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조경의 ‘흥(興)’ : 생태로 버무려진 신명나는 조경 한 판!

김원현 논설위원(노아솔루션연구소 팀장)
라펜트l김원현 팀장l기사입력2016-06-07
새로운 도시건설 패러다임 - 생태 최적화(完)

조경의 ‘흥(興)’ : 생태로 버무려진 신명나는 조경 한 판!


글_김원현 팀장(노아솔루션연구소)

얼마 전 이야기다. 오늘은 특별한 외부활동이 없어 조신(?)하게 업무를 보고 있었다. 무언가 불안감이 엄습해왔지만 애써 외면하며 초점 없이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생각지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오늘 선임연구원께서 연구책임자로 있던 과제 발표에 다른 일정이 생겨 필자가 땜빵을 해야 한다는 연락이었다. 발표는 참 그렇다. 내가 앉아서 듣기는 편한데 일어나서 설명하는 게 어렵다. 발표장으로 가면서도 발표자료를 보고 또 봤다. 같이 간 연구원에게 묻고 또 물어보며 발표자료에 메모도 가득했다. 하지만 필자의 모습은 발표를 잘하겠다는 것 보다는 마치 야생에서 살아남겠다는 발버둥에 불과했다. “데드맨 워킹(Dead man walking)!”...사형수가 형장으로 걸어갈 때 영화의 한 장면처럼 필자는 발표회장으로 입장했다. 드디어 필자의 이름이 불려졌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내게 향한다. 그리고 필자는 온 세상이 그토록 새하얀지 처음 알았다. 의자도, 책상도, 바닥의 카펫도 모두 새하얗다. 필자를 보고 있는 사람들마저 완벽히 하얘졌다. 그렇게 필자는 하염없이 산화했다......

회사로 복귀하면서 뭔가 억울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열심히 준비했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것 같았는데, 왜 내겐 하얀 물체만 둥둥 떠다녔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무릎을 탁! 치게 되었다. 이 발표자료는 내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만들지 못하니 남의 얘기를 전달해줄 뿐이었고, 그러다보니 내가 해주고자 하는 얘기가 소위 ‘흥(興)’이 나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흥이 났다면 그 발표회장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었을 테고, 청중의 눈과 귀를 보다 내게 집중할 수 있게 했을 것이다. 나의 즐거움과 자유로움이 발표회장에서 날아다녔을 것이고, 그랬다면 난 이전의 발표보다 좀 더 청중들의 뇌리 속에 기억되는 발표자로 남았을 것이다.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하긴 내가 신나지 않은 발표를 과연 들어줄 이가 몇이나 될까?

‘흥(興)’은 국어사전에서 보면 ‘재미나 즐거움을 일어나게 하는 감정’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흥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참 재미와 즐거움을 선사해주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안을 더 들여다보면, 흥은 외부의 영향보다는 내부이자 본연에 집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흥의 요소는 ‘나 자신’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필자가 이곳에 지난 수개월에 걸쳐 주장했던 생태의 능동성과 최적화에 맞닿아 있다. 생태가 올곧은 방향을 갖고, 우리가 그토록 원하던 자생력을 가질 때 비로소 흥이 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은 걷잡을 수가 없어서 인간이 손을 대려고해도 쉽사리 무너지지 않을 것이며, 손을 대지 않아도 질서를 파괴하지 않는다. 생태의 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그 때가 바로 ‘극상(climax, 極相)’인 것이다.

조경이, 그리고 생태가 자생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이 ‘흥’이 필요하다. 이 흥을 어떻게 만들어내고 관리하느냐의 문제는 우리에게 달렸다. 적어도 생태자체를 위해서는 대단히 이기적인 ‘나 자신’에게 집중해야 하는 필요성이 있다. 즉, 현재의 환경을 이해하고, 상황을 파악하고, 중요성을 인식한다면 일단 해볼 만하다. 남의 발표자료라도 필자가 그 자료에 완벽히 동화됐다면, 그 흥은 넘치고도 남았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흥은 바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첫인상에서 청중들의 눈과 귀가 솔깃한 ‘시작’이 필요하다. 즉, 현재의 생태환경을 파악하고, 진단한 후에 가장 필요한 시작점 혹은 복원점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생태복원의 개념은 생태계 전체를 파악해서 통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복원하고자 하는 생태계의 가장 중요한 부분, 혹은 생태개체 하나에 우선 집중한다. 그것이 해결되면 다음은 생태가 우리에게 해답을 알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해서, 이 흥의 시작은 매우 중요하다. 이 시작점을 알고 해결할 수 있는 연구와 기술이 개발될 수 있다면, 그 다음은 나 자신이 흥을 내기만 하면 된다. 흥을 만들어내는 것의 가장 중요한 관점은 ‘집중력’이다. 순간적으로 집중할 수 있어야 흥의 세계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생태복원을 위해 문제가 된 생태개체를 파악하였다면, 단시간 내에 그 개체의 복원이 진행될 수 있도록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흥을 돋아서 활성화시켜줄 수 있다면, 그 이후에는 우리가 할 일이 없다. 이미 흥의 세계에서 청중들과 함께 신명나게 한 판을 즐겼을 것이고, 그 결과는 굳이 묻지 않아도 너와 나, 우리 모두가 인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조경계가 많이 어렵다고 한다. 그 문제점은 현장뿐만이 아니라 학계에까지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가 주장한대로 조경의 생태계에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는 ‘입지의 다변화‘다. 타 부처가 어떠했건 타 분야가 어떠했건 우리는 우리의 분야에 집중하고 확장하면 그것이 또 다른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조경, 그리고 생태(복원)의 또 다른 확장성은 방재라고 생각한다. 최근 재해가 빈번하고, 다양하면서도 대형화되는 추세에서 단순 방어체계인 토목적 관점이 아닌, 유연하고 탄력적이면서도 자생적인 생태방재는 우리 조경계가 가져야할 또 하나의 이자 이라고 생각한다. 선임연구원이 필자에게 발표를 넘겼건 아니건 상관없이 필자는 그 발표회장에서 청중들을 사로잡았어야 하고, 그 발표를 무사히 마쳤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그 자리, 그 위치에서 우리가 가진 그 도구들을 갖고 신명나게 을 갖고 말이다.
_ 김원현 팀장  ·  노아솔루션(주)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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