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흐르는 가로를 걷고 싶다

[조경명사특강] 임승빈 교수의 도시사용설명서_9회
라펜트l임승빈 명예교수l기사입력2013-09-04

인공화된 도시에서 나무와 물은 환경친화적 도시를 만드는데 있어 필수적 요소이다. 이중에도 물은 자유로운 형상과 동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어 도시환경을 활기차게 만드는 동시에 흥미를 유발시키는 매력적 경관요소이다.

 

7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 골목길에서 물을 보기는 어렵지 않았다. 인근 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동네를 지나며 만들어지는 개천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도시의 인구밀도가 높아지면서 열려져있는 개천을 복개하여 콘크리트 박스로 만들고 도로나 주차장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도시가로에서 물을 보기 어렵게 되었다. 이러한 물길의 원형은 이제는 농촌에서나 볼 수 있는데, 민속마을로 보존되고 있는 온양 외암리에서 골목마다 이어지는 물길을 볼 수 있다.

 


온양 외암리 민속마을의 개천_ 사진과 같은 개천을 도시에서는 이제 보기 어렵다.

 


온양 외암리 민속마을_ 마을 뒷산(설화산)의 물이 마을 곳곳을 돌아 마을 앞 개천으로 들어간다. 집집 마다 물을 끌어들여 연못을 만들기도 하고 화재시 방화수로도 사용되었다. 마을 뒷산에 화기(火氣)가 있어 물길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국내에서 이와 같이 물길을 적극적으로 만들고 사용한 마을은 외암리가 거의 유일하다.

 

2000년대에 오면서 도시에서 물길이 갖는 순기능, 즉 습도조절, 기온완화, 경관향상 등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복개된 물길을 원상태로 복원하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전국의 많은 도시에서 하천복개계획은 중지되고, 이미 복개된 하천을 복원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는데 청계천 복원이 그 시발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교통대란 등 학자 간 논란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2005년 사업수행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이를 계기로 다른 지자체에서도 물길복원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청계천 복원은 외국에도 모범 사례로 많이 알려져 물길복원을 위해 벤치마킹하는 사례가 되고 있다. 미국의 조경재단(Landscape Architecture Foundation)에서 소개하고 있는 세계의 성공적 지속가능프로젝트 중 한국에서는 청계천복원이 유일하게 포함되어있다. 청계천 프로젝트로 종다양성이 639%, 토지가가 30-50% 증가하였으며 온도가 주변 도심에 비해 3.3-5.9, 분진이 35% 감소하였다고 소개하고 있다.

 


복원 전 청계고가도로(), 복원 후 여름철 야간경관()_ 2005년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복원되어 서울의 명물로 자리 잡았으며 외국관광객들도 많이 찾고 있다. 청계천은 특히 여름에 야간 이용객이 많은데 더위를 식히고자 하는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청계천의 성공적 복원이후 도시마다 물길복원과 물길조성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가로 곳곳에 소규모 물길이 만들어지고 있다. 과천시에서는 중앙로에 인접한 양재천을 복개하여 주차장으로 쓰고 있었는데 이를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하고 자전거길도 만들어 시민이 활발하게 이용하고 있다.

 


과천시 양재천_ 복개하여 주차장()으로 쓰던 곳을 복원()하여 자연형 물길을 만들고 산책로, 자전거로 등 시민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대학로에는 마로니에 공원부터 종로5가까지 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개천을 원래대로 복원하기에는 도로 폭이 너무 좁아 복원대신에 실개천을 만들어 과거의 개천에 대한 추억을 살리고 장소성을 되살리고자 했다. 이는 절충형의 물길 복원이라 할 수 있는데, 이미 개천과 인접하여 개발이 이루어진 상황에서 원래대로의 복원이 불가능할 경우에 차선책이라 할 수 있다.

 


대학로 방송통신대 앞_ 이곳에는 원래 개천이 흐르고 있었는데 복원의 차선책으로 실개천을 만들었다. 도심에서 이러한 물길을 따라 걸을 수 있는 가로는 많지 않다. 이러한 물길이 있는 가로가 많을수록 도시환경은 더욱 쾌적해진다.

 

여의도 한강공원에도 발을 담글 수 있는 실개천(wading pool)이 만들어져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즐겨 찾고 있다. 고수부지에 위치한 이 물길은 직접적으로 물을 접촉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하여 어린이에게도 안전한 친수형 물길을 만들었다. 원래 물길이 있던 곳이 아니라도 이와 같이 필요한 곳에는 물길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의도 한강공원_ 한강물에는 들어가기 어려우므로 작은 물길을 만들어 시민들이 안전히 이용하도록 했다.

 

독일의 프라이부르크에는 13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물길이 구시가지 거의 모든 가로에 흐르고 있다. 작은 물길이라는 뜻의 베흘레(Bachle)로 불리는 이 물길은 오늘날까지 거의 원형대로 남아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물길의 폭이 작게는 30cm부터 넓게는 3m이상에 이르는데, 이 물길은 방문객에게 독특한 도시 이미지를 심어준다. 원래는 하수로와 방화수 그리고 도시 인근 초지의 관개용으로 쓰였는데, 근대에 오면서 교통방해 등의 이유로 없어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논란 끝에 그대로 존치되어 현재는 도시의 열환경 및 수환경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흥미로운 경관요소가 되고 있다.

 

도시개발의 장애물이었던 물길이 21세기에 오면서 오히려 도시환경을 개선하고 장소성을 높이는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으며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매력적 요소가 되고 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_ 인근 드라이잠강에서 물을 끌어 물길을 조성하여 도심지 거의 모든 가로에서 물을 볼 수 있다. 어린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활력있고 흥미로운 경관을 조성함에 더하여 건조한 도심에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13세기경 물길이 처음 만들어진 당시에는 방화수와 도시인접 초지의 관개용수로 쓰였다.

 


독일 프라이부르크_ 비교적 넓은 물길이 지나는 이면도로 골목은 너무 크지도 적지도 않은 친근한 공간규모를 지녀 걷기에 쾌적하며, 관광객을 위한 상점, 식당 등이 위치한다.

 


도시 외곽을 흐르면서 도시 속 물길에 물을 공급하는 드라이잠 강변에는 자전거도로가 있어 시민들의 휴식처가 된다.

 

기후변화와 더불어 도시환경이 점차 열악해지면서 도시 내 물길 복원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시점이다. 도시의 열환경, 수환경 개선은 물론이고 경관요소 및 여가공간으로의 활용면에서도 물길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요구된다.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도시 내 물길 복원이 일부 이루어지고 있으나 아직은 미흡한 실정이다. 그동안 기능성, 경제성 중심의 도시개발논리로 인해 복개되거나 사라진 물길을 적극적으로 복원하여, 원래의 지형과 수계를 회복함은 물론 인간 중심의 수준 높은 도시생활환경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도시가로에서 더 많은 물길을 보고 싶다.

개발시대에 사라진 옛 물길과 지형을 복원하자!

연재필자 _ 임승빈 명예교수  ·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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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ungbi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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