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곧 예술이다, ‘우리들의 정원’展

[인터뷰] 안마당 더 랩 오현주, 이범수 소장, 이상아 실장 - 1
라펜트l기사입력2021-09-07

 

2021년 봄, 소다미술관 야외전시관은 정원이 됐다. 소다미술관은 팬데믹 시대에 미술관이라는 용도에서 잠시 벗어나 지역민이 필요로 하는 공간을 구현하고 그곳에 예술을 얹어 공동체가 함께 힘든 시기를 견뎌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자 ‘우리들의 정원’ 전시를 마련했다.

정원을 조성한 안마당 더 랩 (오현주, 이범수, 이상아, 김명천, 이주현, 백찬민)은 이번 전시가 “정원이 대중에게 다가가는 일종의 문화적 접근이었다”고 설명한다. 이들에게 정원 전시는 어려운 시기에 대중에게 기여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작업이기도 했고, 클라이언트의 의견이 많이 반영돼야 하는 일반적인 프로젝트와 달리 자신들의 생각을 공간에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는 작업이기도 했다. 

‘일분일초’라는 작품을 회사 이름으로 출품한 만큼 설계부터 시공까지 전 직원의 손길이 닿았다. 설계를 하는 과정에서 각자가 생각하는 예술작품으로서의 정원에 대한 치열한 논의들이 이어졌고, 시공을 할 때는 드라마틱한 상황들이 펼쳐졌다. 이들은 이 모든 과정이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정원처럼 참여할 수 있었던 ‘재미있는’ 과정이었다는데 입을 모았다.

“정원은 소유주에 생각과 가치관을 존중하는 공간으로 만드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에 저희의 생각이 담긴 공간을 만든다는 것이 어려운 지점이 있다는 면에서 전시에 대한 갈증은 항상 있었던 것 같다”는 이범수 소장. 이들에게서 작업과정과 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자연이 곧 예술이다

소다미술관으로부터 전시 제안을 받고 이들은 고민에 빠졌다. ‘정원전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일반 조경과 어떤 차이를 두어야 할까. 설치미술처럼 시설물이 들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가 하는 작업을 과연 미술관에 전시될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참을 생각하다보니 결국은 자연 자체에 집중하게 되더라. 자연의 변화, 꽃이 피고 지고, 빛에 의해서 그림자가 졌다가 물러나는 것 자체가 예술일 수 있겠다”

나아가 “일상에서 만나는 조경공간에서는 다양한 재료를 조화롭게 배치하기 때문에 재료 자체에 하나하나 집중해서 보기 어렵지 않은가? 그렇다면 각각의 재료들을 분리해 자연물 하나하나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면 그 또한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러한 생각이 가능했던 것은 소다미술관이 주는 공간의 독특함도 한몫했다. 찜질방으로 계획됐던 건물은 입지조건의 변화로 공사가 중단된 채 방치되다 미술관으로 재생된 터라, 야외전시장은 콘크리트 벽으로 공간이 구분된 미완의 모습 그대로였던 것이다. 그래서 ‘숲’이라는 콘셉트 아래 각 공간마다 ‘나무’, ‘돌’, ‘풀’이라는 테마를 부여하고 재료를 단순화함으로써 콘크리트 벽과 대비돼 재료 자체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도출해냈다.


소다미술관 야외전시장의 독특한 공간구조

야외전시장의 총 네 개의 공간 중 세 개의 공간에 정원이 들어섰다. 공간의 테마는 현장의 상황에 따라 부여됐다. 그림자가 드리우는 숲 같은 공간에서는 ‘나무’를, 해가 따스하게 드는 공간에서는 ‘돌’을, 바람이 가장 많이 부는 공간에서는 ‘풀’을 느낄 수 있다.

온몸으로 드러내는 일분일초의 식물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나무를 따라가다 보면, 소사나무로 이루어진 숲과 마주하게 된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소사나무의 단단한 가지는 천장 끝까지 뻗어 있다. 가지의 여린 잎은 햇살을 맞으며 다양한 그림자로 콘크리트에 시간을 그린다. 숲을 지나 징검다리를 건너면 자연의 장엄한 세계를 만나게 된다. 돌은 시간의 흔적을 드러내며 공간 안에 펼쳐져 있다. 단단한 돌 틈 사이에 피어나는 초화는 자연의 균형을 보여준다. 돌을 지나면 풀의 향연이 펼쳐진다. 꽃은 그들의 시간으로 피고 지며 성장해 나간다. 정원 가장 깊은 곳에서 풀들은 생명력 있는 몸짓으로 공간의 리듬을 만들어 나간다. 관객은 동선을 따라 나무, 돌, 풀에 집중된 공간을 순서대로 만난다. 콘크리트 벽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열려있는 창문과 문을 통해 경계가 모호한 야외 전시장의 특성을 살려, 자연 본연의 분위기를 충실히 담아내면서도 어느 지점에 서면 세 요소가 겹쳐지는 조화로운 정원을 만나게 된다.
-작품설명 중

“재료 본연의 물성과 분위기를 전달하고 싶었다. 보시는 분들이 ‘아, 이것이 돌의 분위기구나’, ‘나무의 분위기는 이렇구나’ 느낄 수 있도록. 자연재료들이 햇빛과 바람, 빗방울과 만나면  공간의 분위기는 또 달라진다. 극히 짧은 시간을 나타내는 일분일초마다 정원은 변화하고 있으며 그 찰나의 시간마다 분위기를 만들어간다. 공간을 찾는 사람들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과 교감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개개인의 각기 다른 경험들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작품명인 ‘일분일초一分一秒’는 1분 1초라는 짧은 시간에 동이盆(분)와 풀草(초)이라는 자연의 의미를 더한 개념이다.






5월 비 오는 날의 정원


현장은 극적이다 이 또한 예술이지 않을까

정원은 고요하지만 조성하기까지의 과정은 가히 영화라 할 수 있을 만큼 다이내믹하다. “저희 회사의 큰 장점이자 단점이며 가장 잘하는 것은 작은 일에도 항상 의견충돌과 조율의 과정이 있다는 것”이라는 이상아 실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각자가 생각하는 ‘숲’의 이미지가 각양각색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치열했던 설계과정의 대부분은 서로가 각자의 생각을 설득하고, 그것을 하나로 모으는 시간이었다.

오랜 시간 공들여 나온 설계안은 그만큼의 힘을 갖는다. 시공현장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요소들의 길잡이가 되기 때문이다. 5일 안에 빠듯한 예산 안에서 시공을 맞춰야 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시공현장에 집중하다보면 설계단계해서 고심했던 전체적인 맥락을 놓치기도 한다. “여기 나무 하나 두면 어때?” 이 한 마디로 식재된 소사나무는 볼수록 어색해 다음날 결국 다시 들어냈던 경험이 그렇다. “결국은 본연의 설계로 되돌아오게 된다. 현장에서의 순간의 선택이 얼마나 설계를 뒤집을 수 있는가에 대해 다시금 깨닫게 했다”고 이범수 소장은 회고한다.

“저희는 설계의 중요성을 굉장히 크게 생각하고 있다. 설계를 긴밀하게 잘 했을 때, 현장에서는 설계만 믿으면 된다는 것이 저희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안 풀릴 땐 설계대로 해’라는 것이 입버릇이기도 하다” 

“다시 설계하라고 하면 못 한다. 이 공간에는 이 설계가 최적안이라는 믿음이 있다”



8월 빛이 강한 날의 정원


8월 맑은 날의 정원

백당나무에 대한 에피소드도 있다. 정원은 대부분 규모가 작아 필요한 나무의 수는 적은데 몇 그루만 파는 곳은 별로 없다. 우리들의 정원에는 필요했던 백당나무는 한 주였기에 오가며 나무만 보고 다녔지만 결국 구하지 못한 채 시공이 시작됐다. 빠듯한 일정 속 구성원 중 누구 한 명이라도 나무를 보러 다닐 시간 없이 몰두하다 준공 이틀 전까지 왔을 때, 극적으로 이범수 소장의 눈에 미술관 부지의 나대지에서 나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적합한 나무를 찾아낸 것이다. 미술관과 협의 후 나무를 캐면서 나무 하부에 있던 풀들도 그대로 가져왔다. 심지어는 낙엽까지 주워 옮겨 나무가 원래 살고 있던 숲을 그대로 재현해내기도 했다. 전시된 돌들에 붙은 이끼도 미술관 영역의 나대지에서 떼어 왔다. 미술관의 자연을 옮겨온 것이다.

야외전시장이 인공지반이라 나무들이 10㎝의 토심에서 6개월이라는 긴 전시기간을 버틸 수 있도록 분을 만들어 마운딩을 하기도 하고, 돌 하나 두는데도 좁은 공간에 중장비를 들여 5㎝씩 각도를 돌려가며 두었다. 그러면서 ‘정원 시공행위’ 자체가 예술작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설계부터 시공까지 세심하고 꼼꼼하게 작업하는 것. 오현주 소장은 “이를 자부해야 한다고 해야 하나, 사실은 저희 모두가 집요하기에 그렇게 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결국에는 돌만 있어도 정원이고 풀만 있어도 정원이더라. 자연재료 그 자체도 예술이자 정원이고, 문화가 담겨 있다”

이렇게 탄생한 ‘우리들의 정원’의 관람 포인트는 작품명이 그렇듯 ‘시간’에 있다. 시간대별로 다르고, 날씨마다 다르다. 한 번 구매한 티켓으로 재관람이 가능하니 전시가 끝나는 10월 31일까지 재료가 시간과 만나 시시각각 변화하는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우리들의 정원展 작업과정 / 소다미술관 제공
글·사진_정철언 녹색기자 · 한양대 공학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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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_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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