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노트] ‘살인 개미?’ 공포 과장됐다…만날 일 없고 독성 약해

글_이강운 오피니언리더(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라펜트l이강운 소장l기사입력2018-10-25
생물학자 이강운의 ‘24절기 생물 노트’<24>

‘살인 개미?’ 공포 과장됐다…만날 일 없고 독성 약해
땅속 집 파헤쳐야 사람과 충돌, 말벌과 꽃매미가 더 심각
서리 내린다는 상강, 겨울 앞두고 곤충은 더욱 바빠진다



_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사)한국환경복원기술학회 부회장





붉은불개미 여왕개미(날개 달린 개체)와 일개미. 언론이 공포를 확산시키고 있다. 그림 이강운 소장.

푸르른 가을 하늘과 단풍의 대명사 단풍나무, 신나무의 울긋불긋한 색채가 가을 정취를 물씬 풍긴다. 서릿발을 제대로 받으면 더욱 붉어질 것이다. 더할 수 없이 맑고 깨끗한 날이 절정에 이른다. 오늘은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상강. 서늘한 공기와 공간. 쌀쌀하다.


가을을 맞은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전경

연구소 숲길은 갈 때마다 다른 모습이지만 요즘처럼 철이 바뀌는 계절엔 각양각색 생물들의 치열한 생존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직 생활사를 끝내지 못한 많은 생물은 마음이 바쁘다. 미뤄둔 일들은 많은데 남은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그렇다고 세월을 따라잡을 수 있는 힘은 부족하다. 바로 지금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한다.


겨울을 나비로 보내는 큰멋쟁이나비 번데기

나비로 겨울을 나야 하는 큰멋쟁이나비는 빨리 마지막 단계인 번데기에서 나와 날개를 달고 저온에 대해 적응을 해야 한다. 번데기 속에서 이미 눈, 더듬이, 입은 만들었고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날개 무늬도 완성되었다. 대롱대롱 매달려 마지막 힘을 쏟으며 막 껍질을 벗고 있다.


대만흰나비 애벌레


북쪽비단노린재 애벌레

번데기로 월동해야 할 대만흰나비 애벌레가 아직 싱싱한 개갓냉이 잎 위에 엎드려 있다, 사흘 정도의 따뜻한 햇볕이 필요하다. 이슬로 푹 젖은 북쪽비단노린재 애벌레도 꼼짝 못 하고 있지만, 햇살 퍼지는 한낮이면 다시 몸을 키울 것이다. 하루살이와 매미충, 썩덩나무노린재도 서리가 될 것 같은 차가운 이슬에 온몸이 젖어 숨을 죽이고 있다.


말매미충


썩덩나무노린재

고즈넉한 가을벌레 소리에 딱 어울리는 큰실베짱이가 가늘고 긴 다리를 꽃 위에 걸치고 앉아 있다. 인기척을 느끼면 풀 뒤로 돌아 숨는 놈들이지만 밤새 꼼짝 않고 잔뜩 이슬을 맞아 몸이 무겁다. 여름 끝자락에 알을 낳고 대를 이어야 할 사마귀는 곰팡이에게 먹히고 비극적 삶을 마감했다. 곤충의 몸에 기생해 영양을 얻는 곰팡이 꽃 동충하초(冬蟲夏草)가 되었다.


찬 이슬에 흠뻑 젖은 큰실베짱이


사마귀 동충하초

유리산누에나방은 서리 내리는 요즘에도 펄펄 기운이 난다. 한창 짝짓기를 하고 가장 늦게 알을 낳는다. 봄에 새롭게 태어날 때까지 두꺼운 방한 껍질로 감싼 알들은 추운 겨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밤나무산누에나방의 알은 한 달 전부터 월동 중이다. 알로 애벌레로 번데기로 어른벌레로 각각 적응해 가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가려 사는 곤충 생활사는 서로 간의 쓸모없는 경쟁을 피하려는 진화된 생존 전략이다. 시간과 계절을 내다보며 선택과 집중을 하는 곤충이 과연 열등한 생물일까?


유리산누에나방


밤나무산누에나방과 알

작년부터 몇 차례에 걸친 텔레비전,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붉은불개미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무진 애를 썼지만 늘 편집을 당하는 바람에 중요한 사실은 빠진 채 방송이 되는 일이 이어졌다. 며칠 전 떠들썩한 붉은불개미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칼럼을 썼다. 다행히 많은 분의 걱정은 줄어들었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질문도 많았다.(▶관련 기사: 생태계 망나니 '붉은불개미'를 위한 변명)

한번 언론에 퍼지면 순식간에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그 이후에는 사실적 근거에 따른 정설을 이야기한다 해도 기존의 생각을 번복하는 일이 상당히 어려울 뿐만 아니라 거의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살인 개미로 지목된 붉은불개미는 많은 국민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켰고 붉은불개미 때문에 외출을 자제해야겠다는 기사를 접할 때는 얼마나 사태가 심각한지를 실감한다.

국민의 건강과 생태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기사가 찌라시처럼 '맞아도 그만, 틀려도 그만'이라는 정보여서는 안 된다. 자극적인 표현으로 대중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지만 과장된 정보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일파만파, 전국적으로 확산 증폭되어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한 정확한 사실을 환경부나 농림축산검역본부검역소의 공식 성명으로 국민에게 꼭 알려주어야 한다.


뒷검은푸른쐐기나방 애벌레

도시인에겐 외계인처럼 보이는 붉은불개미는 벌이나 다른 개미처럼 투명한 날개를 가진 곤충들의 그룹인 ‘벌목(Hymenoptera)’에 속하는 곤충이다. 벌목은 가장 크고 복잡한 사회를 이루는 최고의 ‘사회성 곤충’으로 조직생활을 한다. 떼로 다니는데다가 공격적 성향 때문에 공포의 대상이 되었지만, 인간 생활과는 거리가 있다.

붉은불개미를 포함한 대부분의 개미는 특정한 장소인 지하에서 살기 때문에 인간과 충돌할 일이 거의 없다. 추석에 성묘를 위해 벌초할 때 말벌에 쏘이는 경우도 사람을 목표로 공격한 것이 아니고 그들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느낀 말벌의 방어 전략이다. 즉 숲이나 산으로 가서 그들의 집을 헤집기 전에는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지옥독나방 애벌레

곤충의 독성은 천적으로부터 자기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자기 방어물질이라 할 수 있다. 쐐기나방 애벌레와 독나방 애벌레에 쏘이면 욱신거리고 먼지벌레를 건드리면 흉측한 냄새가 난다. 가뢰라는 곤충은 ‘칸다리딘’이라는 독성 물질을 분비해 살에 닿으면 물집도 생긴다.

붉은불개미의 독성은 오히려 이러한 종류의 곤충보다 훨씬 약하며, 정작 살인적 독성이나 양봉 농가의 피해를 생각하면 봄부터 가을까지 거의 일 년 내내 위협적인 외래종 등검은말벌이 훨씬 위험하며, 과수 농가나 전국적으로 수목에 심각한 피해를 발생시키는 꽃매미를 제때 제거해 주는 일이 오히려 더 시급한 문제였다. 붉은불개미를 만날 일도 거의 없지만 무서워할 필요도 없다.


남가뢰


등검은말벌

달빛 환한 연못에서 쌀쌀한 물을 가르며 수달 한 마리가 놀고 있다. 한참 눈을 마주치며 설레는 자연과의 교감을 느낀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새벽이면 연구소 본부 앞 연못을 첨벙거리며 물고기를 잡아먹던 수달을 보면서 물속 곤충과 물고기 안위를 걱정했는데 올 내내 보지 못해 내심 불안했다. 다양한 수생식물과 잠자리와 물고기, 개구리들이 잘 어우러진 연구소 내 11개의 크고 작은 연못과 섬강의 발원지인 계곡이 어울려 수달이 살기 적당한 곳이어서 불안해하면서도 다시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큰 시름을 덜었다.


연구소 연못을 찾은 수달


공사 후 연구소 계곡과 연못의 모습

더욱이 올해는 수변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연구소를 가로지르는 계곡에 석축을 쌓아 정리했기 때문에 자연 서식지를 망가뜨리지 않았나 하는 걱정이 든 참이었다. 4~5년 전부터 산속으로 여러 가구가 이사 오면서 수질도 나빠지고 계곡의 형태를 바꾸면서 2차례 범람했고, 최근의 게릴라성 집중 호우로 계곡이 넘칠까 봐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환경친화적으로 공사를 했다곤 하지만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보고 싶었던 수달과 눈을 마주치고 인사하는 순간 모든 근심이 사라졌다.


연구소 길옆으로 지나가는 수달을 보며 가장 아름답고 온전한 생명의 숲으로 이어질 수 있어 다행이다. 야생동물 흔적과 희귀식물을 만날 수 있고 멸종위기종을 키워낼 수 있는 숲이어서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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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한겨레의 동의를 얻어 발췌한 기사이며, 이강운 소장의 주요 약력은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 한국환경복원기술학회 부회장 / 한국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 / 국립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겸임교수 / 저서로는 <한국의 나방 애벌레 도감(Caterpillars of Moths in Korea)>(2015.11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캐터필러>(2016.11 도서출판 홀로세)가 있다.
이메일 : holoce@hecri.re.kr       
블로그 : http://m.blog.naver.com/holoce58
글·사진 _ 이강운 소장  ·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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