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경은 안전한가?

글_오정학 논설주간(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라펜트l오정학 논설주간l기사입력2014-05-29

조경은 안전한가?


오정학 논설주간(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인디언들의 말달리기는 특이하다. 빠르게 달릴 때면 이따금 말에서 내려 지나온 길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말을 쉬게 하려는 것도 지친것도 아니다. 행여 너무 빨리 달려 자기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봐 기다려주는 것이라 한다. 영혼이 다시 몸에 들어왔다 싶으면 그때서야 또 달린다. 우리는 한동안 앞만 보며 달렸다. 얼마나 숨 가쁘게 달려온 근대화의 길이었던가. 그런데 너무 정신없이 달려오느라 미쳐 영혼을 챙기지 못했다. 세월호 사건을 보면 문득 우리 사회가 유체이탈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엔 다들 어쩌다 생긴 일로 생각했다. 그러나 가만 보니 그게 아니었다. 단순한 시스템 오작동이 아니었던 것이다. 당연히 앞으로도 또 일어날 수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갑자기 섬뜩해진다.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 원인을 “비정상적인 사익추구”에 두었는데, 이는 재독철학자 한병철이 “신자유주의”를 최종 지목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앵글로색슨 발 신자유주의가 공동체적인 가치를 얼마나 깊이, 얼마나 처참하게, 얼마나 위험하게 파괴하는지를 여러 각도에서 생생히 보여준다. 그동안 선장과 선원을 겨냥하던 여론은 이제 선박회사를 거쳐 마침내 해경을 정조준하고 있다.

 
겉으로 보면 선장과 선원들의 책임이 매우 크다. 그들은 얼핏 무사유 인간의 전형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저임금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무엇을 얼마나 기대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수명이 다 된 고물배가 수입되어 무리한 시설증축을 할 수 있었을까? 해경의 안전관리시스템은 왜 그리 허술했고 언딘이라는 민간기업에 모든 걸 의존해야 했을까? 풀리지 않는 세 가지 의문은 고용의 유연성, 규제 완화, 민영화라는 신자유주의의 핵심 전략과 직결된다. 비정상적인 사익추구심리는 극단의 효율성으로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하고자 시공간의 압축을 꾀한다. 그 결과 안전교육시간, 직원휴식시간, 화물의 안정적 적재시간은 모조리 시간낭비일 뿐이며, 빈공간이나 여유공간은 공간을 제대로 활용치 못하는 어리석은 짓이 된다. 그러나 잘못 압축된 시공간은 견디다 못해 마침내 가라앉아 버렸다.

 
세월호는 모두의 가슴을 시커멓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성찰과 반성이 없다면 제2, 제3의 세월호가 나타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비극으로부터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사람들에게 ‘반복’이라는 파국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조경은 어떠한가? 건축이나 토목과 달리 큰 구조물이 없어 당연히 대형사고의 위험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규모는 작을지언정 사고발생의 가능성은 곳곳에 숨어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이러한 위험이 줄어들 것 같지만,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지적처럼 문명의 발달은 오히려 더 큰 사고 발생의 가능성을 높인다. 이것은 인류가 녹색혁명으로 엄청난 식량증산을 이뤘지만, 생물종다양성은 오히려 크게 낮아진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조경분야 역시 갈수록 늘어나는 하이테크 시설과 첨단 자재, 복합적 공종 때문에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고 발생의 개연성이 늘고 있다.


앞서 살펴본 세월호 사건의 원인들은 조경에서도 종종 눈에 띈다. 먼저, ‘지나친 고용의 유연성’이다. 경직성의 반대말인 유연성은 본래 높은 상황적응력으로 급변하는 환경에 잘 대처한다는 긍정적 의미이다. 그러나 지나칠 경우 낱낱이 개체화되어 인적 연결망이 전혀 가동되지 않는 ‘허술성’으로 변한다. 조경계에서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만한 A라는 조경회사를 예로 들어보자(A는 이니셜이 아니다). 이 회사는 조경계에서도 비정규직이 많기로 유명했고 임금은 경영실적에 못 미쳤다. 당연히 직원들의 근속기간이 길지 않았다. 세월호 사건에서 보듯 이러한 고용조건은 기술자적 책임감과 의무를 확신하기 힘든 여건이다. 물론 경영을 위해 효율적인 인력운영은 항상 필요하겠으나, 경직성과 유연성의 접점을 잘 찾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 고용계약의 수준과 내용이 시공의 질과 무관하지 않으며 안전사고와도 관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과도한 규제완화’를 들 수 있다. 규제완화는 정부의 간섭과 통제 하에 놓여 있던 영역을 민간부문, 즉 시장경제에 맡기는 것을 뜻한다. 안전은 위험상황에 대해 ‘규제’라는 보호막을 갖고 있다. 따라서 안전과 관련된 규제 완화는 사실은 ‘안전기준완화’이다. 시나브로 안전기준이 완화되는 대표주자로 그린벨트를 들 수 있다. 도시의 무분별한 확산을 막고 허파 역할을 하는 그린벨트는 그동안 조금씩 풀려 이제는 최초 면적의 2/3만 남아있다. 여러 정책적 필요에 의해서겠지만 그린벨트의 환경생태적 기능이 줄어드는 것과 반비례하여 도시의 환경적 위험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황사에 이어 최근에는 미세먼지까지 가세하여 미래의 환경재앙을 경고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렇게 오히려 보호막을 벗고 있다.

 
한편, 도시 안에선 신체적으로 미성숙한 어린이들의 안전사고가 심상치 않다. 어린이 놀이시설 설치검사 통계를 보면(2013. 9월 기준), 안전검사에서 미검사, 불합격, 부분합격으로 검사를 미통과한 놀이시설이 10곳 중 4곳이나 된다. 그 탓인지 놀이터의 안전사고는 2008년 328건에서 2012년 1455건으로 급증했다. 이러한 현상은 놀이터의 안전관련제도에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전국의 유원시설 330여 곳 또한 마찬가지이다. 탑승물과 같은 기계장비는 늘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는데도 안전관리자 교육은 2년 전 법적 의무조항에서 빠졌다. 역시 ‘규제완화’라는 미명이었다.

 
셋째 ‘무분별한 민영화’이다. 지나친 고용의 유연성과 과도한 규제완화가 현재의 위험요인이라면, ‘무분별한 민영화’는 미래적 의미가 크다. 근대조경은 공공공원(public park)으로 시작하였기에 오늘날 공공성은 조경의 정체성을 특징짓는다. 그만큼 자본주의와 민족국가라는 2개의 큰 틀로 구성된 (서구의)근대에서 조경은 국가가 관할하는 대표적인 공적영역의 하나였다. 그러나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 체계에서 공원⋅녹지는 조금씩 관심의 사각지대로 몰리고 있다. 공원으로 지정한 뒤 예산 부족으로 조성하지 못한 많은 공원들이 2020년 공원일몰제에 걸리는데, 그 해법으로 민자유치와 같은 민간공원이 제시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불가피하고 상당부분은 수용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그렇게 될 때 공원의 공익적 기능과 안전성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2013년 이스탄불 탁심광장 시위 ⓒOsman Z. Ozmen 

 
도시에서 공원⋅녹지의 의미는 무엇인가? 미셀 푸코의 안전 개념에 기댄다면, ‘도시의 독기를 무화시키는 곳’으로 이해할 수 있으니 위험에 대비한 안전장치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공원⋅녹지는 이 역할에 부응해 관리될 필요가 있고, 그러기 위해 어느 정도의 공공성은 불가피하다. 그렇지 못할 때, 세균이 백혈구를 압도하듯 공원⋅녹지가 거르지 못한 독기가 도시로 전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조경은 재앙사회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파수꾼의 하나이다. 그 때문에 일본에서는 2008년 여름, 일본 시부야의 미야시타 공원 유료화 계획에 반대하는 모임이 발족되어 공원 사유화 반대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터키에서는 2013년 이스탄불 탁심광장 시위가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다. 게지공원을 없애고 쇼핑몰을 만들려는 계획에 환경운동가들과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시위는 전국적인 ‘공원 포럼’으로 발전했고, 게지공원은 공적영역 수호의 메카가 되었다. 그 만큼이나 공원의 사적영역화는 지구적으로 우려되고 있다.


울리히 벡은 현대 사회가 산업 사회에서 위험 사회로 전환하고 있다고 보았는데, 위험에 대한 성찰이 없어 짧은 시간에 위험이 반복될 때 그 사회는 재앙사회에 가깝다고 했다. 조경의 할 일이 많고도 많지만, 재앙을 막는 도시의 파수꾼 역할은 언제까지나 계속되어야 한다.

오정학 논설주간  ·  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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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jha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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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입니다. 농업사회-중상주의사회-산업사회-WTO-FTA로 이어지는 인류의 역사는 갈수록 복잡한 사회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복잡함은 하나하나가 단단히 옭혀있는 난마입니다. 불행하게도 한 칼에 해결할 수 있는 쾌도는 없다고 합니다. 복잡사회로 나아가는 21세기에 우리 조경은 어떻게 이 난마들을 풀어가야 할까요? 비단 안전의 문제인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시대를 거스를 수도 없습니다. 막 달리는 열차를 세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신호에 맞춰, 천천히 브레이크를 잡고 안전하게 서는 방법외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놀라 이리저리 뛰는 토끼보다는 끊질기게 추적하는 하이에나의 전략이 더 돋보일 수 있는 요즘입니다.
2014-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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