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우리는 봄을 맞을 자격이 있을까
김수봉 논설위원(계명대학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라펜트l김수봉 교수l기사입력2019-04-18
우리는 봄을 맞을 자격이 있을까
글_김수봉(계명대학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은 그의 장편시 ‘황무지’의 앞 구절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로 봄비를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주었다.
나무에게도 4월은 잔인한 달이다. 이즈음 산의 나무는 산불에 힘들고 도시의 나무는 잔인한 인간의 가지치기에 힘들다. 전기톱을 들고 도시의 나무에게 가해지는 무자비한 인간들의 야만적인 형벌을 보고 있으면 내가 마치 엘리엇이 노래한 생명이 깃들지 못하는 문명을 상징하는 황무지와 같은 도시에 살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4월의 가로수에게 봄을 허락하라
가로수 관련 연구에 따르면 도시의 가로수는 직사광선을 차단하고, 겨울철에는 날씨가 쾌청한 날에 기온이 하강하는 방사냉각현상에 의한 기온저하를 완화하여 도시기후를 개선한다. 가로수는 증산 과정을 통하여 뿌리에서 끌어올린 수분을 수증기 형태로 방출하면서 기화열에 의해 열을 빼앗아 여름철 도시의 기온을 낮춰준다. 대표적인 도시의 가로수종인 양버즘나무는 하루 평균 잎 1㎡당 664㎉의 대기 중의 열을 제거함으로 가로수 한그루가 하루에 0.6ℓ의 수분을 방출한다. 이것은 하루에 15평형 에어컨 8대를 5시간 가동하는 것과 같은 효과와 같다고 한다. 아울러 가로수는 광합성 작용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신선한 산소를 공급하고, 도시공해의 주범인 SO2와 NO2 및 분진을 흡수·흡착하여 제거하는데 잎의 면적이 1,600㎡ 인 느티나무 1그루는 쾌청한 날씨에서 1시간당 1,680g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함과 동시에 1,260g의 산소를 생산한다. 느티나무가 하루에 8시간 광합성 작용을 할 경우 년 간(5월~10월) 이산화탄소 2.5톤을 흡수함과 동시에 1.8톤의 산소를 방출하는데 이는 도시민 7명이 연간 필요한 산소량에 해당된다. 한편 가로수가 없는 도로에서는 공기 1리터 중 10,000~12,000개의 분진이 발견되었으나 가로수가 있는 지역의 경우 분진의 양은 1,000~3,000개로 감소한다. 또 가로수 줄기 아래로 분진이 떨어지는 양은 가로수가 있는 곳이 가로수가 없는 장소에 비해 20%이상 적다고 한다. 가로수는 자동차와 회색 인프라로 인해 황무지로 변해가는 우리의 도시를 부활시키느라 온몸을 바쳐 희생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들은 도시의 가로수에게 전기톱을 들고 가지치기라는 야만적인 행위로 4월을 가장 잔인한 달로 만들고 있다. 광주광역시의 경우만 해도 작년 한해 시 예산 27억을 투입하여 3만 5천 그루의 가로수를 대상으로 가지치기를 시행하였다고 한다. 다른 지방자치단체도 광주시와 대동소이하리라고 생각한다.
4월 식목일을 즈음하여 필자가 신문과 방송매체와 인터뷰했던 주요 주제는 가로수 ‘가지치기’ 외에 은행나무의 ‘수난’이 있다. 은행나무는 신생대에 번성하였던 식물로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린다. 은행나무는 암수딴그루이며 낙엽침엽교목이며 은행나뭇과로는 유일한 식물로 보기와는 달리 고독한 나무다. 은행나무의 고향은 중국 절강성에 위치한 천목산이다. 은행은 은빛살구라는 뜻이며 열매가 살구나무열매를 닮았기 때문이다. 잎이 오리발을 닮아서 ‘압각수’, 할아버지 때 심은 나무의 열매를 손자 대에 이르러서 따서 먹는다고 ‘공손수(公孫樹)’라고도 부른다. 껍질을 벗기면 열매의 육질이 흰색이라 ‘백과’라고도 한다. 서양 사람들은 오리의 물갈퀴처럼 생긴 은행잎을 어린 여자아이의의 양 갈래 머리처럼 보여서인지 은행의 학명(Ginko biloba L.)의 종명인 ‘biloba’는 ‘두 갈래로 갈라진 잎’을 의미한다. 은행나무는 20~30년 지나 열매가 맺히는지를 살펴야 암나무인지 수나무인지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은행나무 가로수는 해마다 가을이 되면 암나무에만 열리는 은행이 길에 떨어져 악취를 풍긴다는 민원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다. 지자체들은 은행나무 열매가 떨어지기 전에 열매달린 가지를 잘라내느라 분주하고, 이보다 앞서 4월이면 은행나무에 열매가 열리지 않게 무차별 가지치기를 한다. 여러 도시의 녹지 담당부서에서는 보행자가 많이 다니는 횡단보도나 지하철 출입구, 버스 정류장 주변에 있는 은행나무 암나무를 수나무로 바꿔 심고 있다. 방송매체와의 인터뷰를 보면 대부분의 일반 시민들은 ‘길 지나다닐 때 은행나무 열매에서 너무 냄새가 심하게 난다. 은행 열매를 빨리 털어내든지 아니면 나무를 없앴으면 좋겠다’는 주장을 매년 되풀이 한다. 은행나무 열매 악취소동으로 모 지자체에서 은행 암나무를 수나무로 교체한다는 소식에 어느 교수는 생명에 대한 관료적이고 폭력적인 행정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었다. 그 교수는 은행나무를 마구 자르거나 베어낼 것이 아니라 열매 수거함을 두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열매를 줍는 즐거움 준다던지 혹은 동네 초중고 학생들이 방과 후 특별 활동을 통한 가을걷이나 열매의 중금속 잔존 여부를 실험하게 하는 등의 방안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기심으로 가득한 주민의 ‘민원’이 가지치기나 수종 교체의 원인이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71년 서울특별시는 대기오염에 잘 견디고 가을에 운치가 있는 은행나무를 시목(市木)으로 정했다. 우리의 도시에서 은행나무를 가로수로 많이 심은 이유는 나무에 벌레가 생기지 않아서 가로수종으로 적절하였고 그 열매는 사람 몸에 좋다고 하여 예전부터 사랑을 받아 온 나무였기 때문이다. 2017년 말 통계에 따르면 서울시 가로수 30만6,972그루 중 은행나무가 11만1,791그루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양버즘나무(6만6,183그루)가 2위, 느티나무(3만5,410그루), 왕벚나무(3만2,134그루), 회화나무(7,876그루)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은행나무와 플라타너스 비중은 민원으로 인해 점점 줄어들고 꽃이 화려한 왕벚나무와 이팝나무는 그 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은행나무는 공자의 행적과 관련이 있는 나무다. 공자가 학문을 가르치고 배우는 장소를 행단(杏壇)이라고 하며 공자가 그 위에 앉아서 강의를 하고 제자들이 그 곁에서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교의 교목도 은행나무이고 일본의 도쿄대학(東京大學)과 오사카대학(大阪大學) 그리고 우리나라 성균관대학교의 학교 로고에 보이는 나무도 다름 아닌 은행나무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그들의 정원에 은행을 심고 일본과 한국의 대학 캠퍼스에 은행나무를 심은 이유는 아마도 ‘대학자인 공자의 행적과 사상을 상기하고 학행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공자의 가르침에 대한 존중과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예전부터 사랑 받아 왔던 은행나무가 우리의 도시에서는 무참히 잘려나가고 있다. 만약 엘리엇이 오늘날 이 도시의 가로수가 받는 수난을 보았다면 ‘더 이상 잔인할 수 없는 행위’라고 하지 않았을까? 조경은 이 황무지와 같은 도시에 생명을 부활시키는 도구다. 조경의 매개인 도시의 가로수가 더 이상 야만에 의해 희생당하는 일이 없도록 방치하여서는 안 된다. 조경은 그 야만을 막고 ‘환경과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가치를 앞세워 죽어가는 도시를 부활시켜야 한다. 생명에 대한 각성이 없는 사람들이 제기한 ‘민원’으로 아직 고통스러운 겨울을 보내고 있는 이 도시의 가로수에게 우리 조경이 부활의 봄을 찾아 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가 봄을 맞을 자격이 있다.
- 글·사진 _ 김수봉 교수 · 계명대학교 생태조경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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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kim@k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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