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25도 견뎌낸 청띠신선나비, 청명한 봄날 홀리네

[애니멀피플] 이강운의 홀로세 곤충기
라펜트l이강운 소장l기사입력2021-04-22
영하 25도 견뎌낸 청띠신선나비, 청명한 봄날 홀리네
석주명이 이름 지은 나비, 6달 주린 배 고로쇠 수액으로 채워


_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사)한국환경복원기술학회 부회장




긴 겨울을 성체 상태로 난 청띠신선나비가 나무의 수액을 빠느라 정신이 없다.

햇수로 3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대유행은 세계 모든 사람의 일상을 없애는 재난이 되었다. 어느 시대나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자연현상에 대해 두려움과 호기심을 가지고 그 해답을 찾아 왔고, 추위에 민감한 코로나바이러스의 특성상 앞으로 ‘더 강해질 태양의 기운에 사그라질 것’이라는 희망을 걸었지만 그마저도 정답은 아닌 것 같다. 온도가 올라가도 감염자 수는 늘고, 열대지역에서 오히려 더 기승을 부리니 다시 광범위하게 확산하지 않을까 걱정이 크다.

청명(淸明). 이름만으로도 맑고 깨끗하다. 절기에 때맞추어 봄비가 내려주니 미세먼지도, 뿌연 황사도 씻어주어 하늘은 더 맑고 깨끗하다. 예전에는 봄비가 내리면 가장 먼저 논과 밭작물의 생육에 크게 도움을 주는 농사를 떠올렸고, 청명한 봄비 소리에 꽃이 피고 새잎이 돋는 소리를 들었는데 몇 년 전부터는 싱그럽고 상쾌한 공기를 떠올린다. 너무 흔해 고마움을 몰랐던 깨끗한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여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든 사람이 공감하고 있다.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이 환경이나 생물을 보전하고 보호하려는 마음으로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명력이 왕성한 이즈음에는 아침, 저녁으로 꽃이 피고, 새싹이 나오는 모습이 눈으로 보인다. 강원도, 해발 450m 고산 지대에 자리한 연구소라 아직 꽃향기 물씬 나는 봄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쌀쌀한 가운데 봄기운이 충만하다. 꽃으로, 연한 초록의 새로운 잎으로 생명의 기운을 이야기하는 신호가 수두룩하지만 그래도 나비만큼 역동적인 생명체는 없는 것 같다.


성체로 겨울을 난 각시멧노랑나비


네발나비


뿔나비

종마다 생물 시계가 있어 각각 때를 맞추고 조절하며 살아가지만 추운 겨울 방한복 한 벌 없이 숲 속 나뭇잎 밑에서 나비로 지내다 기온이 올라가면 날갯짓을 하며 다시 세상으로 되돌아오는 몇몇 종류의 월동형 나비를 보면 그저 신비롭기만 하다. 변온성 동물이어서 체온을 외부 온도에 맞추는 메커니즘을 이해한다 해도 나비 상태로 혹독한 영하 25를 견뎌내며 봄에 다시 우리 곁에 나타나는 네발나비, 뿔나비나 각시멧노랑나비, 청띠신선나비를 보면 경이롭기만 하다.

며칠 전 네발나비, 뿔나비나 각시멧노랑나비를 만났을 때도 유독 이 친구만 만나지 못했는데 청명 즈음에 산속 깊은 곳 신선처럼 은밀하게 살 것 같던, 신령스런 존재인 청띠신선나비와 만나 홀린 듯 봄날 하루해를 보냈다.

청띠신선나비의 속명인 Kaniska는 위대한 왕을 뜻하는데 태양의 신(Apollo butterfly)으로 불리는 붉은점모시나비와 함께 이름만으로도 최고 대접을 받는 나비다. 텃세도 심하고 예민해 가까이하기에도 어렵고, 자연에서 채집한 애벌레를 키우다 보면 거의 기생을 당해 제대로 우화시켜 보지 못한 까다로운 나비인데 아주 운 좋게 종일 곁을 지키며 신선과 놀았다.


청띠신선나비 애벌레


청띠신선나비 애벌레가 기생당한 모습. 애벌레를 성체로 기르기가 매우 힘든 종류이다.


청띠신선나비 성체 /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날개를 접은 자태는 영락없이 찢어진 낙엽이나 나무껍질과 흡사해 눈에 잘 띄지 않는 은둔자나 신선 같고, 쇳빛 바탕에 양쪽 날개를 가로지르는 청색의 빛나는 띠는 신비롭게 보이니 청띠신선나비 맞다. 나비 연구가 석주명(1908∼1950) 선생이 이름을 멋지게 지으셨다.

빨대를 내어 고로쇠나무의 수액을 빠느라 정신이 없는지 가까이 다가가도 청띠신선나비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약 6개월간 굶주렸으니 주린 배를 채우느라 정말 꿀맛이었을 것이다. 사람 입에도 달짝지근한 단맛과 효험 있는 골리수(骨利水)로 알려진 고로쇠의 수액이 청띠신선나비에게도 훌륭한 먹이였다.


고로쇠 수액을 핥기 위해 청띠신선나비와 네발나비가 모여들었다.

2번째 껍질을 벗은 3령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가 오후 늦게까지 일광욕을 한다. 혹한을 즐기며 쑥쑥 성장해 왔지만 뜨거워지는 지구가 걱정이다. 혹한이 이들의 생존 조건인데 가늠할 수 없이 들쭉날쭉한 온도와 날씨 때문에 어떻게 버틸까? 뜨거운 열과 건조한 여름을 피할 수도 없고, 그 자리에서 그냥 죽음을 맞이해야 하나! ‘어쩌다 나비’는 없다.


붉은점모시나비 3령 애벌레

너무 흔해 늘 곁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많은 생물이 사라지고 있다. 장난감처럼 갖고 놀던 잠자리와 논에서 내 다리를 물던 물장군이 멸종될 것 같다고? 소똥구리가 없어졌다고? 다 거짓말 같지만 사실이다.

환경부와 협의해 4월 1일을 ‘멸종위기종의 날’로 선포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이 갖는 의미와 보전 가치 등을 널리 알리고 위험한 고비를 넘겨보자는 의미다. 생명을 보장받지 못하는 멸종위기생물들에 따뜻한 말 한마디, 죽음의 문턱에 있는 이들에게 맑고 푸른 하늘과 희망의 봄을 느끼게 해 주는 일도 잔인한 4월에 우리가 할 일이다.


‘멸종위기종의 날’ 포스터

멸종위기종을 연구하면서 개체 수를 늘리고 있고, 보전 연구를 꾸준히 해 학문적인 진보도 많이 이루었지만, 2021년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이주 전문가 집단 책자에 14년간 증식·보전을 위해 연구해 온 붉은점모시나비의 성공적인 복원 사례가 실려 뿌듯하다. 세계의 복원 생물학 전문가 그룹의 참고 문헌이 되고, 다양한 응용 가능성을 기대하면서 더욱 귀하게 느껴지는 붉은점모시나비이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이주 전문가 집단 책자에 실린 붉은점모시나비 사례

한겨울에 ‘바람의 아이’로 태어난 둘째 손녀에 생명을 깨우는 경칩에 태어난 둘째 손자까지 이제 손자, 손녀가 넷이다. 오직 내 목표는 이 아이들이 녹색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모든 생물이 다 같이 사는 길을 찾아 주는 것이다.

홀로세 곤충방송국 힙(HIB) 동영상 ‘멸종위기종의 날 신선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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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한겨레의 동의를 얻어 발췌한 기사이며, 이강운 소장의 주요 약력은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 한국환경복원기술학회 부회장 / 한국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 / 국립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겸임교수 / 저서로는 <한국의 나방 애벌레 도감(Caterpillars of Moths in Korea)>(2015.11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캐터필러>(2016.11 도서출판 홀로세)가 있다.
이메일 : holoce@hecri.re.kr       
블로그 : http://m.blog.naver.com/holoce58
글·사진 _ 이강운 소장  ·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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