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가 이어지는 어느 여름 밤. 아파트의 창밖에 서서 낮처럼 환한 숱한 불빛 속에서 저마다 헉헉거리는 도시유랑무리를 지켜보는데 귀에 익은 말들이 나를 TV 앞으로 이끈다. 이렇게 우리 도시의 여름밤이 무더운 까닭은 우리가 자연을 파괴하고 마음대로 도시를 건설한 대가이기에, 이 열대야를 벗어나는 길은 성능 좋은 냉방기를 틀려 힘쓰기보다 콘크리트더미 도시 안에 공원과 녹지와 나무를 늘리고 빗물침투시설을 늘려나가 지하수위를 높여 실개울에 물이 흐르게 하는 것이라고 어느 대학 조경학과 교수가 설명하고 있었다. 조경이 시민에게 주민에게 가까이 있는 동무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에겐 이런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가볍다.

2016년의 여름도 열대야, 폭염, 무더위, 가뭄이란 말을 남기고 서서히 저물어 간다. 신문을 펼치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티브이를 틀면 하루도 빠짐없이 나오는 고통의 말들이지만, 필자가 지내고 있는 천안 아산역 주변 배방에서는 열대야라는 말을 실감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배방에서 약 십리 정도 떨어진 천안의 백석이나 불당에서 사는 직원들은 열대야 때문에 고생했다고 하니, 우리 여름을 점령한 열대야도 곳에 따라 다르다는 것과 산·들·논·밭이 많은 농촌지역이거나 공원·녹지·개울이 많은 도시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열대야 현상이 심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학에서 조경학, 조경수목학, 공원녹지학 등을 강의할 때 조경, 조경수목, 공원, 녹지의 기능과 효과를 대체로 건축적 기능, 환경공학적 기능, 미적 기능, 건강 기능으로 크게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 가운데 수목의 광합성 작용과 그늘과 바람통로 등으로 도시 온도를 낮춰주는 (미)기후 조절과 땅속이나 조경수목에 빗물을 저장하여 지하수위를 높여주는 수분함양 효과가 바로 환경공학적 기능에 해당한다. 공원녹지 1㎡는 약 50~100리터의 물을 저장할 수 있으며. 1년에 5㎏정도의 먼지를 정화할 수 있고, 탄소동화작용을 통하여 산소를 생산하고 대기의 탄산가스를 흡수하며 이 과정에서 물을 증발시켜 주변의 습도를 약 10% 올려 주고 주변 온도를 2~3도씩 낮추어 준다.

 

이를 대학에서 학생에게만 강의하지 말고 온 국민이 열대야로 밤잠을 설치고 있을 여름밤 티브이의 뉴스시간에 나와 1~2분이라도 조경과 공원과 녹지와 나무와 빗물과 개울을 얘기해주는 조경가가 필요하다. 논과 밭의 벼와 고추가 빨갛게 타들어가고 도시의 내나 개울은 목이 말라 검고 허연 바닥을 드러낸 채 허덕일 때 지붕에 옥상정원을 만들고, 마당에 빗물저금통을 만들고, 공원과 녹지에 빗물침투시설을 하면 지하수가 많아져서 도시의 개울이나 내가 마르지 않고 가로수가 말라죽지 않는다고 실감나게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대안을 얘기하는 조경가가, 나아가 조경계의 정책화 노력이 매우 아쉬웠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전국의 강의실에서, 설계실에서, 건설현장에서, 삶터에서 조경가의 몫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실천해야 한다. 기본계획단계에서 광장과 운동장과 보행로 등 포장부위를 줄여야 하며, 조경포장설계에서 되도록 투수성설계기법을 쓰고, 반드시 지형조형설계를 적용하여 녹지면을 울퉁불퉁하게 오볼록으로 설계하여 빗물침투를 쉽게 하고, 빗물침투 및 배수설계를 적용하여 공원녹지에 떨어진 빗물이 외부로 빠져나가는 유출량을 최소화시켜야 하며, 포장 부위에도 녹음수를 배식하고, 녹지의 땅속에서 빗물침투와 심토층 배수시설을 적용하는 ‘조경기반공’에 온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공원녹지와 주택단지에서 타들어가는 조경수목의 목마름도 줄일 수 있다.

조경가가 두 발을 딛고 살고 있는 지역의 주민과 손을 잡고 마을만들기·공동체·도시재생의 협치과정에 함께 만나 삶을 쾌적하게 해주는 녹색도시만들기에 몸을 던져야 한다. 이런 정신으로 천안지역의 산·학·공공 조경가들이 힘을 모아 천안조경가회(회장 김남춘)를 9월 6일에 창립했다.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