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하듯 공간을 연습해볼 필요가 있다”

[인터뷰] 박영석 플레이스온 소장
라펜트l전지은 기자l기사입력2022-04-14
서울시는 대한항공 소유였던 서울 송현동 부지를 임시 개방해 시민들이 일상의 휴식과 다양한 문화예술 경험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제공하고자  ‘송현동 부지 임시활용방안 시민 아이디어 공모전’을 실시하였다.  박영석 플레이스온 소장의 ‘그라운드6: 여섯 가지 가능성의 실험과 기록’이 당선됐다.

본격적 공원화에 앞서 2024년까지 시민들에게 임시 개방될 송현동 부지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그리고 공원화되기 전, 한시적으로 공간을 활용하는 것에는 어떠한 가치와 의미가 있을까?
박영석 플레이스온 소장


‘송현동 부지 임시활용방안 시민 아이디어 공모전’ 최우수상으로 뽑혔습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대학생 때부터 송현동 부지 근처를 지날 때 마다 앞으로의 쓰임이 궁금했고, 여러 가지 상상을 하곤 했습니다. 틈틈이 메모해둔 아이디어들을 성기게 엮었는데, 의미있게 해석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당선작 ‘그라운드6:여섯가지 가능성의 실험과 기록’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그라운드6: 여섯 가지 가능성의 실험과 기록>은 이 공간을 ‘일시적으로 놀려보자’는 데서 시작합니다. 임시활용 기간 동안 다양한 장소 실험을 통해 공간적 가능성을 타진하고, 이를 기록해 차후 활용 방안을 수립하는 것이 주요 골자입니다. 다만 주변 지역과의 공간적·기능적 연계를 고려해, 여섯 개의 공간으로 분할하고 임시활용 기간 동안 도시적 유희를 경험할 수 있는 키워드를 제시했습니다.

더불어 이러한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과정에서 총괄 운영단체를 위시한 세부 프로그램/공간별 운영자를 모집해, 여섯 개의 콘텐츠들이 서로 연결되거나 병합되거나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장면을 꿈꾸었습니다. 또한 서울시와의 소통 창구에 시민 서포터즈와 전문가 자문단을 연계해, 시민 참여를 촉진하고 운영 결과물의 고도화를 통해 <그라운드6>의 운영과 아카이브에 도움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송현동 부지 임시활용방안 시민 아이디어 공모전’ 최우수작 ‘그라운드6:여섯가지 가능성의 실험과 기록’


송현동 부지는 2024년 본격적인 공원화 추진을 앞두고 있습니다. 전국의 다양한 공간들이 공원 조성을 앞두고 공간을 한시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이 모색돼야 할 것입니다. ‘공원 조성’을 앞두고 한시적으로 공간을 활용하는 것에는 어떠한 가치와 의미가 있을까요?

한 사람 또는 일련의 전문가 그룹이 당대 가장 완벽한 공공공간을 계획할 수 없다는 전제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도시, 특히 서울의 경관은 굉장히 다양한 층위의 공간적 욕망과 기대, 충돌과 협력 속에서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한편 공원이라는 오픈스페이스가 계획되고 시공되는 과정은 제법 오래 걸립니다. 더불어 최대 다수의 바람을 안고, 완성도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을 조직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만, 대개는 주어진 예산에 맞추어 일방향의 프로세스로 민원을 해치우듯 조성해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글을 쓰기 전에 메모하듯이, 그림을 완성하기 전에 스케치를 하듯이 공간을 연습해볼 필요가 있다고 믿습니다. 요컨대 공간의 잠재력과 문제를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는 방법 중 하나는, 가볍고 유연한 계획으로 느슨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는 것입니다. 프로그램 운영이라는 말도 무겁게 느껴진다면, 여러 주체들이 다채롭게 놀아보는 기회의 제공으로 다시 이름 붙여볼 수 있겠습니다. 송현동뿐 아니라 최근 언론에서 집중 조명을 받고 있는 용산공원 부지에 이르기까지 도심 공공 공간을 채워나가는 최선의 방안은 ‘과정’에 있고, 그 과정의 시작에는 실험과 연습이 있어야 합니다.

송현동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텃밭입니다. 어떤 씨앗을 뿌려 어떤 결실을 맺을지 저도 무척 궁금하고, 앞으로도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자 합니다.


플레이스온은 ‘놀이환경 연구 및 생태 놀이터 조성’, ‘도시문화 및 지역활성화 컨텐츠 기획과 수행’, ‘지역 의제 공론화 및 협치 네트워크 연구 및 추진’, ‘도시 환경의 변화와 공공공간 설계 전략 연구’, ‘오픈스페이스 및 특화 공간 설계와 시공’, ‘지역 기반 문화예술컨텐츠 기획과 수행’ 등의 정말 다양한 사업들을 하고 있습니다. 플레이스온은 어떠한 회사인가요?

합법적인 것은 다 합니다. 최근에는 도시 경관 진단이라고 이름 붙인 일종의 종합 컨설팅 작업과 공공 공간의 공론화 과정 설계 및 시행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즐겁게 참여했던 작업으로는 국민 300명을 모시고 ‘용산공원 국민참여단’을 운영했던 것이 떠오릅니다. 참여그룹, 연구그룹, 지원그룹, 소통그룹 등 그룹별 역할을 기획하고 운영한 바 있습니다.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Open Space Open Artwork: 공공예술로서의 조경’이라는 월례 온라인 세미나를 운영한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최근 조경계에서 다소 조명 받지 못했던 이슈인 ‘예술과 조경 사이의 접점’을 문학, 조각, 기억, 전시, 워크숍 등 다섯 가지 키워드로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세미나 내용은 유엘씨 프레스(ULC Press) 홈페이지에서 텍스트와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엘씨 프레스는 출판 부문 임프린트 브랜드로서 밀레니얼 연구자의 시선에서 도시 경관을 기록하는 잡지와 도서를 매년 3권씩 발행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도시 문화 콘텐츠 기획(<공원산책>, <서울정원스튜디오>), 놀이 환경 조성(놀이터 조성 워크숍, 놀이터 재생 프로그램), 지역 기반 예술 콘텐츠 제작(엄마드라마터그, 마을드라마), 공공 공간 설계 전략 연구를 위한 세미나, 도시 경관의 미래상 및 조경의 새로운 역할론 모색을 위한 특강, 오픈스페이스 및 특화 공간 설계와 시행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저촉되지 않는 것은 다 합니다(웃음).


소장님이 생각하시는 도시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더 나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지방 중소도시에서 나고 자란 덕분에 작은 도시가 주는 매력과 특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지방 중소도시의 인구절벽을 절감하면서, 중소도시 쇠퇴현상을 다루는 기사와 연구를 접할 때마다 남다른 애환을 느낍니다.

무엇보다도 지방 중소도시가 갖는 물리적․비물리적 고유성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도권 대도시의 도시 위계와 사회경제적 구조를 답습하기보다, 지역의 현황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브랜딩 해야 합니다. 지역 특산물을 마스코트로 만들거나 ‘새천년, 국제, 명품’ 등 접두어를 붙이기만 하는 낮은 차원의 브랜딩이 아닌, 지역의 적극적인 미래상을 확립해나가는 과정으로서 5년 뒤 10년 뒤의 브랜딩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더불어 지역을 새로 고침 할 수 있는 실효적인 지역 특화 자원(공동체 분포, 사회적 경제 요소, 문화 예술 자원, 이니셔티브 등)을 발굴해, 이러한 자원들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플랫폼을 마련하고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처럼 장기적인 브랜딩 전략 하에 지역의 특화 자원을 재구성하면서 도시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 브랜딩의 외연의 확장을 꾀할 때 비로소 지방 도시에 새로운 호흡과 순환의 물꼬가 트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현장에서는 원론적인 도시재생 이론과 오래된 성공 사례들이 되풀이되고, 강소도시 등 지나치게 이상적이거나 거대 담론 위주의 해법을 선언하기 일쑤입니다. 하나의 이론이나 성공 사례가 지방 도시와 일대일 대응이 될 수 없거니와, ‘청년, 공유, 희망’ 등 선량한 어휘만을 베껴 온 정책들은, 간판에 이름으로 달리는 순간 생명을 다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회가 닿을 때마다 드리는 말씀은 실천 가능한 아이디어들을 청년들과 함께 도출하고, 적은 예산과 작은 규모 일지라도 실행해보면서 지방 도시 곳곳에 어떤 자극(스파크)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지역 변화를 꿈꾸는 이니셔티브를 발굴하고 지원하고 연결해야 합니다. 설령 실험적인 프로젝트가 실패하더라도 기록하고 공유할 때, 그 실패한 토양에서 새로운 싹이 나고 발견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발견됩니다.

지방 중소도시일수록 한 사람, 한 기관에 의한 하향식 도시재생 정책이 눈에 띱니다. 지방 도시 일수록 계획가가 직접 그리고 움직이기보다, 판을 만들어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중소도시에서만 해볼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국내외 대도시에서 수행된 유수의 성공사례보다 실패사례를 정리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한정된 지면에서 이야기가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드네요(웃음).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지역의 자연환경, 인문환경 특성과 정원 문화를 접목한 비즈니스 모델을 연구 중입니다. 일종의 공간 매트릭스를 짜고 있는데, 정원과 각별히 연계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현재 많은 분들의 의견을 들으며 진행 중이라, 이 정도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기의 성과를 이루어 여러분에게 소개드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_ 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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