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하늘을 담은 우물’ 권혁문·노민영 정원작가

2017상하이국제꽃박람회 ‘대상’ 수상작
라펜트l전지은 기자l기사입력2017-03-31
나비가 한두 마리 들어오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개막식 날 새 한 마리가 온실 안으로 들어왔다
2017상하이국제꽃박람회에 한국 민가정원이 등장했다. 그중 독특한 형태의 일산읍 밤가시초가를 모티브로 하늘이 뚫린 지붕 아래 고인 맑은 우물을 형상화한 ‘하늘을 담은 우물’이라는 별명의 ‘고양시 정원’이다.

정원에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한국민가의 정서를 담은 사람은 권혁문 작가(가든디자인 뜰 대표)와 노민영 작가(디자인휴먼 대표)다. ‘201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서 작가와 조직위원회 코디네이터로 만난 동갑내기 두 작가는 지속적으로 인연을 이어오다 협업에 이른 것이다.

정원만을 위한 독립온실에 조성된 두 사람의 합작은 ‘오래 전부터 있었던 정원처럼 편안하고 감동적이며, 한편으로는 독창적이다’라는 평가를 받으며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재)고양국제꽃박람회와 상하이식물원간의 교류를 위한 업무협약을 계기로 소개된 ‘고양시 정원’은 중국인뿐만 아니라 박람회장을 찾은 세계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한국정원의 아름다움을 세계 각국의 관람객에게 알리는데 목표를 두고, 한국의 서정적이고 단아한 감정을 담아내기 위해 온몸을 불태웠다는 두 사람. 그들에게서 정원 이야기와 에피소드에 대해 들어봤다.

권혁문 작가, 노민영 작가


대상 수상 축하드린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린다.

권혁문 작가(이하 권) :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작가로서의 마음에 불을 지폈던 재미있는 일탈이었다. 좋은 기회가 주어져 고마운 마음이다.

노민영 작가(이하 노) : 자연의 가치, 한국적인 미의 가치를 잘 전달한 것 같아 기쁘다. 이번 작품은 쇼가든의 이미지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정원의 순수미에 집중했는데, 심사위원들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극찬해주셔서 감사하다.


2017상하이국제꽃박람회에 함께 참가하게 된 계기는?

: 고양국제꽃박람회와 상하이식물원 교류의 일환으로 상하이국제꽃박람회에서 고양시국제꽃박람회를 초청했다. 고양국제꽃박람회측에서 저에게 정원조성을 제안했다. 과거 건축인테리어를 했었기에 공간계획과 색채배열, 디자인에는 강하지만 식재에 대한 디테일이 부족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식물전문가인 노민영 작가와의 동행을 요청했다. 식물연출과 조화에 대해 잘 아는 노민영 작가는 이끼 사용에 자신감을 보여줬다. 함께 식물재료를 선정한 후, 식재 디테일은 전적으로 노 작가가, 저는 서민적인 정서와 색채, 구조에 관한 부분을 맡았다.

이제 매년 1명의 정원 작가가 상하이에서 정원을 조성하는 것으로 이봉운 고양국제꽃박람회 이사장님과 약속했다. 앞으로 많은 정원 작가에게 기회가 주어지게 되어 기쁘다. 더 멋진 정원을 조성해주셨으면 좋겠다.


공동으로 작업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텐데.

: 두 작가의 강점을 살려 정원에 녹여내기 때문에 정원의 완성도는 당연히 높아지게 된다. 이번 작품은 어느 한 개인작가의 경연이 아닌 한국과 고양시를 대표하는 작품이기에 협업이 적합했다고 생각한다.

: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서로가 알고 있는 최상의 것을 가지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면서 상대방을 존중했다. 그 과정에서 의견충돌이 있기도 하고, 한 시간 동안 말을 안 하는 일도 있었지만 이 과정조차도 마지막에는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다. 공동 작업을 통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기에 고마울 따름이다.


밤가시 초가를 모티브로 한 것이 독특하다.

: 고양국제꽃박람회측에서 ‘한국정원이라는 코드 안에 고양시가 내포돼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해와 고양시를 공부하기 시작, ‘밤가시 초가’를 찾았다. 밤가시 초가는 밤나무로 조성된 고양시의 민가로, 익히 알고 있는 초가집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지붕 한가운데가 뚫려 있고 바닥에는 둥근 웅덩이가 있는데 비가 오면 물이 고였다가 사라진다. 밤나무 고목 울타리의 느낌도 좋았다.

보통 해외의 한국정원은 궁궐정원을 기본으로 하는데 반해 서민의 정원도 선보이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다. 양평에서 자랐기에 시골의 정서가 있다. 시골집은 담을 기준으로 음지와 양지가 있다. 담의 외부는 방범의 의미로 가시가 있는 관목류인 탱자나무, 찔레 등으로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는 금낭화, 은방울꽃, 둥글레 등 음지식물이 들어간다. 그늘지고 습한 처마 밑엔 이끼들이 생기고, 부엌 뒤쪽에는 채소들이 있다. 가장 좋아하는 정원인 ‘명성황후 생가’에서도 같은 정서가 흐른다. 작은 담이 있고, 담 밑 햇살 드는 곳에는 아씨가 좋아하는 꽃이 있고, 채소와 유실수도 있다. 그동안 이러한 한국의 정서를 표현하고 싶었는데, 밤가시 초가가 적합했다.


정원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하다.

: 장소가 온실 내부이다. 온실내부에 한국의 정원을 연출하기위해 식물선택이 가장 중요했다. 열대식물이 아닌 온대성기후에서 자라는 우리 고유식물로 한국의 정원을 표현하고 싶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온대성식물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었다.

기존시설물을 이용해 밤가시 초가의 특징인 ‘똬리형 지붕’을 만들어 식물들이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을 만들었다. 20여개의 기둥과 5m 높이의 사각형구조물의 딱딱한 위압감을 상쇄시키기 위해 이와 대조적으로 구조 내부디자인은 부드러운 곡선을 사용했다. 이 부분은 밤나무고목을 이용한 담장용 울타리에서 차용해 내부공간을 분리해주는 담장을 둘렀으며, 소재로 ‘숯’을 선택했다. 숯은 한중일 삼국 중 온돌문화인 한국에서 가장 친숙한 소재이며, 민가에 가장 중요한 아궁이, 땔감과 직결된다.

밤가시 초가의 또 다른 독특한 요소는 웅덩이형태의 마당이다. 똬리형 지붕구조의 특성상 마당의 중앙으로 떨어지는 빗물을 땅속으로 스며들게 만든 빗물저장 웅덩이인 것이다. 우리선조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빗물정원이기도하다. 밤가시 초가의 배수로인 이 웅덩이에 집집마다 있던 ‘우물’이라는 요소를 끌어들였다.

울타리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향기가 있는 백서향을 두고 싶었지만 수급이 어려워 서향으로 식재하고, 뒤쪽으로는 분꽃을 두어 향이 나게 했다. 울타리 안쪽에는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진달래를 식재했다. 개인적으로 진달래가 뜻 깊다. 통역을 맡았던 친구는 연변이 고향인 조선족이었는데, 그들은 스스로를 북한인도, 중국인도 아닌 ‘아비 잃은 고아’라 표현한다고 한다. 그런 그들에게 진달래는 고향을 생각하게 하는 식물이라고. 그녀는 “이것이 한국정원”이라며 뭉클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 정원에 담아내고자 했던 감정의 포인트는 ‘서정적인 단아함’이었다. 색채, 소재의 선택, 플랜팅 기법,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그 본질적인 감정에 충실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정원이 아닌 본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과 같은 자연의 신비감을 살리기 위해 색감과 질감이 다른 네 종류의 이끼를 100판 넘게 사용했다. 공간마다의 광도, 수분의 체류 가능성 등 면밀히 따져가며 표현했다. 한국자생종인 하늘매발톱부터 고사리, 씀바귀, 심지어 개불알꽃, 냉이풀 등 온싶 옆 풀꽃들을 캐와 함께 식재했더니 자연을 그대로 옮겨온 듯 완성된 정원의 모습이었다. 누구든 감동할 만 하다는 확신이 있었고 저 또한 울컥했다.

: 마치 일본의 상징처럼 된 이끼와 마사는 한중일 모두 사용하는 소재다. 같은 소재를 가지고 일본느낌이 나지 않는 한국의 정서를 담고 싶었다. 식재 색채는 흰색을 주조색으로 두고 분홍색을 보조색, 노랑색을 강조색으로 표현했다.

: 식물을 선택하고 식재하는 기법에 있어서 시대적 배경과 그 당시 조원의 특징을 거스르지 않고 순수하게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정원은 기본적으로 자연풍경식이지만 특히 조선시대 정원에서는 자연의 순리를 기본 질서로 모든 것을 자연에 동화시키고자 노력했던 흔적들을 엿볼 수 있다. 인공적인 표현을 최대한 자제하려고 했던 그들에게서 지형을 존중하고 꽃이나 나무마저도 자라나는 생물로 인식하고 전지·전정하지 않았던 겸허함을 엿볼 수 있다. 본질이 왜곡되지 않게 하는 것이 작가로서 디자인에 대한 책임이라 여기고 연출했다.


ⓒ권혁문 작가

가까운 이웃나라라지만 기후여건이라든지 식물의 수급, 행정시스템 등 어려운 점이 있었을 것 같다.

: 식물들은 현지에서 수급했다. 상하이의 기후는 제주도와 비슷해서 식물 리스트를 정리하면서 사전에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 현장에 도착하니 사전 준비를 요청했던 식물리스트의 20%정도만 준비되어 있어서 당황스럽긴 했으나 기후가 한국과 흡사한 덕에 수종이 바뀌어도 식물원이나 화훼시장에서 동양의 느낌이 나는 식물을 선택하는 데는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스릴 있고 너무 재미있었던 상황이었다.

: 식물 수급에 있어 재미있는 일이 많다. 당초 털개회나무(미스김라일락)을 요청했었는데 수급이 안돼 상하이의 시화인 목련으로 대체했다. 일반 백목련이 아닌 다른 목련을 구하고 싶었고, 상하이식물원내 신품종을 배양하는 목련 증식장에서 큰별목련을 발견했다. 흰색 3주와 분홍 2주를 가져오기 위해 그야말로 3일 동안 삼고초려를 했다. 은방울꽃과 금낭화 수급도 어려워 은방울꽃과 가까운 스노우 플레이트를 사용했는데, 이 식물도 한국인의 색깔을 담아내는데 제 역할을 했다. 이밖에도 보통 다관으로 키워 울타리로 쓰는 명자나무를 하나의 대로 키운 게 있어 독립수로 사용하기도 했다.

상하이로 떠나는 다음주자에게는 교목이나 관목 수급 시 화훼시장보다 종묘장을 추천 드린다. 종묘장은 규모도 크고 잘 조성되어 있으며 초화류도 꽤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시장에 가면 하루에 걷는 양이 기본 5시간이니 단단한 각오가 필요하다.

: 식물뿐만 아니라 곤충도 수급하려 했었다. 정원에 포인트 색채를 노랑으로 선정해 십자화과 식물을 심었는데, 이는 정원의 동적인 요소인 나비를 불러들이기 위한 먹이식물이다. 정원에 나비가 날아들면 좋을 것 같아 상해식물원 직원께 15~20도의 온실 온도유지와 나비 100마리를 부탁드렸으나 나비를 구할 수가 없었기에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 나비가 한두 마리 들어오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개막식 날 나비 대신 새 한 마리가 온실 안으로 들어왔다.

: 상하이식물원 관계자분들의 헌신적인 도움은 우리의 작품이 성공할 수 있었던 중요한 포인트이다. 이분들 덕분에 식물의 수급이나 기타 재료의 준비에 있어서 어려운 점이 없었다.

: 얼마 전 2017고양국제꽃박람회에 참가하는 그리스 작가가 요청한 자료를 보면서 상하이에서의 경험이 떠올랐다. 식물지식이 있어 식물을 구할 수 있는 업체와 대체수종의 리스트를 준비하고, 나아가 하루정도 동행하면서 같이 찾아줄 수 있는 서포터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상하이식물원 담당자분은 식물에 대한 지식은 없었지만, 요청하는 것에 대해서는 놀라우리만큼 저돌적으로 지원해주셨기에 저의 마음가짐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다. 감사드린다.


정원을 구상하고 조성하실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철학이 있다면?

: ‘소통’이다. 정원은 클라이언트에게 선물하는 것이다. 정원과 클라이언트의 궁합을 얼마나 잘 맞춰주느냐가 저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인테리어 디자인을 할 때부터 해오던 저만의 체크리스트가 있다. 그 사람의 가족구성원, 성향,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등을 파악하고 사람과 정원과의 교감을 최대한 유도하려고 한다. 자신의 색깔을 전면에 드러내기보다 클라이언트의 색깔로 큰 틀을 맞추고 그 안에 저만의 색깔을 조금씩 첨가한다.

: ‘자연의 존엄성, 인간의 존엄성’이다. 정원은 자연을 내 곁에 끄집어오고 싶은 인간들의 갈망에서 비롯됐다. 최근에 읽은 책 『디자인 멘토링』에 ‘디자인은 책임이 따른다’라는 글귀가 있었다. 정원디자이너로서 자연의 존엄성에 대한 책임을 기본으로 생물의 어울림을 위한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며, 그 공간을 이용하는 이용자의 마음을 잘 헤아려야만 자연과 인간이 한 덩어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향후 계획이 궁금하다.

: 올해 4월에 개최되는 2017고양국제꽃박람회에 어린이정원인 ‘옹기종기정원’을 조성한다. 이후 제주 마사회와 함께 웨딩을 주제로 한 쇼가든, 과천에 소재하는 교회의 후정 조성이 계획되어 있다. 앞으로는 작가 권혁문보다는 가든디자인 뜰이라는 회사에 더 치중하려 하며, 지금처럼 계속 즐기며 정원을 조성하고자 한다.

: 올해 9월에 중국 광저우에서 실시되는 세계플라워디자인쇼에 한국 대표선수로 출전한다. 제가 지난 2015년 방콕 대회에 출전해 3관왕을 했던 기록이 있기에 많은 선후배분들의 기대가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남은시간 더 연구하고 준비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다. 앞으로도 계속 정원디자이너와 플로리스트라는 두 개의 직업군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광주광역시에서 운영하는 화훼·정원·색채전문 아카데미에서도 후배들의 꿈을 서포트하는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고양국제꽃박람회

글·사진 _ 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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