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잡초이야기

백운해 논설위원(LH공사 동탄사업본부 전문위원)
라펜트l백운해 전문위원l기사입력2016-07-26
잡초이야기



글_백운해 전문위원(LH공사 동탄사업본부)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에 이름 모를 잡초야
한 송이 꽃이라면 향기라도 있을 텐데
이것저것 아무것도 없는 잡초라네...
작년에 본사가 진주로 이사하면서 약 8개월간 진주에서 생활을 할 기회가 있었다. 점심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남강의 지천이 흐르는 강가를 산책하기로 하였다. 천변을 걸으면서 눈에 들어오는 많은 식물들... 흔히들 말하는 잡초들이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어찌나 살갑게 느껴지던지. 이때부터 그들과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나무기둥 아래 피어난 별꽃 : 비록 작은 꽃이지만 군락을 이루면 은하수처럼 아름답다. (2016. 4. 7)

잡초(雜草, Weed)! 잡초란 무엇인지 여러 가지 정의를 찾아보았다. 먼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잡초란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여러 가지 풀, 또는 산이나 들판에서 알아서 번식하는 잡다한 풀’ 정도로 알고 있는 듯하다. 위키백과에는 ‘잡초란 인간이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때와 장소에 적절하지 않은 식물을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말은 잡초는 때와 장소에 따라 잡초가 아닐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또한 산림청 임업용어사전에는 ‘잡초란 초본식물로서 묘포 또는 임지에 발생해서 임업상 해로움을 주는 것’이라 정의함으로서 다분히 인간중심적이고 주관적이며 직업적인 해석을 내리고 있다. 반면 미국의 시인인 랠프 왈도 에머슨은 ‘잡초란 그 가치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식물들’이라 정의하여 잡초의 가능성을 언급하였으며 정원사나 농부, 잡초전문가들은 잡초를 ‘농작물(crop)과 비교했을 때 그 가치가 조금 모자란 식물’이라 평가하고 있다. 영어권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은(undesirable), 원치 않는(unwanted)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잡초(weed)를 정의하고 있다.


하천 산책로변에 스스로(?) 자라난 뚱딴지(돼지감자) : 다른 식물이 있어야 할 자리를 점령하고 있다. 다음 날 가보니 모두 제거되어 있었다. 꽃도 예쁘고 사료, 약용, 식용이 가능한 식물인데... (2015. 6. 23)

상기 정의들을 보면 잡초라는 것은 다분히 인간의 입장에서 구분된 식물의 집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인간의 개입이 없다면 잡초라는 명칭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겠다. 즉 자연만을 본다면 잡초란 없다는 얘기가 된다. 물론 조금씩은 다르지만 듣기 좋은 말로 야생초, 산야초, 들풀, 자생식물 등으로 부를 수도 있겠지만 잡초란 이름이 더욱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왜일까?



하천 산책로변에 피어난 개망초 : 아름다운 이 꽃들을 앞으로는 희망을 여는 풀(開望草)이라 생각하면 어떨지... (2015. 7. 10)

맨 앞에 언급한 노래 가사로 돌아가 보자. 내가 이름을 모르는 잡초는 있을지언정 이름이 없는 잡초는 없다. 그런 잡초가 있다면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또한 잡초에는 작지만 아름다운 꽃을 가지고 있고 향기를 가진 종류도 많다. 게다가 대부분의 잡초는 식용이 가능할뿐더러 인간의 병을 치유하는 약재로서의 효능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노래 가사는 다분히 잡초의 부정적인 면만을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산책로 변에 피어난 큰개불알풀(봄까치꽃) : 올 봄에 꽃다지와 함께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사랑스런 잡초이다. (2016. 3. 30)

현실로 돌아와서 조경분야에서의 잡초의 정의를 내려 보자. 이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경에서의 잡초란 조경공간으로 조성된 지역 내에 뜻하지 않게 발생하여 직간접적으로 조경식물의 형태나 생육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초본식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보탠다면 아마 조경시설물의 내구성과 용도 및 작동에 영향을 주는 경우도 포함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가로변에 열식된 쥐똥나무를 뒤덮은 잡초들 : 수세가 약한 곳에 침범하여 수목의 생장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2016. 7. 12)

본격적으로 잡초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유익한 면을 알아보기로 하자. 먼저 새콩, 돌콩, 새완두, 살갈퀴 등 콩과식물은 녹비식물로서 토양을 기름지게 하고, 토끼풀도 질소고정을 통하여 토양의 성능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부수적인 장점뿐 아니라 조경인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잡초 자체가 직접적, 물리적으로 훌륭한 조경소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고 다양한 아름다운 꽃들, 특별한 형태를 가진 식물들, 강인한 생명력 등은 활용하기 나름이다. 장소에 따라 토끼풀 등은 이미 피복식물로 이용되고 있으며(그곳에서의 토끼풀은 이제 더 이상 잡초가 아닐 것이다), 개망초, 씀바귀, 고들빼기, 쇠별꽃, 봄맞이꽃 등도 군식을 통하여 훌륭한 관상식물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아예 조경공간에 이들 잡초들의 개화특성을 활용하여 장기간 연이어 꽃을 감상할 수 있고 형태를 감상하며 척박한 토양을 기름지게 만들 수 있는 잡초원(雜草苑)을 조성하는 것은 어떨까? 


낙동강변의 여뀌군락 : 다른 식물을 파종하였으나 예기치 않던 잡초가 장관을 이루었다. 이것을 잡초라 해야 할지... (2011. 6. 15)

또 한 가지, 이러한 잡초들의 특성은 인간기술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미국 북서부 사막지대에서 번식하는 잡초인 회전초(Tumbleweed)라는 것이 있다. 이 잡초는 가을바람에 둥글게 뭉쳐서 날아다니는 특성이 있는데 이러한 특성이 행성탐사로봇을 개발하는 기술자들에게 영감을 주어 이 잡초를 본떠 만든 로봇이 그린란드에서 시운전에 성공했다고 한다. 이 로봇은 바퀴달린 로봇이 접근하기 어려운 구릉과 계곡이 많은 화성탐사에 활용될 전망이라고 한다.


어느 음식점 모퉁이와 포장면 사이에 핀 흰씀바귀 : 그 아름다운 모습과 강인한 생명력에 경의를 느낀다. (2016. 4. 28)

개인적으로 잡초에서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점이라 생각하는 것은 이들이 보여주는 정신적인 면이 아닐까 한다(물론 이것도 인간의 관점에서의 생각이다). 최근에 읽은 이나모리 가즈오의 ‘카르마 경영’에 보면 마음을 수양하기 위해 필요한 여섯 가지 정진(精進)을 들고 있는데, 누구에게도 지지 않게 노력하라,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 날마다 반성하라,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라, 남을 위해 선행하라, 감성적인 고민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대부분의 항목에서 잡초의 품성이 느껴진다. 교만하지 않으면서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며 누구에게도 지지 않게 노력하면서 남을 위해 선행하는 잡초의 정신을 우리의 마음을 수행하기 위한 주춧돌로 삼으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강남역 테헤란로 가로수 아래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중대가리풀 군락 : 모조리 짓밟힌 흙의 공간에서의 유일한 녹색이었다. (2016. 7. 14)

요즘도 근무하는 현장 옆 산책로를 걸을 때면 작디작은 어여쁜 꽃,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의 잡초들을 만나기를 고대하며 아래만 보고 걷는다. 그들과의 행복이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한폭의 그림이 된 소리쟁이 : 자연석을 배경으로 그림이 된 잡초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올려본다. (2015. 6. 15)
_ 백운해 전문위원  ·  한국토지주택공사 동탄사업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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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baek@gug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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