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정원의 생산과 윤리에 대하여

글_ 권진욱 논설위원(영남대 산림자원 및 조경학과 교수)
라펜트l권진욱 교수l기사입력2016-01-14

정원의 생산과 윤리에 대하여

 


_ 권진욱 논설위원(영남대 산림자원 및 조경학과 교수)

 

 

지난해 유난히 대한민국에는 정원과 관련한 화제 거리가 많았다. 다수의 지자체와 단체기관에 의해 진행되었던 정원박람회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고, 그 외에 정원관련 심포지엄, 국가정원, 민간정원 조성을 위한 이슈들, 정원과 연계된 도시농업들, 정원 산업과 산업화방안, 정원아카데미, 수목원·정원법 논란 등 주요 카테고리로 어림잡아 구분하여도 대략 7개에 달한다. 


아울러 그동안 목소리를 낮추어 왔거나 혹은 미처 인지하지 못하였거나 혹은 무관심 했을 수도 있는 수많은 정원관련 전문가들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한편으론 “이렇게 많은 전문가들이 있었구나.” 라는 놀라움마저 가지게 된다. 어찌되었건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확신하건데 우리나라는 곧 정원문화의 강대국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한번쯤은 숨고르기를 하여야 한다. 조급함보다는 여유와 관조를 가지며, 양적 생산보다는 질적 충족과 향유의 가치를 신중하게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인기몰이와 흥행에 앞서기보다는 본질적 가치를 차분히 전달하고 있는가에 대한 스스로의 성찰이 필요한 시기라 하겠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정원을 만들고 보급하는데 있어 두 가지의 관점으로 당부를 하고 싶다. 첫 번째는 현재 다가오는 정원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이다. 정원문화의 보급 속도만큼 우리는 쇼-정원 혹은 전시 정원의 모습에 너무 빨리 익숙해진 느낌이다. 마치 유럽에서 성행하는 정원박람회의 일면을 답습하는 형태로 전개되는 모습은 자칫 정원의 외향에 편식되어 그 자연성은 멀어져간 듯하다.


이러한 양상은 예로부터 정원의 본질이 추구하였던 것, 그리고 정원을 만들어왔던 작정자들의 가치관과는 사뭇 다른 인상을 전달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습주의적 정원으로부터 벗어나고 미래의 환경에 대한 자연의 모습을 정원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향후 우리가 추구하여야 할 정원의 미래상이 아닐까. 그렇다면 식물 또한 자유롭게 방황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자연에 그 자신을 맡기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정원은 작으면서 큰 의미를 지니는 현실의 공간이며, 지식이 축적된 실용의 공간이며, 시간을 가로지르는 미래의 환경으로 취급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프랑스의 정원가 질클레망(Gilles Clément) 미래의 정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스스로 반문하고 있다.


생태학적 시대의 정원에는 어떠한 형태를 부여해야 할 것인가?

이 질문을 되새겨보면, 정원사(조경가)가 가져야하는 자연관에 대한 깊은 마음의 성찰과 확신에 대한 반응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가 두려워한 인습적인 정원사로부터 벗어나 자연의 메커니즘에 대한 속 깊은 이해가 필요할 것이며, 이제는 생태에 대한 환경론적 관점으로부터 진일보하여 생태위기론에 대한 생태사회주의의 목소리에 관심을 가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 


두 번째는 정원을 다루는 자세에 대한 것이다. 정원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이것은 분명히 보편적인 자연의 모습과 유사하기도 하지만 그 존재적 가치부여에 따라 다양한 시각을 지닌다. 인간의 간섭에 의한 잣대로서 작정의도에 따라 정원과 자연을 구분 짓기도 하고, 공간과의 관계를 통하여 판단하기도 한다. 때로는 만들어진 자연이 차지하는 영역적 범위를 한정함으로서 정원에 대한 정의를 제시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지구환경 전체를 빗대어 인류의 정원이라 은유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종합해 볼 때, 그 모습은 유사하지만 정원은 분명히 광활한 자연과는 다른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그 차별성은 자연에 대한 경험의 관계로부터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정원은 생활과 삶에서 가지는 자연의 경험이며, 생활의 소재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경험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겪어온 일련의 생활을 의미하는데 정원의 경우 단순히 자연만을 가지고 경험의 대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정원 속에 자연이 존재하고, 그것으로부터 우리는 생활과 연계된 무엇인가를 행동하고, 배우고, 창조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경험하였을 때 비로소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정원을 다루기에 앞서 다음의 글귀를 한번쯤 되새겨 보기를 희망한다. Gardens의 저자 해리슨은 그의 저서에서 이렇게 전하고 있다.


정원은 삶을 키워가는 것이며, 생산적인 일과는 완전히 다른 윤리이다.

_ 권진욱 교수  ·  영남대학교 산림자원및조경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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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wnji@y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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