 길의 가판대와 많은 사람들()을 보면 상품들에 대한 호기심이 일고 활력이 느껴진다.

 

특히 가로를 공간적으로 한정하는 수직요소인 도로변 건물의 입면은 가로 분위기를 결정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건물의 벽면은 수직면이어서 평면인 도로 포장보다 보행자에게 인지도가 높아 가로 분위기 형성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매우 높다.

 

동일한 도로구성일지라도 도로와 접한 건물의 표정에 따라 가로 분위기가 달라지고 보행자의 쾌적성이 좌우된다. 창문없이 육중한 돌로 쌓아올린 벽면, 유리창으로 개방된 벽면, 건물 앞에 테이블과 벤치 등을 배치해 실내와 연결된 옥외공간을 만든 경우, 건물 벽면을 후퇴시키고 정원과 휴게공간을 조성한 경우 등 다양한 표정의 건물을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가로는 통과하는 곳이지 머무는 곳은 아니었다. 8, 90년대만 해도 가로에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앉아 있는 행위는 어색하고, 더구나 커피나 음식을 먹는 행위는 생각하기 어려운 행위였다. 2000년 즈음하여 구미의 영향으로 광장과 놀이터 등에 옥외 식당이 등장하고, 가로에도 서구에서 볼 수 있는 옥외 카페와 식당이 등장하기 시작하여, 요즘은 건물에 부속된 옥외 카페가 가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되고 있다.

 

이러한 풍경은 기존의 폐쇄적 다방문화가 개방적 카페문화로 바뀌면서 가능해졌다. 8, 90년대 도시인들의 약속 장소인 다방은 대부분 지하층 혹은 2층에 위치하여 가로와 격리돼 있어 사적인 남녀 혹은 사업상 만남에 있어 보행자로부터 프라이버시를 보호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남녀의 만남이 공개적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문화로 바뀌면서 폐쇄적 만남의 장소에 대한 필요성이 적어졌다. 따라서 요즘 도시인의 만남의 장소인 카페는 대부분 일층에 가로와 접하고 있어 접근이 쉬우며, 더 나아가 실내와 연결된 옥외에 좌석을 배치하여 건물과 가로가 서로 소통하고 교감하는 개방적 가로경관이 가능하게 되었다. 옥외카페에서는 고객들이 가로 경관을 더욱 친밀하게 감상할 수 있으며, 보행자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차를 마시거나 담소하는 광경을 보면서 친근함과 더불어 따뜻한 커뮤니티를 느끼게 된다.

 

요즘은 다방을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어쩌다가 다방간판이 눈에 들어와 가보면 문은 잠겨있고 간판만 남아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956년부터 대학로에서 줄곧 자리를 지켜온 학림은 6, 70년대 대학생들이 즐겨 찾던 다방이었는데 아직까지 생존하고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이름과 실내장식은 거의 옛날 그대로지만 달걀 노른자를 넣은 모닝커피나 위스키를 넣은 티 그리고 쌍화차는 메뉴에서 사라지고 커피전문점에서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다양한 커피와 음료로 바뀌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 벽에 걸려있는 베토벤 석고상, 그리고 클래식음악이 중년을 훌쩍 넘어선 사람들에게 대학생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나름대로의 생존전략으로 보인다.

 


옛날 다방의 쇠락_ 90년대만 해도 흔히 볼 수 있었던 지하다방은 문을 닫은지 오래고 간판(수림다방, 서둔다방)만 남아있다. 세화다방은 민속찻집으로 변신을 시도했으나 다시 호프집으로 바뀌었다. 다방은 주로 지하층 혹은 2층에 위치하여 가로와 격리된 폐쇄적인 내부공간을 갖고 있어 개방적 사고방식을 지닌 현대의 젊은이들에게는 맞지 않는 장소이다. 요즘은 다방의 기능을 보다 개방적 공간을 지닌 카페가 대신하고 있다.

 


학림_ 1956년부터 대학로에 자리잡고 있는 학림다방은 7080세대들의 계속적인 사랑으로 지금까지 생존하고 있다. LP레코드로 클래식 음악을 감상을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장소이며, 2층에 위치하여 대학로를 내려다보며 즐기는 맛이 있다. 귀와 눈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생존의 비결이라 할 수 있다.

 


분당 정자동 카페골목_ 도시설계시 옥외좌석을 만들 수 있도록 디자인하여 옥외카페가 자연스레 형성되었으며 우리나라에 카페문화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는 계기가 되었다. 실내-옥외좌석-보도-차도-길건너 옥외카페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건물-손님-보행자가 상호 소통하는 친근한 가로가 형성된다. 옥외카페에서는 가로풍경과 지나는 사람을 보다 가깝게 관찰할 수 있고, 보행자는 옥외카페에서 커피나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즐거운 모습을 볼 수 있어 가로를 친근하고 활기있게 만든다.

 

옥외카페의 도입은 우리나라 가로의 활성화를 위하여 긍정적인 변화로 볼 수 있다. 과거 매연과 소음이 심할 때에는 옥외카페가 현실적으로 어려웠으나 요즘은 신도시에서, 그리고 걷고싶은거리 조성사업 등을 통해 가로가 비교적 잘 정비되고 있고 더불어 매연도 개선되고 있기 때문에 옥외카페가 활성화되고 있다. 따라서 건물이 가로와 소통하는 구조로 되어가고 있으며, 가로가 훨씬 친근하고 활력있는 장소가 되고 있다.

 

또한 옥외카페는 보도로 돌출되어 보행자들이 쉽게 카페를 인지하도록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는 상점들이 물건을 보도에 진열하여 행인들에게 구매의욕을 자극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상점들이 보행에 지장을 줄 정도로 과도하게 상품을 진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나, 보도에 여유가 있고 진열대를 매력적으로 디자인 한다면 가로 활성화를 위하여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옥외카페()와 수퍼마켓의 가판대()는 보행자의 시선을 끌고 구매의욕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의도가 엿보인다(방배동). 옥외카페와 진열대는 가로 활성화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으므로 이를 권장 혹은 제한적으로 허용해줄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해봄직 하다.

 

우리나라에서 옥외카페의 역사는 10년 정도지만 옥외카페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유럽에서는 산업혁명 이후 개방적 민주주의와 시민사회가 활성화되면서 100년 이상 이어온 문화이다.

 

유럽에서의 카페 혹은 식당은 가로와 긴밀하게 연결돼있어 가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가로의 건물들은 담장없이 가로에 직접 접하고 이 접점에 옥외카페가 위치하여 건물과 가로의 연결고리 구실을 함으로써 건물과 가로가 단절되지 않고 상호 소통하고 교감하는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슬로베니아의 Hotel Creina_ 옥외 카페는 주간은 물론이고 야간에도 가로와 소통하며 인지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야간에는 건물 디테일이 어둠에 가려져 더욱 정돈되고 매력적인 가로경관을 연출하며 실내가 가로경관 요소로 등장한다.

 


슬로베니아 식당()_ 실내-피로티아래-야외의 3단계로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슬로베니아 포스토이나 동굴 앞의 옥외테이블이 있는 식당_ 옥외 테이블 공간은 실내와 실외를 이어주는 매개공간 혹은 전이공간 역할을 한다. 한옥에서 방과 마당을 연결해주는 대청마루와 유사한 기능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크로아티아 마리안 해안의 건물과 연결된 옥외식당(). 보스니아 사라예보 이슬람거리의 옥외식당()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_ 좁은 보도에 보행에 지장을 줄 정도로 옥외카페가 돌출돼있다.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_ KFC()와 피자집()이 보도를 점용하여 테이블을 놓고 있다. 보행자 통행에 지장을 주는 이러한 점용은 우리나라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의 식당들_ 골목은 지나가는 통로라기보다 머물러서 식사와 대화를 나누는 곳이다. 마을의 거실이라 볼 수 있다.

 

옥외카페는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와는 분명히 거리가 있으나 개방적이고 소통이 이루어지는 가로를 만드는 긍정적 측면이 있으므로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옥외카페의 도입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외국의 카페디자인을 맹목적으로 그대로 베끼기보다는 한국적 문양, 소재(목재, 대나무 등), 습관(좌식테이블 등)을 고려하여 우리 정서와 문화에 부합되는 한국형 옥외카페를 만들어 다양한 모습의 가로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 놓여있는 평상이 한국형 카페라 할 수도 있겠는데 이러한 평상이 현대 우리나라의 도시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다양한 실험이 필요하다 하겠다. 또한 한옥의 사랑채와 연결된 누마루의 공간개념을 도입한 카페를 디자인할 수도 있겠다. 이러한 노력이 성공한다면 우리나라의 가로가 건물과 하나로 융합된 따뜻하고 활기찬 생활공간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보행자에게 손을 내미는 따뜻한 건물을 보고 싶다!

거만하지 않고 가로에 미소를 보내는 친근한 건물을 보고 싶다!

연재필자 _ 임승빈 교수  ·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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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ungbi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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