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우리들의 조경이야기

주신하 논설위원(서울여대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
라펜트l주신하 교수l기사입력2018-01-04
이 글은 ‘조경사회보( 가을호)’에 실린 글을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우리들의 조경이야기



_주신하 교수(서울여대 원예생명조경학과)



80년대 학번 vs 2010년대 학번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2018년은 개인적으로는 조경학과를 입학한지 꼭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우리들의 조경이야기’라는 제목을 빌어 30년 전 제 이야기로 시작을 좀 해볼까 합니다. 사실 저는 조경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었습니다. 조경이 뭔지 잘 몰랐거든요. 조경은 2지망이었는데 입학 후에 슬슬 재미를 붙인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동기들도 전공에 대해 이해를 하고 입학한 친구들은 별로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점수에 맞춰 대학을 가는 분위기였으니까요. 하여간 당시에 재수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주변 분들이 조언(인지 참견인지는 모르겠지만)을 해 주십니다. 조경, 그거 앞으로 전망이 좋을 거라고. ‘전망 좋은 조경’, 참 많이 들어본 이야기이시죠? 그 말을 완전히 믿은 건 아니지만 재수는 확실히 하기 싫었던 것 같습니다. 간혹 좀 엉뚱한 말씀을 하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조명학과? 그거 건물 외부에 불 키는 거 말하는 거니? 앞으론 그런 조명도 중요할거야’, ‘그거 고래 잡는 거 배우는 거니?’ 요즘엔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은 아마 없겠지만, 당시만 해도 조경이 좀 낯설고 어색한, 그렇지만 막연한 희망을 가진 그런 분야였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공부를 할 때에도 전공에 대해서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수업을 빼먹기도 일쑤고. 어수선한 정치적 상황 때문에, 또는 대학의 낭만을 위해서 공부보다는 다른 곳에 신경을 썼던 경우도 많았죠. 지금 생각해 보면 대학생이란 신분이 정말 큰 특권이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아마 그런 것이 가능했던 이유가 졸업 후에 사회진출에 대한 고민이 적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80년대부터 지속된 경제성장의 덕으로 건설분야에는 늘 기회가 많았습니다. 건축, 조경 분야는 늘 일손이 부족한 상황이었죠. 아직 자리 잡지 못한 조경분야에 대한 위상이 문제였지(당시에는 학생으로 그런 생각도 못했습니다만) 일자리를 찾는 것에 대해서는 별 걱정이 없었던 시기였습니다.

요즘 저는 대학에서 입학사정관이라는 감투를 쓰고 대학에 지원한 고등학생들을 만납니다. 학생생활기록부와 자기소개서를 읽으면서 학생들이 얼마나 입학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는지 실감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기록들이 다 글자그대로 믿을 수 있는지는 또 다른 이야기긴 합니다만, 요즘 고등학생들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대학입학을 준비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학생생활기록부에는 재학기간 동안 읽은 책들도 꼼꼼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책의 제목은 물론이고 간단한 책의 내용, 상세히 적힌 기록부에는 그런 책을 읽고 학생의 진로를 어떻게 결정하게 되었는지 이야기까지 적힌 것들도 있습니다. 조경에 관심 있는 학생들의 기록부에는 ‘타샤 튜더의 정원’ 같은 비교적 대중적인 책도 있고 ‘텍스트로 만나는 조경’과 같은 조경 입문서도 눈에 띕니다. 좀 무리(?)를 한 학생들의 기록부에는 ‘현대 조경설계의 이론과 쟁점’ 같은 어려운 책도 간혹 있습니다. 요즘 조경학과에 들어오려면 이 정도 책은 읽어야줘야 하는 거지요.
어렵게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습니다. 높은 등록금에 대한 걱정과 졸업 후 진로에 대한 불안 때문에 늘 좌불안석입니다. 학교 성적도 잘 관리해야 하고 아르바이트도 병행해야 합니다. 영어점수도 받아야 놓아야 하고, 자격증도 따야 합니다. 어학연수나 배낭여행도 일종의 스펙입니다. 그런데 또 이런 저런 이유로 휴학을 하게 되면 되면 나중에 취업에 불이익은 없을까 고민도 됩니다. 졸업 후 취업준비 기간이 길어지면 새로운 구직을 할 때 문제가 되지 않을지 걱정이 태산입니다. 입학 후에도 여전히 뭔가를 계속 준비해야만 하는 상황인 것이죠. 그래서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라는 충고는 학생들에게 사치스러운 것으로 들리는 것 같습니다. 


하늘에 별따기, 조경기사 자격증

조경학과를 졸업한 학생들이 모두 조경분야로 진출하는 것은 아니지요. 몇몇은 조경분야로, 또 몇몇은 조경과 관련이 있는 인접분야로, 또 다른 몇몇은 조경이 아닌 다른 분야로 진출합니다. 어떤 학생들이 조경분야로 진출할까요? 물론 입학 때부터 조경에 대한 관심이 높은 학생들이 그렇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관심이 많은 분야는 더 많은 정보를 접하게 되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점점 깊이가 깊어질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보통은 그런 학생들의 수가 다수는 아닙니다. 의외로 조경분야로 진출하는 학생들의 상당수가 전공분야에 대해서 잘 모르다가 공부하면서 관심이 늘어나는 경우라고 할 수 있지요. 막연한 호기심이 관심으로 이어지다가 진출분야로 연결되는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칭찬은 큰 동기부여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수님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거나 공모전에 출품했다가 상이라도 받게 되면, 그 학생은 이 분야가 나한테 잘 맞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잖아요.
기사자격증 취득도 이와 비슷한 효과가 있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던 과목만으로는 내가 조경에 대해서 뭔가 알아가고 있는 건가하는 의문을 갖는 학생이 상당히 많습니다. 정말 이 정도 지식으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인 거죠. 상황이 이러니 기사 자격증은 학생들에게 큰 자신이 됩니다. 국가에서 그 분야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을 공인해 준 셈이니까요. 
그런데 요즘 조경기사 시험은 ‘조경고시’라고 할 만큼 어렵습니다. 2014년에는 역대 최저치인 6.1%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61%가 아니라 6.1%입니다. 30명이 있는 학과에서 모든 학생이 응시했을 때 2명이 안 되는 정도만 합격하는 수준입니다. 다른 종목 합격률이 20~30% 정도를 유지하는 것과 비교하면 정말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 합격률이 조금씩 상승하고 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올해 초 조경학과 학과장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지적이 되었습니다. 지나치게 어려운 조경시험이 학생들의 조경분야 진출을 가로막고 있다는 의견이었지요. 분명히 뭔가 조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선 기사시험의 과목 수를 조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안 그래도 조경분야가 폭이 넓어 공부할 양이 많은데 6개 과목은 너무 큰 부담입니다. 현재 6개 과목으로 구성된 필기시험을 5개 정도로, 더 가능하다면 4개 정도로 줄이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관련 분야 교수님과 전문가들이 분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만, 그런 결과로 학생들이 큰 어려움을 처하게 되는 현실은 분명히 뭔가 문제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각 과목별 출제범위를 한정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학회에서 발간한 교재와 과목별로 몇 개씩의 부교재를 정해서 그 범위 내에서 출제를 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조경기사 자격증은 일을 할 수 있는 기초를 갖추었는지를 검증하는 시험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기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갖춘 학생들에게 자격을 부여하는 시험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응시한 학생들을 떨어뜨리기 위한 시험이 되면 안 됩니다. 왜 조경기사를 응시하는 학생들이 동의보감에 나오는 식물의 이름을 외워야 하는 건가요? 출제나 문제검토를 하시는 분들, 그리고 시험을 관리하시는 분들까지 이런 상황인식을 같이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차원에서는 최근 자리 잡아가고 있는 NCS 체계를 자격시험과 연동하는 방식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필요한 과목을 수강한 학생들에게 자격을 부여하는 방식은 암기위주의 기사시험을 대체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경의 미래를 이끌어야 할 학생들에게 조경분야로 잘 인도하는 것은 기성세대에게 중요한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기사자격증은 졸업 후 조경분야로 진출할지 말지를 고민하는 경계부에 있는 학생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조경분야에 인재가 부족하다는 걱정을 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우선 조경기사 시험부터 개선하는데 힘을 실어주셔야 합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기사시험에 대한 푸념이 길어졌습니다. 저도 이 문제에 대해서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 앞으로 힘을 보태도록 하겠습니다.


조경 알리기에 나서야 할 때

제가 대학을 입학할 때부터 지금까지 조경은 40년 째 계속 ‘전망 좋은’ 상황입니다. 전망이 좋다는 건 다행이긴 합니다만, 40년째 유망주라는 건 어째 좀 많은 아쉬움을 갖게 합니다. 그 동안 좋은 경기에만 편승해서 경쟁력을 못 갖춘 것은 아닌지, 새로운 인재발굴을 위한 노력을 못한 것은 아닌지, 사회적인 변화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최근 조경분야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잘 살펴보면 대부분 조경분야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설계비나 공사비 책정의 문제, 정책의 우선권의 문제, 인접분야와의 갈등의 문제 등. 가깝게는 발주처가 생각하는 조경분야의 위상, 크게는 일반 대중들의 조경에 대한 인식이 우리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는 저는 조경 알리기가 우리가 가장 크게 힘써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경이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은 조경계 내부에서만 이야기되어서는 안 됩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조경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해서 대외적으로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조경교육도 필요하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조경 알리기 작업도 중요하겠지요. 저도 이런 생각으로 ‘어린이조경학교’와 ‘시민조경아카데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런 ‘교육으로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을 개선할 수 있겠어?’라고 반문하실 수도 있겠지요. 즉각적인 변화와 반응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끊임없이 조경을 알리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40년 전부터 꾸준히 이런 일이 진행되었더라면 지금쯤은 많이 달라져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노력이 없다면 10년, 20년, 40년 후에도 여전히 ‘전망만 좋은’ 조경분야로 남아 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2028년쯤에는 조경이 전망 좋은 분야이기 보다는 ‘인기 높은’ 분야가 될 수 있도록 다 같이 노력해 봅시다.
_ 주신하 교수  ·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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